220화. 이의 있소! (3)
"야! 저, 저거 율리안 밀러 아냐?!"
"!?"
단의 변호사 자리에 율리안이 있었다.
무패를 자랑하던 도굴단의 변호사가.
그들은 황당했다.
눈을 비비고 보고 또 다시 봐도 분명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책략왕 율리안 밀러였던 것이다.
심지어 서주헌이라니!
덕분에 황당해진 그들이 양 쳰을 쏘아보았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저놈들이 이 자리에 있어!"
"설명 좀 해봐!"
설명이고 자시고!
양 쳰은 욕이 튀어나왔다.
저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자신이 더 묻고 싶은 판이거늘!
당황한 양 쳰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주헌과 율리안을 번갈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이미 아는 사이였나.'
아니, 그럴 일은 없었다.
이미 단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게 했던 자신이었다.
단과 서주헌의 연관성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나 주헌은 하하 웃고 있었다.
저놈이 이미 단과 얽혀 있었던 건 의외였지만, 알아서 내 동료를 찾아주다니!
덕분에 발품을 팔 필요가 없어지지 않았나!
'짜식 고맙다.'
그리고 마치 물건을 물고 온 멍멍이를 칭찬하는 시선에 양 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저 개새끼.'
반드시 죽여버릴 테다.
사실 양 쳰은 운명왕으로부터 단의 존재를 들었을 때 쾌좨를 질렀었다.
왜?
우연이긴 했지만 이미 자신이 만난 적이 있는 놈이라니!
덕분에 서주헌보다 먼저, 그리고 몰래 패를 없앨 기회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젠장, 골치 아프게 됐다.'
저놈들이 그냥 심심해 죽겠어서 이 재판장에 난입했을 리는 없고!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바라보는 주헌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감히 누명을 씌워? 니넨 죽었어.'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굉장히 섬뜩한 눈빛.
죄다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의 눈빛.
그걸 본 양 쳰은 다급해졌다.
'젠장, 원래 변호사는 뭐하고 저놈이 있는 거야!'
그는 항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저 이 재판 포기할 거예요.]
단의 변호를 맡기로 했던 변호사로부터 메시지가 몇 분 전에 와 있었다.
[아무튼 조심해요. 놈들은 피고인을 무죄로 만들 생각이니까.]
이 망할 변호사.
'빨리도 보낸다!'
질책받기 싫어서인지 참 개 같은 타이밍에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거지같은 변호사는 둘째치더라도 저놈을 무죄로 만들겠다고?
양 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비단 그만 황당해 하는 것이 아니리라.
"미친, 저놈 변호사였어?!"
"그런 말 못 들었다고."
"아니, 확실히 작년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단 정보는 있었어."
그 말에 방청석의 TKBM 단원들이 황당해했다.
"작년이라니! 그럼 그래봐야 풋내기잖아!"
결국 검사측이 말했다.
"변호인이 바뀐 건 오늘 듣긴 했지만 괜찮겠습니까? 결과가 바뀔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율리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바뀝니다. 피고인은 죄가 없거든요."
그의 말에 법정이 크게 술렁였다.
"변호인, 그럼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겁니까?"
"네,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술렁술렁.
다시 한 번 법정이 술렁거렸다.
그 당당한 태도에 사건을 조작해놨던 양 쳰은 미간을 찌푸렸고, TKBM 발굴단은 발을 동동 굴렸다.
"부단장님, 괜찮은 겁니까? 뭔가 눈치챈 건..."
"닥쳐. 그럴 리 없잖아."
낮게 으르렁거리는 양 쳰이 눈을 번득였다.
아마도 괜찮을 것이었다.
'증인들도 유물로 조작해놨다.'
허튼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율리안은 제대로 된 사건도 맡아본 적 없을 신입 변호사가 아닌가.
판을 뒤엎기는커녕, 어버버거리며 떨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
그러나 떨지나 않으면 다행이긴 개뿔.
"야, 이거 뭐야."
지금 재판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양 쳰으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의 있습니다!"
벌써 21번째.
또다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양 쳰은 쌍욕을 날렸다.
저 자식이 진짜!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의기양양한 율리안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증인 심문을 하고 있었다.
바로 입을 맞춰놓은 자신의 TKBM 발굴단들과 당시 현장에 있던 기업인들을.
하지만.
"방금 증인이 한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말을 맞춘 게 아닙니까?"
"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제대로...!"
"증인의 말씀대로라면, 증인은 1층에서 여자분과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는 중에 30층에 있는 살인사건까지 목격했다는 건데요. 대단한 초능력을 가지셨네요. 부럽습니다."
"그건...!"
율리안은 아까부터 능수능란하게 법정을 휘젓고 있었다.
도저히 신임 변호사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고, 논리정연한 어조.
그리고 확실하면서도 화려한 언변으로 배심원들과 판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실제로 검사와 판사도 놀랐다.
저건 신임이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정말 신임 변호사가 맞나?'
물론 주헌은 당황하는 사람들을 보며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듯 즐기고 있었다.
'당연히 저 정도는 해야지.'
누구의 단원인데.
호구라서(?) 권 회장에게 붙잡혔던 것뿐이지, 저놈은 베테랑이었다.
결국 계속되는 상황에 참고인으로 불려온 권 회장의 장남과 진범 스티븐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건 당연했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면 저딴 놈이 설쳐!'
그들의 분노는 율리안을 벗어나 양 쳰에게 향했다.
덕분에 양 쳰은 입술을 짓이겼다.
무엇보다 진범 쪽이 문제였다.
왜?
진범인 스티븐.
그는 얼핏 TKBM의 평범한 단원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권 회장이 무척 신경 쓰는 VIP라고 할 수 있었다.
왜?
스티븐은 미국 경제금융의 중심지월가 큰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TKBM의 외국인 대주주들이었다.
그리고 TKBM의 발굴 노하우를 빼먹고 단장으로 독립할 생각이었겠지만, 장남하고 하필 사고를 쳐서는.
'젠장, 이대로 진실이 밝혀지면 곤란하다.'
진실이 밝혀지면 TKBM의 주주들이 연쇄적으로 난리가 날 것이며 기업 이미지로서도 타격이 컸다.
지금도 개판인데 얼마나 더 개판이 되려고.
그래서일까.
'젠장, 어떻게든 저놈들을 살인범으로 몰아넣어야하는데.'
하지만 몰아가기는 개뿔.
"저 분명 들었어요! 피해자하고 TKBM 단원하고 싸우고, 비명소리도요. 그런데 그 때 저기 피의자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고 보면 죽은 피해자한테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TKBM 단원 중 하나가 화장실에서 약을 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살피러 간다고 한 거 같은데..."
"게다가 그 시간이면 피의자는 저랑 같이 있었어요. 고기를 나르고 있었거든요. 범인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양 쳰이라는 사람이 절 찾아와서 이상한 동전을 사용한 게 기억나네요. 그 뒤로 어쩐지 기억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혹시 유물로 기억을 조작한 게 아닐까요?"
야이씨, 저것들이 미쳤나.
그렇다.
그들은 단의 무죄를 증명하고 있었다.
1심 2심에서 전부 단을 범인으로 몰아넣는 증언을 했던 사람들이!
덕분에 재판장은 충격에 빠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완전히 말을 번복하는 사람들의 말에 배심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검사와 판사도 당황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조작범들은 미치고 환장할 수밖에!
"부단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주헌은 그들을 보며 좋아 죽었다.
'어떻게 되긴.'
율리안이 제갈공명 유물을 사용한 거지. 그리고 어떤 유물인지 파악한 후, 상반 된 유물로 조작 사실을 제거했을 뿐.
그리고 기자들은 번복되는 증언에 흥분했다.
TKBM 발굴단과 얽혀 있는 문제인지라 방청을 나왔던 기자들에겐 건수를 잡은 것이리라.
"그럼 진범은 TKBM 단원인거야?"
"설마 증인들을 위조한 건가?"
그 말에 TKBM 직원들은 난리가 났다.
"야! 당신들 안 닥쳐?!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 씨부리지 마!"
빡친 TKBM 사람들이 방청석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떡밥을 물은 기자들은 아주 신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보다 못한 검사가 바로 항의했다.
"재판장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검사는 증인들과 율리안을 쏘아보았다.
"증인들은 지금 신성한 법정에서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이에 증인들과 변호인에게 법적인 제재를..."
그러나 이때였다.
"장난?"
율리안은 두꺼운 서류를 검사의 앞에 쾅 내려놓았다.
검사는 황당한 표정으로 보았다.
"뭐, 뭡니까, 이거?"
"장난은 누가 쳤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죠."
검사가 급하게 서류를 들춰보니 거기엔 판도라 수사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판도라 공인 감식가들에 의한 판독 결과입니다. 곳곳에서 부자연스럽게 유물이 사용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군요. 즉, 유물로 증인들의 기억을 날조하고 증거를 없애려 한 겁니다."
재판장은 난리가 났다.
"뭐라고?!"
"기억 날조?"
기억의 지배.
그건 키이라가 흑인 어린이들을 조종했다는 것만큼의 이슈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야, 이거 완전 특보야! 특보!"
"심지어 살인죄 뒤집어씌우려고!"
덕분에 TKBM 일원들은 똥줄이 타들어갔다.
아니, 애초에.
'판도라의 감식가들이 왜 움직여! 수사하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해놨는데!'
결국 참다못한 진범이 외쳤다.
"그 판도라 감식이라는 걸 어떻게 믿어! 판도라 놈들이 짜고 친 걸 수도 있잖아!"
그러자 율리안이 말했다.
"그럼 그 판도라 감식을 늘 이용하는 TKBM도 언제나 짜고 치고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
"판도라는 유물과 관련하여 국제적 공인기관입니다. 그럼 참고인, 그 날 구체적으로 뭘 했습니까?"
그 말에 스티븐이 거품을 물었다.
"어디서 굴러온 줄 모르는 변호사가 무슨 자격으로...!"
검사도 황급히 나섰다.
"변호인! 이 재판은 피고인의 죄를 묻는 자리지, 참고인의 심문 자리가 아닙니다. 판사님. 더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이건 변호인의 단순한 시간 끌기...!"
그러나 이때였다.
쾅!
"지금은 변호인의 심문 시간입니다. 변호인, 심문을 계속하세요."
빌어먹을!
순식간에 양 쳰은 눈을 부릅뜨고 주헌을 노려보았다.
절대 이대로 포기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보나마나 단, 저놈을 빼가려고 별 수작을 부린 모양인데.
'니들이 이렇게 나오면 이쪽도 방법은 있다.'
그는 재빨리 부하를 보았다.
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급하게 어디론가 메시지를 날렸다.
***
"네? 수아라는 계집애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라고요?"
한편 대학병원에 있던 TKBM 단원은 깜짝 놀랐다.
단과 거래한 후 단의 딸을 TKBM과 연관이 있는 병원으로 옮긴 건 좋다 이거였다.
'혹시 모르니 잘 감시하고 있어라.'
분명 양 쳰이 그리 지시하지 않았나.
아마 주헌이 단을 영입한다면 당연히 그 딸에게도 찾아올 것을 예상한 이유이리라.
하지만 부하는 침대에서 잠이 든 아이를 보며 탄식했다.
"잘 감시하라고 해도 오는 놈 하나 없는데 뭐."
아이를 찾아오는 건 의사나 간호사뿐.
그런데 그럴 때였다.
"!"
그들은 병실 앞에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그림자를 보았다.
얼핏 보기엔 남자 간호사.
그러나 놈을 보자마자 단원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야! 유재하!"
"아씨, 깜찍이야! 놀랐잖아!"
그렇다.
병실을 기웃 기웃거리던 것은 다름아닌 유재하!
그는 주변에 누가 없나 하며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같았다.
결국 발각된 유재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기... 저 나쁜 사람 아니거든요? 그, 그냥 환자를 보러 온 거거든요?"
환자는 개뿔.
그를 보자마자 TKBM 단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쫓아가기 시작했다.
"야! 잡아! 저 자식 잡으라고!"
"저 호구왕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리고 거구의 사내들이 달려오자 키야악 비명을 질렀다.
"야, 솔직히 다섯 명은 에바 아니냐! 야! 오지 마아아아!"
유재하는 도망갔다.
그리고 단원들이 유재하를 쫓자 남은 단원들이 병실에 들어가며 말했다.
"유재하를 발견했다. 부단장님의 말대로 서주헌 패거리가 뭔 수작을 하려는 것 같다."
"꼬마 쪽은 혹시 모르니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겠다."
그러더니 그들은 잠에서 깬 어린 여자 아이를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했다.
"미안, 아저씨들 때문에 깼지?"
"여긴 위험하니까 아저씨들하고 잠깐 가자."
그렇게 아이의 손을 붙잡고 병실에 나가는 때였다.
"어?"
"야, 이거 뭐야?"
뭔가 좀 이상한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