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이의 있소! (2)
한편 율리안과 클로에는 충격에 빠졌다.
아이린의 도움으로 옆방을 감시하게 된 건 좋다 이거였다.
도청 유물이 있었으니 양 쳰을 감시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양 쳰이 설마 이런 식으로 연결 되어 있었을 줄은.'
아이린의 사주(?)를 받은 교도관은 아주 친절하게 사건에 대해 설명까지 해주었다.
"언론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서 묻히긴 했는데, 분명 이 사건이에요."
교도관은 예쁜 아이린과 클로에를 보며 아주 넋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교도관이 내민 핸드폰의 기사를 보고 아이린이 깜짝 놀랐다.
"아, 저 이 사건 알아요. 오빠가 보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에 비해 클로에와 율리안은 전혀 모르던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사건 자체가 지역 신문에서만 나왔을 정도로 이슈가 되지 못했으니까.
'아마 사건 자체를 일부러 축소한 것 같지만.'
게다가 훗날 개명이라도 하게 되는 건지, 단의 이름이 지금은 달랐다.
어쨌거나 사건 현장은 한 파티장.
"기업들끼리 유물 발굴 축하를 위한 파티였나 보네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언론에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 묻혔던 사건.
'살해당한 건 파티장에서 일하던 종업원인가.'
율리안은 미간을 좁혔다.
사건은 아주 심플했다.
단이 남자 두 명과 시비가 붙었는데, 말리러 온 종업원을 단이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CCTV나 현장에서나 명확한 증거가 남아 더 이상 수사할 여지도 없어보였다.
뭐, 율리안도 거기까지면 그냥 넘어 갔을 지도 모른다.
교도관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범인과 싸웠다는 두 놈이요. 실은 TKBM 회장의 장남이랑 그 발굴단의 단원입니다."
"게다가 그 함께 있었다던 발굴단 단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딱 봐도 빽 있는 놈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클로에가 아, 기억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건, 들어본 것 같아요. 분명 유물사용자가 사건을 묻었을 거라고 단체 내에서도 반발이 거셌죠."
유물사용자를 증오하는 NGO 단체인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난을 했었다.
신문에도 냈고, 1인 시위도 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마치 유물에 의해 의도적으로 묻히는 것처럼. 아주 소리 없이 세상에서 잊히고 있었다.
물론 그 원흉이 누구인지 모를 것 같지도 않았다.
'양 쳰 이 자식.'
틀림없었다.
권 상무의 일이니까 당연히 TKBM이 나섰을 테고, 양 쳰이 그 뒤처리를 했던 것이리라.
유물을 통한 사건 조작.
통칭 <사후처리반>이라 불리는 놈들의 일이다.
그리고 기사를 꼼꼼히 읽던 클로에가 낭패라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살인범으로 기소가 되었으니 재판에서 이겨야 단을 빼오든지 말든지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거 너무 조작을 해놔서 단이 불리한데요.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여요."
실제로 이 사건을 조작했을 양 쳰의 목소리도 의기양양해 보였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가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TKBM에게 아주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단을 빼낼 수 있을까요? 이건 아무리 단장님이라도..."
그 말에 율리안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지금 누구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
'딸을 살리고 싶지?'
양 쳰의 웃음을 떠올리며 단은 큭 입술을 짓이겼다.
분명했다.
이건 의도된 사건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CCTV도 사람들의 기억들도 모두 조작된 것이리라.
왜?
그는 분명히 봤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날, 화장실에서 우왕좌왕하는 두 놈의 모습을.
'분명 범인들은 그놈들이다.'
TKBM 권태준 회장의 장남 권성우.
그리고 TKBM 발굴단 소속인 것 같은 한 젊은 청년.
갑자기 사라진 딸 탓인지, 단은 다급히 파티장 건물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딸을 찾은 곳에서 그는 분명히 들었던 것이다.
'야, 씨. 이거 어떡해! 벌써 20분째라고! 사람 오는 거 아냐? 뒤처리반 언제 오는데!'
'그러니까 누가 유물 칼 들고 설치래?'
'하씨, 잘 사용이 되나 안 되나 시험해본 거지! 이 새끼가 자꾸 힐끗힐끗 쳐다보니까!'
'쳐다보긴 뭘 쳐다봐! 너 약 끊으라고 했지!'
남자 둘은 피투성이가 된 종업원 앞에서 옥신각신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자자, 싸우지들 마시고. 제가 뒤처리 반이랑 의논하는 중이니 얌전히들 있으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는 확실히 있었다.
사건을 뒷수습하기 위한 양 쳰이.
어디 그뿐인가.
'꼬마야. 아빠는 언제 와?'
사라진 줄 알았던 딸은 양 쳰이 데리고 있었다.
마치 이 장소에 자신을 끌어내려고 하듯이.
그러니 확실했다.
'분명 그놈들이 유물이라는 걸로 무슨 짓을 한 거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주장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CCTV에도 이상한 것이 남아 있었고.
그리고 현재.
"양 쳰 씨에게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국선변호사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단을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무죄를 증명해보려고 했지만 글쎄.
'확실하게 죄를 인정하게 하면 변호사님께도 사례하죠.'
이미 변호사 역시 양 쳰에게 제의를 받은 참이었다.
단이 자백을 하도록 유도하면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해주겠다고.
바로 유물 보상이다.
'유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진 않잖아.'
TKBM이라면 발굴단 중에서도 탑 3.
인생이 바뀔 만한 유물들이 가득하다고 들었다.
심지어 유물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애초에 증거가 너무 뚜렷해서 형량 줄이기가 고작일 거 같고.'
게다가 얽힌 사람들이 너무 안 좋았다.
'TKBM에 대통령의 입김이 닿는 사람이라니.'
하마터면 자신이 다칠지도 모르는 상대들이 얽혀 있어 변호사는 조심스러웠다.
덕분에 그냥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까 싶기도 했지만 글쎄.
'사례는 하겠습니다.'
유물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래서일까.
"딸이 아프잖아요. 아무래도 수술은 받으셔야할 것 같은데."
그녀는 살살 단을 꼬시기 시작했다.
"우리 형량을 줄이는 쪽으로 가죠. 자백을 하시고, 수술비를 받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그래야 나한테도 이득이고.'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단은 파르르 손을 떨었다.
억울하긴 하지만 아픈 딸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일찍이 돌봐주지 못한 내 탓이다.'
아내는 먼저 떠나보냈지만, 사랑하는 딸까지 보낼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단은 안다.
그 사건으로 기억이 바뀌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몇 명인지.
태연하게 죄를 날조한 것도 그놈들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저 변호사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범인은 제가 아니라 TKBM에 있던 그 사람들입니다."
그 말에 변호사가 한숨을 쉬며 벌떡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변호를 맡는 건 취소하죠."
"네?!"
변호사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저는 지금 변호는 그다지 하고 싶진 않네요."
"잠...!"
변호사는 태연하게 약을 팔았다.
"지금 다른 변호사들도 사실 골치 아파해요. 이 사건에 대해서. 다들 이 사건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요."
"...!"
"그렇다고 따로 막강한 변호사를 고용하실 돈도 없으신 것 같고, 억지 논리를 펼치시기 보다는 TKBM이 선의로 돈을 준다 할 때 받으시는 게 더 현명한 것 같은데요. 딸이 아직 다섯 살 밖에 안 됐잖아요? 잘 생각하세요. 뭐가 현명한지."
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알겠습니다. 그럼 인정할 테니..."
그런데 이때였다.
쾅!
갑자기 거칠게 열리는 문에 변호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누구예요!"
누구긴 누구야.
"저 사람의 변호사입니다만."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율리안.
그는 냉랭하게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도대체 지금 누구의 허락을 받고 둘이서만 대화를 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변호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누구 허락이라니! 저기요. 제가 저 사람의 변호사..."
"아, 이제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제가 저 분의 변호사입니다."
"뭐라고요?!"
단 역시 황당해했다.
"저, 저기요?"
하지만 단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율리안이 변호사를 쏘아보았다.
"아무래도 사적인 이익을 재판장에 개입시키는 사람을 옆에 둘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사적인 이익이라니, 무슨!"
이때 클로에가 슬쩍 속삭였다.
"저, 부단장님. 죄송하지만 변호사 자격증은 따시고 설치시는 겁니까?"
그럴 때 상대편 변호사도 이를 갈았다.
당황해서 몰랐는데, 이놈이 책략왕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 변호사도 아니잖아요! 변호사도 아니면서 어디서 설쳐! 신고할 거예요!"
그러자 율리안은 굉장한 실례라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변호사 맞는데요."
얼마 전에 개업했지만.
변호사는 이를 갈았다.
"됐으니까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꺼져요. 내가 이 사건 맡을 거니까."
"방금 전에는 변호를 맡을 수 없겠다면서요?"
"!"
"아무래도 다른 변호사들 모두 곤란하신 것 같으니 제가 맡도록 하죠. 저라면 이 사람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으니까."
변호사는 기가 막혔다.
"......허, 허! 무죄라니, 무슨."
율리안은 대답 대신 뭔가를 꺼냈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스피커.
그러나 흘러나오는 소리는...
[자백하게 하세요. 그러면 좋은 유물을 드리죠.]
[정말인가요?]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제 목소리에 변호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저게 왜!
녹음한 음성을 튼 율리안은 픽 웃었다.
"어디 더 하실 말씀이라도?"
"젠장!"
결국 그녀가 지워달라며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단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저,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국선변호사세요?"
"아뇨."
"어... 하지만 제 변호사라니, 전 드릴 돈이 한 푼도..."
"아,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이미 받았거든요."
"네?!"
단은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원하는 게 뭡니까?"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냥 사건을 접하고 당신의 무죄를 증명해주려고 온 거라."
"왜 저한테..."
율리안은 가볍게 웃었다.
"전생에 큰 인물을 구하셨나보죠."
***
"정말 괜찮은 거겠죠?"
"그래, 확실하게 자백을 할 거야."
TKBM의 단장들은 참고인으로서 재판에 참가했다.
그리고 재판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모였다.
아무래도 그동안 언론을 잠재우긴 했지만, TKBM의 권 상무와 유명한 셀럽이 소환된 만큼 취재열기가 뛰어났던 것이리라.
양 쳰은 단의 자리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튼 저놈을 사형시키는 걸로 서주헌도 같이 엿 먹일 수 있을 거야."
양 쳰의 비웃음에 다른 단장들은 갸우뚱거렸다.
"저놈을 사형시키는 거랑 서주헌이랑 뭔 상관인데?"
"그건... 아무튼 있어. 변호사하고도 말 맞춰놨으니 괜찮아."
그런데 그때였다.
"잠깐만. 야. 저거 서주헌 아냐?"
"?!"
양 쳰은 뜻밖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주헌? 지금 서주헌이라고 했어?
그리고 실제로 방청석에는 서주헌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재미있는 구경을 온 것마냥 히죽거리는 그를 보고 거품을 물었다.
'저, 저놈이 왜!'
하지만 더 기겁할 일이 벌어졌다.
"야! 저, 저거 율리안 밀러 아냐?!"
"!?"
단의 변호사 자리에 율리안이 있었다.
무패를 자랑하던 도굴단의 변호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