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왕관을 노리는 자 (3)
공주가 복도에서 분노의 채팅방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잠깐 괜찮을까."
영국의 왕자와 수상이 주헌의 앞에 앉았다.
수상은 주헌에게 꽤나 호의적이었다.
그에 반해 왕자는 주헌이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주헌 같은 범죄자(?)와 마주하는 게 왕실 입장에선 꺼려지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서주헌의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남들 같으면 수백, 수천 명의 인력을 끌고 가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무덤들.
그런 무덤에서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유물을 캐오는 도굴단의 리더다.
어디 그뿐이랴.
'왕급들을 밑에 데리고 있다니,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호구왕과 책략왕.
두 명이나 되는 거물이 주헌의 발굴단에 있었다.
왕급이라면 모두 자신의 발굴단을 만들려고 하지, 굳이 남의 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과거에도 왕급들을 휘하에 둘 수 있었던 건 사황 정도.
그러니 주헌을 높게 평가하는 왕자가 말을 꺼냈다.
"이번 경매소에서 잭더리퍼가 나타났었지. 사실은 나와 공주가 노려지고 있다."
"네?"
"노리는 건 우리가 가진 유물일지도 모르지."
빅토리아 여왕의 유물과 모리안의 유물.
주헌은 슬쩍 왕자가 달고 있는 까마귀 날개 브로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거라면 잭더리퍼도 등신이네요."
"뭐?"
"빅토리아 유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딴 걸 노린다고요? 가짜 모리안 유물을?"
"!"
왕자는 굉장히 놀란 듯 했지만, 주헌은 가볍게 웃으며 머그잔을 들었다.
"비밀은 엄수하죠. 아무래도 영국을 지키시기 위한 수단 같으니."
"..."
왕자는 물론, 함께 있던 영국 수상도 입을 떡 벌렸다.
서주헌 이 무서운 놈.
SS급 오피셜 감식가조차도 구별하지 못한 물건을 한 번에.
유재하는 그런 주헌을 질린다는 듯이 보았다.
'가짜라고 파악한 건 나긴 하지만.'
하지만 자신이 감별하지 않았어도 주헌은 진작에 짐작했으리라.
'그러니 신급 유물엔 관심도 안 가지고 이상한 유물을 사오라 시켰지.'
주헌이 말했다.
"왜 가짜 유물을 들고 계신 겁니까?"
"가짜 유물이라니, 무슨 그런 망발을!"
수상의 말에 주헌은 가볍게 웃었다.
"그런 쪽으론 민감해서 척보면 압니다. 공주님은 몰라도 왕자님은 신급 유물을 지배할 정도가 아니세요."
"..."
"제 말이 틀립니까?"
왕자와 수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왕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서주헌 앞에서는 거짓말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래. 실은 <왕의 비보>를 얻으려고 그랬어. 신급 유물을 가지고 있으면 왕급이 될 조건이 갖춰지고, 왕급이 되면 그 비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주헌은 진심으로 탄식했다.
"어설픈 흉내를 내다가 정말 표적이 되십니다. 이번에 경매소에서 노려졌듯이."
"하지만...!"
"지금 신급 유물을 얻어서 왕급이 되려는 놈들이 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헌의 말에 설아 역시 탄식했고, 왕자와 수상은 끙,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유재하는 좀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주헌에게 속삭였다.
"저기요, 단장님. 왕의 비보가 정확히 뭔데 이 난리예요?"
알게 뭐냐, 이놈아.
사기왕이었던 니놈이 더 잘 알겠지.
과거 환경적 요인으로 왕급에 못 올랐던 주헌은 코웃음을 쳤다.
왕의 비보.
15명의 왕급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보상 유물.
그리고 그게 나타나고 나서는 그걸 가진 놈들만 공식적인 왕급으로 인정해줬다.
정복왕이었던 권 회장도 그걸 굉장히 아꼈고.
'확실한 건 엄청난 힘을 가진 버프형 특수 유물이라는 거다.'
실제로 왕급들은 그걸 가지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원래도 강했지만, 그걸 가지고 나서는 거의 반신이 된 것 같았다고나 해야 할까.
결국 왕의 비보에 대해 궁금했던 주헌은 당시 사기왕이었던 유재하를 갈궈댔다.
'야, 왕의 비보. 그거 뭐하는 유물이야.'
물론 유재하는 낄낄 웃어댔었다.
'단장님이 알 필요 없으실 텐데요?'
'시끄럽고 무슨 유물이냐고.'
'아, 신경 꺼요. 우리 단장님, 어차피 왕도 아닌 주제에 왜 관심을 가진대?'
'술 사줬잖아.'
'법카인 거 다 알거든?'
'내 카드거든?'
'단장님 카드 막힌 거 다 알거든?'
'풀었거든?'
'올. 아무튼 관심가지지마시죠.'
'야. 너도 그 왕의 비보를 얻어서 유일무이한 복원능력을 가지게 된 거 아냐.'
'아닌데? 내 실력인데?'
당시 좀... 아니, 상당히 싸가지 없던 유재하는 주헌을 바보 취급하기까지 했다.
'정 알고 싶으면 1000억, 그리고 여자 데리고 오든가. 그리고 내 그림도 사고.'
'강매 하냐?'
'내 그림 사주는 건 단장 밖에 없잖아.'
'알았어. 내놔.'
'아싸, 돈 들어왔고.'
'빨리 말해.'
'사실은... 은 개뿔, 내가 말해 줄 것 같냐, 이 등신 단장 놈아! 권 회장 멍멍이 놈! 하하하하!'
결국 반 죽여서 들은 이야기가 '레, 레어 보상? 에픽 보상? 그리고 왕권이라고 보면 된다고! 어쨌든 가지고 있으면 엄청 좋은 거라고!' 라는 것이었다.
뭐, 당시 엄청 까다로웠던 놈이 그렇게까지 말한 걸 보면 진짜 좋은 거겠지만.
'어쨌든 그 비보는 반드시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 끔찍한 미래로 흘러가지 않게 된다.
단원들이 전부 왕급이 되어 그 비보를 얻는 것도 좋고.
'그러려면 일단 남은 동료를 찾는 게 중요한데...'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남은 녀석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리고 그럴 때였다.
"저기 단장님? 왜 그러세요? 표정이 안 좋으신데."
설아와 유재하가 주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재하를 보던 주헌은 과거의 유재하가 새삼 오버랩되었다.
'허! 왕급도 아니면서 비보에 대해 관심가지지도, 깝치지도 말라고! 등신아!'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새삼 옛날을 떠올리니 열 받네.
"저, 단장님?"
"유재하. 넌 오늘 야근이다."
"엥?!"
또 왜!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유재하는 울었다.
***
한편 그 무렵.
"홀튼 씨, 실례지만 단장님하고 같이 주무신 적이 있으세요?"
아이린은 클로에의 말에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자신들은 주헌의 지시에 의해 운명왕을 감시하고 있던 찰나가 아닌가.
그런데 뭐가 어째?
율리안은 아예 마시던 커피를 내뱉고 말았다.
"이봐, 클로에!"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는 것이냐고 타박했지만, 클로에는 진지했다.
"엿듣지 마세요, 부단장님."
"내가 엿듣고 싶어서 들었냐."
동시에 아이린은 허둥지둥 거리면서 얼굴을 붉혔다.
"아니 저기, 그러니까..."
"아, 죄송합니다. 오해 마세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미로 같은 공간에서 지내신 적이 있나 싶어서."
"엥?"
의사의 표정을 하고 있는 클로에는 아이린의 맥을 짚으면서 말했다.
"단장님의 지배력은 정말 강하니까요. 잠잘 때면 그걸 통제할 수 없을 지도 몰라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할 수 있거든요."
쉽게 말하면 지배력에 억눌려 주변 사람들이 악몽을 꾸게 되거나, 그 사람에게 지배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아이린이 아차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혹시 주헌 씨가 늘 혼자서 자는 이유가..."
주헌은 비행기를 탈 때나 기차를 타거나 늘 옆좌석을 비워뒀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잘 때도 혼자 사색을 즐겼다.
단순히 남이 옆에 있으면 잠을 못자는 줄 알았더니.
"뭐, 안 어울리게 주변인을 아끼는 성격이시니까요."
그 말을 하는 클로에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눈빛은 꽤나 부드러웠다.
그래서일까.
아이린은 기뻐하며 웃었다.
"전 클로에 씨가 주헌 씨를 꺼려하시는 줄 알았는데..."
설아와 비교하면 주헌을 대하는 태도가 꽤 까칠하니까.
어디 그뿐인가.
"주헌 씨는 클로에 씨가 자신을 원수라고 생각할 거라고 하셔서..."
"아."
그 말엔 율리안이 관심을 가졌다.
원래부터 클로에는 주헌을 싫어하는 듯했지만, 최후의 무덤에서도 또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으니까.
그러나 클로에는 허탈하게 웃었다.
'원수라니, 그때 일인가 보군.'
그렇다.
주헌은 그럴 만한 이유로 제 남동생을 죽이기도 했지만, 최후의 무덤 당시 클로에의 한쪽 시력을 앗아가기도 했다.
왜?
[두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 절망을 안으리라.]
[죽음이 닥치리라.]
그 툼글리프 글귀를 본 주헌이 곧장 유물로 클로에의 눈을 찌른 것이었다.
함정의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래서 클로에만큼은 살리고 주헌 자신이 함정의 공격을 전부 받기 위해서.
그 이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발동한 함정.
'단장님!'
결국 함정은 주헌에게만 모조리 발동했다.
물론 클로에의 의료기술 덕에 가까스로 목숨은 연명했지만, 주헌은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자신이 치를 떨면서 그렇게 읖조렸으니까.
남동생도, 시력도 빼앗아간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죽이고 싶은 건 권 회장인 게 당연하잖아.'
주헌은 부하들을 아낀다. 다른 방법을 모색했지, 부하의 시력을 앗아가는 둥 그런 짓은 결코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몰려있던 상황이라는 거다.'
어디 그뿐인가.
'그땐 내가 희생하려고 했었다.'
그 함정에서 희생유물을 써서 주헌을 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주헌은 하기 싫은 일까지 하면서 자신이 죽는 걸 택했다.
'나 같은 걸 살리시려고...'
그래서 그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권 회장이 증오스럽고, 주헌을 다치게 한 것도 싫었을 뿐.
어쨌거나 주헌은 오해를 하는 듯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단장은 지켜낸다.'
이번에는 꼭.
그럴 때 클로에의 눈빛을 읽은 건지 아이린이 말했다.
"클로에 씨가 주헌 씨를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 말에 클로에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싫어하는데요."
"네, 네?!"
"저도 직장이 있는 몸인데요. 다짜고짜 그걸 해지시키고 계약서를 쓰게 하는 난봉꾼이 어디에 있어요."
"아, 아..."
"게다가 전 연하 취향도 아니에요. 그러니 전 신경 쓰지 마시고 단장님하고 잘해보세요."
클로에는 예쁜 파란 눈을 번득였다.
"개인적으로 설아가 단장님이랑 붙어 있는 건 좀 열 받아서."
"네, 네?"
바로 그때였다.
"클로에!"
율리안이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라보니 운명왕의 가게 안에서 양 쳰이 나오는 게 보였다.
과거 도굴단 멤버이자 주헌이 혼자 놀지 말라며 꽤나 챙겨줬던 놈.
하지만 은혜도 잊고 결국 배신을 때린 놈.
으득.
율리안의 눈빛이 살벌하게 타올랐다.
놈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았다.
'운명왕한테서 뭔가 이상한 조언이라도 들었나?'
그렇게 확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제 3지구 교도소요.'
율리안은 청력 증폭 유물로 분명 그렇게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한 것이었다.
'왜 하필 교도소로.'
율리안이 알기로 저놈과 TKBM이 관련해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텐데.
그래서일까.
"쫓자."
부단장의 지시하에 그들은 양 쳰을 쫓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 까, 교도소를 찾아온 양 쳰.
"네가 단이지?"
한 죄수를 만나러 온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너랑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누가 자신을 따라왔는지도 모르는 채.
***
그리고 그 무렵.
"와아아아아! 타오 오빠!"
"I.L.O.V.E 타.오!"
"꺄아아아아! 오빠 잘 생겼어!"
"빨리 나와요오오!"
뉴욕에 있는 최대의 콘서트장은 열렬한 환호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안에 있는 숫자만 5만 명.
그 엄청난 열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인기왕 타오였다.
'서주헌을 없앨 콘서트다.'
인기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 무렵.
끼이이익.
타오의 공연장 앞에 여러 대의 벤츠가 세워졌다.
물론 공연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기겁하면서도 흐뭇해했다.
"역시 타오. 급이 다르네. 저런 차를 타는 사람들도 엄청 오는 구나!"
"당연하지! 우리 타오인데!"
하지만 이를 어쩌나.
"출석 부르겠어요. 하나."
"둘."
"세엣!"
"넷!"
"다섯!"
"여섯! 번호 끝!"
"좋아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콘서트에 도착한 건 악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