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213화 (213/409)

213화. 이, 양아치들아! (4)

"진짜, 유재하 개새끼!"

수석 복원사 줄리앙은 유물을 걷어차고 있었다.

쾅쾅!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어지간히도 화가 난 눈치였다.

아니,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 자식이 사기를 쳐서 왕실이 다 속아넘어갔잖아!"

어디 왕실뿐인가, 세상이 그놈에게 속고 있었다.

[오피셜 수석 복원사, 야매 복원사에게 깨지다?]

[세계정부와 왕실들, 오피셜 복원사에 대해 회의감을 품다]

[오피셜 평가, 다시 따져봐야 하지 않나.]

[서주헌이 길러낸 복원사. 그는 누구인가.]

TV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 앵커의 소리. 결국 유물들이며 가구며, 도구들이 박살 나자 부하 복원사들이 줄리앙에게 달려왔다.

"치프, 진정하세요. 치프가 복원을 못 하신 게 아니에요!"

"그래요! 유재하 그 사기꾼 놈이 술수를 부린 거잖아요!"

그렇다.

줄리앙은 눈을 감고 경매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분명 박살 난 유물을 고치려고 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유물이 반응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유물이 심하게 파괴되긴 했지만 자신이 못 고칠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래보여도 자신은 세계 탑이라는 자리에 오른 복원사였다.

그딴 걸 못 고칠 정도로 무르지도 않았다.

실제로 왕급의 자리에도 올랐고.

하지만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던 유재하.

'못 고치겠으면 내놓고?'

그게 너무 이상해서 조사를 해보니 답이 나왔다.

"유재하 그놈이 슬쩍 가짜 유물로 바꿔치기 한 거야."

즉, 자신이 본 게 유물이 아닌 가짜였기 때문에 복원이 안됐던 것이다.

가짜 유물은 복원기술로 복원이 안 되니까.

그리고 유재하놈이 복원할 땐 슬쩍 진짜를 복원했으니 당연히 복구가 된 거지!

실제로 감식가들도 다빈치 유물의 사용 흔적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주랑 왕자, 언론들 그 멍청한 것들은...!

'와, 대단해요! 수석 복원사도 못 고치는 걸 깨끗하게 고쳤어...!'

'뭐야. 오피셜이면서 지금 고작 야매한테 밀린 거야? 그 수수료를 받아쳐먹으면서?'

'역시 서주헌 씨의 도굴단에는 유능한 인재만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차원이 달라요!'

유능한 인재는 개뿔이!

이게 다 사기극인 것을!

어이없게 유재하에게 당한 줄리앙은 속이 답답했다.

언론은 자신들을 바보취급하고 있었고, 유재하는 한순간에 영국 왕실의 적극 후원을 받아 유명인이 되고!

사기극이라고 밝히자니 증거는 없고!

"서주헌 그놈이 시킨 게 아닐까요."

"이건 국제소송감이에요. 사기죄에 명예훼손이라고요!"

그러자 유재하의 후배, 신승희가 유재하를 욕했다.

"재하 선배, 사람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네. 관종이야?"

"범죄자하고 한솥밥 먹었다는 말이 도는 것도 무섭다. 어쨌든 유재하가 사기를 친 거라고 빨리 언론에 내보내."

그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피셜 복원사의 권위가 이따위 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건 아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왜?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구와 커넥션을 해왔는데.

'유재하, 너하고는 노는 물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일단 우리 후원자들과 의뢰인들에게 연락 다 돌려. 우리를 모함한 놈들을 매장시켜버리자고."

리처드 교수가 한때 학계와 후원자들을 이용해 유재하를 매장 시켰듯이 똑같이 하면 된다.

하지만.

"치프, 큰일 났습니다!"

"왜!"

"LDU의 CEO요. 의뢰를 취소하겠답니다."

"뭐? 왜!"

"그, 그게 유재하에게 의뢰하겠다면서 서주헌에게 허락을 받겠다고 합니다."

"뭐? 어이가 없네, 됐어. 버려. 다른 후원자들 많으니까."

"저... 그런데 그게 다른 후원자들도..."

"뭐?"

"아랍 왕족들도..."

"큰 후원금을 줬던 프랑스 정부에서도..."

그들은 밀려오는 의뢰취소에 당황했다.

의뢰취소는 곧 신임을 잃었다는 것과 일맥상통.

즉.

"치프, 이래서는 유재하와 서주헌을 매장시키는데 도움을 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수석 복원사와 후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오피셜 복원사들, 유재하를 향해 명예훼손, 사기죄 고소 시도]

[하지만 분위기 싸늘해.]

[유재하, 프리랜서 선언?]

"잘했다."

주헌은 유재하를 보자마자 칭찬부터 했다.

하지만 유재하는 무릎을 꿇으며 큰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아이고,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요! 아무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잘했다는데 얜 또 왜 이래?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하는 납작 엎드려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제, 제가요, 단장님을 배신할 리가 없잖아요. 뭔가 기사가 잘못 나간 거 같은데, 프리랜서 선언을 한다든가 뭐 그런 게 아니라요."

"뭐?"

"왕족들도 막 이래저래 의뢰를 해오긴 했는데 저 관심 없거든요, 싫다고 하셔도 전 오로지 단장님 유물만 고칠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은...!"

그 말에 주헌과 단원들은 웃음을 참았다.

아무래도 유재하한테는 주헌의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리라.

아마 주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겠지.

긴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웃는 포스가 영락없는 대부. 살벌한 마피아 보스였으니까.

'시가까지 물려주면 딱이네.'

하지만 주헌은 이번 일을 꽤 좋아했다.

왜?

'다른 놈들의 유물을 복원해주면 누가 무슨 유물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그건 엄청난 정보였던 것이다.

적들의 동향도 알 수 있었고, 슬쩍 협상도 할 수 있었고, 바뀐 미래의 정보도 캐치할 수 있다.

'뭐, 그중에 쓸 만한 게 있으면 슬쩍 밑장빼기하고.'

그게 제일 큰 목적이겠지만.

"어쨌든 가르친 보람이 있네, 진짜 잘했어."

그러나 이어지는 폭풍 칭찬에 유재하는 더 겁먹고 울부짖었다.

"아이고! 잘못했어요! 아이고, 제발 목숨만은...! 사실 셀럽들 의뢰 받아들이면 초날두랑 헐리웃 배우들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흐어어어엉."

그걸 보며 단원들은 생각했다.

'이 호구왕.'

'호구...'

'호구네.'

그럴 때였다.

"그런데 그 경매소에서 잭더리퍼가 나타났다는 게 진짜야?"

율리안의 질문에 유재하가 아차 싶었는지 바로 보고했다.

"맞아요. 맞아! 그 유물이 나타났어요! 전에 말씀하셨던 걔가 나타났다고요!"

단원들은 놀랐다.

"그 살인마가 또 나타났다고요?"

잭더리퍼.

연쇄살인 유물답게 그 유물은 연쇄살인을 몰고 왔다.

그것도 보통 연쇄살인이 아니다.

'왕급들만 골라서 죽인다.'

심지어 엄청난 또라이 기질의 싸이코패스 청년.

과거에도 주헌이 애먹었던 상대이기도 했다.

'어차피 지금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놈의 목적은 알고 있으니까.

"됐으니까 사온 유물이나 내놔."

그 말에 설아가 관심을 보였다.

"빅토리아 여왕하고 모리안의 유물 말이죠?"

단원들은 기대했지만 정작 주헌은 무슨 개소리냐고 했다.

"그딴 걸 왜 사와. 필요도 없는 걸."

"어, 어, 네? 하지만..."

그러자 유재하가 넌더리를 치며 싫어했다.

"어유, 그런 거 아니거든!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낫지!"

"엥?"

유재하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민망한 포즈의 여인상 하나를 꺼냈다.

"자요, 사왔으니까 이제 됐죠!"

유재하가 친화력을 싣자 손바닥 만했던 여인상은 사람 크기로 성장했다.

척 보기에도 민망한 포즈의 19금 미인상이었다.

주헌은 그걸 보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 이거야, 이거!"

"네?!"

설아와 아이린은 주헌의 모습에 충격에 빠졌다.

"이, 이거라니... 단장님!"

하지만 주헌은 정말 진지했다.

"그래, 이거 꼭 가지고 싶었지. 잘 때 필요하거든."

"자, 잘 때?!"

아니, 저걸로 뭘 하시려고!

그뿐이 아니었다.

유재하는 딤섬 요리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만두 찜기를 꺼냈다.

[청나라 황제의 만한전석 (황제의 요리) (A급-보물급 / 소모성 유물)]

그리고 그걸 발동시키자 옷을 얇게 입은 미인들이 나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걸 본 율리안은 이마를 짚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그의 눈에는 유물의 효능이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 서주헌! 이거 그냥 먹방용 유물이잖아!"

"어. 그게 왜?"

율리안은 기가 막혔다.

"지금 이딴 걸 개당 20억에... 아니, 너한테는 푼돈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걸 유물 2개나 주고 샀단 말이야?!"

그 말에 설아가 울부짖었다.

"부단장님, 왜 먹방용 유물만 나무라세요! 이, 이 섹시한 여자상도....!"

설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유재하가 다 안다며, 걱정마라며 재빨리 끼어들었다.

"야야, 괜찮아, 괜찮아. 유물 고쳐줬다고 둘 다 그냥 받았거든. 공짜야, 공짜."

"야!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

설아가 유재하의 멱살을 잡을 때였다.

율리안이 탕 책상을 쳤다.

"아 그래, 빅토리아와 모리안 유물 필요 없다 치자!"

주헌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 보면 보나마나 리스크나 능력이 쓰레기라는 의미겠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유물은 좀 아니지! 요리는 돈 주고 사먹으면 되잖아!"

"아니 그러니까 부단장님. 저 19금 조각상도 문제인데..."

설아는 뒤에서 소심하게 훌쩍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율리안은 보기 민망한 포즈의 여인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이것도 그냥 방향제잖아! 이런 걸 살 바에야 그냥 디퓨저를 사면 그만 아니냐?!"

"네? 방, 방향제?"

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인상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상에서는 굉장히 향긋하고 편안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아로마테라피 같은.

이때 주헌이 빡친 듯이 외쳤다.

"야! 사람이면 맛난 것도 먹어봐야지! 그리고 이 방향제면 잠이 잘 온다고! 나 잠 못자는 거 알잖아! 내 옆에 두고 잘 거야!"

그러자 듣다 못한 주치의 클로에도 끼어들었다.

"단장님, 그런 거라면 제발 제가 처방해드리는 약을 드세요! 엽기적인 짓 하지 마시고!"

"그래! 차라리 수면제를 먹어! 게다가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데 왜 굳이 이런 망측한 유물을...!"

"약 먹으면 기분 몽롱해져서 싫어! 집중 안 돼! 유물이 훨씬 효능 좋다고! 만찬도 그래! 공산품 중에서는 내 입맛에 맞는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왜 리스크도 없는 소모성 유물인데 왜 이렇게들 난리야?"

그러자 도굴단의 상식인 율리안과 클로에는 할 말을 잃은 듯 탄식했다.

"아오, 이 유물성애자야! 난 몰라! 맘대로 해! 클로에, 진찰하면서 쟤 머리도 CT 찍어봐."

"그거 가지고 될까요?"

그럴 때였다.

주헌이 사들인 유물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된 설아와 아이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상한 목적으로 저것들을 사들인 게 아니시구나.

그렇게 안도했지만, 글쎄.

동시에 둘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유재하와 클로에에게 가서 심각하게 물었다.

"클로에. 동료로서 진지하게 물을게."

"뭐."

"가진 유물 중에 향이나 오일 유물 같은 거 없니?"

"뭐, 뭐...?"

"그거 바르고 누우면 저 미인 방향제를 내가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녀석이 도대체 뭘 할 생각이야.

그리고 유재하의 팔을 콱 잡은 아이린의 눈빛도 번득였다.

"재하 씨. 주헌 씨하고 식사 자주 하셨죠. 그럼 주헌 씨의 입맛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네요."

"네, 네? 그렇긴 한데..."

"어떻게 하면 저 여자들이 만드는 황제의 요리 따위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까요?"

그녀들은 유물에게 질세라 눈에 불꽃을 튀겼다.

물론, 동아줄도 씰룩이면서 주헌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잠을 못 잔다는 주헌의 말에 신경이 쓰였으리라.

[#**!]

이 향으로는 안 돼? 안 돼?

마늘과 쑥을 가득가득 바른 동아줄이 열심히 몸을 흔들어댔다.

그 모습에 주헌은 움찔했다.

아니 뭐, 씰룩이는 건 보기에 귀여우니까 됐다 이거였다.

그래도......

마늘과 쑥은 좀.

결국 참다 못한 주헌이 유재하를 불렀다.

"재하야. 이거 좀 어떻게 안 되냐?"

"음. 한 100일만 그러고 있어 봐요."

".....뭐?"

유재하는 진지했다.

***

한편 권 회장이 입원한 병실.

권 회장의 아들과 딸은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 아버지? TKBM 발굴단이 가져온 람세스 유물은 잘 확인하셨죠?"

"단원들이 고생고생해서 겨우 가져온 건데... 유물은 마음에 드세요?"

그러나 안에서는 답이 없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아들이 물었다.

"김 의사. 어떻게 된 거야."

"왜 아버지가 말씀이 없으시죠?"

그러자 의사가 난처해하며 답했다.

"분명 람세스 유물을 받고 엄청 좋아하셨는데... 숨진 아들을 구하실 수 있겠다며 좋아하셨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악!"

안에서 들려온 권 회장의 목소리에 자식들이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벌컥!

"아, 아버지?!"

"꺄아아아악!"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겁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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