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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12화 (212/409)

212화. 이, 양아치들아! (3)

"이 자식, 우리가 무덤에 가 있는 사이에 뭘 한 거야?"

주헌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기사를 보았다.

기사에는 막 특보로 실리기 시작한 유재하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물론 1면은 아니었다.

거기엔 늘 그러했듯이 자신의 차지였으니까.

하지만 2면.

그 2면에 놈의 속보가 제법 크게 쓰여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재밌는 일이 있었군."

하지만 그는 기사에 쓰인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영국 공주랑 뭐가 어째?"

***

주헌이 아직 오만의 무덤에 있을 무렵.

신급 유물들이 깽판을 치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세상에, 정말 저게 그 유물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유재하는 눈을 반짝이며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저게 단장님이 말한 유물인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총리들이며 왕족하며, 헐리웃 배우, 장관, CEO들 까지.

귀한인사들이 가득이었다.

덕분에 혼자서 이곳에 온 그는 기가 눌리다 못해 찌그러질 판이었지만, 글쎄.

'영국 공주랑 왕자다.'

주헌의 명령은 저들이 가진 유물을 사오는 것.

'사지 못하면 훔쳐온다. 안 그럼 난 죽을 거야. 흐엉.'

뭐, 물건을 사기는커녕 주변에 있는 경호원에게 먼저 붙들릴 것 같지만.

곧 그들을 보던 사람들이 작게 술렁거렸다.

"저분이 영국의 공주님이시죠? 아직 어리시네."

"저기 공주님 목에 걸린 게 진짜 빅토리아 여왕의 유물이에요?"

"세상에 진짜야?"

"공주님도 공주님이지만, 왕자님이 가지신 저거요. 저 까마귀 브로치. 무슨 신급 유물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아 뭐라고 했지... 분명 아일랜드 켈트신화에 나오는 까마귀 여신이랬는데..."

"모리안, 대충 그런 거라고 했어요. 전쟁과 파괴의 신이라고..."

"세상에, 전쟁? 파괴? 미친, 그걸 한 나라의 왕자가 당당히 가지고 있다고요?"

"설마 세계에 선전포고라도 하는 걸까요."

"식민지 시대로 회귀하겠다는...?"

경매소에 있는 VIP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영국 왕실이 세계의 판도에 미칠 수 있는 힘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유물의 시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물이 문제인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과 모리안 유물이면 좀 문제긴 하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세계 4분의 1의 영토를 가졌던 대영제국 시대의 여왕, 빅토리아 여왕.

막말로 빅토리아 여왕의 유물이야 영국왕실로써 자국의 여왕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리안 유물이 문제인 것이다.

'전쟁의 유물이라니. 아무리 봐도 도발이지 이건.'

실제로 영국 주변의 나라들이 날을 세우고 있는 판이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긴 했다.

"둘 다 풍요의 유물이란 말이 있어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영국이 가장 부흥했던 것처럼요."

"모리안도 은혜를 뿌리는 여신이라는 설도 있어서."

어쨌거나 사람들은 왕자와 공주의 유물에 관심을 가졌다.

유재하 역시.

'어유,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겠는데.'

하지만 유재하는 일단 공주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찾았다, 유재하! 저놈을 잡아라!"

영국 공주와 만나게 할 생각이 없었던 오피셜 복원사들도 급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유재하가 방방 점프하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했다.

"공주님! 저한테 유물 파세요! 유물!"

그리고 그 모습을 공주가 발견했다.

'어? 저 사람은.'

분명 주헌의 부하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리라.

그녀는 서주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가만히 있을 오피셜 복원사들도 아니었다.

"막아, 막으라고!"

그런데 이때였다.

쿵!

콰와왕!

갑자기 경매소가 뒤흔들리면서 천장이 무너졌다.

쾅!

무대에 있던 조명 장치가 떨어지고, 창문이 와장창 깨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동시에 찾아온 암전.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꺼진 회장에서 비명을 지르며 출구를 찾았다.

"엄마야, 뭐야 이게!"

고분화 현상은 아니었다.

하도 주헌을 많이 따라다녔던 유재하는 단번에 이게 인간의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았는지 사방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장관님!"

"경찰, 경찰을 불러요! 어서!"

예비 조명이 켜지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안에는 명백히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빨리 입구를 폐쇄해!"

"아무도 못 나가게 하라고!"

유재하는 목이 잘린 채 쓰러진 장관을 보고 침을 삼켰다.

왜?

'왕급이 순식간에 죽었다.'

얼마 전에 이름이 올라갔던 <비판왕> 이었던가.

이민자들이나 피난민들을 사회악이라며, 다 죽여야 한다고 과격한 말을 하던 사람이었다.

어쨌든 신급 유물을 가졌을텐데 한 순간에 죽다니!

어디 그뿐인가.

분명 유재하는 보았다. 같은 현상을 분명 얼마 전 신문에서!

그리고 그 신문 기사를 주헌에게 보여주며 혀를 차지 않았나.

'이야, 단장님. 왕급들 벌써 세 명이나 죽었대요. 연쇄살인 사건이라는데, 누굴까요?'

그때 피해자들의 공격 위치를 본 주헌이 분명히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설마 걘 아니겠지...'

'걔요?'

'그래... 너도 잘 아는 유명한 유물...'

잭 더 리퍼.

주헌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재하는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살의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분명 있었다.

뒤에!

아니나 다를까.

"너 서주헌의 복원사지. 왕급의."

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건 확실했다.

죽는다.

그 생각이 머리에 스쳐지나갈 때 유재하가 곧바로 제 유물을 사용했다.

그건 바로 살리에리의 유물.

버려두긴 했지만, 이래보여도 막강한 7대 무덤의 유물이다.

그리고 그 유물의 기운을 느낀 건지, 제 뒤를 노리던 여자가 유재하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

우리 도령 건들지 마랑께!

[#$*#&*!]

주인님의 부하라고! 무슨 짓이여!

"?!"

엽기적인 팬티와 남근이 빼애액 거리면서 유재하를 감쌌다.

그리고 여자가 휘두르는 칼이 남근을 갈랐다.

파삭!

그러자 남근이 두 동강 나고 팬티가 울부짖었다.

[$#*!]

아이고! 우리 색시가, 색시가! 똑 잘라져버렸당께!

결국 여자는 이 엽기적인 유물들을 보다가 곧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볼일은 유재하가 아니라 다른 VIP일지도 몰랐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니나 다를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가 무너지더니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국 VIP 자리였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영국 공주가 시체가 된 왕자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유물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다.

결국 그 충격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복원사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왕자가, 왕자가 살해당했다!"

"꺄악! 공주님을 지켜!"

"범인을 찾아라! 찾아라!"

하지만 유재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없어. 그 녀석은 이미 빠져 나갔다.'

주헌의 스파르타식 교육 덕분에 유물을 감지하는 것, 사용하는 방법은 뛰어났다.

그러니 잭더리퍼가 사라진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주는 죽은 오빠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피셜 복원사들과 경호원들은 낙담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오라버니 안 돌아가셨는데요."

유재하가 천연덕스럽게 공주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등장에 줄리앙과 신승희, 오피셜 복원사들이 눈을 부라렸다.

"야! 유재하! 설치는 것도 정도껏 해. 충격 받은 공주님한테 개 같은..."

"아니 진짜로. 장관님은 못 구했지만, 왕자는 멀쩡해."

줄리앙은 유재하의 멱살을 잡았다.

"야!"

그런데 이때였다.

유재하가 딱 손가락을 튕기자 테이블 하나가 사람의 형태로 변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모습에 사람들은 까무러쳤다.

"오, 오라버니!"

테이블이 변한 건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영국 왕자였기 때문이다.

"그, 그럼 이 시체는...!"

"아, 그거 가짜."

"가, 가짜?!"

그 말에 감식가들은 비행기 사고 때의 끔찍한 데자뷰가 떠오르는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동시에 줄리앙이 유재하를 쏘아보았다.

왜 왕자를 변신 시켰느냐는 것이다.

의도가 불순한 게 뻔했다.

"속셈이 뭐야, 너?"

뭐긴 뭐야.

공주한테 유물을 사기 위해 일부러 가짜 영국 왕자로 바꿔치기 한 거지.

영국 왕자가 '공주야, 유재하에게 유물을 팔아라.' 하고 회유하면 쉽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근데 그게 뜻하지 않게 목숨을 구하게 되다니.

'칫. 좋은 일이긴 한데...'

속셈을 시원하게 말해줄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일까, 유재하는 주헌에게 배운 필살 약팔기를 시전했다.

"사실 제가 이상함을 느꼈거든요. 장관님을 습격당하고, 혹시나 해서 왕자님을 보호한 겁니다."

"뭐, 뭐라고?"

"왕자님 암살설은 종종 봐와서요."

그 말에 오피셜 복원사들과 감식가들은 치를 떨었다.

보호는 개뿔이!

서주헌의 부하 놈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너 사기 치지 마!"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하는 바닥에 떨어진 유물을 집어 들었다.

그건 파괴된 공주의 유물이었다.

"이거 완전 박살이 났네요. 고쳐줄까요?"

예쁜 공주는 눈물을 닦으며 유재하를 보았다.

"고, 고칠 수 있으세요?! 이미 망가진 유물인데?"

"네, 그거야 어렵지 않아요. 그 대신에 저한테..."

그런데 그때였다.

"웃기지마!"

"공주님! 저딴 야매한테 물건을 맡기시면 안 됩니다!"

유재하가 들고 있는 빅토리아 여왕의 물건을 가져간 건 줄리앙이었다.

경호원들도 감식가들도 모두 한 뜻이 되어 유재하를 비난했다.

"저놈은 서주헌의 야매 복원사라고요!"

"유물만 망가질 뿐입니다!"

"어떻게 저희 오피셜 복원사를 냅두시고 저딴 놈한테!"

그들은 같잖다는 듯이 비웃었다.

고압적인 태도와 자부심이 껄끄러울 정도였다.

영국 왕자도 끼어들었다.

"그래, 왕실의 물건이다. 기껏해야 도굴단에 있는 근본도 모를 복원사에게 맡길 수는 없지."

"들었지?"

그러자 유재하가 허, 웃음을 흘리면서 줄리앙을 보았다.

"그러세요. 고칠 수 있으면."

줄리앙은 기가 막혔다.

"뭐? 이정도야 당연히 고..."

그런데 이때였다.

"뭐야, 왜 안 고쳐져!"

유재하는 히죽였다.

"못 고치겠으면 내놓고."

"...?!"

호구왕, 주헌의 이름을 업고 세계 정부, 왕실, 셀럽 사회에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

그리고 현재.

[호구왕, 유재하. 영국 왕실에 초대 받다.]

[영국 왕자와 보물을 구하다.]

[영국공주 "단장이신 서주헌 씨를 만나고 싶어요."]

[호구왕 세계 각국에서 스카웃 제의 "원하는 연봉이요?"]

[호구왕 "여자친구 구해요!"]

주헌은 기사에 떠오르는 유재하의 이야기에 황당해 하고 있었다.

전쟁을 꾀하던 장관의 암살 사건 등 눈에 띄는 글은 많지만...

"호구왕? 지금 진짜 호구왕 된 거야?"

주헌 일행은 황당해했다.

"진짜 하다하다 호구왕이 될 줄은 몰랐다."

"와, 그나저나 재하 순식간에 유명해졌네."

그럴 때 율리안이 갸웃 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스카웃 제의에 예능? 심지어 프리랜서 복원 의뢰라는데? 재하 이적하는 거 아니야?"

"네?!"

"어쩌냐 서주헌. 복원사 새로 구해야겠다."

주헌은 대답 대신 웃었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금방 받았다.

[아, 여보세요?]

한껏 바람이 들어간 건지, 유재하의 목소리가 어딘가 거만하게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 어디서 전화 주셨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지금 좀 많이 바쁘거든요? 이미 1년치 의뢰 꽉 차 있고요, 지금 인터뷰 중이라서요. 방송출연은 매니저를 통해 다시 연락을...]

"매니저 같은 소리 지껄이고 있네."

그 음성에 휴대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심장이 덜컥 떨렸으면 휴대폰도 같이 떨어트렸을까.

유재하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단장님?]

"뭐 하냐? 새끼야."

[이, 이 목소리 다, 단장님?! 단장님이에요? 뭐, 뭐야! 이 번호 나 모르는 건데!]

"시끄럽고. 방금 뭐라고? 의뢰가 꽉 차 있어?"

[네? 아, 저, 저, 저기 그게...]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너. 내 일 말고 사적으로 지금 외주 받고 있는 거냐? 어?"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요!]

유재하는 거의 울 지경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엎드려 절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일 지경이었다.

[아이고, 제가 단장님 일 말고 누구의 유물을 만지겠습니까, 그쵸?]

"너, 내가 사오라고 했던 유물은."

[아이고, 구했죠. 구했고말고요!]

"좋아. 보아하니 여자친구니 인터뷰니, 예능이니, 헛소리할 시간이 있을 정도로 내가 너무 일거리를 안 줬나 봐. 1억 달러 연봉이 아까워지려고 하네."

유재하는 비명을 질렀다.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진짜 아닙니다.]

곧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주헌의 눈이 호랑이처럼 번득였다.

"알았으면 계약 위반으로 콱 조지기 전에 당장 돌아와. 1시간 준다."

[30분 안에 달려갈게요! 가서 다 말씀 드릴 테니까아아...! 공주님도 소개해줄 테니까아아아!!!]

울부짖는 유재하는 달려가면서 전화를 끊었다.

주헌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잘난 능력자여도 강탈왕 앞에선 별수 없는 호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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