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모두 꿇어라, 내 밑에(6)
"수고비 줄 테니까, 당분간 설치지 말라고. 다 합쳐서 3억 달러면 되겠어?"
뭐, 3억?
유재하는 같잖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3억 줄 테니까 당분간 설치지 말고 이 업계에 얼굴 내밀지 말라고. 무슨 말인지 몰라?"
그가 그러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유재하 이놈이 계속 설치고 다니면 오피셜 복원사들의 권위가 무너진다.'
얼마 전 자신들이 물 먹은 사건만 봐도 그렇다.
이놈이 계속 이 업계에 있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신들의 몸값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저 눈엣가시.'
어디 그뿐인가.
'서주헌 보이콧'
판도라에서는 야매, 오피셜을 가리지 않고 복원사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서주헌의 모든 의뢰는 거절하라.'
제아무리 뛰어난 명사수라도 총이 고장나면 무용지물이 되듯이 유물의 정비는 필수.
'복원사만 없으면 서주헌도 시간문제지.'
때문에 판도라에서도 적극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재하가 허, 하고 비웃는 것이었다.
"저기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3억 달러?"
"뭐?"
유재하의 비웃음에 줄리앙은 갸우뚱했다.
아니, 그건 당연했다.
'이정도면 대충 시세에 맞는 돈인데.'
적어도 이놈이 이렇게 건방지게 나올 수준의 돈이 아니었다.
자신들조차도 오피셜 복원사가 되기 전에는 벌벌 떨었던 돈이니까.
그런데 이 녀석이 왜 이러지?
하지만 곧 줄리앙은 주변 복원사들이 다급히 속닥이는 걸 보고 그 답을 깨달았다.
"치프, 잘못 말씀하신 거죠?"
"단위가 너무 커요. 저딴 놈한테 판도라의 돈까지 빼서 줄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줄리앙은 제 실수를 깨닫고 탄식했다.
'젠장... 맞다. 이놈은 그 유재하지.'
최근 수백억을 물 쓰듯이 펑펑 쓰는 부자들만 상대해서 잊고 있었다.
유재하는 3억 달러는 개뿔, 3억 원만 받아도 덜덜 떨며 절을 할 놈이라는 것을.
실제로 대학 때부터 그랬다.
'유재하 이놈은 거지 근성으로 가득 찬 놈이다.'
대학에 다닐 때도 격 떨어지게 남이 버린 미술재료까지 주워 쓰던 놈이 아닌가.
심지어 굶고 다니기까지.
구질구질해서 같이 얽히기 창피할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도 3000억 원이란 천문학적인 숫자를 듣고 미쳐 돌아버린 것이리라.
'그래, 저딴 놈한테 그만한 돈을 줄 필요도 없다.'
자신은 부자들만 상대하니까 당연한 단위지만...
그것도 보통 부자가 아니라 산유국의 왕족, 판도라 실세 임원, 초거대 기업의 총수 급들만 상대하니까.
줄리앙은 실수를 인정했다.
"미안, 말하다가 실수 했어. 달러가 아니라 한국 돈. 그래. 30억 원 말한 거야."
그러자 유재하는 더 기가 찬다는 웃음을 지었다.
뭐?
"30억 원?"
그 말에 후배 신승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어우 참, 선배. 그 돈이면 한국에서 버젓한 집 한 채 사기도 힘들어요. 100억 원. 100억 줄 테니까..."
그러나 유재하는 헛웃음을 흘리는 것이었다.
"야, 너 지금 장난해?"
"네? 왜요? 그 정도면 무려 오피셜 복원사들 연봉보다 높은 급이에요. 그리고 선배한테는 10년, 아니 평생 받을 돈 아닌가?"
"아 됐다. 개소리 들을 시간 없으니까 난 간다."
그러자 줄리앙이 쯧, 혀를 찼다.
"알았어! 300억 원! 300억 줄테니까! 3천만 달러면 불만 없지!"
동시에 다른 복원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아니, 3천만 달러라니!
3천만 달러, 300억 원이면 탑 10에 드는 상위권 오피셜 복원사들의 연봉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침에 유재하가 미친 듯이 웃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복원사들은 저놈이 왜 저러나 싶었다.
동시에 유재하가 말했다.
"3천만? 그게 니들 탑 연봉이라고?"
"뭐, 뭐?"
"그리고 고작 3천만 달러도 나더러 잠수를 타라고?"
유재하가 어찌나 웃긴지 아하하 배를 잡고 웃었다.
복원사들은 그걸 보고 기분 나빠했다.
"쟤 왜 저래? 돌았어?"
동시에 유재하가 살벌하게 웃었다.
"야, 너네 내 연봉이 얼마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뭐?"
"1억 달러(1000억 원)."
"....!"
"그 이상 아니면 잠수 같은 개소리 지껄이지 마, 등신들아. 아, 그리고 처음에 말했던 3억 달러. 걔도 필요없어. 그까짓 보너스로 받으면 그만이거든."
그 말을 하고 유재하가 경매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유재하의 말을 들은 오피셜 복원사들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미친! 연봉으로 1억 달러라니!
전성기 때 유재하가 받던 연봉이기도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그들은 황당할 뿐이었다.
'서주헌이 그 정도로 재력가였나?'
대기업에서도 주기 힘든 연봉을 저딴 일개 복원사에게....!
그들은 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들이 무시하는 저 복원사가 과거 복원계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신급으로 군림했다는 것을.
<사기왕>이란 단순히 남을 속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능력이 너무 사기라서 그런 거라는 이명도 있었으니까.
유재하는 파르르 떠는 복원사들을 보며 유유히 손을 흔들었다.
"볼 일 없으면 난 간다? 난 영국 공주가 가진 유물을 사야 해서."
"뭐? 잠깐 뭐라..."
그러나 유재하는 슝 사라진지 오래였다.
물론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줄리앙도 아니었다.
"뭐 하고 있어! 경호원들한테 연락해! 저 자식이랑 공주랑 못 만나게 반드시 막고!"
"네!"
그렇다.
그들은 지금 영국 왕실의 복원사들로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오피셜 감식가들과 함께.
그리고 여기서 내 쫓으려고 했던 이유도 그 영국 왕실의 VIP 때문이었다.
'공주님은 서주헌의 도굴단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당연히 그 소속원인 유재하에게 관심을 안 가질 리가 있겠는가.
유재하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리도 없긴 하지만, 행여나 또 이상하게 설치기라도 하면...
'오피셜들의 권위가 무너진다.'
무엇보다 유재하 놈이 잘난 듯이 설치는 꼴은 보기 싫었다.
"막아라. 꼭 막아야해!"
초조한 그들의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
람세스의 능욕에 열 받은 신급 유물들이 스스로 튀어 나왔다.
[저 건방진 인간 출신이 보자보자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심부름꾼 멍멍이에.]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멍청이.]
[아무 능력도 없는 새대가리...]
[개나 소나 된다고 했겠다?]
심지어 그들은 평소의 멍멍이의 모습이 아닌 궁극체.
즉, 본체의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인간들을 하찮게 여기는 만큼 그들 앞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그 정도로 빡쳤던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주인, 치킨 필요 없으니까 우리 마음대로 써도 돼.]
[팬 싸인회도 이번엔 됐다.]
[원래 뭘 받은 기억이 없긴 하지만, 됐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주헌에게 힘을 빌려주고자 했다.
심지어 제 권속의 유물을 보고도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람세스, 그리고 오만의 탑 유물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인간의 편을 들다니. 기어이 군단장과 사단장이 몰락했군.]
[저딴 놈을 대장이라고 따르는 놈들이 불쌍하구나.]
원래도 오만의 탑에 있는 유물들은 자기들 외에는 다 쓰레기로 보는 놈들이었다.
신급이라고 별 수 있을까.
그 증거로 나폴레옹과 항우가 슬쩍 끼어들며 웃었다.
총수를 따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놈에게 큰 불만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여기서 저놈들한테 이기면 군단장도 사단장도 우리 발밑이라는 거 아니냐?]
[그건 그러네.]
[저놈들을 박살내면 진정한 신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겠지.]
[쟤네 세?]
[뭐, 그래봐야 이집트는 이미 정복했다고. 그 문물의 신들이야 내 발밑이지.]
[음? 이집트 그게 어딘데? 쟤네 문 지키는 멍멍이들이야?]
[그런가보지 뭐.]
[아, 나 좋은 생각 났어. 쟤네 목을 따서 우리 여기 탑에 장식하자.]
[좋네, 그거.]
아파트 죽돌이 세 유물의 말에 신급 유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아무리 유명한 놈들은 신격화 되어 토종 신급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게 되기도 한다지만...
[저 위아래로 모르는 것들이!!]
[니들 문화권엔 신도 뭣도 없냐!]
쿵!
[세트의 유물이 폭주합니다.]
[아누비스가 명계의 사자들을 불러냅니다.]
[오시리스가 명부를 작성합니다.]
그러던 그들이 눈에서 불꽃을 뿜어대며 외쳤다.
[주이이인! 저놈들을 붙잡아서 나한테 그런 것처럼 똑같이 교육시켜라!]
[그래! 계약해서 똑같이 죽지 않을 정도로 쳐부수고, 복원하고, 부수고. 지옥을 보여줘라!]
그러자 주헌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럼 그러려면 일단 이 무덤부터 클리어해야..."
[우리가 클리어해주마!!!]
주헌은 황당했다.
"뭐? 클리어? 니들이?"
그게 가능한 거였냐?
확실히 무덤에 구멍을 뚫고 강제로 끌고 나가는 것보다 클리어하는 쪽이 놈들과 계약하기도 수월하긴 했다.
왜?
다짜고짜 유괴해서 계약할래? 안 할래? 하는 것보다,
무덤 공략자로서 계약하는 게 더 수월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유물이 유물의 무덤을 클리어해?
아니, 무엇보다.
"야. 쟤네 무덤을 나갈 생각도 없잖아. 과제 낼 생각도 없을 걸?"
그러자 그들은 입에서 불을 뿜어댔다.
[그럼 까짓것 강제로 내게 하면 된다!]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내라 이놈들아!]
그들이 눈에서 빔을 쏘아대며 자신들을 비웃는 오만의 유물들에게 힘을 썼다.
그와 동시에 벌어진 엄청난 오라의 충돌!
쿠우웅!
그걸 보며 율리안은 끄아악 머리를 짚었다.
저놈들이 부딪치는 것도 부딪치는 것이지만.
"서주헌, 너 괜찮아?!"
신급 유물을 4개씩이나 저렇게 풀파워 상태로 사용하다니!
"너 리스크로 죽어! 지금 당장 리스크가 닥칠 거라고!"
"됐어, 괜찮아. 괜찮아. 지금 안 와."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방긋 웃던 주헌이 칼을 뽑으며 율리안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니까 얌전히 네 쓸 만한 눈알 한 짝 내놓으라고."
"악! 왔잖아! 벌써 리스크 왔잖아! 평소보다 더 무섭게 왔잖아!"
율리안은 그게 호루스의 눈을 빼앗은 세트 유물의 리스크라는 걸 깨닫고 기겁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강력한 지배력으로 유물들에게 힘을 주었다.
어차피 자신한테 리스크가 와도 율리안이 알아서 처리해줄(?) 테고.
'잘 됐어.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급 유물 4개로 합동 스킬을 쓸 수 있습니다.]
[<사후심판>을 거행할 수 있습니다.]
주헌은 그걸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사후심판은 쉽게 말해 망자가 받게 되는 심판이다.
재판장 오시리스, 서기관 토트, 안내자 아누비스.
그들이 주축이 되어 강제로 구속하고, 절대적 심판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곧 동시에 발동된 신급 유물들의 합동 스킬.
동시에 바닥에서 밀려 올라오는 망자의 기운. 그 기운이 나폴레옹과 항우, 람세스를 붙들었다.
[뭐야 이건?]
[탑 전체의 유물에게 심판이 내려왔습니다.]
[유물들이 붙잡힙니다.]
[유물들의 죄를 심사합니다.]
그 위력은 상당했다.
[오만의 탑 주민들이 굴복하기 시작합니다.]
[신급 유물들이 오만의 탑의 주권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멋대로 무덤에서 과제들을 실행시켰습니다.]
그와 함께 모든 층에 있던 과제들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쿵쿵쿵!
주헌이 있던 층에 불쑥 불꽃 의자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1층의 무덤 과제. 아마도 내용은 마녀심판 같은 것으로 불꽃에서 살아남는 것이리라.
그러나.
[하하하, 이거 아주 뜨끈하구나.]
불꽃이 치솟아 오르는 의자에 앉아 있는 오시리스는 무슨 찜질방이라며 좋아했다.
[좀 더 뜨거운 건 없느냐? 어? 어?]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오만의 탑 1층의 과제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1층에 있던 오만의 유물이 주헌의 손에 들어갔다.
주헌은 히죽 웃었고, 탑 주민들은 거품을 물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하지만 4명의 이집트 신들은 신이 났다.
[자, 다음!]
그리고 소환된 2층의 과제!
그러나 그들에게는 껌이었다.
[오만의 탑 2층의 과제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2층에 있던 유물을 획득합니다.]
[오만의 탑 3층의 과제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3층의 있던 유물을 획득합니다.]
[오만의 탑 4층의 과제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4층에 있던 유물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오만의 유물들이 파르르르 떨었다.
하지만.
[뭐야, 이놈들 과제 허접이네.]
[이런 식이면 금방 끝나겠는데?]
이집트 신급 유물들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자, 꼭대기까지 해치워볼까?]
그들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