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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208화 (208/409)

208화 모두 꿇어라, 내 밑에(5)

그럴 때였다.

[층간소음도 작작해라!]

참다못한 이집트 놈이 나타났다. 아니, 이집트 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니들 진짜 미쳤냐! 왜 이래! 어?]

다른 층에서 건너온 오만의 유물들이 씩씩거렸다.

[니들 진짜 층간소음으로 고소해버릴 거야!]

[콱 그 다리를 잘라버린다!]

주헌은 유물들이 우르르 나오자 히죽거렸고, 율리안과 설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이번에는 그들에게도 유물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무덤 안이니까 자신들에게도 들리는 것이겠지만, 뭐가 어쩌고 저째?

'층간소음?'

'여기 아파트였어?!'

아무래도 이 탑에는 온갖 오만한 녀석들이 층층(?)마다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벌어지는 일에 분노한 주민이 칼을 들고 쳐들어온 것이리라.

[진짜 콱 죽여버린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거든!]

[야! 너는 위층이니까 좀 낫지. 여긴 천장에서 쿵쿵거려서 죽겠다고!]

그들은 진짜 죽여버리겠다는 얼굴로 나폴레옹과 항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 이해는 했다.

괜히 아파트에서 시끄럽다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서로 씩씩거리고 있는 나폴레옹과 항우에게 달려들었다.

특히 이집트 문화권으로 추측되는 유물 놈의 힘이 정말 막강했다.

[이집트 최고의 왕이 태양의 힘을 사용합니다.]

[왕의 권세가 무덤에 작렬합니다.]

우르르, 쾅! 콰과광!

이어지는 폭격에 황금의 벽들이 무너지고, 고풍스러웠던 석상들이 깨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무덤이 무너집니다.]

[무덤이 무너집니다.]

[나폴레옹과 항우의 유물에 데미지가 가해집니다.]

이에 빡친 나폴레옹과 항우가 놈들을 보았다.

[야! 뭐하는 짓이야!]

[이 무덤을 만드는데 얼마나 재물을 퍼부었는지 잊었어?]

그러자 이집트의 유물이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걸 아는 놈이 지금 이 지랄들을 떨었냐!]

쾅! 콰과과광!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싸움은 기어이 아파트를 부수기에 이르렀다.

물론 떨어지는 잔해들이야 주헌 일행에게는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쿵!

묵직한 돌덩어리들은 주헌의 칼바람으로 사정없이 미세먼지로 만들어 버리고.

콰지지직!

철골로 된 물건들은 율리안의 전기로 여기저기 휙휙 치워버렸으니까.

그리고 율리안은 눈앞에서 쌈박질을 하는 놈들을 보았다.

나폴레옹과 항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 나타난 놈들이 문제였다.

[저깟 인간 놈 때문에 감히 내 소중한 집터를 이 모양으로 만들다니.]

이집트 놈은 오만한 기세로 나폴레옹과 항우를 노려보았다.

[역시 인간들은 안 돼. 이 한심한 것들.]

[뭐야?]

[야. 너도 인간이야!]

워낙 특징이 분명한 문화권이니 한눈에 이집트 계열의 유물이란 건 알 수 있었다.

'오라의 기운은 가히 신급이다.'

그 정도로 엄청났다.

그래서 얼핏 주헌이 가지지 못한 이집트 문화권의 신급 유물인가 싶었지만, 글쎄.

'파라오. 즉 인간형 유물이다.'

율리안의 분석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혹시 람세스인가?"

"네? 람세스라고요?"

그리고 그 생각이 맞은 듯, 무덤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람세스의 힘에 의해 탑의 형태가 위대한 태양의 신전으로 바뀝니다.]

[람세스를 제외한 모두가 그의 노예가 됩니다.]

이때였다.

'위험하다.'

주헌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손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람세스의 지배의 힘이 뇌에 침입합니다.]

[람세스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힘이 엄청났다.

자신들이니까 이정도지, 아마 꾼급 이하들이 왔으면 오라에 닿자마자 세뇌 당했을 힘.

분명했다.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고 하는 왕!

히브리족을 노예로 삼고 모세와 얽힌 이집트의 막강한 왕.

람세스 2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꽤 쓸 만한 노예들이 들어왔군.]

곧 멋대로 손이 칼을 뽑아들자 설아가 급하게 외쳤다.

"그, 왕가의 계곡에 파라오들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호텔에 박아두긴 했지만, 그중 람세스가 있지 않나요?"

"아, 있었지. 근데 그건 람세스 6세. 그리고 저건 2세. 선조님이네."

그 태평한 말에 율리안은 주헌을 쏘아 보았다.

"서주헌, 이집트 쪽 유물들은 거의 네 권속에 들어온 거 아니었어?!"

주헌은 무려 이집트의 주요 신급 유물을 4개나 쓸어 모았다.

당연히 어지간한 이집트 유물들은 주헌에게 친화적이거나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너 혹시 지금 신급 유물들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주헌은 이 상황이 납득이 갔다.

왜?

[나는 곧 신이다.]

람세스는 교만한 눈을 번득이며 주헌을 보았다.

그 찡그린 미간, 주름 잡힌 입술, 싸늘한 웃음.

[네놈이 다른 신들을 데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글쎄.]

람세스는 갑자기 모래처럼 휙 사라지더니 돌연 무서운 기세로 주헌의 앞에 나타났다.

[그걸로 우리를 이 무덤에서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착각 하지 마라, 미개한 인간. 네 놈이 가진 건 미개한 신이다.]

"뭐?"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멍청이. 심부름이나 하는 심부름꾼 멍멍이. 왕들이 죽으면 개나 소나 되는 명계의 왕. 그리고 아무 힘도 없는 새대가리. 그놈들의 목을 잘라 내 침전에 둘 것이다.]

그렇다. 보통 파라오들은 죽어서 명계의 신, 오시리스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람세스는 살아 있을 때부터 자신을 스스로 신격화한 지배자.

하물며 이집트 최고의 신, 라와 나란히 앉은 석상을 만들어낼 정도로 스스로를 신으로 생각했다.

노예들을 부려 자신의 신격화 작업을 위한 석상과 신전들을 세우는데 집중하기도 했고.

'그러니 그 어떤 신이 무섭게 보이겠어.'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아파트가 소란스러워져 빡친 람세스가 주헌을 보면서 이죽였다.

[결국 이 인간만 없애면 시끄러운 노예들의 층간소음도 사라지는 거겠지.]

그 말에 다른 유물들이 황당해했다.

[뭐? 야! 너 지금 우리까지 니 노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이 새끼 봐라?]

물론 그 말에 파르르 떠는 놈들이 더 있었지만.

번쩍!

[.....뭐라고? 심부름꾼 멍멍이?]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멍청이?]

[아무 능력도 없는 새대가리?]

[지금 개나 소나 된다고 했냐?]

주헌이 가지고 있는 신급 유물들이 빡쳐서 튀어나왔다.

***

한편 그 무렵.

"보자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유재하는 눈앞에 있는 놈들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척 봐도 비싼 드레스와 수트.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그 졸부 예술가의 근성이 숨겨질까.

이놈들은 분명 예전에 본 적이 있는 놈들이었다.

'분명 백악관에서 본 복원사들.'

그들은 유재하를 보자마자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너 혼자인 모양이다?"

유재하는 탄식부터 나왔다.

'그래봐야 얽히면 피곤하기만 할 뿐이지.'

그래서일까, 유재하는 쉬쉬 손을 저었다.

"쉬쉬, 나 바쁜 남자야. 소금뿌리기 전에 당장 꺼져, 병신들아."

바로 그럴 때였다.

"야야, 니가 바쁘긴 뭐가 바빠."

"!"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

뭔가 싶어서 돌아보자 거기엔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몇 년 만이냐? 유재하."

키가 주헌 만큼이나 크고 잘생긴 금발의 외국인이었다. 유재하는 그를 보자마자 황당해했다.

"선배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그럴 때였다.

"줄리앙 선배만 있는 거 아닌데요."

"!"

나타난 건 예쁜 동양인 여자. 그녀를 보자마자 유재하는 머리가 아파졌다.

"신승희.....?"

"오랜만이에요, 재하 선배. 민희는 잘 있어요?"

그렇다. 그들은 유재하의 대학 선배와 후배였다.

동시에 함께 장 리처드를 스승으로 두고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했던 사이이기도 하고. 게다가 머리도 좋고 그림 실력도 아주 뛰어나 일찍부터 주목을 받은 성공한 예술가들이었다.

화려한 외모에 실력겸비. 그야말로 스타성은 다 갖춘.

실제로 대학 내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많았고 자주 언론에 노출되었다.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었던 선후배들.

'그런데 왜 이놈들이 여기에.'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유재하의 선배 줄리앙이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자하니 너 요즘 많이 유명해졌더라."

"....."

하지만 놈들이 뭐라고 씨부리던 유재하는 둘하고 이야기를 나눌 마음도 없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이놈들은 장 리처드 교수가 자신의 그림을 표절했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 사람들이니까.

증인을 서달라고 했지만, 글쎄.

'미안, 네 그림 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선배 그림이라는 증거도 없잖아요.'

같은 작업실 식구라고 믿었건만, 그딴 식으로 외면 당했다.

어디 그 뿐인가.

결국, 장 리처드에게 사바사바하며 교수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버렸다.

'덕분에 잘 매장 당했지.'

그래서일까.

"전 할 이야기 없네요. 장 리처드한테 붙어서 교수 자리를 얻어야 할 분들이 왜 여기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자 줄리앙이 부하들을 시켜 유재하를 붙잡았다.

"가긴 어딜 가."

"뭐?"

신사적으로 웃던 줄리앙이 돌연 날카롭게 웃었다.

"네가 우리 오피셜 복원사들을 물 먹였잖아. 오피셜 복원사 치프로서 가만히 못 있겠는데."

그 말에 유재하가 움찔했다.

잠깐.

방금 뭐라고?

'오피셜 복원사 치프?'

"그럼..."

"그래, 줄리앙 씨가 우리 오피셜 복원사들 중 수석 복원사다. 이 새끼야."

즉 100명도 안 되는 세계 공인 복원사 중에서 1위라는 말의 의미다.

'그러고 보니 꾼급들 중에 본 적이 있어.'

줄리앙이라는 이름을.

동명이인인가 싶었거늘.

그리고 줄리앙은 방긋 웃었다.

"우리 오피셜 복원사들한테 엿 먹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나 개인적으로도 좀 불만이 있기도 하고"

"불만?"

"그래. 원래 내가 저번 주에 왕급 자리에 올라가게 되어있었거든. 그런데 그 자리에 갑자기 네가 끼어들었더라."

"허."

그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창조왕>이라는 이름으로 줄리앙은 왕의 자리에 올라갔어야 했다.

실제로 그럴 만한 능력도 되었고.

그런데 판도라 시스템유물의 짓인지, 갑자기 그 자리에 유재하가 끼어들게 된 것이다.

화가 안 날 리가 있겠는가.

곧 줄리앙이 혐오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유재하. 넌 위아래로 없냐? 한국인은 그런 거 꽤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는데. 아니, 애초에 왜 네가 왕급이야?"

"..."

"감히 은혜도 모르고 스승님을 깜빵에 처넣으니 속이 풀리던?"

"뭐라고요?"

거기에 여자 후배 신승희가 끼어들었다.

"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재하 선배가 뭘 알겠어요. 그래도 소원대로 교수님의 그림을 네 거라고 우길 수 있게 되어서 축하드려요, 재하 선배."

아오, 저걸 그냥.

그러자 다른 복원사들이 수석 복원사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저놈이 진짜 실력이 있어서 왕급이 되었겠어요. 그래봐야 서주헌 빽으로 왕급이 된 거겠죠. 도둑놈들이라서 그런지 왕의 자리까지 도둑질하는 것 봐."

"다음 주에 왕급에 명단이 올라가실 테니 걱정 마세요."

그 말에 하하 웃던 줄리앙이 말했다.

"아무튼 너도 복원사 나부랭이라며? 부디 야매 복원사들이 우리 오피셜 복원사들에게 누를 안 끼쳤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유재하의 007가방을 가리켰다.

"그리고 거기 있는 가방."

"!"

"그 안에 서주헌의 유물이 있지?"

유재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기는 한데.'

줄리앙은 웃었다.

"그거 팔려고 나온 거 아니야? 그거 내놔봐, 우리가 사줄게."

"이걸 산다고요?"

"여긴 VIP들이 계시는 곳이야. 너희 같은 야매 복원 사들이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 돌아다니면 창피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가격은 잘 쳐줄 테니 빨리 여기서 나가라는 소리지."

그들은 어째서인지 유재하를 빨리 이곳에서 내보내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줄리앙은 돈다발까지 꺼내며 말했다.

"아 맞아. 너 연봉 얼마야?"

"네?"

"수고비 줄 테니까, 당분간 설치지 말라고. 다 합쳐서 3억 달러면 되겠어?"

뭐 3억?

유재하는 같잖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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