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4 모두 꿇어라, 내 밑에 =========================================================================
< 제204화. 모두 꿇어라, 내 밑에 (1) >
“놈들의 발을 묶는 데는 성공했다. 잡것들이 쫓아오기 전에 중심부로 향한다.”
앞머리를 쓸어올린 주헌이 뿔테안경을 벗었다.
번득이는 눈빛이 까마귀마냥 흉포했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는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모습에 율리안과 설아는 움찔했다.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단장님.’
단지 그 모습에서 새삼 옛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이끌 때의 그 모습이.
병에 몸이 썩어갔지만 막강한 카리스마로 독식자 무리들을 쳐내던 주헌.
뭐, 그때의 주헌은 하도 병을 앓아서 팍 삭았다고 해야 하나. 그 찌든 시체 같은 얼굴에서 느껴지던 독기가 어찌나 맹렬하던지.
어쨌든 말 못할 카리스마가 있었다.
반면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주헌은 상당히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
말랑말랑한 외모 때문에 무의식중에 그때보다는 순해졌다고 인식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굳이 따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겉모습에 사람이 변했다고 여겼다.
애초에 랭킹 3위 실력자인 율리안이 굳이 주헌의 밑으로 들어갈 이유도 없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역시 넌 우리 리더다.’
그 낯익은 감각에 율리안도 설아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자신들까지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좋은 의미로.
어디 그뿐이랴.
“뭐하고 있어. 서둘러. 유물들이 저 나쁜 놈들의 손에 넘어가는 건 볼 수 없다. 용서 못해.”
그 말에 율리안은 감동하고 말았다.
‘서주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무덤을 털던 이 양아치 녀석이……!
그는 감격한 듯이 주헌의 어깨를 잡았다.
“다행이다. 너 변했구나. 알았어. 계속 함께하자. 이번엔 같이 세계 평화에 관심을…….”
“뭔 개소리야.”
“뭐?”
“개 같은 것들. 감히 내 것이 될 걸 노리다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쾅! 콰과광!
“으아악! 살려줘!”
“여기도 함정이잖아, 시팔!”
결국 율리안은 절망한 듯 얼굴을 짚었다.
그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면줏대가 없는 거지.
아니, 변하기는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좀 유순해졌다던가…… 그래서 좀 착해졌다던가…….
“젠장, 누가 내 유물 훔쳐갔어!”
“꺄아아악! 내 가슴 만진 거 누구야!”
“누가 내 속옷 훔쳐갔어! 누구야!”
착해지기 개뿔.
“이자식이 도대체 뭘 훔치고 있는 거야!”
율리안이 눈에서 빔을 쏠 기세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주변을 헤집고 다니는 주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헌은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야! 너! 아까부터 수상하던데 혼자 어딜 가려는 거지?”
나타난 건 윤시우.
아까부터 묘하게 주헌을 의심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율리안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곤란하게 됐군.’
주헌을 붙잡은 건 과거 주헌과 척을 졌던 팀의 엘리트 단장들.
‘죄다 왕급도 넘볼 수 있는 꾼급들이다.’
결코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헌은 멱살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왜?
“손에 들고 있는 그거 뭡니까?”
“뭐?”
순간 윤시우는 제 손을 보고 거품을 물 뻔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제 손에는 따끈따끈한 핑크색 브래지어가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방에는 종류별로 여러 개가 삐져나와 있었고……!
주헌이 그걸 보며 이죽거렸다.
“취미가 참 고상하시네요.”
이에 윤시우는 물론, 함께 있던 단장들까지 새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잠……… 이, 이게 뭐야!”
그리고 이때 허전한 가슴을 만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팀장님!”
“지, 지금 다들 뭘 들고 계신 거예요?!”
“뭐, 뭐? 아, 아니 이건!”
이에 당황하던 윤시우와 팀장들이 주헌을 쏘아보았지만, 주헌은 얄밉게 웃는 것이었다.
“아, 어쩐지. 아까 무덤에서 쓰기 좋은 유물이 있다고들 하시더니.”
“뭐, 뭐? 야! 우리가 언제!”
“밀폐된 공간에 함정 때문에 여직원들이 도망도 못 가… 그죠?”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들의 눈이 번득였다.
“와, 미쳤다. 평소에 성희롱할 때부터 알아봤어!”
“안되겠어요. 부단장님께 말해서 당장 끌어 내리죠!”
“야, 야! 안 닥쳐? 이 멍청한 년들아! 저놈이야, 저놈이 서주ㅎ…!”
그러나 주헌은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윤시우와 다른 단장들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들과 척을 진 팀들이 윤시우 파벌에게 무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쾅, 콰과과광!
물론 율리안은 유유히 빠져나온 주헌에게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야, 너 도대체 뭘 훔치고 다니는 거야?”
“내가 뭘?”
“아무리 그래도 여성의 속옷을…!”
“내가 훔친 거 아닌데?”
“뭐?”
그 증거로 지금도 여러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꺄아아악!”
“꺄아아악! 누구야!”
누구긴 누군가.
[캬캬캬캬캬! 돈이다, 돈!]
인간들 사이에서 신나게 속옷을 훔치고 있는 건 지렁이.
원래도 놈은 재화와 관련된 거면 꿀꺽하고 뱉어낼 수도 있는 녀석이었다.
애초에 유물에게 있어 재화는 화폐로 거래되는 인간의 모든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율리안은 의아했다. 돈이나 금, 보석 외에는 꿀꺽하지 않는 녀석이 속옷을 훔치다니?
그리고 그 생각을 읽은 듯이 주헌이 한마디 했다.
“장당 1억. 훔쳐오면 돈 준다고 했거든.”
율리안은 기가 막혔다.
“진짜 줄 거야?”
“돌았냐?”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지렁이는 신이 나서 속옷을 훔쳐댔다.
뭐, 제 딴엔 유물이라고 동포들을 납치하는 짓은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쓸 만하군.’
3억 정도 주면 동포라도 팔겠지.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콕콕.
주헌의 다리를 콕콕 두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
그건 바로 동아줄이었다.
동아줄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며 주헌을 보고 있었다.
[$*#&$*!]
나도 가져왔어! 가져왔어!
동아줄은 지렁이가 주헌에게 명령을 받은 게 부러웠던지, 똑같이 지렁이 흉내를 낸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동아줄이 팬티를 물고 있었다.
[*$#&*!]
나도 칭찬해줘, 해줘!
동아줄은 눈을 반짝이며 주헌의 칭찬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율리안이나 주헌의 얼굴이 동시에 썩어들어갔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남자 팬티는 필요 없어.”
드물게 둘의 뜻이 맞았다.
***
한편 그 무렵.
“뭐야, 쟤 호구왕 아니야?”
“여기는 무슨 볼 일이래.”
“왜긴 왜겠어. 경매하러 온 거겠지.”
유재하는 파르르 손을 떨고 있었다.
주헌의 명령으로 유물거래소에 온 건 좋았다.
그리고 여긴 보통의 경매와는 다르게 대다수가 유물끼리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곳.
‘유재하. 네가 거기서 빼돌려올 유물이 있다.’
그런 명령으로 온 건 좋은데…….
단장님 일행이 무덤에 들어간 이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재하 ‘호구왕 등극’]
[호구왕. 도둑왕 사망 후 그 자리를 꿰차다.]
[판도라 “시스템 유물이 정한 일.”]
그렇다.
아무래도 최근 오피셜 복원사들을 엿 먹이고 권 회장을 습격하는 둥 별의별 지랄을 했더니 고맙게도 왕급에 올려준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파괴력과 영향력을 가진자’에 올려준 건 고맙다 이거였다.
멋지니까.
폼 나니까!
그리고 왕급에 오르면 특별한 유물을 받게 된다는 예언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명칭이 호구왕이면 도대체 무슨 능력을 가진 거야?”
“Pushover(만만한 사람)?”
“Doormat(찌질이)?”
유재하는 끄아아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왜 하필 호칭을 부여해도 그딴 거지 같은 별명을 붙여놓냐!’
지들 딴엔 동양인이라고 영어로 비웃고 있지만, 명색이 아이비리그 출신. 그걸 못 알아들을 유재하도 아니다.
그는 입에서 불을 뿜을 기세였다.
‘진짜 다 부숴버릴 거야, 시스템 유물인지 뭔지!’
유재하는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평소에도 호구꾼, 호구꾼이라고 단장님이랑 설아가 그렇게 놀려댔건만.
진짜 호구왕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최소 한 달은 놀림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죽을 때까지.
‘젠장, 어쩌지. 이거 단장님이 무덤에서 나오기 전에 못 바꾸나?!’
아니, 뭐 됐다 이거였다.
호구왕도 호구왕이지만,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 만큼.
[왕급 사냥?]
[도둑왕에 이어 풍작왕 등 왕급들 대거로 사망.]
[누구의 소행인가.]
[예의 유물사용자 사냥 NGO 단체의 짓인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실력 있는 꾼급의 짓인가.]
유재하는 뉴스 기사가 꽤나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
하응, 하응. 여기야 여기.
“우, 우웁!”
유재하는 갑자기 얼굴을 뒤덮는 팬티 때문에 질식할 뻔했다.
[#$*$*!]
하응, 도령. 나리가 찾는 유물 여기에 있어.
그건 바로 주헌이 어디론가 날려버렸던 변강쇠와 옹녀의 유물이었다.
[#*&$*!]
어서 물건 얻고 우리 좀 복원해줘! 하응, 하응.
“우우우우으이어나애끼야!(이거 놔! 새끼야!)”
졸지에 팬티에게 끌려가는 유재하를 보고 경매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팬티라니.”
심지어 그런 유재하를 졸졸 따라가는 옹녀의 유물은 사람들의 비명을 사기 충분했다.
[#&$*#!]
어서 나리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니께! 한다니께!
“꺄아아아악! 이게 뭐야!”
“뭐 저런 경박한 유물이 다 있담.”
“도대체 뭐하는 왕이야?”
“진짜 왕급 맞아?”
그렇게 유재하의 이미지가 굳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유재하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리는 이들이 있었다.
“어쭈, 저 호구왕. 여기에 나타났네?”
유재하를 살피는 누군가가 있었다.
“저게 지난번에는 우리를 치욕스럽게 만들었었지.”
“딱 걸렸어.”
그들은 다름 아닌 오피셜 복원사들과 오피셜 감식가들이었다.
복원사들은 백악관에서. 그리고 감식가들은 비행기 사건 때문에 유재하에게 물을 먹었던 놈들이었다.
“여기서 매장해버리자.”
“저놈이 매장당하면 강탈왕도 같이 매장시킬 수 있겠지.”
“게다가 저 놈, 서주헌의 복원사니까 서주헌의 유물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들은 음흉하게 웃었다.
***
챙, 챙!
한편 무덤 중심부로 가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정확히는 주헌 일행이 아니라 TKBM과 이번에 발굴권을 얻은 팀들의 일이었지만.
“젠장! 너 왜 이래! 정신 차리라고!”
아까는 함정 때문에 고생하지를 않나. 그리고 지금은 멀쩡하던 놈이 픽픽 쓰러지지 않나.
“분명해. 이 안에 서주헌이 있다!”
“뭐? 진짜로 숨어 든거였어? 미친!”
그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점점 무덤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명백해지는 것 같았다.
‘확실하다. 왕급의 지배력이다.’
아까까지 만해도 분명 없던 왕급의 지배력이 어디선가 물씬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들 술렁이기 시작하자 윤시우는 억울함에 가슴을 치며 쌍욕을 날렸다.
“그러니까 아까 그놈이 서주헌이라고 했잖아! 이 등신들아!”
“하 씨……… 진짜 그놈이야?”
그들은 시가지의 중심부에 우뚝 서 있는 탑을 보았다.
일명 오만의 탑.
고분화 지대가 벌어진 시가지.
그 시가지 한복판에 우뚝 솟아 오른 탑이 바로 유물들이 있는 곳이었다.
높이는 대략 50층은 족히 넘지 않을까 싶은 정도.
무척 화려하고 위엄이 넘치는 탑이었다.
물론 아직 어떤 유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서주헌이 저쪽으로 갔을 거다!”
“뒤쳐지면 안 된다! 쫓아!”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주헌 일행은 탑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예전하고 약간 달라지긴 했군.’
주헌은 이 아름답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한 탑 위에 오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배력도 흘러나오게 된 것이리라.
그럴 때 율리안이 말했다.
“아무래도 왕가의 무덤 때처럼 여러 개의 유물이 콜라보한 무덤 같아.”
여러 유물들이 있다는 의미였다.
‘대무덤이니까 이상할 건 없지.’
그럴 때였다.
“위험해!”
율리안이 외쳤고, 주헌과 설아가 날아오는 총탄을 유물로 막아냈다.
하지만.
[살벌한 데미지를 입어 유물이 파괴 됩니다.]
방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방어유물이 박살나고 말았다.
압도적인 오라.
그 엄청난 힘.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군대가 나타났다.
철그덕. 철그덕.
군대의 생김새는 근대 유럽군.
그 군인들 사이에서 위압적인 오라를 뿜으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들어라, 나의 병사들이여. 들어라, 미개한 인간들아.]
말을 타고 나타난 그가 말했다.
[나보다 키가 큰 놈들은 다 죽어라.]
굉장히 유명한 놈이었다.
============================ 작품 후기 ============================
저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