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등잔 밑은 매일 어둡다지? =========================================================================
< 등잔 밑은 매일 어둡다지? (5) >
주헌은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귀신같이 몸을 숨긴> 칭호를 얻어 <은신>스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신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무덤복원과 유물파괴 스킬 이후로 오랜만에 나온 스킬.
주헌은 반가워하며 그간 단련해온 스킬 창을 확인했다.
[언어학(F랭크)]
- 툼글리프 독해 및 이용능력, 유물과 의사소통능력 증가
[조련(F랭크)]
- 유물과 사람을 다루는 기술.
[염탐(A랭크)]
- 정보확인, 감지능력 증가
[내성(A랭크)]
- 오라에 대한 내성 증가
[무덤복원(A랭크)]
- 무덤 복원, 범위 증가, 손재주 증가
[손재주(S랭크)]
- 소매치기 능력 향상, 유물사용능력 상승, 적합력 상승
[무덤파괴(S랭크)]
- 닥치고 무덤 파괴, 친화력하락
[유물파괴(SS랭크)]
- 닥치고 유물 파괴, 지배력증가, 친화력 하락
그걸 보고 주헌은 웃었다.
어째 제일 최근에 얻은 유물 파괴 스킬의 레벨이 가장 높긴 하지만……….
‘은신이라.’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왜?
새로운 스킬이라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주헌은 힐끗 주변을 살폈다. 지상형 무덤이다 보니 시가지 전체가 무덤이 된 상황. 주헌은 작은 집에 쓰인 툼글리프를 읽더니, 슬쩍 벽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순간.
“야, 너 뭐하는 거야!”
놀란 율리안이 주헌을 불렀다.
소리가 작아서 주변사람들은 다행히 듣지 못했지만, 어찌나 당황했는지 텔레파시 유물을 쓰는 것도 깜빡할 정도였다.
[서주헌, 뭐하는 거야! 거긴 함정이라고!]
그의 눈에는 당연히 보였다.
손이 닿는 순간, 손모가지가 날아가는 함정이 발동할 것이었다.
설아도 당황해서 주헌을 보았다.
[단장님!]
[서주헌!]
그러나 주헌은 둘을 무시하고 가볍게 함정에 손을 얹었다.
턱!
그리고 당황한 율리안과 설아가 주헌의 손을 빼내려는 그 순간.
“엥?”
율리안은 제 눈을 의심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멀쩡했다.
분명 주헌이 함정에 손을 얹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손이 멀쩡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뭐야, 너 왜 멀쩡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부하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율리안과 설아는 주헌의 몸 이리저리를 살피면서 황당해했다.
[괘, 괜찮으세요?]
그리고 그런 부하들의 걱정을 즐기면서 주헌은 가볍게 웃었다.
‘역시 예상대로다.’
그렇다.
위험천만한 도박을 한 주헌은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았다.
[은신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은신의 영향으로 함정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주헌은 히죽였다.
‘아주 쓸 만한 놈이 걸렸군.’
이게 있으면 무덤을 털어내는 데 조금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실제로 주헌의 눈빛은 자신을 노리는 TKBM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 무덤에서 유물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
“그리고 유물을 얻으면 바로 서주헌을 노리러 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헌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서주헌, 어디 걸리기만 해봐. 아주 대가리를 잘라서 회사 옥상에 걸어버릴 테니까!”
“우오오오!”
그들은 이번 무덤의 유물로 주헌의 유물을 빼앗아갈 모양이었지만, 글쎄.
주헌의 위험한 미소가 상당히 음흉했다.
***
“크허어억, 그만, 그마아안!”
한편 권 회장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유재하 놈이 자신의 병실에 나타났을 때부터일 것이다. 그 이후로 권 회장은 말하지 못할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아아아악!”
그리고 의사들은 그 현상에 이렇게 말했다.
“유감이군요. 치질 4기입니다.”
“뭐라고요?!”
어디 그뿐인가.
“크허어억! 내 발, 내 발이이이!”
“유감이네요. 극심한 무좀입니다.”
“아아아악! 샌다고, 새! 의사선생님!”
“이럴 수가. 요실금입니다. 이 나이에 벌써…….”
“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이런, 요로 결석입니다.”
“뭐라고요?!”
“아아아아악! 내 피부, 피부!”
“의사선생님!!!”
“매독입니다.”
“네?!”
그리고 현재.
“아아아아아악!”
또 다시 병실에 울려 퍼지는 비명.
그 괴로운 외침에 보좌관들이 아연실색하며 허둥댔다.
평소에는 서주헌을 욕하며 권 회장의 비위를 능숙하게 맞추는 회사 간부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비서 하나가 당황하자 보좌관들이 벌떡 일어서며 화를 냈다.
“뭘 묻고 있어! 이젠 눈치로 알아야지! 빨리 가져와!”
“네? 아, 저기…… 그럼 도넛 바, 방석을…….”
“바보야 그거 아니야! 여자 간호사들 데려와!”
“연고야 연고!”
“등신아, 기저귀 쪽이라고!”
전부 아니야, 이 멍청이들아!
권 회장은 괴로워하면서 욕을 읊조렸다.
“으흐으윽, 흐윽. 거기, 거기가….”
“네?!”
권 회장은 차마 말하지 못하며 다리 사이를 움켜쥐었다. 마치 다리 사이가 짓무르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젠장, 유재하 놈, 도대체 나한테 뭔 짓을 하고 간 거냐!’
아니, 유재하 놈이니까 분명 보나마나 서주헌의 짓이겠지만.
그리고 확실한 건 유재하가 자신의 몸에 괴이한 유물을 설치하고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가 갈릴 수밖에.
‘빌어먹을, 어디서 거지같은 걸 구해 와서!’
얼핏 예상키로는 저주계열 유물.
하지만 평범한 저주계열 유물은 아닌지, 시간을 막론하고 괴상한 일들이 권 회장에게 닥쳤다.
눈이 매울 때도 있었고, 병이 닥칠 때도 있었고, 웃음이 멈추지 않아 죽을 뻔하기도 했다.
심지어 회춘의 유물 덕분에 벌떡벌떡 서던 님도 지금은 부끄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오오오오!”
또 다시 다리 사이로 고통이 몰려왔다.
동시에 그 고통에 반응을 한 것인지, 권 회장의 유물까지 날뛰기 시작했다.
콱! 쿠구구궁!
바로 정복의 유물이었다.
[#*$*!]
그의 유물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자 병실에 있던 물건들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염력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물건들이 공중부양을 시작하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회장님, 회장님!”
“지, 진정하세요, 회장님!”
의료기기들과 꽃병, 과일 같은 물건들까지 무섭게 둥둥 떠오르자 부하들은 다급해졌다.
“빨리 의, 의사 선생님을 불러와!”
“아니, 저거부터 막아! 아, 아니 유물 사용자들 데리고 와! 양 쳰, 양 쳰을 데려와라! 양 쳰 부단장!”
“네?! 그 사람들은 지금 무덤 발굴하러 갔잖아요! 꺄아아악!”
그렇게 보좌관들이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을 때였다.
쿵!
순간적으로 뻗어나가는 유물의 힘! 번쩍이는 빛이 원을 그리며 병실을 감쌌다.
그러자 무섭게 둥둥 떠다니던 유물들이 쿵 바닥에 내려앉았다.
쿠웅!
“!”
그 힘은 바로 중력과 연관된 뉴튼의 유물.
부하들은 바닥에 착 달라붙은 물건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머, 멈췄어……!”
“도대체 누가…!”
그 의문을 해결하듯이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성질이나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 노친네야!”
“!”
낯익은 목소리에 권 회장이 눈을 부릅떴다.
권 회장의 병실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운명왕이었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유물을 가진 조슈아.
수많은 나라와 기업들의 비선실세로 불리는 그는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땀나는 게 싫다며 가까운 거리도 운전기사를 대동하는 청년이건만. 그게 내심 의아했지만 권 회장은 눈을 부라리며 운명왕을 보았다.
“뭐가! 왜 갑자기 찾아와서 난리야! 무슨 일인데!”
“그거 알아? 서주헌, 서주헌이 니 발굴단에 숨어들었다고!”
“?!”
아무래도 꿈으로 또 뭔가를 본 모양이었다.
“니네 발굴단 지금 유럽에 갔지? 거기에 서주헌이 숨어들었다니까!”
그 말에 권 회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서주헌 그 쥐새끼를 못 알아챌까.”
권 회장은 서주헌만 생각하면 속이 끓었다.
이유는 몰랐다.
단지 짐작 가는 게 있다면…….
‘그때 이상한 걸 봤었다.’
사실 권 회장은 판도라의 수장 격인 이사진들과 개인적으로 딜을 했었다. 특히 판도라 시스템 유물을 총괄하는 몇몇의 이사들과.
그래서 시스템 유물로부터 지배력을 한순간에 올리는 방법을 익혔던 것이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권 회장은 보았다.
30대쯤으로 보이는 주헌의 모습을.
‘죽여라. 그놈이 더 크기 전에.’
‘그놈들을 유인하면 이사로 승진시켜주마.’
‘TKBM 전 직원은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보지도 듣지도 못한 거다. 처음부터 서주헌은 TKBM에 없었던 거다.’
그냥 딱 그 장면만 봤던 터라 앞 뒤 내용은 하나도 몰랐다.
그냥 처음 보는 영화의 스틸컷을 보는 느낌.
그래도 서주헌이 거슬리는 걸 보면 뭔가 놈과 연이 있었던 걸까 싶긴 하지만.
그러나 곧 권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헛것이다.’
설령 관련이 있다고 해도 현재만 보는 권 회장은 관심 없었다.
오히려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그래서 서주헌이 내 발굴단에 숨어들었다고?”
“그래! 니네들이 서주헌이 못 찾아서 내 발굴단도 덩달아서 휘말리잖아!”
“어떤 내용이었는데!”
“일단 나랑 니네 발굴단이 아주 작살나던데……….”
그 말을 듣자마자 권 회장은 쾅, 테이블을 내리쳤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설령 그깟 놈이 쥐새끼처럼 숨어도 무덤에서 처리를…… 커허어억!”
권 회장은 몸을 배배꼬았다.
아파오는 사타구니는 덤이었다. 그리고 두 손을 배꼽 아래에 가지런히 모은 운명왕이 쯧 혀를 찼다.
“그래, 뭐 괜찮겠지.”
혹시 몰라서 발굴단에 연락 넣었으니까.
***
하지만 괜찮기는 개뿔이.
“뭐라고요? 서주헌 그 새끼가 뭐라고? 어디에 있어?”
“아니, 그러니까 댁들 발굴단에 서주헌이…… 커허어억!”
“아아아악!”
“뭐야 저것들은!”
“함정, 함정입니다!”
무덤 입구 쪽에서는 TKBM과 다른 발굴단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바로 주헌이 벌이고 있는 몹쓸(?) 장난 때문이었다.
“젠장, 대열을 정비해라!”
하지만 시가지의 골목마다 물 밀리듯이 나오는 고대 중국의 병사들. 그 엄청난 숫자에 발굴단들은 입에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젠장, 함정은 안 건드렸잖아!”
“도대체 누구 짓이냐!”
누구 짓이긴.
척, 척, 척, 척.
주헌은 귀신같은 솜씨로 함정을 발동시켰다.
물론 함정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무덤을 돌아다닌 경험과 지식을 살리면 이까짓 거!
철컥!
“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비명을 듣는 율리안과 설아는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다.
‘왜 다친 척하고 후방으로 빠져 있으라고 한 줄 알겠다.’
저 양아치 자식.
율리안은 주헌의 계획이 뭔지 단 번에 알아차렸다.
‘확실히 함정 길이 목적지로 가기엔 최단 통로지.’
사실 무덤의 구조상 위험한 길일수록 유물과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안전한 길로 가는 건 찾기도 어렵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잘못 가면 1년이 넘게 걸리는 통로까지 나오기 마련인 만큼.
그래서 발굴단들은 주로 함정이 있어도 눈에 띄는 길을 향했다.
함정이야 끌고 들어온 미끼들을 집어넣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으아아아악! 미끼, 미끼를 넣으라고!”
“미끼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함정이 모두 발동된 것 같습니다!”
“그게 왜 발동 되냐고! 으아악!”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주헌의 행동이었다.
은신스킬을 얻고 뭔가 기묘한 웃음을 짓던 주헌은 아주 생양아치 짓을 시작했던 것이다.
“으아아악!”
심지어 인간 미끼들을 쓰는 양아치 짓이 싫은 건지, 그는 끌려온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날려버린 후였다.
놈들이 미끼를 어떤 식으로 납치해오는 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유물을 얻고 싶으면 자력으로 클리어해라, 새끼들아.’
그러더니 혼란 속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단장님! 이쪽이 출구인 것 같습니다!”
주헌이 가볍게 다리를 건너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저쪽이 함정이 아닌 길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들이 다리에 올라선 순간.
“끄아아아악!”
“아아악!”
함정은 발동되었고 주헌이 외쳤다.
“죄송합니다! 함정이었나 봅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왜…?”
“야이 새끼야아아아!”
물론 사과를 하지만 율리안은 봤다.
계획대로라는 주헌의 미소를.
‘이 악마 같은 놈.’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율리안과 설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놈들의 발을 묶는 데는 성공했다. 잡것들이 쫓아오기 전에 중심부로 향한다.”
앞머리를 쓸어올린 주헌이 뿔테 안경을 벗었다.
번득이는 눈빛이 까마귀마냥 흉포했다.
============================ 작품 후기 ============================
양아치의 강림.txt
+ 출판사의 요청으로 이번주하고 다음주 2번만 주4회 연재로 진행 될 것 같습니다 ㅠ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독자분들께 어떻게든 보답을 드리고자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리고 더욱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