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2 등잔 밑은 매일 어둡다지? =========================================================================
< 등잔 밑은 매일 어둡다지? (4) >
‘잡아먹힌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쿵!
불시에 닥친 까마귀 오라의 습격.
그 오라는 살벌한 날개를 펼치며 기운을 뿜어냈다. 탐지왕 다우징 멕캔은 이때 새삼 공포라는 것을 느꼈다.
‘무섭다.’
운명왕과는 다른 종류의 천리안을 가진 자신이 아니었던가.
운명왕이 미래라는 천리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은 현재의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여자.
자신의 힘이 있으면 그 어떤 적과 위협이 되는 것들을 금방 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탐지된 적은 대게 그녀의 손바닥 위였다.
왜?
사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적이 무서운 거지, 적의 위치를 알면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거기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하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나라의 병력과 수많은 유물이라는 병기를 가지고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서주헌인지 뭔지, 기껏해야 도둑질로 왕급이 된 놈.
‘그래도 서주헌의 정보는 비싸게 팔린다.’
자신도 왕급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딴 놈한테 기싸움에서 질 것 같나!
‘빨리 처리하고 쇼핑이나 가자.’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그래야만 했고.
‘그런데 이건 뭐야………!!!’
자신의 레이더에 잡힌 짐승은 차라리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서웠다.
마치 어디서 멋대로 살펴보냐는 듯한 맹수의 눈빛.
그와 함께 흉흉한 까마귀의 오라가 탐지왕을 습격했다.
“꺄아아악!”
동시에 탐지왕은 겁에 질려 주저앉고 말았다.
‘뭐, 뭐지 이 유물은?’
그저 그런 막연한 공포가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그리고 살아있는 동물이라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의 공포다.
맹수에게 물어 뜯겨 죽는다는 두려움. 심해의 바다로 끌려 들어가는 두려움.
그래서 코와 입이 강제로 틀어막히고, 정체 모를 것에게 잡아먹힌다는 두려움.
그것이 주헌에게서 느껴졌다.
그 공포가 자신의 목구멍까지 들이닥칠 때, 그녀는 생각했다.
‘도망쳐야 한다.’
그래야만 했다.
안 그러면 정말로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쿠구구궁.
“꺄아아아악!”
어딜 도망치냐는 듯 주헌이 입꼬리를 씰룩이는 것이었다.
동시에 살벌한 검은 오라가 날개를 펼치듯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소름 돋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검은 포식의 손이 탐지왕의 목을 조르는 순간.
주헌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대 유물을 잡아먹습니다.]
[하얀 신의 힘을 포식하려고 합니다.]
[그 숙주까지 잡아먹게 됩니다.]
날뛰는 까마귀 때문에 그런 메시지가 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본체가 아니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힘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까마귀의 힘이 휘청이는 듯 했다.
그러는 사이에 매섭게 날뛰던 까마귀의 흉흉한 오라가 사라졌다.
동시에 목숨을 겨우 부지한 탐지왕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헉, 헉. 미, 미쳤어.”
오금이 저린 듯, 후들 거리는 손과 다리.
그리고 그녀의 모습에 TKBM의 발굴단과 군인들이 술렁거렸다.
“뭐야. 저 여자 왜 저래?”
“몰라. 왜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난리야?”
왜긴 왜야!
그녀는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역시 있잖아! 서주헌이 여기에 있다고! 이 미친 것들이 서주헌 놈을 숨겨줬어!”
“뭐? 이 여자가 또……!”
아무래도 까마귀의 기운을 느낀 건 레이더를 펼친 탐지왕뿐인 모양이었다.
아니, 사실 예외적으로 율리안도 느끼진 했지만.
‘서주헌 저 미친 놈.’
식은땀을 흘리는 율리안은 괴물 보듯이 주헌을 보았다.
주헌을 쫓아다니는 까마귀 오라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딴 걸 저렇게 사용하는 게 신기하다!’
오늘 깨달았다.
주헌을 쫓아다니는 까마귀 오라는 괴물이다. 본체도 아니고 고작 오라 만으로 이 정도라니.
그 오라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는 주헌이 기이할 지경이었다.
‘저럴 수 있는 놈도 또 없겠지.’
자신하고 탐지왕은 왕급이니까 신급 유물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내성이 있다.
하지만 그 이하 꾼급들은 아마 혼절할지도 모르리라.
‘뭐, 사람들을 생각해서 저 여자한테만 기운을 드러낸 것도 아니겠지만.’
일부러 탐지왕에게만 드러냈다는 표현이 맞겠지.
탐지왕을 바보로 만들려고.
실제로 주헌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TKBM과 유럽 군인들은 탐지왕을 못 미더워하고 있었다.
‘확실히 탐지왕이 레이더를 쓴 건 맞는 것 같지만.’
그리고 그 못 미더운 시선을 느낀 건지, 탐지왕이 욕을 했다.
“뭐예요, 그 시선. 지금 내 말을 안 믿는 거예요?!”
“아, 아니……… 그게.”
“확실히 왕급이 아니면 낼 수 없는 유물의 힘이었어요. 신급이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못 느꼈다니까?
여기 그런 애 없다니까?
그러자 답답해진 그녀가 소리쳤다.
“진짜 여기 있다니까! TKBM이 서주헌을 숨겨줬든가, 아니면 숨어들었는데 등신같이 못 알아챘든가. 둘 중 하나라고요!”
그 말에 TKBM이 눈살을 찌푸렸다.
엘리트라 불리는 자신들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었기 때문이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이 여자가 진짜………!”
“지 혼자 유물을 쓰다가 비명을 지른 주제에 무슨 소리야!”
“진짜 탐지한 거 맞아?”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그들이 외쳤다.
“서주헌이 어디에 있는데!”
“탐지했으면 알겠네. 누가 서주헌인지 말해보라고!”
그러자 탐지왕이 곧바로 주헌 쪽을 째려보았다.
‘분명 저 남자다.’
그녀는 곧장 주헌의 멱살을 잡았다.
사진으로 봤던 서주헌하고는 전혀 다른 얼굴이긴 하지만…….
“너지! 서주헌!”
이에 율리안도 설아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주헌은 시치미를 뚝 뗐다.
“무슨 말씀이세요?”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어.”
탐지왕이 거칠게 주헌의 어깨를 잡아끌자 주헌이 왜 이러냐며 비명을 질렀다.
이에 반응들이 나뉘었다.
“진짜 서주헌이야?”
그러자 주헌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에 제가 어떻게 왕급 씩이나………! 그리고 서주헌 그 개 같은 새끼는 저한테도 웬수입니다. 그 천하의 빌어먹을 사기꾼에 범죄자 놈.”
주헌의 철판 얼굴에 율리안은 같은 편이면서도 기가 막혔다.
저, 저, 뻔뻔한 놈 보소!
탐지왕은 뻔뻔한 주헌을 보며 허, 비웃었다.
“허,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렇게 나와봤자 한 번 더 레이더를 발동시키면……!”
탐지왕이 바로 유물을 사용했다.
[헤임달의 안력과 청력이 담긴 뿔 (SS급-신급) / 귀속성 유물]
북유럽 신화 속 광명의 신 헤임달은 일종의 문지기이자 로키의 대적자.
동시에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력과 천리안을 가졌다. 그걸로 위험을 알려주곤 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 능력답게 최상의 레이더 능력이 발현되었지만……….
[힘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헤임달의 힘이 일부 잡아먹혀 정상적으로 발동되지 못합니다.]
그걸 보며 주헌은 웃었다.
‘이정도면 굳이 탐지왕 대책 유물은 안 써도 되겠군.’
자신이 가져온 얄팍한 수보다 훨씬 효과가 좋아보였고.
게다가.
[헤임달의 힘을 일부 흡수했습니다.]
[포식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메시지에 주헌은 아주 흡족해했다.
‘까마귀 놈. 유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라더니.’
뭐, 지금은 본체도 아니고 고작 오라 덩어리에 불과해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까마귀 놈을 손에 넣으면 능력도 빼앗을 수 있게 되는 건가?’
유물의 힘, 심지어 무덤의 힘까지도?
주헌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럴 때였다.
“젠장!”
결국 탐지를 못하게 된 탐지왕은 씩씩 이를 갈고 있었다.
젠장, 분명 이놈이 맞는데.
유물을 쓸 수가 없다니!
“이 자식, 정체를 밝혀주겠어!”
이대로면 판도라에게 문책을 당할 것이었다.
‘보나마나 도플갱어 유물이든, 변신 유물이든 뭔가로 변장한 것일테지!’
레이더로 감지가 안 되면, 직접 손발로 터는 수밖에!
“아, 잠깐 뭐하시는 겁니까!”
“내가 무슨 레이더만 칠 줄 아는 병신인 줄 알아?!”
왕급들은 기본 여러 개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탐지왕이 곧 주헌의 멱살을 잡고 반대쪽 손으로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
이에 설아가 눈을 번득였고, 율리안이 아차 싶었다.
‘상처를 입으면 변신이 벗겨져요! 주의하십쇼! 단장님!’
재하가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유물을 쓰면 지배력 때문에 들킬 테고, 위험……!’
젠장, 골치 아프게 됐네.
그런데 그럴 때였다.
“저, 다우징 씨!”
“왜! 뭐요!”
“판도라 유럽 지부에서 급한 연락이……!”
“급한 연락?”
“저, 지금 당장 귀환하라고 합니다.”
“안 꺼져? 귀환은 개뿔이, 서주헌을 잡아 오라고 한 게 누군데!”
“아니, 지금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탐지왕은 뒤돌아가면서도 주헌을 쏘아보았다.
주헌은 딴청을 피우고 있었지만….
율리안은 봤다.
주헌의 입가가 씨익 올라가있는 것을.
‘이런 악마 같은 놈….’
그렇게 그들이 TKBM 발굴단에서 떠나갔다.
사람들은 도대체 쟤네 뭐냐면서 술렁거렸다.
“왜 온 거야? 쟤네?”
“그러게. 왜 갑자기 돌아간 거야?”
***
왜긴 왜인가.
[세계주가지수 이상 현상]
[환율비상]
[증권가 마비]
[은행에서 화폐 증발]
세계가 아주 난리였다.
증권가는 비상이 걸렸고, 널뛰기하는 환율 탓에 국가들도 거품을 물고 기절할 판이었다.
그리고 이 이상 현상에 직격타를 맞은 나라는 바로 미국과 중국이었다.
왜?
“판도라의 요구를 무시했더니…… 단 10분 만에 이런 일이.”
“요구라니, 무슨 요구!”
“그게… 서주헌의 지인들을 습격하라고 하셨던 것 말입니다. 그 임무를 취소하라고…….”
“뭐? 판도라가 왜 그런 요구를 해!”
“그, 그게. 그 요구를 한 게 파산왕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요구를 거절하면 주가를 반 토막 낼지도 모른다고.”
“뭐, 뭐라고?! 왜 그걸 말 안했어!”
“아니, 알긴 알았는데…… 설마 진짜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곤…….”
“아오!”
미국, 그리고 중국은 동시에 탄식을 흘렸다.
기껏 서주헌이 없는 틈을 타서 주변 일을 공략하려고 했더니.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그리고 같은 시간.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네, 네? 진짜 철수합니까?”
불로초를 키우는 농부들에게 들이닥친 미군은 황당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졸지에 미군에게 끌려갈 위기였던 농부 오승우 일행은 방어 유물을 펼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도 열심히 불로초를 키우고 있었던 건 좋은데, 뜬금없이 미군들이 총을 들고 난입해서 기겁하던 찰나가 아니었나.
그런데 철수라니.
그리고 같은 시간, 한국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철수라니요! 왜 철수합니까! 이 사람들만 잡으면 서주헌도 꼼짝 못 할 텐데!”
“됐으니까 철수해!”
그 말에 중국 적화단은 뒷목을 잡았다.
바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철수라니!
하지만 그래야만 했다.
‘철수하지 않으면 파산왕한테 죽는다.’
더불어 비겁하게 주헌을 건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협박이 담겨 있었다.
“자, 이제 다 해결 된 것 같아요. 경제도 이제 다시 원래대로 회복 될 거고요.”
이 모든 일이 무려 30분 안에 다 벌어진 일이라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걸 보는 클로에는 입을 떡 벌렸다.
왜?
사실 클로에에게 있어 파산왕은 그간 달갑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말로는 설아에게 너 말고 아이린을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파산왕은 적이었으니까.’
주헌에게도 적이었고,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렇다니.
하지만 아이린은 자신이 괜한 짓을 했나 시무룩해졌다.
“주헌 씨에게 말도 없이 괜히 나섰나…….”
클로에는 가볍게 웃었다.
“아뇨. 단장님은 좋아하실 텐데요.”
그래서일까.
“당신 마음에 드네요.”
그리고 진짜로 아이린을 밀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윽.”
한편 그 무렵 설아는 오한이 돌았다.
뭔가 자잘한 사고를 아이린이 처리했다니 좋아하긴 해야 하는데…… 왜일까.
‘왜 불길한 기분이 드는 거지?’
그들은 어느 덧 무덤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율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 파산왕한테 도움을 받긴 했네. 뭔 방해꾼이 와서는….]
하마터면 유럽군하고 여기서 한바탕 뜨면서 골치 아파질 뻔했다며 율리안은 다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때 무덤에 들어가려던 주헌이 말했다.
[그래도 아주 방해꾼은 아니었나 봐.]
[음?]
주헌은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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