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6 너한테는 안 줘 =========================================================================
< 너한테는 안 줘 (2) >
“으, 으으읍.(뭘 할 생각이야)”
“뭐, 별 건 아니고.”
주헌은 뭔가를 꺼내들며 방긋 웃었다.
주헌이 꺼낸 것은 바로 단원들에게 낯익은 까마귀의 눈물. 그걸 보는 유재하나 설아, 율리안의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저걸 쓰는 구나.’
유재하는 자신만 해보지 못한 게임을 보듯 보았고, 이미 한 번 겪어본 설아나 율리안은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설아야 주헌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으니 더없이 좋았을 테지만, 율리안은 전혀 반대.
‘젠장, 차라리 저 놈을 기억 못 하는 게 나았을지도.’
그럼 코라도 꿰이지 않았을 텐데.
그런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아무래도 좋다.’
율리안은 주변을 살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왜 하필 쪽팔리게 여자화장실에서 저러는 거냐고!’
이때였다.
“으으으읍!(이대로 당할 순 없어!)”
클로에가 반격을 개시했다. 그녀가 소지한 유물로 이들을 뿌리칠 생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으으으읍!”
주헌은 재빨리 다른 유물을 사용했다.
[쾌락의 향수 (B급 - 희귀급 / 소모성 유물)
생긴 것은 단순한 방향제!
그러나 그 향을 맡는 순간 클로에의 몸에서 힘이 쭈욱 빠졌다.
‘!!!’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쾌락의 효과가 돕니다.]
[상대의 지배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집니다.]
[상대의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집니다.]
[상대의 귀속성 유물도 주인과 똑같은 쾌락에 이성을 잃습니다.]
[주인과 연결된 유물들이 이성을 잃습니다.]
효과는 아주 훌륭했다.
유물들조차도 주인의 영향을 받아 집중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증거로 클로에도, 클로에의 유물들도 동시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윽!”
[#$**!]
물론 그걸 보는 율리안은 끄아아악 기겁했지만.
‘저 녀석이 지금 뭘 쓰는 거야아!!’
제갈공명의 유물을 가졌으니, 주헌이 항상 뭘 쓰는지 모를 리도 없다.
[#$*#&*!]
아앙, 좋아, 좋아! 좀 더! 좀 더!
덕분에 보다 못한 율리안이 소리를 쳤다.
“야, 너 어디서 인권문제에 해당하는 그딴 천박한 유물을……!”
“왜? 부러우면 너한테도 써줘? 이거 남녀공용인데.”
“야씨, 그게 문제가 아니……!”
“거참 부단장 놈 시끄럽네. 닥치고 넌 망이나 계속 봐.”
주헌은 성가신다는 얼굴로 클로에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정작 숨이 거칠어진 클로에는 당황한 얼굴로 도망치려고 했다.
“으으으읍!(저리 안 가?)”
뭔지는 몰라도 화장실에서 이딴 일을 하는 놈이 정상적인 짓을 할리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도망치려고 해도 뒤에서 설아가 코알라처럼 붙잡고 있는 데다가 입까지 막아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으으으읍!(신고할 거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유물을 발동시켰다.
번쩍!
[까마귀의 눈물이 발동됩니다.]
엄청난 섬광이 화장실에서 번쩍였다.
그 순간 클로에는 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기억들, 그리고 최근 악몽으로 꾸던 이상한 기억들까지도.
‘인사해라. 새로운 단원이야.’
‘클로에입니다.’
‘우와 미인! 근데 쟤도 이제 우리처럼 TKBM 쓰레기장 단원이네.’
‘재하야……… 말 좀 가려.’
‘왜? 뭐?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씨팔, 우린 활약해도 빛 하나 못 보는 암울한 부서잖아. 공도 다 빼앗기고. 그치 단? 우리 단장 새끼가 실력 있으면 뭐해, 좋은 건 다 빼 먹히는데.’
처음 보는 얼굴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광경들.
‘와 미친, 또 서주헌 팀이 한 건 했다며?’
‘진짜 눈엣가시 놈들. 그 오합지졸들은 왜 그렇게 강한거야?’
‘회장님의 총애나 받고. 그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묻히잖아. 우리가 정예부대인데!’
‘야야, 강하고 실적 최강이면 뭘 해. 그래봐야 회사 공식적인 자리에도 못 나오는 놈들이야.’
‘그럼 콱 조용히 묻어버릴까? 그 팀?’
음해하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들어가게 된 최후의 무덤.
지원을 온다고 했던 TKBM 부대는 끝끝내 오지 않았던 그때의 일. 그 기억과 감각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 클로에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있는 30대 후반의 주헌이 지금의 모습으로 오버랩이 되는 순간.
“단장님……!”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총수유물의 힘이 상대에게 개입되어 있습니다.]
“윽!”
클로에는 괴로워하면서 주헌을 보았다.
[거미와 까마귀, 강력한 유물의 힘이 서로 충돌합니다.]
동시에 너무나 괴로워하던 클로에가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이에 미간을 찌푸린 주헌이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퍼억!
곧바로 클로에의 목을 내리쳐 기절시킨 것이다.
번개 같은 속도였다.
아마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그 광경을 보고 다른 단원들이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다, 단장님?!”
“무슨 일이 생긴 거죠?”
특히 율리안과 설아가 당황한 기색이었다. 자신들 때와는 좀 다른 과격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눈치챈 주헌은 클로에를 끌어안은 채 탈출 유물을 꺼냈다.
“계획을 변동한다.”
“네?!”
번쩍!
곧 그들이 나타난 곳은 공항의 라운지. 다행히 사람은 없었다.
동시에 단원들이 급하게 외쳤다.
“클로에의 기억을 되찾게 하고, 권 회장한테 보내려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 클로에라면 권 회장의 병을 더 악화 시킬 수 있으니까!”
그렇다. 주헌은 클로에를 잡아다가 다음 작전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일명 권 회장 엿먹이기 작전.
쉽게 말해 클로에를 섭외해 권 회장에게 보낸다.
그리고 치료해주는 척하고, 저주의 유물을 등을 써서 더 악화 시키고 오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기절시켰으니 뭐.
“아무래도 약간 사고가 발생한 것 같아.”
주헌은 기절해 있는 클로에를 보았다.
[총수유물의 힘이 상대에게 개입되어 있습니다.]
분명 그렇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진채원이랑 만난 것 같은데.’
이번일은 클로에가 깨어나면 자세하게 물어볼 일이리라.
하지만 그전에.
주헌은 재빨리 손목시계를 살폈다.
‘클로에가 탈 비행기는 10시 10분.’
탑승시간까지 약 10분 남았다.
주헌은 다급하게 율리안을 보았다.
“클로에와 함께 타기로 한 TKBM 직원은?”
율리안은 라운지에서 탑승수속을 하는 쪽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
그리고 제갈공명의 유물을 발동하자 사람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사람들의 몸에서 가지각색의 오라가 피어오르거나 아무런 반응도 없는 사람들.
그중에서 율리안은 바로 TKBM의 직원을 찾아냈다.
“클로에를 찾고 있는 모양이야. 이대로 클로에가 행방불명되면 의심을 사겠지.”
“그럼 일단 클로에를 데리고 튈까요?”
유재하의 말에 율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만큼 좋은 기회도 없어. 괜히 경계를 사는 것도 별로고.”
“그럼 어떻게…….”
그러자 율리안이 바로 유재하를 보았다.
“유재하, 클로에를 복제해.”
“에, 엥?! 얘 기절했는데? 초상권도 있을 텐데, 허락도 안 받고?”
“슬쩍 해.”
“이, 이 양반아……!”
아닌 척하면서 왜 단장 닮아가냐!
“어쨌든 모처럼의 기회야. 복제해서 그걸 대신 권 회장에게 보낸다.”
“하씨, 그래도 돼요? 시체 만드는 거 아니면 10분으로는 좀 모자를 텐데.”
그러자 율리안이 끙 미간을 짚었고, 주헌이 픽 웃었다.
“괜찮아. 안 만들 거니까.”
“?”
주헌은 유재하가 들고 있는 도플갱어 유물을 가리켰다.
“그걸로 클로에로 변신한다. 그리고 TKBM직원과 함께 권 회장을 만나러 간다.”
“아하!”
유재하는 바로 설아를 보았다.
“그럼 설아가 하면 되겠네요!”
유재하가 설아에게 도플갱어 유물을 넘기려 하자 주헌이 쯧쯧 혀를 찼다.
“그걸 왜 설아가 해?”
“네…… 네?”
“설아가 도플갱어 유물을 써봤자 완벽한 클로에로 변신할 수도 없어. 권 회장한테 들킨다.”
유재하는 불길함을 느끼고 얼굴 근육을 씰룩였다.
“……그, 그럼…… 다, 단장님이나 율리안이…….”
이때 주헌이 방긋 웃었다.
“뭔 개소리야? 당연히 카피의 천재인 네가 해야지.”
“네, 네?”
“재하야, 난 너보다 더 뛰어난 사기꾼은 못 본 것 같아. 너라면 권 회장도 속일 수 있겠지?”
유재하는 주저앉았다.
시팔, 어쩐지 아침부터 일이 잘 풀리더라니!
어쩐지 최근에 폭풍 칭찬을 하더라니!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지!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말했다.
“시간 없어. 1분 준다.”
“으아앙! 그럼 지금 저더러 여자 연기를 하라고요?! 설아가 더 자연스러운 게 당연하잖아요! 왜 내가!”
“꺼져. 위험하게 내가 설아를 적진 한가운데에 보낼 것 같아?”
“야! 난 안 위험하냐?! 솔직히 전투력만 보면 내가 제일 위험하지!”
“니놈은 어떻게 되도 내 알바 아니고.”
“#$**!”
“사람의 말로 해, 사람의 말로.”
유재하는 아무리 그래도 여자 흉내는 못 내겠다며 따졌다.
“아니, 우리 그냥 비행기 놓치죠. 클로에가 깨어나면 그때 보내요. 야야 율리안, 너도 내 말에 동의하지? 어? 어쨌든 나 안 할… 아니 못 해요!”
그러자 동시에 신급 유물을 발동한 주헌과 율리안이 눈을 번득였다.
“닥치고 실시.”
“힘내.”
잡아먹을 듯이 흉흉한 오라에 유재하는 눈물을 삼켰다.
아이고, 진짜 미치겠네.
***
그리고 그 무렵.
“하……… 미치겠네. 권 회장 놈한테 이 유물을 잘 쓸 수 있으려나.”
한편 비행기 안.
도플갱어 유물을 사용해 클로에로 변한 유재하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단장님 말로는 실수만 안하면 될 거라고 했는데.
‘저주의 유물을 그냥 쓰면 권 회장이 눈치챌 가능성이 있어. 그러니 네 능력으로 저주유물을 둔갑시켜라.’
아 모르겠다.
어떻게든 잘 되겠지.
그리 생각한 유재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동아줄 이 녀석은 어디 갔지.’
아니, 작전을 수행하는 건 좋은데 정작 자신의 보디가드(?)가 될 녀석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유물의 기운을 쫓아 찾아다니기를 잠시.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야, 야 이 녀석아!”
동아줄이 발견된 장소는 기내식을 만드는 공간.
다행히 스튜어디스들은 없었지만….
“야! 뭐하고 있는 거야! 이게 다 뭐고!”
유재하의 외침에 동아줄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이거 써볼 거야! 써볼 거야!
동아줄은 강판에 뭔가를 가가가각 갈고 있었다. 심지어 절구에 뭔가를 넣고 빻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마늘과 쑥 유물!
아무래도 비행기 안에 위험한 건 없는 지 수색하고 있던 동아줄은 좋은 걸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
갈자. 갈자!
도대체 비행기 안의 티비로 뭘 본 건지, 동아줄은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정작 온 몸이 갈려나가는 마늘과 쑥 유물은 눈물을 흘렸다.
[#$**!]
아이고 이놈아, 내 머리 내 머리!
[#834&*!]
그만, 그마아안! 내 모오옴!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동아줄은 계속해서 마늘과 쑥을 갈고 빻아댔다.
그러더니 동아줄은 눈을 번쩍이면서 갈아낸 유물들을 온 몸에 바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유재하는 충격을 받았다.
‘이, 이 녀석.’
입이 없으니까 몸에 바르겠다는 건가!
그걸 보며 유재하는 뒷목을 잡았다.
아이고, 임무 성공할 수 있을까?
***
“주, 주헌 씨. 정말 괜찮을까요? 재하 씨만 보내도?”
아이린의 질문에 주헌은 태평하게 커피를 쭉쭉 빨며 웃었다.
“죽으면 그게 지 팔자죠 뭐.”
그는 창문 밖으로 하늘 위로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를 보았다.
저기에 클로에 대리 유재하가 타고 있겠지만 알게 뭔가.
‘권 회장한테 가서 치료해주는 척하고 저주 유물만 쓰면 된다.’
한심해 보이지만 남을 속이는 일은 자신들 중 제일 뛰어났고.
‘동아줄도 붙여줬으니 잘 살아남겠지.’
어차피 자신들도 유재하를 쫓아서 TKBM에 갈 예정이었다.
왜?
‘TKBM은 오만의 무덤을 클리어하러 갈 거다.’
하지만 지금 그 무덤은 유엔과 EU, 판도라에 의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강탈왕에 도굴꾼이라고 소문난 자신이 합법적으로 출입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럴 때, 주헌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TKBM 발굴단 채용공고]
이번 사태로 TKBM에서 대거로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발굴단은 급하게 채용공고를 내놨다.
그리고 그걸 본 아이린이 슬그머니 물었다.
“정말 그 채용공고에 지원하실 생각이세요?”
“재하 놈이 이번 임무에 잘 성공하면요.”
그럴 때였다.
“으윽………!”
클로에가 눈을 떴다.
========== 작품 후기 ==========
먹을 수 없으면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