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93화 (193/409)

00193 잔말 말고 내놓으셔  =========================================================================

< 잔말 말고 내놓으셔 (5) >

“이거 네 거니?”

훌쩍이는 동아줄에게 꽤 상냥하게 유물을 건네주는 미인이 있었다.

클로에였다.

클로에가 현재 있는 곳은 캐나다 최북단의 도시. 유재하가 만든 기차가 멈춘 곳이었다.

그리고 주헌과 설아의 눈을 피해 빠져나온 그녀는 공항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흐음.”

그녀는 정류장 근처에서 만난 동아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밧줄 주제에 돌멩이를 들고 씰룩씰룩 기어 다니는 꼴이 꽤나 신기했으리라.

마치 관찰하듯. 그리고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

물론 동아줄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클로에를 관찰했다.

왜?

클로에게서는 낯익고도 좋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묘하게 주헌에게서 나는 냄새.

그리고 검은색의 긴 웨이브 머리에 하얀 피부, 오똑한 코, 예쁜 입술. 그리고 보석처럼 연한 파란색 눈이 굉장히 예뻤다.

남들이야 좀 차갑게 느낄 수도 있는 눈빛이었지만, 동아줄에게는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거 네 거지?”

동아줄은 흔쾌히 클로에가 내민 돌멩이를 집었다.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또 다른 유물을.

[#*$*!]

고마워, 고마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탁!

갑자기 누군가가 동아줄의 물건을 빼앗아갔다.

[!]

빼앗아간 건 30대 남자였다.

“뭐야, 기껏 굴러들어온 유물을 왜 가만 보고 있는 거야?”

동아줄은 놀라서 뒤를 보았지만, 곧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혀 버리고 말았다.

[#$*&*!]

이거 놔! 이거 놔!

당황한 동아줄은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거칠게 저항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가 날카롭게 비웃었다.

“뭐야, 이 밧줄. C급?”

겉보기엔 별 볼일 없게 생겨서 그런지, 얕잡아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클로에. 넌 끌어들여도 왜 이딴 잡 유물을 끌어들이냐?”

그 말에 동아줄이 씩씩거리며 남자의 목을 졸라댔다.

[#*$&*!]

잡 유물 아니야! 아니야!

그래보여도 동아줄은 S급이다.  동시에 동아줄은 눈을 번득이며 바로 귀갑묶기를 발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

남자의 손에 거칠게 잡힌 동아줄은 갑자기 힘이 추욱 빠져버렸다.

“허참, 힘 한 번 넘치는 놈일세.”

[………?!]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나 싶었지만, 동아줄은 금방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장갑.

틀림없이 남자가 끼고 있는 신급 유물 장갑이 그 원인이리라.

결국 남자에게 잡힌 동아줄은 낑낑 거리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

이거 놔! 이거 놔!

그러나 남자는 월척이라도 잡은 것 마냥 하하 날카롭게 웃었다.

“뭔진 몰라도 잘됐네. 클로에, 이것도 가지고 가자. 이거라면 왕급들을 잡을 때도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남자가 동아줄을 강제로 택시로 끌고 가려 할 때였다.

번쩍!

“어? 뭐, 뭐야?”

갑자기 섬광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뭐, 뭐야 갑자기……  아아악!”

남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웬 아이가 사내의 팔뚝을 물어뜯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도망치듯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머리카락은 반짝이는 새하얀 눈의 색이었고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핏 보이는 뽀얀 살갗은 분명 알몸인 듯 했다.

이에 깜짝 놀란 사내가 본능적으로 아이를 붙잡으려고 했다.

“야! 저거 거기 안 서? 야!”

사내가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커헉!”

남자는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누군가가 발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욕설을 날렸다.

“야씨, 이게 무슨 짓이야, 클로에!”

그러나 의자에 앉아 있던 클로에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미안. 내 다리가 좀 길어서. 이해해.”

“………?!”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클로에를 노려보았다.

“너 지금 일부러 쟤 보내준 거 맞지?!”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제 발로 굴러 들어온 유물을 왜 뻔히 보고 놓냐! 하씨, 쫓아가야 겠…… 커픅!”

남자는 또 다시 설원 위에 얼굴을 박아버리고 말았다. 또 다시 클로에가 다리를 걸어버린 탓이었다.

“야! 클로에!”

그러나 클로에는 택시에 올라타면서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니까 앞 좀 잘 보고 다녀.”

“허.”

저게 진짜.

결국 울분을 토해내던 동료가 택시에 따라 타며 말했다.

“아 됐고! 너 그 이야기 들었어? TKBM에서 너 찾는다더라!”

“걔네가 왜?”

“권 회장. 서주헌 때문에 3주일에 가깝도록 무덤에 갇혔다고 했잖아? 하여간 서주헌 그 미친 새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권 회장이 후유증이 심해서, S급 이상 치료꾼이 필요하대. 넌 지금 전 세계 유일한 S급 치료꾼이잖아.”

“그래? 재미있는 일거리네.”

뜻밖의 말에 사내는 놀랐다.

“엥? 권 회장 쪽에 관심 있어? 너 서주헌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었냐?”

그 말에 클로에가 살짝 비웃었다.

관심이야 있지.

유물 사용자들의 정상이라는 왕급이라서? 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라?

단지 그뿐은 아니었다.

‘기시감.’

클로에는 최근 거미 유물을 쓰는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 날부터 악몽을 꾸었다.

매일 같이, 토가 나올 정도로.

‘도대체 그 꿈은 뭐지.’

처음 보는 끔찍한 무덤, 그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거기서 나타난 서주헌.

‘나이는 좀 다르지만 분명 서주헌이었다.’

문제는 그 꿈을 꾸면 늘상 정체모를 아픔과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꿈이 까마귀의 무덤, 그러니까 자신들 도굴단의 최후라는 것을 그녀가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 괴로움은 확실했다. 그리고 자신은 살벌한 얼굴로 칼을 휘두르는 서주헌에게 뭐라고 뭐라고 화를 내며 외치고 있었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거의 피를 토하듯이, 분노하듯이.

클로에는 꿈의 내용에 대해 모른다. 그래서 단순하게 꿈만 종합해서 생각했을 뿐이다.

‘서주헌은 적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꿈 이후로 클로에는 주헌을 만나보고자 했다.

아마도 뭔가의 원수일지도 모르는 그 남자와.

‘그리고 만약 진짜 적이라면 없애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권 회장 쪽도 땡기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한편 그 무렵이었다.

낑낑 거리며 공사장 안의 천막에 숨어 있는 아이가 있었다.

물론 아주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 아이는 아니었다. 온몸을 다 가릴 정도로 긴 머리카락. 반짝이는 설원을 담은 머리카락에 하늘을 담은 맑은 눈.

아이, 아니 동아줄은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순간 얼떨결에 인간이 되는 유물이 발동하고 말았지만……….

[인어공주의 사람이 되는 마녀 비약 (A급 / 소모성)]

- 사용횟수 : 즉효성

그렇다.

동아줄은 인간으로 변신했다. 인어공주가 사람이 된 바로 그 비약 유물로!

세트가 척하니 알아보고 지렁이의 보따리에서 빼앗아온 것이리라.

물론 정작 조개형태의 비약 유물은 동아줄에게 항의했지만.

[#$*#&*!]

왜 멋대로 날 사용해, 날 사용해!

조개는 안에 있는 진주가 다 사라졌지 않았느냐고 바락 바락 성질을 냈다.

[#$*&!]

너 혼날래? 혼날래?

결국 인어공주 유물이 동아줄의 머리와 몸 여기저기를 깨물자 동아줄은 낑낑거리며 정말 미안해했다.

‘미안해, 미안해.’

물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인어공주 유물이란 그런 것인 만큼. 그러나 인어공주 유물이 빼애액 거리며 말했다.

[#*&$*#$!]

됐고, 너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긴 아는 거냐능!

알긴 안다.

그리고 인어공주 유물이 이렇게 빼애애액 화를 내는 이유도.

[#$**!]

아오, 4일이야 4일! 그때까지 인간들이 널 못 알아보면 끝이라능! 물거품이라능, 물거품!

조개는 아주 화를 내다못해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자신의 능력으로 인간은 될 수 있지만 유물의 능력은 잃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물의 기운도 사라져서 그 누구도 유물이라 생각을 못할 것이다.

[#$*$*!]

알아? 너 지금 심각해! 다른 놈들이 널 알아볼 거 같아? 너 진짜 물거품이 된다니까! 콱 죽고 싶어서 이러냐!

그러나 동아줄은 리스크 따위, 상관은 없었다.그냥 주헌과 인간의 모습으로 만날 수만 있다면.

바로 그때였다.

‘!’

아이는 낯익은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바로 호텔 안에서 나오는 주헌과  유재하, 이설아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

***

“클로에가 NGO에 있다고요? 그 것도 그 안티테제들의?”

[네, 오빠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주헌은 캐나다에 도착했다는 아이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가 좋은 소식을 물고 와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티테제들이라니 하필이면……….’

그렇다면 승객들 사이에서 슬쩍 사라진 것도 납득은 된다. 놈들은 눈에 띄는 걸 꽤 꺼려하는 편이니까.

‘슬슬 나타날 때가 됐지.’

유물이 당연해지는 시대, 유물 중심의 사회 성립. 그 시대에서 왕급들과 독식자들은 일종의 시대 지배자였다.

그리고 모두가 그 헤게모니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지만, 그들에게 유일하게 저항하고 체제를 부숴 유물이 나타나기 전 세상으로 돌리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안티테제들이다.

왕급들도 피를 토하며 싫어하던 무리들이었다.

‘그놈들은 모든 유물사용자와 무덤을 말살하려는 놈들이다.’

유물을 싫어하나, 필요에 의해 유물로 유물을 없애려는 사냥꾼들.

‘그런데 하필 클로에가.’

아무래도 미래가 바뀐 탓이겠지.

‘어쩐지 그렇게 찾아도 흔적조차 안 나오더라니.’

주헌은 납득했다.

‘아무래도 클로에를 낚아야겠다.’

권 회장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안티테제들과 어울리는 것도 영 마음에 안 드는 일이니까.

그렇게 주헌의 눈이 번득일 때였다.

멀리서 주헌을 본 동아줄은 언제 불안해했냐는 듯, 그를 보자마자 굉장히 좋아했다. 그리고 아이린을 마중 나가던 유재하가 춥다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오, 얼어 디지겠네, 디지겠어.”

“어이쿠, 엄살은. 단장님은 멀쩡하잖아.”

“와씨, 뭐? 엄살? 인간적으로 저 인간이 좀 이상한거지! 같은 인간으로서 미안하지도 않아요? 어?!”

“뭐야? 지금 단장님한테 뭐라고 한 거야?”

그렇게 유재하와 이설아가 눈에 불을 튀기며 싸우는 그 순간이었다.

“!”

동그란 뭔가가 훌쩍 날아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큭!”

갑자기 묵직한 뭔가가 가슴 위로 툭 떨어지자 주헌은 비명을 지르면서 눈 위에 쓰러졌다.

“다, 단장님!”

“괜찮으세요?! 도, 도대체 뭐가!”

그들은 당황해서 주헌을 덮친 뭔가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동아줄은 주헌과 만난 게 그저 기뻐서 해맑게 웃었다.

‘만났다, 만났다!’

동아줄은 주헌에게 안겨 얼굴을 비볐다. 그러더니 주헌의 머리를 콱 끌어안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주 압박해서 죽일 생각인지, 얼굴을 콱 파묻듯이 끌어안는 것이었다.

주헌은 숨 막혀 죽으려고 했고, 이에 보다 못한 유재하가 먼저 나섰다.

“야야야야, 이 더러운 소녀야, 너 뭐야. 어디서 왔어. 어? 우리 단장님 죽일 생각이냐!”

유재하는 그렇게 천 거적때기를 뒤집어쓴 동아줄을 끌어내려 했고.

“단장님, 괜찮으세요?!”

이설아도 기겁해서 눈 위에 미끄러진 주헌을 살폈다.

“단장님!”

“야야, 설아야, 경찰에 신고해. 얘가 단장님 돈 뜯으려 한다.”

곧 유재하가 단장님에게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아이를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다.

틀림없이 이 근방의 거지 소녀라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오빠 언니들이랑 경찰서 가자, 경찰서!”

“도대체 누구지? 예쁘게 생겼는데. 이 근방 아이인가?”

아무도 동아줄을 유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복원해주던 유재하도, 그리고 오라의 기운이 민감한 정찰자 설아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주헌에게 안기려던 동아줄은 주헌에게서 강제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아줄은 낑낑 거리면서 주헌에게 가려고 했다.

‘안길 거야, 안길 거야.’

이제 인간이니까 안겨도 상관없잖아. 없잖아.

동아줄은 유재하에게 질질 끌려가며 훌쩍였다.

목소리를 못내도, 인간들이 자신을 못 알아봐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리스크로 4일 내로 사라진다고 해도.

주헌이 자신이라는 걸 몰라도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자, 따라오라니까!”

그런데 그럴 때 주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야, 재하야. 잠깐 걔 좀 내려봐.”

“네?”

주헌이 동아줄의 얼굴을 보았다.

============================ 작품 후기 ============================

으아아아 예약을 걸어둔 줄 알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ㅠ

앞으로는 좀 더 제대로 확인을 하고 정상적 시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주5회 연재로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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