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2 잔말 말고 내놓으셔 =========================================================================
< 잔말 말고 내놓으셔 (4) >
[알았어, 알았다고!]
탈탈 흔들리며 괴로워하던 지렁이가 뭔가를 꺼냈다.
그건 바로 종이였다.
동아줄은 그 종이를 보자 눈을 초롱초롱하게 밝히며 물었다.
[#*$*!]
이거야, 이거야?
이게 바로 인간이 될 수 있는 물건이란 말인가!
동아줄은 기대에 부푼 얼굴로 종이를 펼쳐보았다.
하지만 곧 동아줄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유물의 인간화 유물 사용을 금한다. 어기면 가만 안 둘 거임. 사용하는 자도 판매하는 자도, 유통하는 자도 모두 가만 안 둠.]
그건 인간이 될 수 있는 유물이 아니라 공문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보고 굳어버린 동아줄을 향해 지렁이가 밉살맞게 웃었다.
[이를 어떡하지? 이런 공문서가 내려왔었더라고!]
[………….]
[내가 하도 바쁘게 살아서 말이야. 이런 공문서가 내려온 줄도 모르고 너한테 유물을 팔겠다고 했다 야.]
[……………….]
[아, 1억 달러는 못 돌려줘. 그건 이미 받은 거라. 미안.]
[……………..]
[나도 어떻게든 물건을 구해다 주고 싶었는데 어쩌냐. 명령이 명령인데. 나도 살아야 하지 않냐. 아, 대신 초코바라도 줄까? 그거 맛있…….]
동시에 동아줄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
잔말 말고 내놓으란 말이야! 말이야!
흉포해진 동아줄은 지렁이의 멱살을 잡고 짤짤짤 흔들었다.
아무리 순진해도 지렁이 놈이 사기를 치려고 한다는 것쯤은 잘 아는 동아줄이었다.
[#*$&$#*!]
내놔! 내놔!
그러자 컥, 컥, 목이 졸려 죽으려고 하던 지렁이가 외쳤다.
[그, 나더러 어쩌라고! 너한테 그 유물을 판 게 걸리면 나도, 너도 끝이야!]
그 말에 동아줄은 움찔했다.
자신이 끝장나는 건 상관이 없지만 지렁이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동아줄은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지렁이는 이 순진한 놈 보라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미안해. 아, 이왕 이리 된 거 다른 물건으로 줄게. 술 어때 술.]
[#&&*!$]
술은 필요 없는데…….
[서주헌한테 줘! 양주는 좋아하잖아!]
그 말에 동아줄은 눈을 반짝였다. 주헌이 좋아하는 거라고 하니 순간적으로 동아줄은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좋아하는 동아줄의 모습에 지렁이는 캬캬 웃었다.
‘원가 10만 원짜리 위스키를 1000억에 팔다니! 완전 수지맞는 장사네!’
하지만 그때였다.
[사기도 정도껏 쳐야지.]
[?!]
나타난 건 세트였다. 그리고 지렁이는 세트의 등장에 거품을 물었다.
[구, 군단장니이이임!]
[그리고 이런 공문서도 내려온 적 없잖아.]
세트가 공문서를 찢어버리자 지렁이는 으앙 울부짖었다.
[구, 군단장님! 이거 엄연히 영업방해……!]
그런데 이때 지렁이는 등이 싸해지는 걸 느꼈는지 움찔 떨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
동아줄은 분노하고 있었다. 심지어 꼬리에 돌멩이를 든 걸 봐선 그냥 넘어가기는 틀렸다.
[아, 아니……그게 아니라.]
그 순간 분노한 동아줄이 달려들려고 하자 지렁이가 항복했다.
[알았어, 이거야! 이거라고! 가져가. 이 녀석아!]
[!]
지렁이는 동아줄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
[환웅이 준 쑥과 마늘 (SS급 - 신급 / 소모성 유물)]
- 즉효성
그건 다름 아닌 쑥과 마늘이었다!
아이린이 주헌에게 요리를 해줄 때 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곧 지렁이가 말했다.
[그걸 먹으면 넌 인간이 되겠지.]
[…………!]
그러자 동아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확실히 분명 들은 적 있는 것 같았다.
이걸 100일 동안 먹은 곰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
그럼 이걸 100일 동안 먹으면 되는 거지?
[아니? 그래보여도 신급 유물이라고! 그냥 한 번만 먹으면 돼. 즉효성이라고.]
[!!]
그 말에 동아줄의 얼굴이 환해졌다.
무려 한 번만 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니!
기대에 부풀어 오른 동아줄은 신이 나서 상자를 들고 팔짝 팔짝 뛰어 다녔다.
너무나도 기뻤다.
비록 맛은 없어 보이지만 한 번만 꾹 참고 먹기만 하면 된다니!
‘이제 드디어…!’
주헌이 좋아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고 주헌의 옆에서 당당히 있을 수 있었다!
달기한테도 무시받지 않을 수 있었다!
설아와 아이린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지도 몰랐다!
곧 동아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쑥과 마늘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
동아줄은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물건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왜 그래?]
세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아줄을 살폈다.
하지만 세트가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충격에 빠진 동아줄은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겐 없었다!
입이.
쑥과 마늘을 먹을 수 있는 입이!
***
“쟤 왜 저러냐?”
인근 호텔에 들어가던 주헌은 이상하다는 듯 동아줄을 바라보았다.
최근 이상한 알바를 하며 돈을 모으던 동아줄. 지금도 부지런히 일거리가 없나 기웃거려야 정상이건만.
“글쎄요, 되게 우울해 보이는데.”
주헌의 한참 뒤를 따라오던 동아줄은 오다가 멈추다가, 또 오다가 멈추다가 투명한 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그리고는 동아줄은 훌쩍거렸다.
[#$*$#&*!]
왜 난 입이 없지! 없지!
왜 없느냐고 물어도 있는 게 이상한 건데 말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래서는 주인님하고 같이할 수가 없어.’
결국, 동아줄이 축 늘어져 의기소침해 하고 있자 주헌이 동아줄을 불렀다. 그러자 강아지처럼 스물스물 기어온 동아줄은 주헌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진짜 기운 없어 보이네.”
주헌이 쓰다듬어주니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헌을 올려다보며 슬퍼했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콕콕.
누군가가 동아줄을 찔렀다.
[야. 이거 너 가져.]
[!]
동아줄을 쿡쿡 찌르는 건 세트였다. 입으로 쿡쿡 찌르던 세트가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얼핏 돌맹이로 보였다.
[이거 쓰면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 거임.]
[!!!]
세트는 쿨하게 툭 바닥에 뭔가를 떨어트리고 도로 가버렸다. 아무래도 지렁이를 괴롭혀서 뜯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졸지에 세트에게 유물을 강탈(?) 당한 지렁이는 그거 비싼 거라며 지금쯤 엉엉 울고 있겠지만.
어쨌거나 쑥 마늘이 아닌 새로운 유물이라는 건 확실했다.
인간이 될 수 있는.
그걸 알기에 동아줄은 몹시 기뻐했다.
[#$*#&*!]
고마워! 고마워!
어쩌면 치킨 추천 메뉴까지 골라준 동아줄을 귀엽게 보고 있는 걸까.
새삼 세트가 좋은 유물(?) 이라는 걸 깨달은 동아줄은 신이 나서 주헌에게 씰룩거렸다.
[#$&*!]
잠깐 나갔다 올게! 나갔다 올게!
그러더니 슝 어디론가 뛰어갔다.
갑자기 기운이 난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다만야.
“왜 저러는 거야?”
“글쎄.”
그렇게 그들이 호텔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갈 때였다.
“대박, 권 회장 쓰러졌대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고 있던 유재하가 낄낄낄 웃어댔다.
현재 세계의 사태를 파악한 권 회장이 그대로 쓰러졌다는 뉴스 특보였다.
“의사들이 달라붙었는데 이거… 갇혀있던 후유증이랑 유물 리스크가 심해서 장난 아닌 모양인데요.”
“오호.”
주헌도, 설아도 뉴스 기사를 살폈다.
[약 3주 동안 물도 음식도 없이 버틴 권태준 회장 “불사 내복으로 버텼다”]
[극심한 기아. “미라 수준”]
[병원에서 회복중이나 유물의 리스크와 겹쳐 치료 불가능. “극심한 상태”]
[“먹지 못한 충격인지 찾아온 폭식증”]
[그러나 유물 리스크로 몸에 영양소, 수분 공급도 안 되고 오히려 배출되는 상태.]
[현대 의학으로 고치기 어렵다.]
[TKBM “유물로 고쳐야 한다.]
[TKBM “유물 사용자 중 최소 S급 이상 의료유물 사용자를 찾아야…….”]
아무래도 생각보다 권 회장에게 더 까다로운 일이 닥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기사에 유재하가 음흉하게 웃었다.
“이거 불로초로는 못 고쳐요?”
불로초 열매로 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냐는 것이다.
“영역이 좀 달라. 비유하자면 약물 치료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케이스.”
“아하.”
“화타, 히포크라테스, 아스클레피오스, 허준, 나이팅게일. 뭐 그런 식의 의료유물을 쓰는 사용자만 고칠 수 있지.”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노친네, 어차피 쉽게 못 고칠 거야.”
“네? 왜요?”
“의료유물은 일단 희소해. 인간을 죽이는 게 본성인 유물이니까 인간을 살리는 유물이 많으면 곤란한 거지. 그리고 의료유물들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사례도 적어.”
“그럼…….”
“말해두지. 향후 15년. S급 이상 의료유물사용자는 전 세계에 10명도 안 될 거야.”
“켁, 복원사보다 더 희귀하잖아!”
그건 진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무렵에 S급 이상 의료유물 사용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런 놈들이 나타나는 건 적어도 몇 년 뒤.
애초에 불로초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유물은 유물의 시대 중후반에나 나왔으니까. 지금 나타나는 의료유물들은 단순한 외과치료용. 숫자도 매우 희귀하다.
“어쨌거나 걱정할 필요는…….”
그럴 때였다.
“아뇨, 어쩌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음?”
설아의 표정에 아차 싶었던 주헌이 미간이 좁혔다.
“그러고 보니 너 클로에를 봤댔지. 그거 진짜 클로에였어?”
여자이름에 유재하가 신이나서 끼어들었다.
“클로에? 클로에가 누군데? 걔 예뻐?”
“내가 아는 그 클로에 맞지?”
“네, 맞습니다.”
“아이씨, 걔 누군데. 그래서 예쁘냐니까?”
“계속 누굴 찾아다니나 했더니 그 녀석이었나보군.”
“죄송합니다……제가 잘못 본 줄 알고…”
“아냐. 그래서 나이팅게일 유물은 가지고 있었고?”
“거기까지는 잘…하지만 의료유물을 사용할 줄은 알았어요.”
주헌은 시무룩해진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더니 율리안에게 바로 전화를 때렸다.
뚜르르.
그리고 전화를 받은 율리안은 답지 않게 소리부터 질렀다.
[야! 서주헌! 너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비행기 사고로 죽니 마니하지, 연락은 안 되지. 사람이 걱정을…!]
“아 됐고. 너도 사람 한 명 찾아야겠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들…… 뭐? 누구?]
“클로에.”
[클로에? 클로에는 왜?]
“권 회장 뉴스 봤지?”
[아…… 그거라면 걱정안해도 되잖아. 확실히 클로에라면 권회장의 병을 고치겠지만, 클로에가 유물을 사용하게 되는 건 더 미래니까. 지금은…]
“그런데 쓰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
주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회장이라면 그런 인재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유물을 써서라도 노예로 잡아두겠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빨리 찾아. 권 회장이 먼저 눈치채서 그 새끼 손에 먼저 넘어가면 골치 아프니까.”
율리안은 납득했다.
***
그리고 같은 시간.
“클로에? 어쨌든 S급 의료유물 사용자가 맞다는 거지?!”
양 쳰이 부하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확실하지. 분명히 S급 의료유물을 쓰는 게 맞지?”
“네, 이번 비행기 사건 때도 같이 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젠장.”
“아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문제?”
“그 여자가 소문의 NGO 에 들어가 있다는 소문이……….”
“!”
요즘 소문이 돌고 있는 수상한 NGO 단체가 있었다.
얼핏 보기엔 무덤의 연구 겸 무덤에 휘말린 민간인들을 구하고 치료해주는 단체.
하지만 그들의 실체는…….
‘유물 반대론자들.’
최근 유물사용으로 인한 피해, 그걸 악용하는 유물 사용자들이 나타나면서 이른바 〈안티테제〉들이 스물스물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유물과 유물사용자들을 전부 없애야 한다고 보는 이들이었다.
실제로 TKBM 발굴단도 그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유물을 파괴당하고, 유물사용자들도 여럿 체포되거나 죽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인가.
“회장님을 치료해야 한다. 그 클로에라는 여자를 찾아와. 당장!”
명색의 TKBM 발굴단이었다. 사람 하나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 비행기 사고 때 있었으면 지금쯤 캐나다 북극 쪽에 있을 거 아냐.”
그는 급하게 승객들 사이에 있었던 TKBM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
세트에게 받은 유물을 가지고 밖으로 나간 동아줄은 두근두근거리는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주헌이 없는 곳에서 인간이 되는 유물을 써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물을 사용해보려는 그때였다.
[#*$&*!]
안 돼! 안 돼!
세트가 구해준 유물을 놓치고 말았다.
[#$&*!]
와! 밖이다! 밖이다!
그렇게 말하며 돌맹이 유물이 팔짝팔짝 도망가버렸기 때문이다.
곧 동아줄이 낑낑거리며 쫓아갈 때였다.
“이거 네 거니?”
훌쩍이는 동아줄에게 꽤 상냥하게 유물을 건네주는 미인이 있었다.
클로에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