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1 잔말 말고 내놓으셔 =========================================================================
< 잔말 말고 내놓으셔 (3) >
덜컹 덜컹.
주헌이 탄 기차가 설원의 대지를 가르고 있었다. 자장가를 방불케 하는 아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물론 기관실은 전쟁터로 변하고 있었지만.
[#$&*#$&$*!]
야! 더 빨리 달리라고! 더 밟으란 말이야!
[$^&!]
안 돼! 안 돼!
[#*$*!]
이 등신 쫌생아! 밟아! 밟아서 죄다 전복시키자고!
[#$*&*!]
그래 맞아! 인간들 다 죽여버리자고! 다 골로 보내자!
[$#*#&$*!]
안 된다고 했잖아! 했잖아!
땡깡을 부리는 것이 금도끼 은도끼를 포함한 여러 유물들. 그리고 유일하게 승객의 안전을 사수하고 있는 것이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
에이씨, 이리 내놔봐!
결국 훈수를 두던 금도끼 은도끼가 동아줄을 덮쳤다. 그러더니 신이 나서 운전대를 잡았다.
[#$**!]
꺄아! 꺄아! 빼앗았다! 빼앗았어!
[#*$&*!]
좋아, 동생아 달려! 폭주해!
그러나 정작 운전을 할지 모르는 건지, 기차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고, 한가롭게 위스키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던 주헌도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연봉 인상에 제 영혼까지 팔아치운 유재하가 씩씩 화를 냈다.
“아이씨, 밧줄 이 녀석은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감히 단장님도 계시는데! 단장님이 언짢아하시잖아!”
아니, 언짢지는 않은데.
위스키만 좀 흘렸을 뿐인 주헌은 이상하다는 듯 기관실 쪽을 보고 있었다.그리고 정작 기관실에서는 일을 저지른 유물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
으앙, 막 흔들렸어.
[#$&&$*!]
엄마야 무서워. 무서워.
동시에 분노한 동아줄의 응징이 벌어졌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
그러니까 하지 말랬잖아! 말랬잖아!
[#$*&*!]
으아아앙!
동아줄은 꼬리로 땅을 탕탕 치면서 화를 냈다. 평소에 뿜어내지 않는 동아줄의 오라가 드물게 흉흉했다.
아마 주헌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이리라.
탕탕!
그걸 보고 유물들은 또 으아앙 울었다.
[#*$*!]
쟤가 우리한테 화낸다, 화낸다.
[#*$*!]
엄마야 그 까마귀가 떠올라, 하지 마! 하지 마!
[#*$*!]
꾸엑, 꾸에에엑!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동아줄이 새로운 매듭 방법을 익혔습니다.]
[전투능력치가 살벌하게 올라갑니다.]
[유물들이 괴로워합니다.]
[유물들이 〈알아서 기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주헌은 눈앞에 뜨는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주헌은 다시 아이패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물들보다 더 중요한 기사가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 회장이 살아있다?]
[권 회장, 마침내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
[찾아낸 건 TKBM이 아닌 대학 민간 연구팀? TKBM 당혹.]
그리고 그걸 본 유재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단장님, 이거 괜찮은 겁니까? 그 노친네가 나타났다는 건데!”
그러나 주헌은 낄낄 웃었다.
“슬슬 발견 될 때가 됐지. 아니 발견되어야 정상이고.”
마음 같아서는 한 백년 정도 땅에 처박아두고 싶지만 유물의 한계가 있는 법. 그렇다면 차라리 좋은 때에 권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편이 낫다.
그렇다.
주헌은 권 회장의 관짝에 설치한 유물을 해제했다. 쉽게 말하면 위장 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군인들의 위장크림 (A급 ? 보물급 / 소모성 유물)]
- 사용 가능 횟수 : (54/99)
주헌은 그 유물을 열심히 관짝에 펴 발랐었다. 그러자 관짝은 주변의 환경과 너무 자연스럽게 융화되었고, 눈으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쉽게 말해 은신(Hide) 유물.
‘원래는 C급짜리였지만.’
그런데 이게 웬걸?
주헌이 유물을 쫓아 여자 탈의실에 들어갈 때 써먹었더니 기묘한 일이 일어났었다.
[유물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유물이 〈신세계를 접하고 쓰러진〉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등급이 B급(희귀한)으로 오릅니다.]
바로 동아줄도 겪었던 진화.
아무래도 군인 유물에게 여자 탈의실은 자극이 몹시 강했던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이래저래 A급까지 올렸더니 제법 쓸모가 있게 되어서는.
‘기본 은신 기능에 사일런스 효과까지 더해졌지.’
물론 시간제한은 있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일부러 지금 타이밍에 유물을 해제한 것이다.
‘아주 죽을 맛일 거다, 권 회장.’
하지만 유재하는 걱정이 되었는지 발을 동동 굴렸다.
“권 회장이 나왔으니 이제 보복은 시간문제 아니에요?”
보복은 무슨.
“걔 쉽게 못 나와.”
그러면서 주헌은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
“세, 세상에 회장님 어쩌다가 이런 모습으로!”
한 대학 연구실.
권 회장 일가와 양 쳰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눈앞의 관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관을 가져온 대학 발굴팀에게 물었다.
“정말 이 안에 회장님이 계신 게 맞습니까?”
“네, 투시 결과 안에 회장님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있는 걸로 확인되었고……….”
“무덤에서도 살려달라고 쾅쾅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니까요. 사라지신 권 회장님 말고는…”
“근데 지금은 왜 조용한 건데?!”
“그, 글쎄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소리가 들렸는데… 설마 그사이에 돌아가셨…….”
그러자 장남이 급한 얼굴로 관뚜껑을 뜯어내라 지시했다. 그리고 TKBM의 발굴인력들이 관짝에 달라붙었지만, 글쎄.
“안 열려! 젠장!”
유물을 쓰고 때리고 부숴도 황금 관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젠장, 어쩌면 좋지.’
그런데 그럴 때였다.
“어, 어어? 형! 전화 왔어! 서주헌한테!”
“뭐라고?!”
차남의 목소리에 장남이 재빨리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여보세요?!”
[관 안 열리지?]
참으로 얄미운 목소리였다. 덕분에 장남은 화가 나서 핸드폰을 집어 던질 뻔했다.
하지만 놀리려고 전화를 한 건 아닐 터.
“용건이 뭐냐.”
[관짝 여는 방법 알려줄까?]
“!”
순간 장남은 흔들렸지만, 상대가 또 서주헌인지라 조심스러웠다. 이놈이 봉사할 리도 없고, 꿍꿍이가 있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여는 법 알려줄 테니까 권 회장에게 전해. 귀속성 유물들 소유권 포기하라고.]
“뭐야?”
[아마 죽진 않았을 거야, 체력이 떨어져서 이제 소리 지를 힘도 안 남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빨리하라고 해. 그럼 열어줄게.]
이자식이.
아무래도 금고에서 귀속성 유물을 훔쳐간 건 좋은데 소유권이 권 회장에게 있으니 골이 아픈 모양이었다.
강한 지배력으로 유물의 주인을 빼앗을 순 있지만, 한계도 있고 귀찮은 법이고.
‘지렁이 때처럼 유물의 비위를 맞춰주는 방법도 짜증 나는 일이고.’
[그러니까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소유권 포기하라고 해.]
이러니 권 회장 일가로서는 기가 안 막힐 수가 있나.
“헛소리하지 마. 누가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너한테…!”
[그럼 그냥 그대로 두던가. 관 값 굳었네. 그럼 안녕.]
“아아 잠깐만! 알았어, 알았으니까!”
결국 이들은 관에 가까이 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회장님.”
“아버지,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서주헌이 관짝을 열어줄 테니 귀속성 유물의 소유권을 포기하라고….”
동시에 쾅! 관짝이 크게 뒤흔들렸다.
쾅!
쿠과콰쾅!
발로 관짝을 걷어차는 소리에 분노가 실려 있었다.
아무리 탈진한 상태여도 서주헌의 이야기에 화를 낼 힘은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래봐야 내 금고에 있는 물건들이다.”
분노가 서리다 못해 사리까지 나올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유권을 포기해봤자 유물들은 제 금고에 있을테니 상관없다고 생각한 탓이리라.
그래서일까.
[좋아. 유물 소유권 포기한 거 확인했음. 이제 열어주지.]
주헌이 뭘 확인한 건지 흔쾌히 그런 말을 했다.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관짝이 열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관짝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회, 회, 회장니이이임!!!”
“아이고 아, 아버지!”
권 회장이 맞았다. 관에 있는 건 틀림없는 권 회장이었다.
하지만.
“………서주헌, 이 개 같은…… 새끼….”
관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냄새들은 그렇다 쳐도 권 회장의 꼴이……!
“세, 세상에. 회장님이…!”
미라가 있었다.
바싹 마른 미라가 섬뜩한 안광을 뿜어대며 독기를 뿜고 있었다.
“당장 서주헌을 잡아와…… 잡아와아아아!”
바싹 마른 미라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당장 잡아오라고! 죽여버릴 테니까아아아!”
미라는 증오를 머금고 벌떡 일어섰다.
“꺄아악! 회, 회장님!”
비서들은 당황해서 당장 불러온 의사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권 회장은 의사들을 뿌리치면서 독기 오른 목소리로 외쳤다.
“내 유물! 내 발굴단! 내 인맥! 그리고 내 자본이 있으면 그놈을 처리하는 것도 일은 아니다. 어서!”
그 말에 세 남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권 회장이 자식들을 보며 말했다.
“자 알았으면 어서 가져와라…… 내 유물! 그리고 출동 시켜라. 내 발굴단들…… 그걸로 서주헌을 족쳐 놓을 테니까아……!”
하지만 아무도 권 회장에게 유물과 발굴단을 대령할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자식들과 비서들이 조용하자 권 회장이 그들을 쏘아보았다.
“뭐야. 왜 그래? 당장 가져오라니까?!”
비서는 난처해했고, 자식들은 슬금슬금 도망갈 준비를 했다.
“저 회장님 그, 그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 병원에서 치료부터 받으시고….”
하지만 권 회장은 도망가려는 자식들의 모습에 뭔가 눈치챈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없는 사이에 둘째랑 막내가 또 뭐 같잖은 사고를 쳤나 보구나. 개 같은 것들.”
어째 장남까지 표정이 이상한 건 기이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됐으니까 뭔지 말해봐라.”
비서와 자식들은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회장님. 그냥 바로 병원에 가시는 게……!”
“말해보라고!”
비서는 고민하다가 태블릿 PC를 하나 가져다주었다.
“허, 아주 기사까지 났느냐? 어디 이번엔 또 도박으로 얼마나 날렸길래…….”
그러나 권 회장은 눈앞에 떠오르는 기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 회장의 재산 매각.]
[권 회장 소지 유물, 금고에서 전부 사라져.]
[TKBM 발굴단 사표행렬. 남은 인력은 10명도 채 안 돼… “파산으로 죽기는 싫어요.”]
[TKBM과 거래를 끊는 기업 줄줄이.]
[투자 중단.]
[줄줄이 이어지는 수천억대 소송.]
[‘살인자 기업’ TKBM불매운동.]
[각 나라 TKBM제품 수입중단.]
권 회장이 쓰러지는 건 당연했다.
***
“그 노친네, 지금쯤 뒷목 잡고 쓰러졌겠죠?”
아니, 쓰러지기만 했을까.
충격에 당분간 일어나지도 못할 걸?
그들은 낄낄 웃으면서 기차에서 내렸다. 드디어 기차가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헌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기차에서 내릴 때였다.
“그런데 굳이 그 인간을 관짝에서 열어줄 필요가 있었을까요? 단장님이 그 주문 읊어서 열어준 거죠?”
유재하는 그냥 평생 그 관에서 썩게 하지 그랬냐고 했다. 하지만 주헌은 뭔 개소리냐며 비웃었다.
“난 열어준 적 없는데? 내가 그걸 왜 열어줘.”
“엥?”
“놈이 갇혀 있던 관짝은 무덤의 함정. 무덤 밖에 나오면 점점 효력이 사라지지.”
“그, 그건 즉……….”
“슬슬 함정 기능 사라질 때 됐어. 이미 내가 전화했을 때쯤엔 열 수 있었을 걸? 지네가 쌩쇼하다가 연 거야.”
와. 그런데 당당하게 열어준 척 한 거란 말이지.
그렇게 기막혀 할 때 주헌이 설아를 불렀다.
“설아야.”
설아는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설아야. 넌 아까부터 누굴 찾는 거냐?”
“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재빨리 주헌에게 달려와 말했다.
“단장님, 사실 비행기에서 클로에를 본 것 같……… 꺄아아악!”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동아줄이 설아를 덮쳤다.
“꺄악, 뭐, 뭐하는 거야!”
동아줄은 설아의 옷 속으로 들어가더니 다리, 가슴, 몸통 여기저기를 뒤졌다.
그러더니 가슴 안에서 뭔가를 물고 나왔다.
그건 바로 서복의 유물, 지렁이였다.
“!!”
아무래도 지렁이에게 북극은 너무나 추웠는지 설아의 체온으로 요양하고 있던 것이리라.
그래봐야 설아에겐 충격적인 사실이었겠지만.
“세, 세상에 저 지렁이가 왜 가슴에서!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하는 부럽다는 듯이 입을 떡 벌렸고, 주헌의 눈은 맹수처럼 번득였다.
그리고 졸지에 동아줄에게 납치된 지렁이는 죽을 맛이었다.
[놔라, 이놈! 놓으라고! 기껏 은신유물로 파라다이스를 즐기고 있었더니! 푹신푹신해서 좋았는데! 더 밑으로 내려가볼까도 했는데!]
하지만 설아를 구한(?) 동아줄은 잔뜩 흥분해있었다.
[#*$&*!]
1억 달러 다 줬잖아! 줬잖아!
[!]
[#$*&$#*!]
이제 줘! 이제 줘! 인간이 될 수 있는 물건!
[알았어, 알았다고!]
탈탈 흔들리며 괴로워하던 지렁이가 뭔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