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9 잔말 말고 내놓으셔 =========================================================================
< 잔말 말고 내놓으셔 (1) >
“기, 기차다! 기차가 나타났어!
승객들은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모두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눈이 드문 쌓인 설원.
기찻길이고 뭐고, 그 흔한 포장도로 하나 없는 야생의 대지였다.
그런데 그 땅 한가운데에 떡하니 기차와 기찻길이 나타난 것이다.
그 생김새는 마치 시베리아를 질주할 것 같은 열차.
“미, 미쳤어. 어떻게 30분 만에 이걸……!”
하지만 주헌 일행은 전혀 놀라지도 않았다.
그건 당연했다.
‘이쯤이야 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다빈치코드〉라고도 불리는 다빈치의 유물은 기본적으로 창조의 유물.
심지어 다빈치는 미술뿐 아니라 비행기나 헬리콥터까지 설계했던 다방면의 천재였다.
‘그러니까 기차를 만들어내는 일쯤이야.’
저래보여도 사기왕이라 불리던 놈이었다. 그리고 제 단원들은 모두 각 분야의 스페셜 리스트들이고.
물론 다빈치의 유물의 경우, 어린아이 같이 상상만 한다고 다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첫 번째로 다빈치코드를 발동해 물체의 구조를 해독하고, 그걸 기반으로 물건을 창조하거나 카피하는 원리였기 때문이다.
즉, 유재하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면 창조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해가 된 건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지.’
그래서일까.
주헌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그러더니 팔에 쥐났다며 징징 거리는 유재하에게 말했다.
“완성까지 30분 걸렸네. 너 보너스는 없다.”
그 말에 유재하는 깜짝 놀라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와씨 나 억울해. 낑낑거리면서 저거 만들어냈는데요? 30분 걸렸다고 이러기야? 단장님 지금 장난해요?”
“장난 아닌데?”
그러자 서러워진 유재하는 눈물까지 찔끔 나올 뻔했다.
“와 진짜 너무하신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3분 주고 만들라는 사람이 비양심적인 거지! 단장님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그래. 그러니까 연봉 올려준다고.”
“와 내가 진짜 서러워서 확 가출할…… 엥?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못 들었으면 말고.”
주헌은 코웃음을 치며 기차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유재하는 제 귀를 의심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자, 잠깐. 단장님! 진짜로? 저 연봉 동결이었잖아요! 단장님한테 깝치다가 평생 연봉 동결이었잖아! 근데 그걸 올려주신다고요?!”
“싫으면 말고.”
그 말에 유재하는 기뻐하며 바둑이마냥 눈 위를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다.
“아이고 만세에에! 내가 깎아먹었던 연봉이 드디어 올랐어! 만세! 만세!”
아주 눈 위에서 데굴데굴 뒹굴 기세였다.
“단장님 제가 진짜 사랑해요! 뽀뽀해드려요? 야근? 밤샘? 주말? 진짜 뭐든지 할게요! 충성할게요! 밥도 안 주셔도 돼요. 아! 기차 안에 전용 목욕탕이라도 만들어드릴까요?! 하렘 목욕탕으로? 네?!”
어휴 저놈을 어쩌면 좋대.
“그래, 평생 그러고 있어라. 난 간다.”
질린 주헌이 기차를 출발하라고 하자 동아줄이 신나게 기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출발! 출발!
그러자 바둑이처럼 뛰던 유재하가 자길 두고 가지 말라며 엉엉 기차를 쫓아왔다.
“잠깐 설아야, 설아야! 나 두고 가지 마! 단장니이이미임! 야 밧줄! 안 멈춰?!”
“어휴.”
설아도 창피해졌는지 재빨리 문을 쾅 닫아버렸다.
***
한편 그 무렵, 프랑스에 마련된 기자회견장.
양 쳰과 TKBM의 아들들은 오만의 무덤에 들어가기 전 몰려든 기자들에게 질의응답을 해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럼 이것으로 TKBM의 브리핑은 마치겠습니다.”
“이제 질문 안 받습니다. 그럼 이만.”
“아 잠깐만요! 권성우 상무님! 서주헌은요! 정말 죽은 게 맞습니까? 같은 비행기에 있으셨다면서요!”
“아 정말, 질문 안 받는다니까요!”
경호원들이 제지를 했지만, 장남은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서주헌은 틀림없이 죽었습니다. 테러리스트의 말로죠.”
“그럼 하나만 더! 서주헌이랑 모종의 계약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이상한 계약서에 싸인하는 걸 봤다고………!”
“!”
뜻밖의 질문에 권 상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그런 소릴?”
“권 상무님의 동생분이요! 권성재 씨가…….”
그 도움 안 되는 놈이.
결국 그가 할 수 없다는 듯 답했다.
“아…… 하나 받긴 했습니다. 제 동생 놈을 인질로 잡더니 거의 강도 급의 계약서를 내밀었죠.”
“내용을 밝힐 생각은 없습니까?”
“말할 가치도 없는 내용입니다.”
“아 잠깐, 상무님! 아직 질문이 더!”
그러나 장남은 무시하고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허, 계약서 내용을 보여달라고? 미쳤나.’
장남은 치가 떨다.
발굴단의 유물을 내놔라, TKBM의 지분을 내놔라, 그딴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 싸인했다는 사실이 나가면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그래봐야 효력도 없는 계약서 따위.
그래서 일까.
권 상무가 비서에게 말했다.
“내 양복 주머니에 있는 계약서 종이. 태워버려.”
“네? 그러셔도 됩니까? 계약 이행을 안 하셔도 되겠….”
그 말에 옆에 있던 양 쳰이 비서를 노려보았다.
“계약 이행? 짤리기 싫으면 헛소리 하지 마.”
“아…… 죄, 죄송합니다!”
“그래봐야 그냥 종이야. 꼴도 보기 싫으니 태워버려.”
권 상무도 거들자 비서는 알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뭐, 괜찮겠지.’
하지만 같은 시간.
‘상무님! 절대로 그 계약서를 없애시면 안돼요!’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한 명이 있었다.
바로 북극 일대 어딘가를 달리고 있는 기차 안. 그 안에서 주헌을 훔쳐보고 있는 TKBM의 직원이었다.
‘젠장. 설마하니 서주헌이 살아있었을 줄이야.’
그렇다.
주헌이 승객들을 태운 기차 안엔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섞여 있었다.
바로 비행기에서 미처 탈출 못한 TKBM의 사원이었다.
‘아오, 회사에서는 서주헌이 죽었다고 생각할 텐데!’
그뿐이 아니었다.
“세상에, 분명 그 테러리스트들, TKBM이 고용한 사냥꾼들이라고 했지?”
“맞아 맞아. 그러면서 지들은 쏙 빠져나가?”
“당장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해요.”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요!”
“불매운동이 문제야? 유물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해!”
아이고. 미치겠네.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이 승객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대로면 TKBM이 테러범이라고 세상에 밝혀지게 된다.’
이미지 실추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그랬기에 빨리 이 사실을 TKBM에 알려야만 했다.
‘근데 왜 핸드폰이 먹통이야!’
사원은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만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보나마나 추운 북극에 떨어지면서 배터리가 맛이 간 것이리라.
“미치겠네, 빨리 양 쳰 부단장님께 알려야 하는데…….”
적어도 이 열차가 멈추기 전에 해결을 봐야 했다.
악랄한 서주헌이 기자들을 만나면 어떤 사기극을 펼칠 지 너무나도 훤했다.
그러니 미치고 환장할 판일 수밖에!
‘빨리 이 사실을 알려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던 사원은 힐끗 기관실 안의 주헌을 다시 훔쳐보았다.
하지만 서주헌 쪽을 본 사원은 내심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주헌이 편하게 베고 있는 사자 크기의 세트 때문이었다.
겉만 보면 쿨쿨 자고 있는 하얀 멍멍이지만, 사원은 봤다. 하품을 할 때 드러나는 괴물 같은 상어 이빨들을.
‘미친, 딱 봐도 신급 유물인데….’
살다 살다 다루기 힘든 신급 유물을 베개 삼아 누운 놈은 처음 볼 지경이었다.
보통이라면 자존심 센 유물들에게 사정없이 물리기 때문에 동물형은 철창에, 그리고 물건형은 금고에 넣어두는데 말이다.
적어도 자신들이 봐온 상급 유물사용자들은 거의 그랬다.
‘역시 왕급이라는 건가………!’
아니.
사실 왕급들도 저러는 건 못 봤는데.
그리고 다른 사람이 희한하게 여기거나 말거나 세트는 아무래도 주헌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이 주헌과 상성이 좋은 것처럼,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파괴의 신 세트와도 틀림없이 찰떡궁합인 것이리라.
뭐, 검둥이 아누비스는 졸지에 주헌의 발 베개가 되어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건 뭔가 잘못 됐어. 이 몸이 왜 이런 걸……… 커헉!”
“야 움직이지 마. 발 떨어지잖아.”
“…………….”
발로 얻어맞은 아누비스는 크윽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이집트 신의 위엄이고 뭐고 다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던 TKBM의 사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저놈이 신급 유물을 저렇게 다루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다.
그는 주헌을 감시하면서 분명히 들었다.
‘단장님. 권상무가 싸인했던 그 계약서요. 없애거나 불태우면 어떻게 돼요?’
‘불이행으로 간주. 계약서에 따로 적어둔 보복이 향하겠지.’
‘어떤 보복이 향하는데요?’
‘글쎄. TKBM 소속 전원 죽으려나?’
그 말에 식겁한 사원이었다.
‘그러니까 권 상무님. 양 쳰 부단장님! 제발 그 계약서 온전하게 모셔두세요!’
그럴 때였다.
“아, 됐어요! 전파 닿았다고요! 이걸로 TKBM에 연락할 수 있다고요!”
앞 칸에서 누군가가 손짓했다.
그녀는 파파라치 기자로, 무엇보다 TKBM 같은 독식자들이 고용한 든든한 아군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서주헌을 쫓다 보니 같은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것이리라.
사원은 승객들을 한 명, 한 명 검사하고 있는 이설아를 보더니 곧 다른 칸으로 기자를 끌고 갔다.
“이리와요! 회사에 빨리 알려야 해요!”
곧 앞 칸에 도착한 사원이 다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양 쳰은 의외로 금방 받았다.
[여보세요? 신찬열. 너 어디야? 다들 복귀했는데 너만 연락이 두절….]
“부단장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서주헌이랑 비행기 승객들이……!”
그러나 그럴 때 갑자기 핸드폰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황한 사원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웬 여자가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흑발의 미인.
클로에였다.
전화 너머에서는 양 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주헌? 서주헌이랑 승객들이 뭐? 이봐, 신 사원?]
그러자 클로에는 태연하게 상대에게 영어로 말했다.
“서주헌이랑 비행기 승객들이 사망했다는 신문기사만 보고 있어.”
[엥?]
“댁이 이 사람의 상관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꾸 방해하지 말래? 못 참겠거든.”
[뭐……? 뭘 못 참아? 이봐, 신찬열! 지금 여자랑 어디서 뭘…!]
뚝.
그렇게 전화가 끊기자 사원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클로에를 쏘아보았다.
미인이라서 순간 움찔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미쳤어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클로에는 멋대로 핸드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좀 빌려요.”
“뭐라고요?!”
클로에는 허락도 안 했는데 멋대로 국제전화를 때렸다.
“아, 여보세요?”
그러더니 핸드폰을 들고 달리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이에 여기자는 꺄아아악 비명을 질렀고, TKBM의 사원은 거품을 물고 말았다.
“이봐요! 내놔! 핸드폰 내놓으라고! 여기도 급하단 말야!”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클로에는 유물을 써서 기차 천장 위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통화내용을 들키는 게 싫은 것이리라.
그쯤 되자 사원은 미치려고 했다.
“아 미치겠네. 양 쳰 부단장님하고 권 상무님한테 이 일을 알려야 하는데……!”
“걱정 말아요. 제가 노트북이 있으니 그걸로……!”
그런데 그럴 때였다.
“오, 좋은 거 가지고 있네?”
고개를 돌리니 살벌하게 웃고 있는 주헌이 있었다.
“어, 어어…….”
“너네 계속 우리 감시하고 있었지?”
“어, 그, 그게……….”
“당신, 기자?”
“………!”
“수고 덜었네. 안 그래도 기사 써줄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그들은 위험천만하게 웃고 있었다.
***
한편 그 무렵, TKBM의 권 상무에게 급한 소식이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상무님! 부단자니이임!!”
“왜? 무슨 일이야?”
“기, 기사가. 기사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비행기 사고의 생존자들.]
[전원 생존해 있어.]
[생존자 증언 “비행기 테러는 서주헌이 아니라 TKBM이 고용한 테러리스트들의 짓”.]
[TKBM에게 책임]
[세계적인 충격, 불매운동의 흐름.]
[재판 소환 여부.]
그뿐이 아니었다.
“양 쳰 부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또 뭐!”
“TKBM 발굴단 금고에서 권 회장님의 유물이 싹 사라졌습니다!”
“뭐야?!”
“게다가 TKBM의 소유건물이 갑자기 팔려버리고 회장님이 가지신 회사 지분이 매각……!”
“TKBM의 발굴권들도 전부……!”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라………!”
계약은 무시하면 안 되는 법이었다.
========== 작품 후기 ==========
+ 깽판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