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8 화려한 하이잭 =========================================================================
< 화려한 하이잭 (3) >
흔들리며 추락하는 비행기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비행기가 크게 휘청거렸다.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앞뒤로 쓰러지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의자에서 튕겨져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으아악! 도대체 무슨 일이야!”
“살려주세요!”
비행기 안의 조명은 나가버리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비행기는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괜찮으니 진정해주세요!”
승객이고 승무원이고 모두가 무게중심을 잃고 쓸려나갈 것만 같았다.
“다, 단장님!”
의자를 잡고 버티고 있던 이설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가벼운 몸이 튕겨져 나가려고 하자 주헌이 한 손으로 허리를 붙잡으며 이설아를 빈자리에 앉혀주었다.
“꽉 잡고 있어. 안전벨트 메고.”
“하, 하지만 단장님은!”
“괜찮아, 괜찮아.”
주헌은 설아의 머리를 가볍게 휘저으며 퍼스트클래스 쪽으로 향했다.
아직 엔진은 살아있는 듯 비행기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틀림없이 기장이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도 앞으로 몇 분 후면 지면이랑 부딪친다.’
뭐, 운이 나쁘면 그 전에 허공에서 파티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물론 주헌은 이 상황을 예기했었다. 양 쳰이 진짜 터트릴 줄은 몰랐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했고 오히려 바랐던 일.
하지만 다른 승객들까지 날려버릴 생각은 없었던 그였다.
승객들은 기본적으로 유물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말려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사람들은 귀한 증인들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바로 동아줄을 불렀다.
“빨리 움직여!”
동아줄은 바로 주인의 의도를 깨닫고 제 몸을 길게 늘였다. S급이 된 데다가 주인의 말인데 어디 지구라고 못 감싸랴.
[#$*&$*!]
알았어! 알았어!
길게 몸을 늘린 동아줄은 승객들을 꽁꽁 묶어버렸다.
“꺄아아악! 이게 뭐… 읍!”
사람들은 순식간에 누에고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동아줄의 부드럽고 푹신한 몸 탓에 쿠션 효과는 확실해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가 지면에 강타했다.
쿠구구구궁!
어디에 부딪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이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충격이 몰려왔다.
눈 위에 미끄러지는 비행기가 뒤집히고, 박살이 나고, 난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그뿐이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진한 기름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건 틀림없이 연료가 새는 냄새였다.
그리고 그걸 신호라고 여긴 걸까.
양 쳰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주헌. 서주헌은……!’
마침내 그의 눈에 원하는 것이 닿았다. 통로 한 구석에 쓰러진 주헌이었다. 아무래도 비행기가 부딪친 충격이 컸는지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었다.
게다가 동아줄에게 보호 받지 못한 테러리스트들은 사지가 찢겨 쓰러져 있었다.
그걸 본 양 쳰의 얼굴이 밝아졌다.
주헌의 경우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동아줄 유물이 옆에서 낑낑거리는 것이 그 증거였다.
[#*#$&*!]
양 쳰은 주헌의 주변에서 왔다갔다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아줄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저 바보 놈.’
아주 비릿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누가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래.’
동아줄을 사용하다가 정작 본인이 저 꼴이 되다니. 아주 양아치에 도둑놈 주제에 꼴깝을 다 떤다고 양 쳰은 비웃었다.
하지만 그 노력도 쓸모가 없어진 모양이었다.
주인이 정신을 잃은 탓인지 주인과 밀접한 영향을 받는 동아줄의 힘도 약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길게 늘어났던 동아줄은 원래의 1.5M 크기로 줄어들었고, 사람들을 감싸고 있던 고치도 풀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기절한 듯한 사람들의 모습.
그걸 확인한 양 쳰이 급해졌다.
저 사람들이 깨어나 탈출하기 전에 불을 붙이고 튀어야 했기 때문이다.
“상무님, 어서 탈출 유물을 쓰세요! 너희들도!”
그 외침에 TKBM의 사원들과 권성우가 먼저 탈출유물을 사용했다.
번쩍!
그들이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양 쳰이 입꼬리를 올리며 폭탄 유물을 사용했다.
콰직!
동시에 새어나온 연료에 불이 붙으며 붉은 섬광이 일어났다.
번쩍!
섬광은 사정없이 비행기를 박살 냈다. 마치 안에 있는 사람들을 벌레라고 생각하듯이.
콰과과광!
마침내 비행기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세계적인 뉴스가 터졌다.
***
[테러범에 의한 여객기 폭발.]
[범인은 서주헌.]
[비행기 잔해 대서양 주변 섬에서 발견.]
[기적적 생존자. 탑승객 296명 중 TKBM 소속 중 14명, 일반승객 2명. 그 외 전원 시신으로 발견.]
[서주헌 일당 역시 사망.]
[TKBM 권성우 상무, 폭발 직전에 유물 사용으로 간신히 화를 면해.]
[‘함께 있었는데도 구하지 못해 죄송’ TKBM 선뜻 거액의 위로금 전달.]
[역시 달라도 다른 TKBM 유물사용자들. 글로벌기업의 자세. 올라가는 TKBM의 주가.]
[이제 유럽의 7대 무덤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나.]
[TKBM이 유력하다.]
“아주 괜찮게 기사가 나갔군.”
프랑스 시내의 호텔.
권 회장의 장남 권성우 상무는 흡족하게 신문을 내려놓았다.
기자들을 갈궈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기사를 쓰게 한 것치고는 아주 훌륭했다.
“범인은 서주헌. 그리고 우리 회사는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어.”
“애도의 분위기지만 여론도 좋은 편입니다. 일부러 승객 두 명도 구했으니 TKBM만 살아 의심을 살 일도 없고요.”
“승객의 처리는? 어디… 노인이 둘이었나?”
“위로금 몇 푼 쥐어주고, 거짓말 좀 해주니 술술 이쪽이 바라는 인터뷰를 하더군요. 서주헌이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죽일 놈이라고.”
“아들이랑 손자들 간식이나 사주라고 해.”
장남은 하하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형의 웃음에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아, 됐고! 형 때문에 나도 폭발에 휘말려 죽을 뻔했다고!”
바로 차남이었다.
“진짜 지금 웃음이 나와?! 어떻게 그딴 식으로 비행기를 날려버리냐?”
“안 닥쳐? 서주헌하고 손을 잡으려고 했던 게 누구지?”
장남의 번득이는 눈빛에 차남은 윽 하고 기가 죽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자금줄인 장남에겐 꼼짝 못하는 동생이었다. 나이차이도 한 몫 했지만.
‘젠장, 아버지 발굴단만 손에 들어와 봐라.’
“어쨌든 권성재. 넌 서주헌에게 인질로 잡혔었다고 증언을 해서 봐주는 거다. 안 그랬으면 그 비행기에 던져버리고 왔어. 하여간 감히 아버지의 발굴단을 노려?”
“이씨, 몰라! 이제 어쩔 거야! 걔 죽은 거 맞아? 서주헌 그 놈으로 프랑스 무덤을 클리어해보려 했더니…….”
“죽었습니다.”
딱 잘라 말하듯 답한 건 양 쳰이었다. 마치 그렇지 않다면 곤란하다는 눈치였다.
“최고 수준의 감식가들과 검시관들을 고용해 모두 사고현장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그래서? 진짜 시체 맞대?”
“네. 승객 전원, 그리고 테러범, 서주헌 일당 전원, 본인들로 판명 되었습니다. 전부 죽은 거 맞고요. 유물로 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감식가들의 눈은 못 피합니다.”
“하긴, 무려 오피셜 감식가들이지.”
세상에 유물이 판을 치다보니 어떤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는 유물 감식가들도 있었다.
쉽게 말해 유물로 사건의 진위를 밝히고 어떤 유물이 사용되었는지, 또 가짜는 아닌지, 유물에 의한 사기는 아닌지 등 여러 가지를 판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피셜 감식가들은 오피셜 복원사들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100명도 안 되는 최고 전문가들.
아무래도 복원사나 감식가나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직군이기 때문에 희소하기도 하고 대우도 많이 받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톱들만 오피셜(세계 공인)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쉽게 말하면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의미였다. 자격증을 운으로 따는.
어쨌거나 그런 놈들이 비행기의 감식을 맡아줬으니 확실하긴 하다.
“서주헌과 승객들은 전원 죽었습니다.”
오히려 죽지 않으면 곤란했다. 서주헌은 미래에 독식가가 될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였으니까.
“서주헌, 그 남자는 사라져야 합니다.”
애초에 첫 만남에서부터 주헌에게 반감을 품었던 그가 아닌가.
이유는 모른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한 치기, 질투, 성격차이, 그런 개념이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몸이 경계를 했다. 마치 서주헌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저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보복으로 죽을 것 같다는 두려운 느낌.
그건 아주 기이한 기분이었다.
‘이상하다. 처음 보는 사내일 텐데.’
이상한 기시감.
혹여 전생에 원수사이이기라도 했을까.
하지만 배신자 양 쳰은 곧 고개를 저었다.
‘별 생각이 다 드는군. 그래봐야 별 것 아닐 거다.’
그래야만 했다.
***
“와, 미치겠네. 여긴 또 어디래.”
유재하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설원을 보며 탄식했다.
여기를 봐도 눈, 저기를 봐도 눈!
“단장님! 여기 도대체 어딥니까!”
어디긴.
“북극.”
“아오 씨! 추워 디지겠네! 펭귄은 없다냐!”
“펭귄은 남극이다. 이놈아.”
그들은 추운 날씨에서 죽으려고 했다. 그나마 북극도 한겨울이 아니라서 버틸 수 있는 거지, 정말 얼어 죽을 뻔했다.
그렇다.
비행기에 있던 그들은 지금 북극에 떨어진 참이었다.
어떻게?
방법은 간단했다. 카미카쿠시(행방불명) 유물이 있지 않은가.
이 세상 어디든, 다른 차원에라도 쑥 날려버리는 무서운 유물.
하지만 비행기에서 3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몽땅, 그리고 한 번에 빼돌리기에는 이만한 유물도 없지 않은가.
“어유, 진짜 300명 분의 시체를 만들라고 할 땐 내 귀를 의심했다니까.”
유재하는 구시렁구시렁 거렸다.
사실 퍼스트 클래스에서 주헌은 유재하에게 명령을 내렸었다. 자신의 도플갱어, 그리고 테러범을 제외한 승객 전원의 시체를 만들라고.
물론 혼자서는 힘드니 루이도 열심히 갈궈서 연성하게 했다.
이 방법은 사기왕 유재하가 도주할 때 늘 쓰던 방법.
즉, 이코노미 클래스에 양첸이 봤던 주헌은 이들이 만든 가짜.
주헌이야 계속 기장실에 있었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기장실을 사수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이설아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단장님, 안전벨트도 안 메시고……!”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대화한 주헌이 가짜라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그럼 승객들은요?”
그녀는 주변에서 살았다며, 감사하다며, TKBM 죽으라며 울부짖는 승객들을 가리켰고, 주헌이 답했다.
“동아줄로 고치를 만들었잖아. 일부러 안보이게 해서 먼저 빼돌리고 가짜를 대신 안에 채워 넣으라고 했지.”
“그럼 그게 단순히 쿠션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군요……!”
설마 그런 속셈이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진짜 뒤지는 줄.”
“뒤지는 줄.”
유재하랑 루이가 옆에서 똑같이 오리 입을 만들자 주헌이 웃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아참, 클로에.’
이설아는 재빨리 승객들 틈에서 클로에를 찾았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주헌이 말했다.
“자, 그럼 슬슬 만들어야지.”
“엥? 뭘요?”
“척 하면 알아들어야지.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아, 아니요!”
“그럼 만들어야지.”
“뭘요?”
그 말에 주헌이 정말 모르겠냐며 둘을 살짝 쏘아보았다.
“우리는 지금 위치 추적과 감식을 피하기 위해 모든 소지품을 비행기에 버려두고 온 참이다. 그럼 이 북극 한복판에서 어떻게 탈출할까?”
“…………돌로 SOS 신호 만들기?”
“땔감이라도 태워볼까요?”
그러자 주헌이 추워죽겠다며 사납게 눈을 번득였다.
“당연히 운송기기지! 무슨 말인지 몰라?”
“서, 설마……….”
“특급열차. KTX급으로 빠른 걸로. 추우니까 1분 준다.”
“저, 저기요.”
“왜. 못해?”
아이고, 이젠 하다하다 기차까지 만들어내라고 하냐!
‘비행기를 만들어내란 소리를 안 해서 다행이구만!’
“저기요, 단장님…….”
“시끄럽고. 알았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물 꺼내. 기차는 유재하 네놈이 만들고, 꼬마 놈은 기찻길을 만든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밑으로만 내려가면 대충 러시아, 캐나다, 어디든 걸리겠지.”
“바다가 나올 거란 생각은 안 해요?”
“그럼 그땐 배를 만들고.”
아오. 정말!
“아오, 알았어요. 알았어. 알았는데, 상식적으로 1분은 좀 심하지! 어떻게 1분 만에 300명이 탈 기차를 만들어!”
그러자 덜덜 떨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주헌이 선심 쓰듯 말했다.
“그럼 2분?”
“………이 인간을 확.”
동시에 루이가 끼어들었다.
“아니, 애초에 기차를 만들어도 누가 운전할 수 있는데! 어?”
그러자 주헌이 뭐가 문제냐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
내가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팔짝 팔짝 뛰는 건 동아줄이었다. 마치 자신을 지명해 달라는 듯 크게 뛰며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에 단원들과 승객들은 전부 입을 떡 벌렸다.
지, 진심인가?
진짜 할 수 있나?
맡겨도 되는 거야?
하지만 멍멍이라도 조종석에 앉힐 생각이었던 주헌은 미소를 지었다.
“자 알았으면 닥치고 시작. 인심 더 써서 3분 준다. 아, 난 역시 착해.”
그 말에 유재하와 루이는 이씨 훌쩍거리며 유물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주헌은 권 회장의 장남에게서 받은 계약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잘도 우릴 비행기 채로 날려버렸다 이거지.”
어느 나라든 도착해 일반인들의 생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그때가 게임 시작이었다.
========== 작품 후기 ==========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