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7 화려한 하이잭 =========================================================================
< 화려한 하이잭 (2) >
이설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클로에였다. 그녀가 틀림없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설아는 재빨리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리 이동을 하고 있던 사람들 틈에 섞여 클로에의 모습이 사라진 탓이었다.
결국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설아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잘못 봤나.’
클로에.
나이팅게일 유물을 사용하던 유물사용자.
그녀는 도굴단의 주치의 겸 건강을 책임지는 팀원이었다.
쉽게 말해 유재하는 사기… 아니 복원. 자신은 스파이. 율리안은 전략. 클로에는 의료 유물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무덤이라는 곳은 인간이 병들기 좋은 환경.
게다가 유물의 리스크도 인간에게 적지 않은 피로와 병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단장님의 병을 늦춰준 것도 클로에인데…….’
사람마다 유물증후군은 다양하지만 특히 주헌의 병은 굉장히 심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식물환자 신세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보다는 낫지만, 고통 쪽으로 특히 심했던 모양이었다.
매일같이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고통. 그걸 덜하게 해주었던 것이 그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던 주치의.
자신들하고 사이가 좋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그거야 성격 차이고.
‘어쨌든 우리 단원이다.’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특히 최후의 무덤에서의 일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클로에는 주헌을 몹시 걱정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주헌이 이 사실을 알면 무척 기뻐하리라.
그래서일까.
설아는 무의식중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클로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그세 어디로 간 거지.’
찾아볼까.
그래 봐야 이 좁은 비행기 안이다. 게다가 클로에 정도의 외모면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가 없다.
‘그래.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승객들을 훑어보면…!’
그러나 이때였다.
탕탕탕!
“말귀 못 알아들어? 얌전히 자리에 앉으라고!”
TKBM의 사냥꾼들.
아니, 그런 행세를 했을 뿐인 테러 조직원들이 승객들과 승무원을 위협하고 들었다.
‘젠장.’
심지어 TKBM에게 고용되면서 얻은 유물까지 쓰면서 아주 까다롭게 되었다.
“자, 앞에서부터 쿠란을 읊는다. 못 읽으면 그 즉시 처형이다!”
“꺄아아악!”
결국 보다 못한 TKBM의 사원들이 그들을 붙잡았다.
“이봐! 이런 일은 명령에 없던 일이야!”
“얌전히 대기를……!”
탕!
“으아아악!”
하지만 그들은 같은 편일 그들에게도 가차 없이 총을 쏘았다.
“끄아아악!”
정확히는 총 형태의 유물이었다.
“흐악, 내 다리 내 다리이!”
몸통에 총알이 박히자 몸 여기저기에서 돌이 피어올랐고, 애가 끓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 크으윽!”
하지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테러범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 내 동지들이 지금쯤 조종석을 차지했을 거다.”
“………!”
“자, 너희도 위대한 알라의 곁으로 보내주마! 처음은 누구로 할까! 어?”
그러자 기내는 강제된 침묵이 흘렀다. 이에 테러범이 이죽거렸다.
“흥, 그럼 너부터 쿠란을 읊어본다. 못 읊으면 이교도로 머리에 구멍을 뚫겠다.”
“제, 제발 목숨만은!”
그걸 본 이설아가 퍼스트클래스 쪽을 보았다.
‘어떡하지.’
주헌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유물을 업고 더욱 과격하게 활동을 하는 테러조직들.
일반인을 상대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총소리와 비명이 교차하자 이설아가 바로 뛰어들었다.
뻐억!
“커헉!”
이설아가 테러범을 제압하기 시작하는 때였다.
장남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내가 고용주로서 상황을 좀 정리하고 오겠다. 아버지의 유물을 저딴 식으로 쓰다니.”
그러나 양 쳰이 가만히 앉아계시라고 했다.
“괜히 나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말이 통할 놈들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러자 양 쳰이 눈을 번득이며 속삭였다.
“게다가 저희가 고용한 사냥꾼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퍼지면 골치 아파집니다.”
“그럼…”
“입막음하죠. 그리고 서주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
양 쳰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비행기를 폭발 시키면 서주헌도 죽고 승객들도 다 죽을 겁니다. TKBM 사원들은 운이 좋으면 잘 빠져나오겠죠.”
“…………!”
“그리고 테러의 주동자는 서주헌이라고 풍문왕을 통해 퍼트리면 그만이고요.”
확실히 좋은 생각이다.
증인이 없으면 날조 따위 일도 아니니까.
그래도 인간이라면 찔리는 양심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
“!”
“단. 그 사람을 기억하지죠?”
“……….”
그 이름에 낯빛이 변한 장남이 마른 침을 몰래 삼켰다.
단은 주헌의 도굴단 동료.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들이 말을 이었다.
“상무님이 벌이신 그 사고를 묻은 지도 얼마 안됐습니다. 안 그래도 기자들이 교도소까지 찾아가며 냄새를 맡고 다니는데… 이번 일까지 연루되면…….”
그 말까지 나오자 장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으, 으으……여기도 그 유물 좀 쓰게 해주세요!”
총을 맞은 일반인들이 누군가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바로 TKBM 직원들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거 보아하니 치료하는 유물 맞죠! 그거 지금도 막 살이 돋고 있잖아요!”
“이봐요. 이건…….”
“저희 애가 총에 맞아서! 제발!”
“저희 아버지도……!”
이에 TKBM 발굴단의 부장이 짜증을 냈다. 너무 많은 수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없어요! 이제 없다고!”
“없긴 뭐가 없어요! 거기 캐리어에서 꺼내는 거 다 봤는데! 똑같은 거 가득한 거 봤어요!”
“아니, 이건 안 된다고!”
‘치료유물은 귀한 유물이다.’
자신들은 권 회장의 장남 권성우 상무의 호위를 맡은 몸. 그러니 이 치료유물은 장남을 위해서만 쓰여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깟 놈들에게 귀한 치료유물을 써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다급하게 몰려들었다.
“치료해주는 물건이 있다고요?!”
“제발 그것 좀! 아버지가 이대로면 돌아가세요! 제발!”
“한 번만 쓰게 해주세요! 제 아내랑 딸이!”
사람들의 숫자는 더 많아졌다.
부장은 혹시나 해서 양 쳰 쪽을 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그러나 양 쳰은 사나운 눈초리로 도리어 쏘아보는 것이었다.
뭘 그딴 걸 고민하냐는 것이다.
‘여기 승객들은 비행기랑 같이 날릴 사람들이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을 치료해줘서 뭘 하겠냐는 의미였다.
‘유물만 아까운 짓이다.’
그래서일까.
양 쳰의 시선에 부장이 그것보라는 듯, 성화를 냈다.
“아 됐고! 이건 니들이 사용할 게 아니라고! 유사시에 VIP를 위한 거야!”
“그래요, 정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료 1억! 못 내놓겠으면 저리들 꺼져!”
“아악!”
그들이 달려드는 사람들을 걷어찼다. 자신들이 TKBM 소속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나, 나았어!”
근처에서 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TKBM의 부장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야! 그거 누구 멋대로 쓰래!”
그렇다.
눈앞에는 언제 가져간 건지, 자신들의 의료유물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흑발의 프랑스 여자였다.
“그거 내놔!”
“야, 거기 내 말 안 들려?!”
그러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잘 들리는데?”
그리고 그녀를 보고 이설아가 입을 떡 벌렸다.
‘클로에!’
그렇다.
자신들의 옛 동료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TKBM 쪽은 뒷목을 잡았지만.
“잠깐, 그 전에 너 그걸 어디서 꺼낸 거야!”
그러자 미간을 찌푸린 클로에는 별 이상한 걸 묻는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매야? 자기가 보관한 곳도 몰라? 니들 주머니.”
아무래도 훔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기가 막혔던 그들이 외쳤다.
“당장 안내놔? 그건 다 우리 VIP를 위해 쓰려는 거야!”
“뭐래. 아끼면 똥 되는구만.”
“여, 여기 환자가 더 있어요!”
“아, 잠시만요. 곧…….”
하지만 이때 클로에가 든 의료유물이 박살 났다.
TKBM 직원들이 보다 못해 부숴버린 것이다.
“어디 또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보시지.”
그러자 클로에는 어디론가 성큼 성큼 가더니, TKBM의 캐리어 가방을 박살내버렸다.
콰직!
“!!”
이윽고 안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유물들.
클로에는 대수롭지 않게 유물을 집어가며 사용방법을 알려주었다.
“네, 가져갑니다.”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그만 안 둬?!”
그들이 클로에를 습격하려고 했지만 글쎄.
“아악!”
도리어 늘씬한 그녀에게 당해버리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확인한 이설아는 웃었다.
역시 클로에가 맞다.
그리고 이 자리도 일단락되었겠다, 설아가 자리를 뜨려는 순간.
“뭘 하느라 늦나 했더니.”
바로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그녀는 기쁜 얼굴로 주헌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단장님, 저기에……!”
“………저기에?”
그러나 고개를 돌린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라졌어.’
그세 또 사라져버린 것이다.
당황한 설아가 외쳤다.
“단장님! 실은……!”
“쉿.”
주헌은 다 안다면서 설아의 입을 살짝 막았다.
“조종석을 점거하려기에 일단 처리했어. 엔진을 떼어내려고 하지 뭐야.”
아니, 그걸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이야기 하자.’
이쪽 일이 더 급하니까.
동시에 주헌이 기절한 테러범들을 보며 말했다.
“놈들이 자폭유물을 비행기 곳곳에 설치해놨어. 게다가 순 변태들이야.”
여자 속옷에도 있었다며 주헌은 폭탄 유물을 흔들어보였다.
참 그걸 어떻게 찾아온 건지도 대단하긴 하다만…….
“그래도 단장님이라면 그 유물들을 다 회수하실 수 있을 테니…….”
“왜 회수해?”
“네?”
“마침 잘됐어. 프랑스에 도착하면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걱정했는데.”
“생각해두신 방법 있으세요?”
“유재하놈의 사기왕 시절 기억나?”
“아…….”
“그놈이 자주 써먹던 방법.”
그리고 그럴 때였다.
“너희, 거기서 뭘 하는 거야!”
기내석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테러범의 동료들이 더 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초점은 뜻밖에도 일반 승객이 아니라 TKBM의 장남과 양 쳰 쪽이었다.
“지금 뭘 하려는 거냐니까?!”
아무래도 탈출유물로 슬쩍 튀려다가 딱 걸린 모양이었다.
주헌은 그걸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 든 유물을 내놔라.”
테러범들의 표적은 장남에게 향했다.
“어서 내놔!”
그리고 주헌이 태연하게 끼어들었다.
“어허 그만. 같은 팀끼리 싸우면 되나.”
“!”
양 쳰과 장남이 기겁하며 주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말했다.
“야, 걔네 니들 고용주야. 막 대하면 안 돼. TKBM의 높으신 분이라고.”
그리고 이에 장남이 당황한 듯 서주헌을 보았다.
저, 저자식이?
곧 주헌의 말에 승객들이 술렁거렸다.
“뭐라고? 고용주?”
“지금 TKBM이라고 하지 않았어?”
“지금 이 사태가 다 TKBM 짓이라고? 미친!”
TKBM 급의 대기업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하물며 발굴영역에 있어서도 톱.
사람들이 술렁거리자 양 쳰과 장남이 골치 아프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서주헌 저 자식이.
틀림없었다.
기내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인 것이다!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이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을 물 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일까.
‘여기서 모두 없애 증거를 인멸한다.’
그 순간이었다.
달칵.
양 쳰의 손이 테러리스트의 폭탄유물을 빼앗아 터트린 것은.
어차피 이들이 가진 유물은 TKBM에서 전해준 것.
사용 방법을 모를 리도 없다.
콰아아앙!
마침내 비행기에 폭발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흔들리며 추락하는 비행기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 작품 후기 ==========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