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84화 (184/409)

00184 저놈은 안 되겠다  =========================================================================

< 저놈은 안 되겠다 (4) >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군.’

지금 권 회장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람이 2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면, 미치다 못해 죽는 게 정상이지 않겠는가.

그 증거로 권 회장은 좁아터진 관 안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을, 이대로 가면 진짜 죽는다.’

사실 지금도 유물 때문에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갑옷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그렇다.

아킬레우스의 갑옷.

불사로 만들어주는 갑옷은 생명 유지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안 죽으면 뭘 하나!

그냥 ‘죽지만’ 않을 뿐인데!

‘허, 미치겠군.’

먹지도 못해, 마시지도 못해. 생리현상도 해결 못해.

뒤척이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있는 고통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괴로운 고문이겠는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이미 혀를 깨물고 자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주헌이 밉다 못해 찢어 죽이고 싶을 수밖에.

‘………서주헌, 진짜 가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

그는 계속해서 관짝을 쳐댔다.

쿵쿵!

헛된 희망 따위가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여기도 관들이 굉장히 많구만!”

“이야, 진짜 서주헌한테 감사해야 하나. 이런 역사적 사료를 남겨주다니.”

심지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됐고, 어서 조사해! 며칠 후면 미군이 이 무덤을 인위적으로 부순다고 했어! 그 전에 조사를 마쳐야 한다!”

아무래도 주헌이 남겨둔 텅 빈 무덤들은 졸지에 고고학자들의 보물창고가 된 모양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물의 인격이나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덤은 실제 문명을 담고 있는 곳.

툼글리프는 못 읽더라도 곳곳에 있는 상형문자나 새로운 벽화, 부속물들은 고고학자들이 환장할 만했다.

‘역사학에 큰 발전이 될 것이다.’

‘서주헌은 학자들에게 보물을 준거다!’

하지만 그딴 거 알게 뭔가.

‘젠장, 나 좀 찾으라고!’

쿵! 쿵! 쿵!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권 회장은 다급하게 관짝을 두들겼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마른 건지, 관을 칠 때마다 뼈만 부딪쳐서 아프기 짝이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여깄다고! 여기 사람 있다고! 제발 좀!’

이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쳐댔다.

하지만.

“오오오! 교수님! 여기에 파라오의 변기문화에 대한 문헌입니다!”

“오오오! 어서 옮겨놓거라!”

아오!

지금 변기짝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어디 그뿐인가.

“그러고 보니 권 회장 아직도 못 찾았다죠?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데.”

“와, 도대체 어디에 숨었길래 천하의 TKBM 발굴단이 못 찾는대요?”

어디긴!

여기라고! 여기에 있다고! 니들 바로 옆에!

“에이 끝났어. 2주면 벌써 죽지 않았을까.”

아니, 여기 있다니까 저 자식들이!

쿵쿵쿵!

“아 그런데 교수님. 배도 고픈데 뭣 좀 먹고 하죠.”

“그럴까. 이 근방엔 함정도 다 제거 된 거 같으니.”

곧 텅 빈 무덤 안에서는 라면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했고, 권 회장은 쌍욕을 했다.

아오 진짜!

저것들을 그냥!

동시에 권 회장의 지배력이 또 다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크르르릉!

“아악! 도망쳐!”

무덤이 크게 요동치고, 결국 무덤 안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젠장…… 젠장! 왜 아무도 눈치를 못 채는 거야. 왜……!”

아무래도 권 회장이 밖에 나오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아보였다.

***

“야이씨, 이게 뭐야.”

한편 주헌을 이용해 왕급에 오르고 아버지의 발굴단을 빼앗으려 했던 권성재.

그는 자꾸만 날아오는 핸드폰 메시지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HK 은행에서 8억을 인출했습니다.]

[10억이 인출되었습니다.]

[130억이 인출되었습니다.]

[지렁이 컴퍼니로 모두 입금되었습니다.]

[20억을 대출받았습니다.]

[10억을 대출받았습니다.]

.

.

“이게 도대체 뭐냐고!”

하지만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메시지는 계속해서 띠링 띠링 울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싶었지만, 의심이 가는 구석이 전혀 없었다.

아니,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는 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은행에선 이거 본인확인 안 해? 이거 제한 안 거냐고! 지렁이 컴퍼니는 도대체 뭔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람보르기니 베네노 로드스터 구매 감사드립니다.]

[50억 일시불 계약 완료]

[VVIP 고객님 감사드립니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권성재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당황한 비서가 여기저기에 알아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 ‘전산의 오류’,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가 되었다’, ‘빠른 조처를 하겠다’ 라는 말들뿐.

심지어 조사해보니 지렁이 컴퍼니는 정체불명의 유령회사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급한 대로 수사를 맡기고 돈을 회수하라고 하긴 했지만….

그럴 때였다.

띠링!

[〈난방비〉 10억 인출되었습니다.]

또 다시 날아오는 메시지에 권성재는 비명을 질렀다.

“이번엔 또 뭐야!”

까무러친 권성재가 고개를 돌리자 기겁할 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악!”

권성재는 너무 놀라 문제의 장소로 뛰어갔다.

“야! 너 그만 안 둬?!”

거기엔 권성재의 수트 자켓을 불태우고 있는 동아줄이 있었다.

심지어 장작까지 모아다가 군고구마나 땔감을 태우듯이!

권성재는 거품을 물었다.

“이게 지금 뭘 하는 거야!”

뭘 하기는.

[#$*&$#*!]

따뜻해? 따뜻해?

아무래도 〈난방비〉라더니 진짜 불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권성재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너 내 맞춤 정장을!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그러나 동아줄은 그걸로는 끝이 아니라는 듯, 슬금슬금 권성재의 가방을 뒤졌다. 그러더니 뭔가 퍼득 떠오른 듯, 청구서에 뭔가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권성재는 미칠 것 같았다.

“야! 그만 안 해?!”

고작 밧줄 주제에 S급 유물이라고 했던가.

‘다루기 까다로울 거라더니 이런 의미였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물론 그 광경을 보고 유재하는 배아파 죽으려고 했다.

“미치겠네! 저거, 저거 진짜 누굴 닮아가는 건지.”

하지만 곧 당황한 이설아가 주헌에게 속삭였다.

“저 그런데 단장님, 저렇게 막 뜯어내도 괜찮으세요?”

“상관없어. 내 돈 아닌 걸.”

하긴. 그건 그렇지.

주헌을 고용하겠다면 오히려 싼 값이다.

하지만 권성재는 골치가 아팠다.

‘망할, 회사에서 빼돌린 내 비상금이!’

이대로 밧줄 놈에게 영문도 모르고 빼앗길 순 없었다.

물론, 수전노 지렁이에게 들어간 돈이 과연 회수가 될 지는 의문이지만.

그런데 그럴 때였다.

“뭐라고? 그 망할 년이 지금 프랑스에 갔다고? 회사 발굴단이랑?”

“!”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전화 하나를 받은 권성재는 주헌을 보다가 쌍욕을 날렸다.

“그 계집애는 왕가의 계곡에서 아버지 찾는 거 아니었어? 왜 걔네가 오만의 무덤에 들어가려는 건데?”

그 말에 바로 뭔가를 눈치챈 주헌이 비웃었다.

왜긴 왜야.

‘양 쳰이군.’

보나마나 뻔했다.

왕가의 계곡에 파묻힌 권 회장을 찾는 것 대신 오만의 유물을 탐내는 것이다.

‘그놈도 권 회장이 없으니 발굴단이 탐나나 보군.’

그렇게 권력욕심이 많은 놈이니 자신들을 배신했겠지만.

그럴 때 유재하가 슬쩍 속삭였다.

“단장님. 단장님은 권 회장이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알아요?”

“알아.”

유재하가 기겁했다.

“진짜로?”

당연히 알지.

권 회장이 빨리 구출되어서 좋을 게 없는 걸.

진작에 파라오의 무덤에 들어가 염탐 스킬로 그의 위치를 확인했던 주헌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권 회장이 쉽게 발견되지 못하도록.

그 말에 유재하가 식겁했다.

“그, 그럼 설마 지금까지 권 회장이 발견 되지 않는 이유도……!”

“뭐 죽진 않겠지. 보나마나 불사의 유물 덕에 생명은 부지하고 있을 테니.”

이 악독한 인간 같으니라고!

‘불사라 못 죽이니까 오히려 그 불사를 이용하고 앉았네.’

그리고 주헌의 계획은 그렇게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

‘딴 놈들은 아누비스가 손을 댔지만, 권 회장은 특별히 아끼는 놈이니 직접 저주를 내려주마. 이번엔 좀 크게.’

앙심도 앙심이지만, TKBM은 탑 랭킹 5위에 드는 대형 발굴단.

장기적으로 주헌의 목표에 방해가 되는 놈들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이 일은 방해꾼을 괴멸시킬 발판일 뿐.

지금까지는 권 회장 개인을 공격했다면 이번엔 약간 다르다.

‘이번엔 네놈의 발굴단 자체를 해체시켜주마.’

아니나 다를까.

“그 노친네 찾기 전에 일을 다 끝내야 한다.”

그러자 권성재가 급하게 말했다.

“서주헌 씨. 그럼 지금 바로 프랑스로 가죠.”

“무덤에 가려고?”

“그래요. 나 거기 7대 무덤 유물 필요하거든요. 그게 있어야지 아버지 발굴단도 차지할 수 있으니까. 동생 년보다 먼저 구해야 해요.”

“글쎄. 안 될 거 같은데.”

“네?!”

“나도 가고 싶지만 지금 오만의 무덤은 EU에서 작정하고 주변에 출입제한을 걸어놨거든. 자기네가 먹을 거라고. 난 못가.”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뉴스로 소식을 접한 후, 약간 골치 아파하던 참이 아닌가.

그러자 권성재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에이씨, 알았어! 그건 내 빽을 써서 뚫어줄 테니까 같이 좀 가요!”

주헌은 아주 계획대로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딱 걸린 봉이 도굴꾼의 계획에 날개를 달아주기 시작했다.

***

“오? 까마귀의 무덤은 아마존에 있는게 아니라고?”

주헌은 지금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그것도 드물게 전용기가 아닌 일반비행기.

홀튼 가의 전용기는 원인불명의 고장으로 갑자기 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모델포스로 노트에 뭔가를 쓰며 아누비스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이 보면 미친놈처럼 물건한테 혼잣말을 하는 광경이지만, 알 게 뭐람.

“그럼 까마귀 놈은 어디에 있는데?”

[까마귀의 무덤은 표류하는 무덤이다. 무덤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어쩐지.

‘왜 기척도 찾을 수 없나 했다.’

까마귀가 갇혀있다면 지금도 이미 무덤은 생성되어 있다는 거고, 그렇다면 지도유물로도 어느 정도 탐지가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정화의 지도유물로도, 콜럼버스의 지도유물로도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최상급무덤이라 단서가 야박할 수도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까마귀의 무덤은 특이한 무덤인 것이다.

“그럼 그 표류중인 무덤을 찾는 방법은?”

[표류중인 무덤을 세상에 끌어내는 수밖에 없지.]

“방법은?”

[까마귀를 봉인한 놈들을 족쳐서 무덤을 다시 불러내게 하든가.]

“봉인한 놈들?”

[까마귀의 무덤은 까마귀 본인이 만들어 낸 게 아니다. 집이 아닌 감옥의 개념이니까. 그래서 유물들 중 재주 좋은 놈들 108개가 무덤을 설계하고 만들어냈지. 아, 참고로 7대 무덤의 유물들도 참가했고.]

그 말에 주헌은 웃었다.

지금까지 7대 무덤의 유물을 하나도 빼앗기지 않은 건 다행일지도 몰랐다.

아마 이번에 나타날 7대 무덤도 그중 하나이리라.

‘그래도 7대 무덤 유물이라면 네로, 살리에리 놈도 까마귀무덤을 만든 놈 중 하나라는 거군.’

나중에 조져서 확실히 물어보리라.

그런데 이때였다.

[잠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기내에서 위험물질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승객여러분들께서는 반드시 착석하셔서 승무원의 지시에…….]

평소와 사뭇 다른 안내방송.

‘갑자기 뭐지?’

주헌이 기이하게 여길 때였다.

“잠시 여권 좀 확인하겠습니다.”

“?”

주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 승무원을 보았다. 그리고 여권을 내밀다가 도로 회수했다.

“뭐하자는 수작이냐?”

“네, 네?”

“왜 승무원이라는 놈이 유물장갑을 끼고 있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승무원의 팔을 꺾었다.

“아, 아악!”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자 근처에서 자고 있던 단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뭐, 뭐에요?! 무슨 일……!”

그러나 그들은 곧 기겁하고 말았다. 퍼스트 클래스 안에 주헌이 있다는 게 소문이라도 난 건지, 우르르 낯익은 얼굴들이 몰려왔다.

“그만해라, 서주헌!”

“네놈이 유럽 땅을 밟게 할 순 없지.”

“네가 이번에도 7대 무덤을 가져가는 꼴은 못 본다. 아예 무덤에 가기 전에 막는 수밖에.”

나타난 것은 뜻 밖에도 TKBM의 발굴단들.

그리고 그들의 등장에 주헌은 비웃었다.

어쩐 일로 뉴욕공항에 있던 아이린의 전용기가 고장이 났나 싶었더니.

‘다 이놈들 짓이었군.’

수법을 보아하니 양 쳰의 짓인가.

‘아무래도 튼튼한 내 전용기를 한 대 뽑든가 해야지 원.’

주헌은 쓰고 있던 은밀한 비서 2탄을 탁 덮었다.

“아주 좋아. 작전 아주 훌륭해. 무덤에서 안 되겠으니까 그 전에 잡겠다는 생각? 아주 좋다 이거야.”

하지만.

“장소가 잘못됐어. 이놈들아.”

주헌은 웃으면서 주먹을 풀었다.

여기는 9천 미터 상공의 비행기였다.

========== 작품 후기 ==========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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