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2 저놈은 안 되겠다 =========================================================================
< 저놈은 안 되겠다 (2) >
아주 낯익은 이름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걔들한테 지지고 볶인 게 하루 이틀이냐.’
그런데 그 놈들이 권 회장의 재산을 꿀꺽 하려고 한다고?
‘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이거 듣던 중 재미있는 소식이었다.
왜?
자고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불구경, 싸움구경이라고 했다.
어디 그뿐이랴.
‘이거 잘하면 TKBM을 말아먹게 할 수도 있겠는데.’
주헌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렇다.
그 빌어먹을 권 회장에게는 2남 1녀의 자식이 있었다.
장남이야 TKBM의 상무로서 회사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 TKBM발굴단에도 전혀 개입하지 않았었다.
‘뭐, 관심이 없기보단 소질이 개떡같이 없던 거지만.’
판도라 측정 결과 무려 골동품급 (D급) 유물사용자.
‘그래서 유물에 관심 없는 척을 했지.’
권 회장도 상당히 실망을 했었고 말이다. 어쨌거나 그런 관계로 장남은 패스.
하지만 동생들은 전혀 달랐다.
[둘 다 네 제자였지?]
주헌은 가볍게 웃었다.
“그래봐야 잠깐 과외 선생님 해준 정도지.”
[겸손하기는.]
당시 주헌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물사용자.
비록 도둑놈 소리를 듣고 환경적인 요인으로 꾼급에 머물렀지만, 유물 다루는 솜씨만 놓고 보면 왕급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여기저기서 과외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그러니 그 제자들은 오죽 잘나갔겠는가.
율리안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차남이 속 좀 많이 썩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네 쌍둥이 누이한테도 껄떡거리고.]
그 말에 주헌은 킥킥 웃었다.
치근덕거렸으면 뭘 하나.
괜히 남매가 아니라고, 1차로 누이한테 얻어터지고 2차로 자신한테 얻어터지고 나중엔 얼씬도 못 했는걸.
어쨌든 차남은 장남과 다르게 유물을 다루는데 굉장히 뛰어났다.
하지만 그래봐야 뭐하나.
‘지 아버지하고 사이가 너무 안 좋았지.’
그래서 유물 욕심은 많지만 회사 발굴단엔 얼씬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 주헌에 의해 미래가 바뀌었다.
‘권 회장이 행방불명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없는 틈에 그 아들놈이 재산에 욕심을 내는 건가.
‘하긴. 그 노친네가 사라진 지금이 기회지.’
왜?
‘권 회장의 유물은 혈육 외엔 못 사용할 테니까.’
그렇다.
소모성 유물이야 발굴단들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속성 유물은 원래 주인 외엔 쓸 수 없었다.
주인보다 더 높은 지배력으로 지배하면 빼앗을 수도 있지만 왕급이 주인이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
하지만 혈육의 경우 드물게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까 차남 놈은 권 회장이 없는 틈을 타서 유물 창고에서 유물들을 빼갈 생각인 것이다.
그 사실이 주헌에게는 꽤나 재미있었다.
‘이거 잘하면 TKBM을 다 빼앗을 수 있겠는데.’
주헌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반짝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럼 딸 쪽은 왜? 걘 그 노친네랑 사이좋을 텐데. 웬 찬탈?”
[오빠를 지지리도 싫어하니까. 오빠한텐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주헌은 수상한 듯 미간을 짚었다.
“진짜로 그 탓이야? 딸 쪽은 유물을 쓰기도 싫어할 텐데.”
그 말에 율리안은 잠시 말문을 멈추더니 순순히 말해주었다.
[양 쳰.]
“!”
[너한테는 말 안하려 했는데 그놈이 얽혀있어. 우리를 배신한 그놈.]
주헌은 흥미로워했다.
‘슬슬 그놈이 나오는 건가.’
그 같잖은 놈.
주헌의 입꼬리가 날카롭게 이죽거렸다.
“좋아, 공명아. 그럼 하나만 더 묻……….”
그런데 이때 전화 너머로 또다시 천둥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르르르릉!
[으아아악!]
결국 듣다 못한 주헌이 짜증을 냈다.
“………야이 테러범아, 적당히 해! 귀 따가워 죽겠다! 사람을 위한다는 놈이 지금 테러를 해도 되는 거냐?”
[실례야. 건물만 부수고 있다고.]
“………….”
건물 파괴도 테러야, 이 바보야.
뭐 아무래야 상관없지.
“그래도 적당히 부숴라. 아무리 그래도 단원이 치는 사고는 전부 단장의 책임이 되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굉음이 들려왔다.
이번엔 아주 대놓고 건물을 부수는 소리였다.
쾅쾅쾅쾅!
이윽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절규.
[으아아악, 쟤 갑자기 왜 저래! 도망쳐!]
[책략왕이 아주 건물을 엿가락으로 바꿔먹으려고 한다!]
“…………….”
이 자식을 콱.
“………야. 지금 너 뭐하는 거야.”
[응? 왜? 단원의 사고는 단장의 책임이라며.]
“꺼져. 너 이제 내 단원 아니야.”
진짜 여동생이랑 약혼녀 찾아서 콱 꼬셔버려야지.
그럴 때였다.
말은 그렇게 해도 판도라의 비리 공간만 골라서 불태우던 율리안이 말했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는데.]
“뭔데.”
[괜찮겠어?]
“뭐가?”
[TKBM 아들딸하고 연루된 일이잖아. 괜찮겠냐고.]
“괜찮고말고. 후계자 다툼을 잘 이용하면 TKBM을 먹어치울 수도 있어.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 손해는 먹일 수 있어.’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율리안은 주헌이 토사구팽당한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TKBM놈들은 우리들의 죽음을 미리 알면서도 방관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TKBM의 모두가 자신들을 배신한 셈이었다.
그 사실을 주헌이 모르지도 않을 터. 그러니 그 분노에 본인이 잡아먹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주헌은 분노에 잡아먹히기는커녕, 꽤나 유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공명아. 괜찮으니까 너희들은 닥치고 그냥 날 따라와. 내 최종 목표는 복수가 아니야.”
그 말에 율리안은 괜한 질문을 했다는 듯 웃었다.
[유물소지신고서는 몽땅 불태우고 오지.]
“하는 김에 유물도 훔쳐와.”
[허. 그건 니 일이고. 아무튼 그 아들 딸내미들은 어찌 할 생각이야?]
뭘 어찌하긴.
“한때 내 제자인데 귀여워해줘야지.”
니들은 내 먹이다 요놈들아.
***
“이 사람들이 서주헌네 발굴단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요주의해야 할 인물들이죠.”
“흐음.”
권주희.
권 회장의 막내딸로 올해 고3인 그녀는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아 유재하? 얘가 그 복원사죠? 와 귀여워. 훈남이네. 다음은 이설아…… 씨이, 얜 지가 연예인이야? 일반인이면서 왜 쓸데없이 이뻐.”
“주희 양.”
“그리고 서주헌… 와 대박. 아저씨. 저 그냥 이 사람이랑 약혼하면 안돼요? 윤시우 아저씨 버리고.”
그러자 양 쳰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주희 양. 집중해주세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데 조력자들 목록입니다.”
“흐음 율리안 밀러… 우와 안경 쓴 모습은 찐따 같았는데 벗으니까 잘생겼어! 꺄, 아이린 홀튼! 나 얘 너무 예뻐서 좋더라!”
“커흠!”
양 쳰은 다시 한번 거칠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권주희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
“아, 알았어요. 제대로 볼게요.”
동시에 양 쳰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양 쳰에게 장남의 지시가 떨어졌다.
‘남동생 놈과 윤시우 놈의 행동이 수상하다. 아버지를 반드시 찾아내고 유물들을 지켜라.’
본인은 유물에 소질이 없으니 믿을 만한 부하를 시킨 것이다.
‘아마 놈들은 아버지의 유물을 노릴 거다.’
그렇게 말을 했던가.
그래서 양 쳰은 차남의 견제 역할로 막내딸을 택했다.
‘차남이나 막내딸이나 왕급 실력자니까.’
하지만 양 쳰은 쯧 혀를 찼다.
‘이 아이라면 이번에 회장님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래서야 원.
“알았습니까? 주희 양의 오빠와 약혼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윤시우와 약혼한 사이였다. 뭐 약혼이라고 해봤자 집안끼리 멋대로 추진한 일이라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어쨌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회장님 발굴단의 가치는 이미 글로벌 기업에 가깝고, 그 무력은 한 나라의 군사력입니다. 권 회장님이 회사만큼 아끼시는 거죠.”
“……….”
“그러니 주희 양이 아버님의 발굴단과 유물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전 유물은 질색….”
쾅!
양 쳰이 제 유물로 테이블을 사납게 내리쳤다.
“만약 아버님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시면 주희 양은 최악의 경우 TKBM의 자회사 중 그 어떤 것도 물려받지 못할 수도요.”
그의 눈빛이 무서워 권주희는 살짝 움찔했다.
물론 양 쳰의 경고에 권주희도 이를 갈았다.
‘유물은 질색이라도 할 수 없지. 아버지의 회사는 내 거야.’
유물을 사용해보니 인생이 너무 쉬워졌다. 그래서 아버지의 호텔이나 패션 회사 중 하나를 자신이 물려받아 경영하는 맛으로 살려 했건만.
그러나 이번엔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알았어요. 알았어. 귀찮아도 할 수 없지.”
그 대답에 양 쳰은 비릿하게 웃었다.
신문에는 이런 글귀가 돌고 있었다.
[권 회장 행방불명 2주째.]
[권 회장의 발굴단과 수많은 유물들은 누가 맡게 되나.]
‘서주헌. 이 아이를 이용해 그때의 굴욕을 갚아주지.’
그뿐인가. 할 수 있다면 이 아이를 이용해 자신이 발굴단의 권한을 휘두를 의향도 있었다.
그렇게 권 회장의 재산 앞에 하이에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
“하… 씨, 에드 영감한테 보낼 유물은 여기까지 맞죠?”
“그래, 맞아.”
한 편 유재하는 헉헉거리면서 유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주헌은 유물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 자신이 쓸 유물.
두 번째. 경매에 팔아버릴 유물.
세 번째. 사업 아이템으로 개량할 유물.
세 번째의 경우, 예로 들어 1시간만 자도 8시간 잔 효과가 있는 C급 꽃잎 유물이 있다 치자.
그럼 그걸 개량해서 디퓨저로 만드는 것이다. 그걸 일반인들에게 유통한다.
“아오씨, 오늘 분량 끝! 단장님! 이제 이거 복제한 것들 에드 영감한테 보냅니다!”
“그래.”
“자, 일이다. 밧줄아!”
물건을 던져주자 깡총 뛴 동아줄이 눈을 반짝이며 짐 덩어리를 받았다.
“주소는 여기고, 잘 다녀와.”
그렇게 유재하가 동아줄의 입에 천 원짜리 지폐를 물려주었다.
[#$**!]
받았어! 받았어!
돈을 받은 동아줄은 신이 나서 돼지저금통에 돈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씰룩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거참 더 받아가도 되는데.”
유재하는 슬쩍 동아줄의 돼지저금통을 훔쳐보다가, 몰래 흔들어보았다.
“오우, 대박. 엄청 무겁네, 이거.”
꽤나 많이 모은 모양이었다.
이 때였다.
뭔가 떠올랐는지, 유재하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씨익 웃었다.
“원래 이런 건 또 깨줘야 제맛이지.”
유재하는 망치로 도자기 돼지저금통을 몰래 깨보려했지만.
“야. 너도 뜯을 걸 뜯어라.”
“!!!”
유재하는 깜짝 놀라 돼지저금통을 떨어트릴 뻔했다.
“야씨, 놀랬잖아!”
유재하를 나무란 건 이설아였다.
“유재하.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빼앗아먹으려고 하냐. 너 그러다 벌 받아.”
“농담이야, 농담. 칫.”
유재하는 얼른 돼지저금통을 원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이때였다.
똑똑똑.
호텔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네, 누구세요?”
찾아온 것은 한 남자였다.
[실례합니다, 거기 서주헌 씨 계세요?]
권 회장의 차남 쪽이었다.
어린 호랑이가 악마를 찾아왔다.
***
한편 그 무렵.
쿵.쿵.
이 세상 어딘가에서 뭔가를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저 아래 깊은 땅 속.
쿵. 쿵.
그 땅굴 속에서 한 서린 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욕지거리.
“젠장…… 젠장.”
그리고 꼬르르륵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소리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젠장, 내가 어쩌다가…….”
결국 입도, 몸도 말라가는 사내가 관을 쾅 걷어차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 개 같은 서주헌!”
그래 봐야 소리가 울려서 자기 귀만 아프겠지만.
권 회장은 아직도 관 속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