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9 서주헌의 저주 =========================================================================
< 제179화. 서주헌의 저주 (5) >
죽어가는 아누비스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건 바로 길쭉한 모양의 유물, 동아줄이었다.
아무래도 동아줄은 주헌의 명령을 받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모양이었다. 사실 제멋대로 도와주고 청구서를 내미는 바람에 쫓겨난 것이었지만.
그리고 정원 쪽에서 뭔가 수상한 오라가 느껴져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
다쳤어? 다쳤어?
동아줄은 허둥지둥 유재하를 부르러 가려고 했다. 아누비스의 상태가 척 보기에도 정말 심각했다.
하지만 이때였다.
[기다려라, 밧줄. 할 이야기가 있다.]
[!]
하지만 동아줄은 또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
안 돼, 말하지 마! 몸이 부서져, 부서져!
아누비스가 발만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아누비스 본체 유물이 재가 되어 소멸하고 있었던 탓이다.
아마 자신이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한순간에 소멸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렇다고 유재하를 부르러 가자니 그 사이에 아누비스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왜?
아누비스의 현재 상태는 단순한 육신 파괴가 아니었다. 주헌이 늘 뻥뻥 부숴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유물의 핵 자체의 파괴.
그건 곧 유물의 진짜 죽음을 의미한다. 복원 될 수도, 그렇다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아니, 어디 그뿐이랴.
그 유물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런 것을 잘 알기에 울먹이는 동아줄이었다.
[#$&^[email protected]]
복원사, 복원사!
하지만 아누비스는 내심 반가웠던 동아줄을 붙잡았다.
‘이걸로 그냥 죽지는 않을 수 있겠군.’
그의 눈빛이 번득였다.
이대로 자신이 사라지는 건 상관없으나, 문제는 다른 유물들이었다.
‘분명 불똥이 튈 거다.’
자신 때문에 이미 권속의 유물들이 다 사라지지 않았나. 분명 세트나 오시리스 등 다른 이집트 유물까지 휘말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총수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그 놈은 눈에 거슬리는 것, 의심 가는 것은 모두 없애버릴 거다.’
덕분에 아누비스는 다급해졌다.
[밧줄. 복원사는 됐으니까 빨리 서주헌이나 불러다오. 어차피 이걸 고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
[사라지기 전에 서주헌에게 해줄 말이 있다. 총수에 대한 거야.]
그 말에 동아줄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못되게 굴었을지언정, 아누비스는 주헌의 유물이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그렇게 동아줄이 서둘러 움직이려는 때였다.
“이봐! 여기 유물이 있어!”
[!!]
“뭐라고? 유물이라고?”
동아줄은 까무러쳤다.
백악관 주변을 순찰하던 경비원들이 아누비스를 발견한 것이었다.
“미친, 왜 이런 곳에 유물이 있어? 고분화 징조도 없었는데!”
물론 그들이 아누비스를 찾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워낙 흉흉한 기운이 정원 쪽에 머물렀었고, 주요 정부시설에는 이미 유물테러에 대비하여 여러 유물 사용자들이 있는 참이었다.
강한 유물들의 기운을 못 느낄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개가 물건으로 변했다!”
“유물이야! 정체는 몰라도 굉장히 상급이다!”
“와, 이게 웬 유물 떡이냐!”
“빨리 사람을 불러와!”
동아줄은 정말 다급해졌다. 이대로 주헌을 부르러 가면 아누비스가 끌려가버릴 텐데!
“각하께서 좋아하시겠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슬쩍해도 되는 거지.”
곧 사람들이 아누비스를 아무렇게나 집어 들자 아누비스의 붕괴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
그걸 본 동아줄은 바로 경비원들에게 달려들었다.
[#$&*!]
저리 비켜! 비켜!
퍽, 퍽!
“아씨, 이 밧줄 뭐야!”
동아줄은 주헌을 찾으면서 훌쩍였다.
***
한 편 그 무렵.
[#&$#^&!]
“………?”
주헌은 마치 동아줄의 환청이라도 들은 듯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럴 때 미국 대통령이 주헌을 불렀다.
“하하, 이거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그는 마치 생일선물을 두둑하게 받은 어린아이 같이 웃어댔다.
“보따리 안에 있던 유물들은 우리 감정사들이 잘 확인했습니다.”
“그래요?”
“전부 진품이라고 하는군요.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저희 물건을 빼돌리려는 줄 알았죠.”
그 말에 주헌은 뻔뻔하게 웃었다.
“저희가 미국을 등질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계약도 했는데 당연히 물건을 돌려드려야죠.”
동시에 율리안은 끙 이마를 짚었다.
‘이 사기꾼.’
물건을 돌려주기는 개뿔.
‘복제품을 넘긴 주제에.’
보나마나 재하를 시킨 것이리라.
다빈치 유물을 얻었으니, 카피능력에 있어선 아주 날개를 달다 못해 가히 신급이 되었겠지!
‘그래도 설마하니 투탕카멘의 유물을 쓸 줄은 몰랐어.’
왕가의 계곡에서 파라오의 유물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새 그걸 활용할 줄이야.
‘위험한 저주는 안 걸려 있는 거 같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율리안은 일단 묵인하기로 했다.
뭐, 말로는 약혼녀와 동생 때문이라고 해도 실제론 율리안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세계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전쟁이 일어날 바에야 두통, 설사가 낫지.
오히려 유물을 가까이 해서 설사병이 생기면 수뇌부들도 경각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아. 유물은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대통령이 웃었다.
“저희 유물을 되찾아주신 보답으로 서주헌 씨에게 도움을 드리죠. 어쨌든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주헌은 괜찮다며 웃었다.
“저희는 권 회장의 물건을 어쩌다가 가져온 거고, 그 안에 미군의 유물이 있었을 뿐이라니까요.”
“그런데도 권 회장 측은 저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군요.”
“무덤 안은 감시꾼이 없으니까요. 미군의 유물을 TKBM이 전부 슬쩍 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주헌이 얄밉게 훈수를 두자 미국 대통령은 그럴 수도 있다며 쉽게 납득했다.
“TKBM은 현재 전 세계 톱 랭킹 3위에 드는 발굴단이지만, 그만큼 독이 올라있죠.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더니 미국 대통령이 부하에게 지시했다.
“TKBM은 특별히 잘 살펴요. 뭐 하나 빼먹지 말고 깐깐하게. 걸리는 게 없는지, 비리 기업에 해당하는지 잘 확인하고.”
“확실히 깨끗한 기업은 아니라 털면 나오긴 나올 겁니다.”
비서실장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를 리도 없는지라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기업이 아무리 돈을 잘 번다고 해도 국가에 찍히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진다.
없는 범죄도 끼워 맞춰서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진짜 혐의가 입증되면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뭐, 그 모습을 보며 율리안은 한숨부터 쉬었지만.
‘역시 우리 단장. 독하다 독해.’
율리안 본인도 바라는 일이긴 했다.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율리안이 기억하는 TKBM의 비리만 해도 열 손가락을 넘어갔으니.
그럴 때였다.
“그럼 주헌 씨에게 특별히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미국 대통령이 주헌에게 특별한 사업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였다.
[#$*&$#*!]
주인님, 주인님! 큰일 났어!
역시 동아줄의 목소리가 또 환청처럼 들려왔다.
주헌은 기이하게 여기다가 문득 밖을 보았다. 밖에는 경비들이 분주하게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헌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설아가 바로 캐치하고는 슬쩍 다가왔다.
“걸리시는 일이라도?”
“아니.”
잠시 생각하던 주헌은 슬쩍 자신의 품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라져 있는 아누비스의 유물.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이 자식.’
물론 아누비스가 슬쩍 사라졌다는 건 주헌도 이미 아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사라지는 걸 묵인해줬다고 해야 하나. 아누비스를 풀어줌으로서 얻을 수 있는 동향 정보들이 있을 테니까.
이를테면 총수의 정보 같은 것.
하지만.
‘좀 심각한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평소라면 단순히 검둥이가 홧김에 기물파손이라도 하고 다니나, 노상방뇨라도 하나 싶겠지만, 이번은 다르다.
‘갑자기 신급 유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주헌은 바로 아누비스를 소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누비스는 소환되지 않았다. 제 딴엔 신급 유물이라고 또 뻐팅기고 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소환에 응할 수 없습니다.]
[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응할 수 없는 상태라.
주헌은 쯧 혀를 차며 설아에게 물었다.
“재하 놈은?”
“네? 아… 백악관 직원한테 작업 걸고 있는 것 같던데요. 아주 깨가 쏟아져요.”
얼씨구.
“됐고, 당장 귀 잡고 끌고 와. 보낼 곳이 있다.”
“네?”
이설아는 의아했다. 평소 순찰이나 전령 일은 전부 자신이 맡았는데.
왜 하필 그놈을?
그리고 더 의아한 것은 주헌이 어째서인지 까마귀의 기억 유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
“아야야야, 어디가! 어디 가냐고! 말은 해주고 가! 아씨 한참 제니하고 좋은 이야기 중이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그 제니인지 포니인지가 소중해, 우리 단장님의 명령이 소중해?”
“아이씨! 당연히 단장님 쪽이긴 하지만, 아오 아파!”
유재하는 설아에게 귀를 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설아가 주헌의 말대로 몰래 향한 곳은 백악관의 정원.
“!”
그런데 그들은 거기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동아줄?”
그렇다.
낯익은 밧줄이 경비원에게 붙잡혀 낑낑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재하와 설아를 본 동아줄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
여기야! 여기야!
물론 경비원들은 동아줄을 욕했다.
“젠장, 이 자식 때문에 유물을 들고 갈 수가 없잖아!”
“뭐하는 놈이야 도대체!”
왜 이런 곳에 동아줄이 있는가 싶었지만, 둘은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었다.
“와, 이거 역시 신급 유물이잖아!”
“신급 유물만 있는 게 아니야! 여기 널린 게 다 유물 잔해라고!”
“빨리 복원사들 불러와!”
“복원하면 다 우리 거라고!”
정원에는 수십 개의 유물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전부 이집트 양식의 유물. 그리고 무엇보다 유재하는 그 유물들 사이에 있는 한 유물을 보고 기겁했다.
“미, 미친! 아누비스? 저 녀석이 왜!”
그제야 그들은 주헌이 자신들을 여기로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동시에 다급해진 유재하가 경비원들을 밀쳤다.
“야씨! 다들 안 비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 손대지 말라고, 다 부셔져 이것들아!”
그렇게 유재하가 아누비스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 때였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유재하에게 화를 내면서 다가왔다.
“당장 손 떼! 야매가 지금 뭘 건드리는 거야!”
“!”
이설아는 낯익은 얼굴에 아차 싶었다.
‘오피셜 복원사들이잖아!’
전 세계에 이름을 올린 공식 복원사들은 약 500명 남짓.
그들은 SS부터 A급까지 이루어진 복원사들로, 모두 판도라나 각 정부 그리고 탑 발굴단에 고용된 엘리트들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야매로 취급당하면서 무시 받는다.
동시에 이설아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하필 저 녀석들이 여기에…!’
이해는 갔다.
오늘은 주헌에게서 유물을 건네받는 날. 당연히 백악관 측에서 공식 복원사들을 불러낸 것이리라.
‘실력은 확실한 놈들이지.’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비키라면서 아누비스 유물 주변에 다가왔다.
그러더니 유재하를 힐끗 살폈다.
“복원도구를 들고 있는 걸 보니 복원사 나부랭이 같은데.”
“신급 유물을 야매가 건들면 죽도 밥도 안돼요. 판도라가 인정한 전문가들만 S급 이상 유물을 만질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좀 꺼져요.”
유재하는 황당했다.
“이봐요, 이거 우리 단장님 유물이거든? 그리고 난 그 전속 복원사거든? 왜 니들이 복원을 한다, 만다야?”
“허.”
그들은 뭔가 말하려다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얘, 얼마 전에 장 리처드 교수님을 깜빵에 넣은 그 햇병아리네.”
“복원계의 롤모델을 깜빵에 쳐넣으니까 속이 시원해요?”
“됐으니까 비켜요. 복원하는 방법은 아나 몰라.”
유재하는 결국 밀쳐졌다.
그러더니 그들은 백악관에 오면서 데려온 기자들에게 말했다.
“복원하는 거 잘 찍고 기록 해둬요. 신급 유물을 만질 기회는 드무니까.”
“알겠습니다.”
이들은 S급, SS급 복원사들.
하지만 의사들도 일정 횟수 이상 수술 경험이 있어야지 전문의로 인정을 받는 법.
“자, 서둘러!”
그런 만큼 신급 유물을 복원하면 굉장한 커리어가 된다.
‘이걸로 수석 복원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신급 유물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니 이들이 난리를 치는 이유도 모를 바는 아니지만…….
“자 서둘러요! 복원이 잘 되면 서주헌 씨에게 협상을 합시다.”
“그리고 서주헌 씨의 유물이 아닌 건 복원해서 대통령께 전해드리고요.”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봐야 늘 하던대로 하면 되는…….”
하지만.
유물을 복원하려던 복원사들의 낯빛이 하나둘씩 변했다.
“뭐, 뭐야 이거.”
“왜, 왜 안 고쳐지지?”
복원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하자 함께 온 유물 사용자들도 당황했다.
“왜, 안 돼요?”
“아니 그게….”
“당신들 상급 복원사들 아니야? 신급 유물도 복원 해봤다며!”
“이상하다, 이거 그냥 부서진게 아니야!”
“뭐야, 못해요?”
“아, 아니에요! 도구가 안 좋은 거예요! 할 수 있…!”
그리고 이때였다.
“야.”
“!”
“니들 안 돼지?”
빡친 유재하가 얼굴을 씰룩이며 사납게 웃었다.
“꺼져. 돌팔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