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76화 (176/409)

00176 서주헌의 저주  =========================================================================

< 제176화. 서주헌의 저주 (2) >

“네, 여보세요? 누구시죠?”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번호도 처음 보는 번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헌은 웃고 있었다.

아는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인의 목소리는 아니다.

‘틀림없이 미국의 대통령이다.’

그렇다.

바로 주헌이 펜타곤에서 만나기로 했었던 그 대통령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 너머로 미국의 대통령이 말을 건네왔다.

[제이콥 그레이요. 어제 만나기로 했었던.]

어쩐지 화를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에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핸드폰에 귀를 대고 있던 유재하는 바로 동료들에게 뛰어왔지만.

“미친, 대통령이래. 대통령! 대통령이 직접 전화해왔다고!”

동시에 이설아는 바짝 긴장했고, 율리안은 그것보라며 주헌을 째려보았다.

그건 당연했다.

‘미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쯤 눈치챘을 거다.’

주헌이 미군의 유물을 포함, 무덤의 유물만 싹 쓸어갔다는 것을.

어디 그뿐이랴?

‘사기 칠 상대가 너무 나쁘다.’

그렇다.

제이콥 그레이.

최근에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으로, 율리안도 기억하는 또라이 대통령 중 하나였다.

‘과거에 유물사용자들을 아주 박살을 냈던 인간이다.’

그래서일까.

“서주헌, 당장 그만둬! 상대가 너무 안 좋아.”

율리안이 작은 목소리로 말렸다. 그 모습에 충직한 부하 유재하가 율리안을 잡아 눌렀다.

“아, 쫌! 우리 단장님 댁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거든? 댁이랑 비교도 안 되거든!”

그렇게 주헌을 찬양하던 유재하는 율리안을 잡아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으르렁거리며 본론을 말했다.

“야 이 방해꾼아. 가만히 있으라고. 나 미국 대통령이랑 친해져서 싸인 비싸게 팔 거거든? 그레이 대통령 빠돌이 빠순이들 많다니까? 어?”

율리안은 뒷골이 땡겼다.

이 자식, 지금 싸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제이콥 그레이가 어떤 인간인지 넌 몰라서 그렇지!”

“그럼 넌 아냐? 스토커야? 뭐, 나도 막말 쩌는 대통령이라서 싫긴 해. 그래도 사이다라고 좋아하더라고.”

아이고, 그래. 그냥 막말만 쩔면 애교 수준이지.

다혈질에 아주 치졸한 인간이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나 싶을 정도로.

게다가 유물에는 아주 호의적이라서 굉장한 골칫덩어리였다.

왜?

훗날, 세계는 일반인들도 유물에 의존하는 사회가 되었다.

동시에 각 국가 간에 유물 소유 다툼이 시작됐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이권 싸움.

그중에서 그레이 대통령은 세계 최강국이라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타국의 유물과 무덤에 간섭.

이에 반발한 중국과 러시아 등 군사적으로 강한 국가들 사이에 신제국주의 양상까지 띄게 되었다.

‘모두 그레이 대통령이 시작한 일이지.’

게다가 방해하는 유물사용자는 거침없이 단두대로 보냈고.

사실 생각해보면 그런 놈이 미국의 대통령이었으니 전쟁왕 키이라가 대놓고 설쳐대며 사황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뭐 지금은 키이라를 진작에 아웃시킨 것 같지만.’

하지만 이상하긴 이상했다.

‘그레이가 대통령이 된 건 맞지만 그것도 앞으로 5년 후의 이야기인데…’

기억대로라면 평화의 상징이라 불리던 기존의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미래가 바뀌었나.’

바뀌는 미래는 어째 인간들에게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인 것 같았다.

마치 인간들을 없애기 위해 유물들이 난이도를 올리는 것처럼.

아무튼, 그런 또라이 대통령이다 보니 자칫 주헌이 사기 쳤다는 게 들켜봐라.

‘그 양반 성격으로는 3대를 멸하려고 할 거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은 주헌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서주헌 씨,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판도라 발굴단과 CIA는 지금 무덤 안에서 고생 중이라고 하는데요.]

꽤 저돌적이고 강압적인 목소리.

하지만 주헌은 눈 하나 깜짝 않고 태연하게 지껄였다.

“걔네 아직도 거기 있어요?”

[뭐라고요?]

꽤나 유창한 발음.

대통령은 주헌의 답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당신은 역시 무덤에서 나왔다는 거군요.]

“네. 무덤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저도 말 돌리는 거 싫어해서.”

[실례지만 서주헌 씨가 우리 미국의 유물도 슬쩍 가지고 튀었다는 말이 있어서요.]

당장에라도 군을 출동시킬 듯한 목소리였다.

결국 율리안은 올 것이 왔다는 듯 이마를 짚었고, 이설아는 침을 꿀꺽 삼켰으며 유재하는 내심 두근거리는 눈으로 주헌을 보았다.

그러자 주헌은 너무하다면서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

“너무 하시네요. 저희도 단원의 목숨이 위험해 어쩔 수 없이 유물을 포기하고 도중에 나온 겁니다. 유물도 못 가지고 나와서 우리가 얼마나 속상한지 아십니까?”

속상하기는 개뿔이.

무덤에서 나오자마자 쳐 웃었잖아! 어쩌면 자식이 태어나는 것보다 더 기쁘게 웃었잖아!

‘참, 저 양반은 연기자 해야 해, 진짜.’

얼굴도 되겠다, 연기도 되겠다, 그럼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하지만 주헌이 연기를 하거나 말거나 상대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이때였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서주헌 씨.]

“뭘요?”

[금각은각 호리병 유물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 안에 우리 미군의 유물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주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것들이 어떻게 알지?

그런 눈빛이었지만 곧 뭔가를 깨달은 건지, 율리안에게 속삭였다.

“너 설마 진짜로 유물소지신고 했냐?”

“그럼 안 해?”

“그 유물소지신고서라고 쓰고 노예계약이라고 읽는 종이에 싸인했다고? 너 돌았냐?”

“………….”

율리안은 얼굴을 짚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짓을 했다고 여기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렇다.

유물소지신고.

유물의 관리를 위해 판도라에게 유물을 신고하는 제도다.

기한은 획득 후 2주일 이내. 혹은 출국하기 전에 반드시.

신고가 안 된 유물은 공항에서 폭발물에 준하는 취급을 받아 감옥 신세를 져야 했다.

‘유물을 관리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글쎄.’

단순히 무기를 관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판도라의 유물소지신고서에는 함정이 있다.’

얼핏 보면 무기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서류에 사인으로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서류의 내용도 큰 문제는 없었고.

하지만 신고서에는 인간들은 읽지 못하는 조항이 툼글리프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 서류에 서명한 인간과 신고된 유물은 모두 판도라에 귀속된다.]

즉 노예계약.

실제로 10년 후, 판도라에서 신고자들과 그들의 유물을 멋대로 조종하는 사건이 있었다.

마치 최면을 건 것처럼.

그 사건은 판도라 게이트라고 불리며 온갖 의혹이 돌았지만, 판도라는 증거가 없다며 잡아떼지 않았나.

그리고 유일하게 유물소지신고서에 원인이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주헌 뿐이었다.

왜?

툼글리프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으니까.

‘권 회장도 내가 말해주고 나서야 판도라를 멀리하기 시작했지.’

어쨌거나 유물소지신고를 하게 되면 노예계약 뿐만 아니라, 유물에 이상한 장치를 달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판도라가 몰래 해킹 및 원격조작 프로그램을 깔아둔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즉.

‘이 호리병도 판도라에게 감시받고 있는 거겠지.’

당연히 내용물도 판도라 측에서는 알아챘다는 의미.

[서주헌 씨? 목소리가 안 들리는데요.]

미국 대통령의 부름에 주헌은 슬쩍 율리안을 쏘아보았다.

“어쩔 거야, 너.”

율리안은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들킬 거라고 했잖아. 소지신고를 한 이상 유물사용자들은 판도라의 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그러게 왜 신고했는데. 믿을 놈을 믿어야지, 이 똘추야.”

“뭐야? 나는 시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를……….”

그렇게 항변하던 율리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알았어. 판도라에 가서 내 유물소지신고서 전부 불태우고 올 테니까 그렇게 한심하게 쳐다보지 말래? 어?”

“오케이. 처리 잘해라. 판도라에 쳐들어가는 김에 유물도 좀 몇 개 가져오고.”

“야!”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주었다.

어차피 율리안은 걱정되지 않는다. 충분히 뒤처리할 실력도 있고, 판도라의 노예가 되는 것도 내 일이 아닌걸 뭐.

‘그래도 이번 일은 처리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주헌은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정 그렇게 말씀하시면 호리병 가져가세요. 마음껏.”

그 환한 미소에 유재하는 몸을 떨었다.

감히 왕의 보물을 건드는 자.

왠지 파라오의 저주가 아니라 서주헌의 저주를 받게 될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니겠지?

***

한편 그날 밤.

동아줄은 오늘도 어김없이 주헌의 옆에서 자기 위해 침실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슬금슬금 주헌의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주헌은 아직 침실에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폴짝!

동아줄은 그냥 침대에서 주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때였다.

[또 어딜 기어 올라오는 것이냐, 밧줄.]

달기가 꼬리로 철썩 동아줄을 떨어트렸다. 동아줄은 왜 이러냐며 낑낑 거렸다.

[#**!]

나도 옆에서 잘 거야! 잘 거야!

그러나 달기는 동아줄을 들고 방문 밖에 휙 던져버렸다.

[최소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려무나.]

쾅!

방문은 닫혀버리고, 동아줄은 시무룩해졌다.

그러고 보면 동아줄은 달기나 아이린, 이설아가 참 부러웠다.

왜?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야. 나 잔다.”

아직 7시 밖에 안 됐는데, 주헌이 인상을 쓰며 돌연 자러 가겠다는 말을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본 유재하가 뭘 알아차린 건지 갑자기 여자로 둔갑시킨 베개 하나를 쥐어주었다.

“또 외롭다고 엄한 사람 안지 말고 이거나 안아요. 알았어요?”

“……….”

물론 여자 베개는 불쌍하게도 북북 찢어지고 말았다.

그렇다.

주헌은 여러 가지의 유물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리스크를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외롭다며 주변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자버리는 것이었지.

상대는 가리지 않았다. 그냥 옆에 있다가 걸리면 그날로 아웃. 덕분에 유재하도 옆에 있었다가 졸지에 죽부인이 될 뻔했다.

하물며 비즈니스 자리에서 리스크가 발동되어서 아찔한 적도 많았다.

물론 주헌의 리스크를 알게 된 이설아와 아이린이 서로 눈을 번득였지만.

‘참 좋은 리스크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뭐, 주헌이야 아이린과 이설아가 있어도 리스크 따위에 농락당하는 게 싫어 독방에 들어가 버렸지만, 그러면 뭘 하나.

‘이건 기회야!’

이설아와 아이린은 주헌에게 리스크가 닥친 것 같으면 일을 중단하고 주헌에게 바로 달려갔다. 그리고 먼저 들어가 방문을 잠그려고 싸웠다.

동아줄은 그런 둘이 부러웠다.

인간의 몸이었으면 자신도 똑같이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일까, 동아줄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유물을 찾아갔다.

[#**!]

인간으로 변신하는 방법을 알려줘! 알려줘!

그러자 쿨쿨 자고 있던 아누비스가 코웃음을 쳤다.

[S급 유물 이상은 전부 변신이 가능하다. 딱히 배우지 않아도 손가락 움직이듯이 자연스럽게.]

[#*&$#*!]

하지만 난 안 되는데…….

그러자 아누비스는 같잖다는 듯이 비웃었다.

[네 놈은 원래 S급이 아니었잖느냐. 진화 따위나 하고. 돌연변이니까 방법을 모르는 거겠지. 아마 평생 모를 거다. 감히 돌연변이 주제에 어디서 나대나.]

그 말에 동아줄은 시무룩해졌다.

아누비스는 이쯤이면 체념하고 돌아가겠지 하고 다시 잠에 들려고 했다.

하지만.

[#**&*!]

그럼 내가 알 때까지 알려줘! 알려줘!

아누비스는 신이 난 동아줄에게 목이 졸려버렸다.

[커, 커헉! 그만. 그마아아안!]

그리고 아누비스가 당하거나 말거나 세트와 오시리스는 TV와 치킨에 빠져 있었다.

[컥! 컥! 목을 풀어줘야 말을 하지. 이 천한 놈이!]

유일하게 그런 아누비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따오기 토트 유물.

그래봤자 다리에 사슬이 묶여 어디 도망도 못가는 신세였지만.

‘이건 동물 학대다, 이놈아.’

그렇게 투덜거리던 토트는 아누비스를 괴롭히는 동아줄을 보았다.

‘신기하군. 기껏해야 특징도 없는 동아줄이 인지도 높은 신급 유물을 저렇게….’

지식의 신 토트에게는 뭔가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묘하게 까마귀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였다.

[커허어어억! 토트, 토트! 나 좀 살려줘!]

그걸 보며 토트는 한숨을 쉬었다.

으이구, 사단장이라는 놈이 기껏해야 밧줄 놈한테!

그럴 때 괜히 지식의 신은 아니었는지 토트가 이렇게 말했다.

[이봐 거기 밧줄 놈. 그만해라. 인간으로 변하는 유물이 있긴 한데. 그거라도 알려줄까?]

그 말에 동아줄이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있어?

========== 작품 후기 ==========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