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5 서주헌의 저주 =========================================================================
〈 제175화. 서주헌의 저주 (1) 〉
“왜? 미군하고 계약 했잖아. 미군의 유물을 찾아서 돌려준다고. 다빈치 유물만 얻으면 끝 아니었어? 나머지는 돌려줘야…….”
그 말에 주헌이 코웃음을 쳤다.
그게 뭔 개소리야?
“우리가 왜? 아니, 내가 왜?”
너무나도 당당한 주헌의 오리발에 율리안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왜냐니? 미군이랑 계약했잖아. 고분화에 삼켜진 펜타곤의 유물을 발견하면 되돌려주기로.”
율리안의 말에 주헌은 신랄하게 비웃었다.
“그걸 아깝게 왜 돌려줘. 넌 그렇게 죽고 나서도 내 성격 아직도 모르냐?”
아니, 모를 리가 없지.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치가 떨릴 정도로 잘 알지. 그래서 주헌과 매번 치고 박고 싸운 것이 아닌가.
“잘 들어. 니가 양아치 짓만 하지 않았어도 하루에 실리는 범죄 기사들의 숫자가 절반은 줄었을걸?”
“내가 뭘?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허! 너 양심은 있냐? 니가 친 사고, 내가 수습하느라 고생한 건 하나도 생각 안 나지?”
“너 나 몰래 뭐 했었냐?”
“아씨…… 내 혈압!”
율리안은 뒷골을 잡았다.
“아 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넌 원래 비즈니스로 사기를 치진 않았잖아.”
“누구야, 그거?”
유재하의 볼멘소리에 율리안이 속삭였다.
“오히려 사기를 치고 다녀서 신용도가 낮았던 건 재하…….”
그러나 지금은 호구왕이 된 유재하를 힐끗 보며 말했다.
“계약 사기는 위험하니까 안 하던 거 아니었어?”
“뭔 개소리야? 그땐 밑장빼기 해봐야 그 노친네만 이득을 보니까 안한 거였고. 월급도 쥐꼬리만 한데 내가 뭣하러?”
“서주헌!”
“알았어? 한번 발견한 유물은 번듯한 이유가 없는 이상 전부 내 거야. 물론 이 유물은 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고. 그리고.”
주헌은 종이 한 장을 율리안에게 던져주었다.
“이건….”
그건 미군이 자신들의 유물이라며 사진을 찍어둔 유물의 자료였다.
하지만 거기엔 주헌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2030년, 중동전쟁에 사용]
[2033년, 한반도 전쟁에 사용]
대충 그런 식의 메모였다. 그리고 그 메모를 본 율리안이 주헌을 보자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그렇게 써두니 기억나지?”
그래, 모를 리가.
‘전부 앞으로 사용될 물건들이다.’
괜히 미국에 전쟁왕 키이라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주헌이 웃었다.
“어차피 되찾아줘도 전쟁에 쓰일 물건들이야. 그럴 거면 차라리 내가 쓰는 게 천만 배는 유용해. 너도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건 싫을 거 아냐? 그러니까 협조해.”
얼씨구, 말은 잘한다.
“그냥 유물이 탐나서 그런 거 아냐?”
“그래서, 싫어?”
“……아, 그래. 좋다 치자. 하지만 계약서는? 분명히 미군이랑 계약서를 썼잖아! 그건 어떻게 처리하려고!”
누가 법조계 인물이 아니랄까 봐 계약에 민감한 율리안이었다.
그 말에 주헌은 율리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물론 계약은 했지.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미군들의 유물이 있다는 거야?”
어디에 있기는!
“저기 있는 건 다 뭔데!”
율리안은 호리병을 가리켰다. 그건 아까 전 무덤에서 유물들을 빨아들인 금각은각의 호리병이었다.
“미군의 유물은 아까 다 저 호리병 안에 들어갔잖아! 눈으로 확인했거든!”
그렇다.
유재하가 빼앗은 권 회장의 유물에는 분명 미군의 유물도 섞여있었다.
먼저 무덤에 들어온 TKBM이 미군의 유물을 먼저 발견해서 챙겨놨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주헌 일행이 스틸해버린 것이고.
하지만 주헌은 시치미 뚝 떼면서 유재하를 보았다.
“재하야. 이 호리병 안에 미군의 유물들었나?”
“아뇨? 전 권 회장 놈 유물을 빼앗아 온 건데요.”
율리안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것들이!
주헌은 율리안의 등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알았냐? 어째서인지 호리병에는 미군이 의뢰했던 유물과 똑같은 유물이 담겼지만, 그건 우연의 일치다. 엄청난 우연의 일치.”
“잠깐…!”
그 말에 이설아도 천연덕스럽게 끼어들었다.
“세상에, 그럼 미군의 유물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몰라, 바다에라도 가라앉았겠지.”
결국 듣다 못한 율리안이 외쳤다.
“조사해보면 다 들통날 거야!”
“안 들켜.”
“뭐?”
“너만 입 닥치고 있으면.”
주헌은 방긋 웃었다.
결국, 율리안은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난 사기는 용납 못 해. 니가 그러려고 해도 내가 사실을 폭로하겠어.”
“어떻게?”
“그 호리병을 조사해서…”
“아, 그러고 보니 이 호리병 소유주 너지?”
“…………?!”
“성실한 놈이니까 판도라에도 소유주 신고 제대로 신고했겠지? 미국이 조사하면 다 나오겠지?”
“………!”
“그럼 도둑놈이 제 발로 자백하러 가는 셈이네? 내 말 틀려?”
율리안은 한 대 얻어맞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서주헌 이 자식.
과거보다 질이 훨씬 더 나빠졌다!
어디 그것뿐인가!
원래도 주헌이 유물에 욕심이 많았던 것은 있었다. 인간이 돈에 욕심을 가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도 옛날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무슨 반짝이는 물건에 환장하는 까마귀 놈도 아니고!
‘이 자식, 실력만 업그레이드된 게 아니라 이상한 부분까지 업그레이드되어버렸어!’
율리안은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때 유재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요. 권 회장은요? 어떻게 됐어요?”
“그딴 거 알 게 뭐야?”
권 회장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주헌의 설명에 율리안이 대신 답해주었다.
“도망쳤겠지. 권 회장을 가둔 관짝은 무덤의 함정이거든. 안타깝게도 무덤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는 구조야.”
“그래요?”
“그래. 이제 유물도 가지고 나와서 무덤도 사라졌겠다, 지금쯤이면 TKBM이랑 같이 철수하지 않았을까?”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유재하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 무덤 아직 안 사라졌는데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한편 그 무렵.
TKBM 발굴단은 똥줄을 태우며 무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회장니이임! 어디 계십니까! 회장님!”
“저희 목소리가 들리시면 대답해주십시오!”
주헌에 의해 파라오와 토트의 유물이 전부 도굴 당해버린 무덤 안.
무덤에서는 지금껏 전혀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덤을 이루고 있던 유물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덤은 아직도 멀쩡했던 것이다. 심지어 함정도 정상적으로 발동하고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주헌이 유물을 모두 끄집어낸 순간, 무덤이 무너져야 정상.
그래서 무덤이 아직 클리어 되지 않았다고 믿는 TKBM 발굴단은 애타게 권 회장을 찾고 있었다.
“회장니이이임!”
“나참, 도대체 그 무거운 황금 관이 어디로 간 거야!”
“파라오의 관이었다며! 그걸 왜 못 찾아?!”
윤시우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쳐댔다.
권 회장이 갇혀있던 관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권 회장이 순간이동 유물을 써서 탈출했나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수색 유물이 이 주변을 가리키고 있어요! 분명 이 근처일 텐데…!”
“젠장, 여긴 아까부터 다 돌아다녔잖아! 도대체 어디 계신 거야!”
어디기는.
쾅쾅쾅!
“여깄다고 이놈들아!”
권 회장은 답답함에 관짝을 쾅쾅쾅 치고 있었다.
이 좁아터진 관에 갇힌 지도 벌써 몇 시간 째.
권 회장은 속이 터져가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안 들리냐고!”
그렇다.
권 회장은 자신을 찾는 수색팀 근처에 있었다.
그것도 바로 밑에!
주헌이 유물들을 가지고 나가자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바닥에 매몰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은 곳에 매몰된 것은 아닌지라 발굴단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회장니이임! 어디 계십니까!”
이것들이 듣지를 못하니 원!
“진짜 이 등신들!”
어떻게 되먹은 관인지 유물은 안 통하지, 지배력도 안 먹히지, 물리적인 힘도 안 통하지!
“서주헌. 진짜 나가면 가만 안 둔다!”
동시에 권 회장의 지배력이 폭발했다.
쿠르르릉!
그렇게 권 회장의 지배력에 무덤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그래봐야 관에는 흠집도 가지 않았지만, 왕급의 지배력에 무덤이 반응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아악! 지진이다!”
“젠장, 무덤의 함정인가?!”
발굴단들은 기겁을 해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도망쳐! 일단 대피하라!”
그렇게 바로 밑에 매장되어 있는 권 회장을 찾지도 못한 채, 발굴단들이 뛰쳐나갔다.
그 뒤. 전 세계의 신문에는 특보기사가 실렸다.
[TKBM의 〈정복왕〉 권태준 회장, 왕가의 계곡에서 실종되다.]
[실종된 지 2주일.]
[권 회장의 후계자 논란. TKBM 경영권 누구에게 넘어가나?]
[윤시우, 주주회의에 결의안 제출 “더 이상 회장직을 비워둘 수 없습니다.”]
[새로운 회장직 후보들은…]
권 회장은 졸지에 장례식을 치를 판이었다.
***
그리고 권 회장이 무덤에 갇힌 지 아직 72시간밖에 안 지났을 무렵.
세상은 다른 이야기로 떠들썩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왕가의 계곡 발굴팀 수색결과 “무덤에 유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왕가의 계곡 아직도 안 사라져.]
[판도라 “함정만 남은 무덤, 이런 일은 난생처음.”]
[유물만 빼돌린 것인가 VS 비정상적인 무덤인가?]
[MI6, 중러 발굴단, CIA 협동조사.]
[판도라 내부 조사 결과 대발표 “무덤 파괴 후 탈출 흔적. 이건 서주헌 밖에 못하는 짓.”]
[“도대체 무슨 수로 유물만 빼돌릴 수 있었나?”]
“키야, 죽이네요, 죽여줘. 흑막의 악당 느낌 최고예요.”
신문과 뉴스를 보고 있던 유재하는 반할 것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사기왕 꼬맹이, 루이가 쏘아붙였다.
“야! 뉴스 그만 보고 주식 방송이나 보자고! 이번 달 추천 종목 아직 다 확인 못 했단 말이야!”
하지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재하가 쏘아보았다.
꼬맹이 주제에 주식은 개뿔이.
“너 곱셈 나눗셈은 할 수 있냐? 구구단이 뭔지는 알아? 애들이면 애들답게 뽀로로나 봐! 어딜 어린 애가 어른이 티비 보시는데 끼어들어!”
“아야! 왜 때려!”
“닥치고 넌 빨리 복원이나 해!”
“아씨!”
사기왕 루이는 졸지에 유재하의 조수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유재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만세, 오늘은 드디어 일찍 가서 잘 수 있어! 칼퇴다, 칼퇴!’
하지만 일찍 칼퇴는 개뿔.
이 상황을 예상한 주헌의 악랄한 일감에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을 뿐.
그러던 와중 루이가 물었다.
“와, 그런데 어떻게 유물을 가지고 나왔는데 무덤이 그대로지? 왜 무덤이 안 무너진 거야?”
왜긴 왜야.
‘내가 무덤을 복원해서지.’
주헌은 악랄하게 웃었다.
그렇다. 인간이 무덤에서 나오는 방법은 단 하나.
‘무덤의 과제를 클리어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번 무덤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아예 유물 놈들이 과제조차 내지 않았던 무덤이니까.’
즉, 자신을 죽이기 위한 무덤.
그러니까 뭐, 나올 방법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냥 〈무덤파괴〉로 닥치고 구멍을 뚫고 나와버렸지.
그런데 나가려고 할 때 퍼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무덤이 안 부서지면 어떻게 될까?’
예전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생각. 하지만 이런 일에도 무덤 복원 스킬을 써먹을 수 있다면?
그래서 무너지려는 무덤을 향해 그냥 복원스킬을 써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물을 다 빼냈는데도 무덤이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함정도 제대로 굴러갔다!
즉, 터는 남고 알맹이만 쏙 사라진 상태!
그리고 이런 점은 주헌에게 오히려 엄청난 이득으로 작용했다.
왜?
[왕가의 계곡, 유물이 털렸음에도 불구하고 발굴단들이 계속 몰려.]
[무덤이 남아서 이미 유물이 털린 사실을 몰라.]
[후발주자 오스틴 록펠러. 허탕 무덤에서 수억 달러를 날려.]
무덤이 남아있으니 라이벌들은 유물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계속해서 몰려가고 있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이런 경우였다.
그래서일까.
‘이거 앞으로 잘 써먹을 수 있겠는데?’
주헌은 악마처럼 웃었다. 이게 다 이번 무덤 덕분이었다!
과제가 없는 무덤.
유물 놈들이 괜히 발상의 전환을 하다 보니 자신도 상식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 순간이었다.
-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Hello? Mr. 서?]
진짜 도굴꾼의 행보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175화 만에 소개글 대로 되었......
+ 출판사와 이야기 결과 월화수목에서 월화목금으로 주기가 바뀌게 되었습니다.ㅜㅜ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