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73화 (173/409)

00173 파라오의 저주  =========================================================================

〈 파라오의 저주 (6) 〉

“지들이 분노할 게 뭐가 있다고. 좋아. 어디 누구의 분노가 더 센지 비교해 봐?”

주헌은 낯익은 유물세트를 꺼냈다.

그리고 그 유물 세트를 본 율리안은 내심 놀랐다.

‘저 유물은…!’

척 보기에도 엄청난 힘을 가진 최상급 유물 계열이다. 보통 힘으로는 길들일 수 없는 종류였다.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제압하기 힘든 부류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주헌은 그 포악한 유물들을 굉장히 훌륭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그래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보다 지배력이 더 올라갔다.’

기억을 찾은 지금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어디 지배력뿐이랴?

유물을 다루는 주헌의 실력이 그 옛날보다 훨씬 더 세련되어지고 업그레이드되었다.

덕분에 율리안은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들었지만, 글쎄.

“괜찮겠어? 위험한 오라가 많아 보이는데?”

“괜찮아.”

“하긴, 예전에 클리어한 적 있는 무덤이지? 난 그때 출장 중이었다만….”

“아니, 그걸 떠나서.”

엥?

율리안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석문을 밀었다.

안에는 드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태양열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막의 열기. 건조한 모래바람.

주헌은 그 모래바람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확실히 변했군. 전에는 이런 형태가 아니었는데.’

그 전에는 관짝과 보물로 가득찬 방에 들어갔었다.

넓은 공간에 수십 개의 황금 관짝들이 열을 지어 늘어져 있었고, 주헌은 거기서 특정한 보물을 찾아야 했었던가.

물론 그 과정에서 당연히 파라오의 관짝도 열어야 했고.

파라오 관짝이 열리면 사람들은 바로 저주를 받아 병에 걸려 죽었다.

즉, 저주를 견디고 보물을 찾는 것이 과제.

‘뭐, 그땐 클로에가 있었으니까 괜찮았지만.’

도굴단 멤버 중 하나이자 간호 유물 사용자로, 쉽게 말해 도굴단 전담 주치의였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과제의 형태가 다르지 않은가.

‘단순한 미래의 변화인가.’

아니.

그것이 아니다.

‘이것들. 아예 과제를 낼 생각이 없는 거군.’

주헌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다.

이 무덤은 애초에 자신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무덤.

과제 따위를 만들어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주헌이 재빨리 부하들을 막았다.

“동작 그만.”

“네?”

“너희는 여기서 내 백업을 맡는다.”

이설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하지만 지난번과 같은 과제라면 사람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과제는 안 나올 거야. 그리고 애초에 건방진 유물 놈들의 과제 따위, 앞으로는 수행하지 않는다.”

“네, 네? 하지만…!”

“그러니 여기서 너희는 백업. 멋대로 움직이면 너희들 전원 뽀뽀해버릴 거야.”

그 말에 유재하는 제발 혼자 가시라며 쌍욕을 날렸고, 이설아와 아이린이 바로 따라가려다가 말고 움찔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움직이면 ‘전원’ 뽀뽀를 받는 다는 의미가 아닌가. 자신들이 그걸 반길 리 없다는 걸 주헌이 모를 리도 없고.

그러니까 즉….

‘오지 말라는 이야기시군.’

두 여자의 눈에서 작은 불꽃이 튀겼다. 그걸 알아챈 이상 주헌의 뜻을 거스를 의지는 없었지만….

“단장님, 괜찮으실까…!”

“히히, 우리야 위험한 곳에 안가고 잘됐지 뭐.”

결국 유재하는 이설아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반면 백업을 준비하던 율리안은 주헌을 보며 좀 딱하다는 듯 탄식했다.

‘내색은 안 해도 역시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군.’

부하들이 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자꾸만 생각이 나는 것일 것이다.

최후의 무덤에서의 일이.

아무런 상식도 통하지 않던 무덤. 그곳에서 동료가 처참하게 죽어간 일이 머리에 박힌 것이리라.

‘심지어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으니까 더 끔찍하겠지.’

그런 상황에서 이런 형태의 무덤이다.

‘오라만 봐도 꽤 위험한 형태다.’

그 까마귀의 무덤만큼은 아니지만, 총수의 개입으로 인해 난이도가 꽤나 올라갔다. 특히 최후의 방은 무덤의 주인이 있는 곳인 만큼 온갖 위험이 쏟아지는 장소.

주헌이 그런 곳에 부하들을 데리고 들어갈 리가 없는 것이다.

‘티는 안 내도 제 부하들은 아꼈으니까.’

기억을 찾기 전엔 그냥 미친 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았다.

주헌의 가슴에는 칼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까 전에도 권 회장을 죽이지 않은 건 그 탓이리라.

왜?

‘고작 그딴 걸로는 성이 안 차겠지.’

오히려 분노의 힘이라고, 권 회장이 살아 있기에 주헌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 애초에 불사의 갑옷을 두르고 있는 만큼 죽어라 찌르고 찔러도 죽을 노친네도 아니지만.

그래서일까.

‘아무래도 권 회장의 약점을 찾아줘야겠어.’

어디 그뿐인가?

‘우리 전담 주치의도.’

제갈공명의 유물로 슬쩍 주헌을 스캔한 율리안은 살짝 비웃었다.

‘취침시간은 평균 2, 3시간. 그마저도 매일 악몽. 몸에 쌓인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상당히 높군. 보나마나 리스크 탓이겠네.’

도대체 뭔 유물들을 쓰고 다니는 건지.

‘트라우마 치료도 좀 필요할 것 같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율리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서주헌. 난 네가 죽든 말든 난 신경 안 쓰긴 하는데 말이야.”

“부단장님!”

이설아의 외침에 유재하는 ‘뭐야, 얘가 언제 멋대로 우리 부단장이야?’ 하고 황당해했다.

“대신 너 죽으면 니 유물은 내가 가져간다?”

그 말에 주헌은 화를 냈다.

“꺼져! 사회에 환원한다, 어쩐다하는 개소리를 내가 용납할 것 같아?”

“그럼 발밑부터 조심해.”

“말 안 해도 알아! 멍청아!”

그럴 때였다.

메마른 모래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주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온다.’

아니나 다를까.

쿵!

바닥이 흔들리면서 거대한 뭔가가 갑자기 튀어 나왔다.

[넌 이 무덤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이 도둑놈!]

역시나.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뱀들이 주헌에게 독니를 내밀고 있었다.

[썩 물러가라!]

[까마귀와 계약한 네놈은 과제를 수행할 자격도 없다!]

뱀들은 눈을 번득이면서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단장님!”

“주헌 씨!”

그리고 이설아와 아이린이 재빨리 유물을 쓰려는 그때.

쿵!

[크아아아악!]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두 동강이 나면서 쓰러졌다.

쓰러진 뱀 앞에는 거대한 창을 들고 있는 주헌이 있었다. 주헌이 휘두른 창에 뱀의 몸통이 잘려나간 것이었다.

[이놈이…!]

율리안은 멀리서 감탄했다.

‘S급. 거란족 양식. 귀한 걸 얻었군.’

하지만 주헌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창을 휙 버렸다.

율리안은 기겁했다.

“야! 서주헌! 그걸 왜 버려!”

왜긴 왜야.

“무거워서 내 취향 아냐.”

“뭐?!”

그걸 보면서 다른 뱀이 황당하다는 듯 달려들었다.

[이 건방진 인간 놈이!]

쿵!

뱀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주헌을 습격했다.

쿵! 쿵! 쿵!

하지만 요리조리 잘 피하던 주헌이 훌쩍 뛰어 올라 뱀 머리에 올라탔다.

뱀은 제 머리에 주헌이 올라타자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이놈이! 떨어지지 못할까!]

그러나 유물의 능력인지, 스파이더맨마냥 잘 붙어 있는 주헌이 품에서 접이식 칼 하나를 꺼냈다.

칼날을 물어서 칼을 펼친 주헌은 단숨에 뱀의 머리에 찔러넣었다.

푸욱!

[끄아아아악!]

그러자 칼이 꽂힌 곳을 시작으로 뱀의 피부가 딱딱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바로 쥐포로 변해버린 것이다!

주헌은 그걸 보며 굉장히 좋아했다.

“오케이, 아주 좋아. 비상식량 걱정 끝!”

결국 온몸이 딱딱한 육포가 되어버린 뱀이 바닥에 쓰러지자 주헌도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물론 그걸 본 다른 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놈이!]

[이자식이, 내 동료를 쥐포로 만들다니!]

아까보다도 더 많은 뱀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푸욱!

[으아아악! 내 비늘이!]

콰직!

[끄아아악! 왜 거꾸로 움직이는 거야!]

번쩍!

[젠장, 서주헌을 죽이지 마라! 서주헌은 어릴 때 헤어진 내 여동생이란 말…… 커헉!]

“누가 니 헤어진 여동생이야.”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 꽥!]

놈들은 주헌의 좋은 유물 실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렇게 시험해본 유물의 개수는 총 스무 개.

뽑기 찬스로 뽑아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처음 보는 놈들이 많아 실험할 대상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뱀들이 잔뜩 나와 봐야, 주헌의 실험용 장난감.

그럴 때였다.

[그만 설쳐대라, 인간!]

보다 못한 무덤의 주인들이 나타났다.

엉덩이 붙이고 일어날 생각이 없을 것 같았던 왕의 무리가.

[역시 그 까마귀 놈과 어울리는 놈 답구나.]

[천박하기 짝이 없는 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텅 빈 사막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구궁!

모래사막을 뚫고 화려하고 웅장한 황금의 건축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집트 문명의 꽃이 사막 위에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찬란한 무대 위에 나타난 것은 역대 파라오들.

왕가의 계곡이 일종의 공동묘지인 만큼, 나타난 파라오의 수만 해도 스무 명이 넘어갔다.

‘람세스, 투탕카멘…… 오랜만에 보는구만.’

비록 로마에게 무너지기는 했으나 놈들은 한때 찬란한 나일강 문명을 지배하던 이집트의 왕들이다.

그 위세와 화려함.

강력한 오라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그래봐야 인간이다.”

주헌이 당당하게 그들에게 걸어갔다. 물론 그 기세에 파라오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아누비스 님이 말한 대로구나.]

[그 건방진 까마귀 놈이 선택한 인간답다!]

[그래봐야 저놈은 앞으로 그 어떤 무덤에도 출입할 수 없게 될 테지.]

주헌은 흥미로운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오, 그래?”

[그래, 이미 총수께 명령이 내려왔거든. 앞으로 네게 과제를 내리는 유물도 없을 거다.]

아하. 그래서 이 무덤에서도 과제가 나오지 않은 거였군.

주헌은 납득했다.

쉽게 말해 자신이 유물 블랙리스트에 등록되기라도 했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무덤에 들어오는 것도 금지, 과제를 내는 것조차 금지. 서주헌을 따르는 것도 금지.

대충 그런 내용이겠지만….

“어차피 유물들한테 꼬리를 흔든 적도 없는데?”

[허. 자, 어서 저놈을 죽이고 까마귀가 먹어치운 태양신의 힘을 되찾아라!]

그들의 외침과 함께 파라오의 군대가 일어났다. 바닥이 갈라지고 왕의 군세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왕을 위해 싸워라!]

[위대한 왕을 위하여!]

대략 그 숫자만 수 만!

그 모습에 유재하가 거품을 물었고, 이설아와 율리안이 내심 놀랐다.

‘과거랑 전혀 달라!’

이설아는 그 사실에 놀랐고.

‘무덤의 힘이 증폭되었어.’

율리안은 그 사실에 놀랐다.

놀란 아이린이 재빨리 파산의 힘을 쓰려 하는 때였다.

쾅!

오라의 폭발과 함께 파라오들이 비명을 질렀다.

[잔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과 파멸의 신이 강림합니다.]

[명부를 다스리는 저승세계의 왕이 강림합니다.]

[죽은 자를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이 강림합니다.]

폐부를 찌르는 엄청난 오라였다.

주헌의 앞에 소환된 이집트 3종 세트들.

그들의 등장에 파라오의 유물들은 크게 동요했다.

[저, 저분들은!!]

지금껏 유물의 기운을 숨기고 있었지만, 유물을 발동하자마자 숨길 수 없는 신급 유물의 오라가 폭발했다.

나타난 것은 세 마리의 멍멍이.

저승의 왕 오시리스.

파괴와 살육의 신 세트.

저승의 안내자 아누비스.

멍멍이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분위기와 위력이 평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필시 주헌이 유물의 3단계 버전, 궁극체 수준까지 힘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신급 유물들의 등장에 파라오들은 까무러쳤다.

[아니, 왜 저 분들이 여기에!]

왜긴 왜인가.

“과제를 안내면 뭐 어쩔 건데? 머리채 잡고 무덤에서 끌고 나가면 그만이지.”

[뭐야?]

“그래봐야 니들은 인간. 감히 너희가 섬기는 신들 앞에서 버틸 수 있겠어?”

이에 멍멍이들이 히죽 히죽 웃었다.

[주인. 저놈들 입 닥치게 하면 치킨 4박스 콜?]

세트의 말에 오시리스가 나무랐다.

[이 먹는 것밖에 모르는 싸가지없는 놈. 대세는 I.A.I 지! 팬미팅 예약 콜?]

그들의 모습에 아누비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지만 뭐 어쩌랴.

‘이것이 내 운명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주헌이 흔쾌히 말했다.

“치킨은 브랜드 별로. 팬미팅은 전세로 예약 콜. 서비스로 무도 많이 가져다 달라고 하고, 월정액 서비스도 빵빵하게 넣어달라고 하지.”

[명을 받듭니다! 주인님!]

완벽하게 교육된 오시리스와 세트, 그리고 두 번의 참교육은 싫었던 아누비스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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