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1 파라오의 저주 =========================================================================
〈 파라오의 저주 (4) 〉
“아, 그 전에 다들 벼락 주의. 쟤 진짜로 빡쳐서 사람 죽일지도 모르거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까마귀의 기억의 눈물이 발동했다.
번쩍!
주헌이 기억 유물을 사용하는 순간 이설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시야를 가리는 엄청난 빛의 섬광!
시릴 정도로 밝은 빛 속에서 TKBM 소속들은 비명을 질렀고, 주헌 일행 역시 신음을 흘렸다.
“아악! 뭐야 이건!”
“눈부셔!”
물론 이설아는 이 상황이 굉장히 낯익었다. 이미 자신은 겪어본 적 있는 현상이 아닌가!
확실했다.
‘단장님, 역시 그걸 쓰셨구나!’
이설아도 주헌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다. 단장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대충 저게 전생의 기억을 되돌려주는 물건이라는 것 정도만 안다.
저게 어떤 유물이며, 어떤 원리이며, 누구의 유물인지도 이설아는 몰랐다.
하지만 사실 그런 구체적인 정보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저 유물의 타겟이 된 이상 율리안도 분명 떠올리게 될 테니까!
과거의 기억.
하물며 그 기억이 단순히 영화처럼 보는 수준이 아니라 신체와 뇌에 스며들어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다.
전생에서 마지막 순간의 자신을 가져오는 느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설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율리안을 보았다.
그 순간 섬광 속에서 율리안이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큭!”
확실히 이설아 때처럼 기묘한 기억들이 머리에 박혀 들어왔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일, TKBM에 낚여 들어간 일, 주헌과 한 팀이 된 일, 주헌이 여동생을 찾아준 일, 독식자들의 갑질.
수많은 기억이 생생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가장 머리에 깊숙이 박힌 기억은 역시 하나.
‘함정이다. 여기에 지원팀은 안 와. 완전히 권 회장한테 물 먹은 거야.’
‘…….’
‘너희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건 단장으로서 내 책임이다.’
‘주헌아.’
‘그러니까 네가 단원들을 데리고 나가라. 내가 미끼가 될 테니.’
그 분노를 삼킨 눈빛은 제발 더 이상 단원을 죽게 하지 말아달라는 눈빛이었다.
율리안은 단장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단원들을 이끌었다.
‘부단장님! 단장님이!’
어두운 무덤. 그 안에서 죽어가던 동료들.
그리고 그곳에서 율리안도 죽었다.
도굴단의 책략사로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단원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지시했다.
‘부단장님! 부단장님도….’
‘나는 됐다. 단장님이 놈들의 대부분을 끌고 갔으니 나 혼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어.’
‘그래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원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어두운 무덤에서 시력을 잃어버릴 밝기의 불꽃이 몰아쳤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살을 파 먹히면서도 계속해서 막았다.
한 명이라도 덜 죽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래서 단장이 느낄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 율리안은 구역질이 날 뻔했다.
잡아먹히던 때의 기억 탓?
아니다.
쥐에게 물어뜯기며 살이 파이던 기억 따위,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고통보다도 더 선명하게 박히는 분노가 있었다.
‘부단장님. 저하고 재하는 못 가지만, 기도하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기억 속에 스쳐지나가는 사내의 얼굴.
‘설아가 열이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단장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괜찮을 거야. 우리 도굴단 간호사님이 지어준 약도 있으니 무덤에선 괜찮을 거야.’
‘아,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었을까.
양 쳰.
웃는 얼굴로 주헌과 자신들을 팔아먹은 배신자!
거기에 권태준.
자신들의 약점을 쥐며 개처럼 부려먹을 땐 언제고, 키우던 개를 잡아먹은 놈!
특히 도굴단에서는 주헌이 가장 괴롭혀지고 구른 사실을 율리안은 잘 알고 있다.
사이는 더럽게 안 좋았지만, 그래도 그 실력은 인정했다. 결코 권 회장에게 그딴 식으로 굴려질 인재가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최후엔 단원 전원이 사이좋게 버려졌다.
그 분노의 감정이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 율리안은 이성을 잃었다.
콰르르릉!
“으아아아아악!”
평소라면 사람을 죽이지 않을 위력의 번개가 쏟아졌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퍼지는 그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꺄아악!”
주헌은 소녀 아이린과 이설아를 감싸주며 피뢰침 유물을 썼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적들은 죽어 나갔다.
“으아아아악!”
“끄아아악!”
특히 윤시우와 권 회장 쪽으로 떨어지는 번개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아군들을 먹이 삼아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윤시우가 욕설을 날렸다.
“야이씨, 저 미친 새끼! 너 돌았어? 야, 야! 서주헌! 너 뭔 짓을 했는데 얘가 저렇게 맛이 가!”
“알게 뭐야? 자업자득이지.”
동시에 주헌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덤의 장치 하나를 건드렸다.
그 순간.
쿵!
“으아아아악!”
TKBM 발굴단의 3분의 2가 바닥으로 꺼지고 말았다.
왕가의 계곡에는 도굴꾼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깊고 깊은 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갱 밑엔 사람 잡아 먹는 악어 놈이 있을 거다.’
그리고 번개가 사라지고 율리안이 씩씩 거렸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주헌, 넌 우리들의 단장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힘을 합쳐서……….”
그런데.
쿵!
“크윽?!”
율리안이 밟고 있는 바닥이 꺼지면서 율리안은 당황했다.
가까스로 구덩이의 벽을 잡아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건 도대체!
“서주헌, 너 이게 무슨!”
하지만 곧 그는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주헌이 작은 술병 하나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이 금각은각의 호리병은 내가 가져간다.”
율리안은 반사적으로 제 주머니를 뒤졌다.
‘역시 없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서유기 유물이라는 걸 깨닫곤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야! 서주헌!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왜긴? 니 껀 내 것. 내 꺼는? 당연히 내 것.”
율리안이 뒷골이 땡겼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들의 단장은 원래 이런 놈이었지.
워낙 최후의 순간이 미화가 되어서 그렇지, 서주헌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주헌이 말했다.
“아 그리고 니 놈이 놓친 잡몹 처리는 네 담당.”
뭐라고? 놓친 잡몹?
그 말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율리안은 아차 싶었다.
‘권 회장이 사라졌다!’
권 회장이 가진 유물의 오라가 사라진 것이다. 갱에서 탈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사이에 도망갔구나!’
목적은 이 무덤의 유물이리라.
다급해진 율리안이 재빨리 유물이 있는 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과거의 기억은 돌아왔어도 지금은 엄연히 라이벌 발굴단.
자신의 본분이 떠오른 것이다.
‘무덤의 유물을 얻어야 한다!’
곧 율리안이 함정에서 기어 나오려는 그 순간!
“윽!”
주헌이 율리안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건 유비의 유물이었다.
동시에 주헌이 씨익 웃었다.
“지금부터 잘 듣는다. 앞으로 네 산하의 발굴단은 우리 발굴단의 밑으로 들어온다. 즉 넌 내 부하. 니 부하는 곧 내 인력.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즉각 응답하고, 모든 유물은 얻는 즉시, 즉각즉각 넘기도록.”
율리안은 황당하다 못해 뻔뻔한 태도에 기가 막혔다.
“야!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이 약혼 브레이커야!”
콰르르릉!
분노한 번개가 주헌에게 향했다. 마치 용의 분노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피슉…….
강렬한 번개는 유비의 검 앞에서 한낱 정전기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아. 몇 년 만에 대화하는 거니까 똑똑히 말해두지. 약혼 브레이커? 야. 신부가 멋대로 나한테 반한 걸 어쩌라고! 그게 내 잘못이야?”
“뭐야?! 그럼 내 잘못… 이네요.”
“그래! 꼬우면 너 그 촌스러운 셔츠랑 안경부터 불태워! 나도 아무거나 주워 입는 파지만 넌 구려도 너무 구려! 알아?”
“뭐라고?! 이 잡스 짝퉁… 네! 제가 생각해도 저 너무 구린 것 같습니다! 젠장!”
망할 유비 유물!
둘의 대화에 이설아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녀는 사실 너무나도 기뻤다.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하지만 율리안은 전혀 생각이 다른지 외쳤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난 널 계속 방해하겠어. 어디 두고 보자고! 전처럼 팀을 이룰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과거엔 계약 때문에 입 닥치고 있던 정보들! 니가 모를 독식자들의 정보들! 전부 나만 알고 있겠어! 그 삐뚤어진 심성을 고쳐주지.”
“오 그러셔?”
그때였다.
능숙하고 현란하게 검을 휘두르던 주헌이 유물을 발동시켰다.
쿠웅!
[왕급의 지배력입니다. 1차 조건을 충족해 유물이 발동 됩니다.]
[2차 조건, 리더쉽, 군주 계열 적합력 조건을 충족해 유물이 발동 됩니다.]
[유비 유물을 지배함으로서 유비 삼형제를 소환, 부릴 수 있게 됩니다.]
[대중에게 호감을 사는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제갈공명 유물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엄청난 지배력과 함께 적합력이 발동 되었다.
쿠구궁!
“명령한다. 제갈공명은 나에게 얌전히 정보를 불 것.”
유비의 칼이 번쩍였다.
딱히 유비의 유물이 강제지배 같은 능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상대가 상대다.
율리안은 비명을 지르다가 토해내듯 말했다.
“좋아, 말해줄게. 말해주면 되잖아! 젠장맞을.”
덕분에 그걸 본 TKBM의 부하들이 입을 떡 벌렸다.
“미, 미친, 저 쓰레기 유물. 발동은 되는 거였어? 팀장님은 사용해도 개 찌질해지기만 했는데?”
이에 주헌은 코웃음을 쳤다.
“그걸 두고 돼지 목의 진주라는 거다.”
그 말에 윤시우가 이를 갈았다.
“야 시팔, 너 말 다했어?!”
“됐고, 그럼 안녕. 이곳의 유물을 얻어야 하는 관계로. 그리고 공명이. 넌 따라오려면 빨리 와.”
주헌은 순식간에 자신이 잘 아는 지름길로 빠졌다.
물론 그걸 두 눈 뜨고 바라볼 윤시우도 아니었다.
“당장 저 놈들을 잡아! 내 유비 유물 내놓으라고!”
그러자 생각난 듯이 주헌이 말했다.
“아, 맞아. 충고할게. 곧 있으면 파산의 저주가 온다.”
그 말에 윤시우는 뭔 개소리냐고 했지만, 율리안의 얼굴은 싹 굳었다.
생각해보니 설아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저 여자아이……….
‘파산왕이잖아!’
아니, 사실 지금까지 별 생각 없었는데 기억을 찾은 지금은 또 달랐다!
‘저 자본주의 사회의 파괴신!’
덕분에 지름길로 들어가던 율리안이 거품을 물었다.
“잠깐, 너 지금 파산왕을 무덤에 데리고 온 거야?!”
“그런데?”
“야, 미친, 너 정말 미쳤어?! 너 아무리 그래도 무덤에 파산왕은 좀 아니지!”
아니나 다를까.
무덤이 거칠게 흔들렸다.
[고분화 지대 범위 전체에 파산의 힘이 퍼집니다.]
[무덤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끔찍한 불행이 찾아옵니다.]
[걸을 때마다 재산이 빠져나갑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복이 빠져 나갑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치명적인 희귀병을 얻게 됩니다.]
[만지는 것마다 전부 파괴됩니다.]
[야한 생각을 할 때마다 재산을 탕진하게 됩니다.]
동시에 무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참혹한 목소리들이었다.
율리안은 이마를 짚었다.
이미 늦었다 싶은 것이다.
그럴 때 주헌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때 줬던 계약서 갱신판. 그 계약서는 좀 아닌 거 같아서 내용을 좀 고쳤어.”
율리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히 그건 사람의 계약서가 아니었지.
율리안은 계약서의 앞페이지를 보면서 탄식했다.
“하……… 내 팔자야. 전생엔 권 회장, 이번엔 서주헌이냐.”
그의 표정은 똥 씹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율리안은 피식 웃었다.
“권 회장보단 낫네.”
그래서 다시 한 팀이 되는 게 싫지는 않았다.
애초에 자신도 부단장으로서 단원들을 아끼기도 했고, 주헌의 능력은 정말 인정했다. 과거에는 계약에 위반되어 말하지 못했던 독식자들의 정보들.
그것까지 말해주면 주헌을 사황까지 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잠깐. 내용 변한 거 없는데?”
“아니, 거기 젤 밑에 월급부분 바뀌었잖아. 그거 바꿔 넣었어.”
그리고 밑에 내용을 본 율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500만 불(X) -〉 니 월급은 없음]
빡친 율리안이 소리를 쳤다.
“야! 그래도 최저시급은 줘야 할 거 아냐!”
***
‘젠장, 써먹기 좋은 영리한 개라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무슨 변덕이 불어서 그 미친 광견의 편에 섰단 말인가.
권 회장은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서주헌 하나 때문에 자꾸만 계획이 어긋난다.’
무덤도 그렇고, 왕급들 라인업도 그렇고 변한 게 너무 많았다.
‘예언의 유물이 나타나기 한 달 남았다. 그 전까지 서주헌을 왕급에서 밀어내야 한다.’
그렇게 권 회장을 포함한 발굴 인력단이 최후의 무덤의 방에 들어섰다. 정상적인 무덤 클리어 방식이라면 이곳에서 이제 유물의 과제를 클리어 하면 된다.
그렇다고 생각을 했는데…….
“회, 회장님?”
“젠장, 이게 뭐야!”
권 회장은 주헌이 벌여놓은 짓에 쌍욕을 날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