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0 파라오의 저주 =========================================================================
〈 파라오의 저주 (3) 〉
[인간. 거기서 내보내줄까?]
낯익은 목소리였다.
물론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유물이었다.
[답답하지? 그치? 답답해 죽겠지? 인간은 고작 그딴 거에도 고통을 느끼니까 말이야.]
이걸 콱 그냥.
[내가 거기서 내보내줄게. 거래 하나만 하면 된다니까?]
계속 되는 깐죽거림에 주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 그도 그럴 법한 게….
“야. 지렁이 새끼. 안 닥쳐?”
그렇다.
자신을 향해 말을 건 것은 바로 지렁이였다! 불로초를 키우고 있어야 하는 바로 그 돈 밝히는 서복의 유물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똥개한테 약점(?)을 팔아넘긴 장본인!
이가 안 갈릴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지렁이가 깐죽거렸다.
[나는 그 관짝을 여는 방법을 아는데. 도와줄까? 어? 어?]
결국 주헌은 후, 한숨을 쉬었다.
“거기 밖에 동아줄 있냐.”
주헌의 말에 밖에서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응, 있어! 여기 있어!
다른 유물들은 죄다 팝콘을 먹어가며 구경중일 때, 동아줄만 혼자 열심이었다.
심지어 제 몸으로 관을 때려 부숴보려 했지만, 괜히 몸만 아픈지라 결국 낑낑 거렸다.
네로도 나름 도와주려고 했지만, 글쎄.
불길을 불러냈다가 주헌에게 ‘죽을래! 날 오븐 통구이로 만들 셈이냐!’ 하고 혼나는 바람에 욕만 얻어먹고 구석에서 시무룩해졌다.
결국 동아줄의 뻘짓이 계속 되자 지렁이가 낄낄 웃었다.
[야야 헛수고 하지 마. 신급 유물이 와도 안 되니까. 그러니까 내가 열어줄게. 내가 이 무덤 시녀언니랑 친하거든.]
“거래 조건이 뭔데.”
[네 전 재산! 그리고 네 유물과 출가! 더러운 니 집 말고 엘리사의 집으로 이사하게 해줘! 돈도 안 주는 너네 집에서는 떠날 거라고!]
엘리사는 또 어디사는 누구야.
결국 눈썹을 꿈틀거리던 주헌이 말했다.
“미쳤냐, 그런 거래에 응하게.”
[그으래? 싫으면 말고!]
그렇게 지렁이가 삐죽이며 돌아서려는 때였다.
[파산의 유물이 작렬합니다]
[무덤의 절반이 무너집니다]
[지렁이에게 분노의 벼락이 떨어집니다.]
콰과광!
결국 지렁이의 머리에 불이 붙었다.
[끄아아악! 내 머리! 아이고 내 소중한 머리털이!]
동시에 관 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린하고 설아야?”
그 목소리에 둘은 까무러쳤다.
“세, 세상에! 주헌 씨! 안에 있는 거예요? 이 안에?”
“단장님!”
소녀 둘이 탕탕거리면서 황금 관을 두들겼다. 틀림없는 아이린과 이설아였다.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지렁이는 울먹이면서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길달에게서 뭘 들은 건지, 이설아가 지렁이를 짓밟으면서 말했다.
“빨리 단장님 안 꺼내?!”
[아이고 아이고오! 터진다고! 터져!]
결국 지렁이가 뭐라고 외쳤고, 관짝이 열렸다.
안에서 주헌이 나오자 두 여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걱정했다는 듯이 주헌에게 안겼다.
“단장님!”
“주헌 씨!”
물론 키가 작아져서 졸지에 뭔가 예쁜 딸들이 생긴 느낌이지만…….
“니들 바지는 어쨌냐.”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올 땐 어쩌려고!’
그러나 그녀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이에요! 예언서에 이상한 게 써있어서……!”
“이상한 거?”
그러자 그녀들이 유물 책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타난 여러 문구들.
[구속플레이]
[감금플레이]
[밧줄플레이]
아마 전부 이 관짝 겸 미라 의식을 말하는 것이리라. 결국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그녀들은 안도했다.
“별거 아니었구나…… 동아줄이 아니었어.”
“엥? 왠 동아줄?”
그럴 때였다.
[별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위험한 게 하나 더 남았구만!]
지렁이의 외침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한 거?”
[말해줄게, 말해줄 테니까 이 불 좀! 불부터 꺼줘! 아이고 내 소중한 머리털이!]
지렁이한테도 머리털이 있나 싶기는 하지만 아무튼.
“꺼줘.”
그 말에 눈을 반짝인 동아줄이 지렁이를 묶더니, 곧 바닥에 박박 문질렀다.
마치 담배꽁초 불을 끄듯이!
벅벅벅!
[끄아아아아악!]
기어코 머리가 바닥에 박박 쓸리자 지렁이의 절규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물었다.
“말해봐라. 무슨 위험. 개소리하면 갈아서 화장품으로 만든다.”
[거기 써있잖아! 부채조심이라고. 그거 제갈공명이야! 너 오늘 제갈공명이 놈한테 뒤질 거라니까?]
그 말에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걘 또 왜?”
[그…… 너 그 까마귀 놈이랑 임시 계약한 거 맞지. 그놈이 네 까마귀를 없앨 거야!]
“그게 무슨…… 아.”
“단장님?”
주헌은 뭔가 떠오른 듯 바로 납득했다.
‘생각해보면 그놈은 내 까마귀를 없앨 수도 있겠군.’
왜?
율리안은 유물의 오라를 눈으로 보며 상대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 몸에 둘러진 까마귀의 유물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이 되면 안 되긴 하는데….’
그런 놈이 만약 권 회장과 손을 잡으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뭐, 기억 유물을 쓰면 적은 안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놈의 기억을 되살리자니 성격도 안 맞고, 쓸데없이 강한 데다가 히어로뽕까지 맞아서 오히려 자신을 훈계하니 어쩌니 앞길을 막을 게 뻔한데.
그리고 무엇보다.
“아…… 기억 되찾으면 날 진짜 죽이려할 텐데.”
왜?
간단하다.
“내가 걔 파혼시켰는데.”
“주헌 씨?”
그렇다.
주헌은 과거 율리안의 결혼을 파토냈다. 아니, 정확히는 내려고 낸 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신부가 하필이면 자신에게 반하는 바람에!
약혼 날 쪽지 한 장만 놓고 피앙세가 사라졌는데, 쪽지 내용이 뭐였더라.
[한 하늘 아래 두 남자를 사랑할 순 없어욧!]
대충 그러고 피앙세는 증발.
율리안은 38세의 어느 날, 그 따뜻하던 봄 어느 날.
졸지에 파혼당했다.
아니, 근데 억울했다.
율리안 주제에 예쁘고 참한 처녀라 장난기가 돌기도 했고, TKBM의 VIP 거래고객이라 친절하게 대해준 것도 있었지만….
‘진짜 억울하네.’
뭐, 애초에 권 회장이 시킨 정략결혼 아니냐. 오히려 결혼 안한 게 다행이라고 하긴 했지만 율리안은 꽤나 신부를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뭐 제삼자가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니까.’
파혼만으로도 충분히 슬픈데, 그 원인이 주헌이라니! 심지어 장난으로 비롯된 거라니!
자존심도 자존심이고, 주헌이 원수쯤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같은 남자로서 이해는 간다만.’
어쨌든 그 이후로 안 그래도 안 좋았던 사이. 이제는 아주 자신을 물어뜯으려고 해서는.
게다가 쪼잔하기는 또 개쪼잔해서(?) 몇 년은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중엔 주헌도 빡치게 된 덕분에 설아가 중간에서 말 전달하는 부엉이 역할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최후의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도!
어쨌거나 대충 그런 마당이니 주헌은 율리안에게 까마귀의 눈물을 쓰기 싫은 것이었다.
‘분명해. 기억 되살리면 이번엔 다른 의미로 내가 위험해질 거야.’
백프로 통구이 당첨.
‘뭐, 정말 필요할 땐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주헌이 주변을 살피며 아이린과 이설아와 함께 방에서 나갈 때였다.
“어떤가. 거래에 응하겠는가?”
듣기에도 혐오스러운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 솔직히 말해. 서주헌 약점 보이지?”
“……….”
주헌이 있는 왕의 방 바로 앞.
돌입을 앞둔 윤시우의 깐죽거림에 율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뭘 묻나 했더니.
“안 보이는데?”
“아니, 보일 텐데? 잘은 몰라도 뭔가 특별한 유물이랑 계약하고 있다고 풍문으로 들었거든. 너도 이런 거 받았지?”
윤시우는 서류 하나를 흔들었다.
그건 존 스미스라고 쓰고 똥개라고 읽는 놈의 살인청부 의뢰서.
윤시우가 뿔테 안경을 올리며 히죽거렸다.
“약점이라는 내용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쓰레기통에 버려놓고 있었는데, 넌 좀 다를 것 같아서. 어때. 제갈공명의 유물로 진짜 보여? 그 특별한 유물?”
보이고 자시고.
‘그때 그 까마귀로군.’
주헌을 보호하듯이 감싸고 있는 흉악한 까마귀의 오라. 그리고 율리안은 알았다. 그 오라를 없앨 방법도.
괜히 제갈공명의 유물을 가진 게 아니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난 아무것도 몰라.”
율리안이 한걸음 물러서자, 윤시우가 히죽 웃으면서 물었다
“오. 그런데 왜 도망가?”
왜긴 왜야.
니 새끼가 유비의 유물을 가졌으니까지!
하필이면 재수 없게 왜 이놈이!
‘발동하지 않았지만 확실하다.’
유비의 유물을 가졌다!
그나마 발동이 안 되었으니 그렇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아슬아슬했다.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주군.]
‘젠장, 도망가야 한다.’
“미안하지만 난 먼저…….”
그럴 때였다.
이걸 예상한 건지 TKBM의 사냥꾼들이 그를 둘러싸고 들었다.
“제갈공명. 우리가 왜 여기까지 자네랑 왔다고 생각하나?”
“!”
“고작 번개 도움을 받자고 데리고 왔는 줄 아나?”
그 순간, 윤시우가 율리안의 목에 뭔가를 겨누었다.
“큭!”
그건 바로 칼 한 자루.
그리고 그 칼을 얼핏 본 순간 율리안이 흠칫 놀랐다.
‘유비의 유물!’
그 생각에 미친 율리안은 번개 능력을 쓸 수가 없어졌다.
곧 권 회장이 고압적으로 율리안을 쏘아보았다.
“네 놈이 유비 유물에 꼼짝 못한다는 소문은 이미 접했다.”
“……!”
“어떤가. 거래에 응하겠나?”
율리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서주헌 하나 없애자고 공을 너무 들이시는군.”
“서주헌은 느닷없이 나타난 불청객이야. 근본도 모를 놈이 왕의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건방진 줄 아나? 거긴 우리 인맥들이 차고앉았어야 했어.”
“인맥?”
윤시우가 거들었다.
“그래. 한 달 후에 15인의 왕들에게 특별한 유물이 나타난다고 하더군. 가지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라는데…… 그 특혜를 서주헌에게도 누리게 할 순 없잖아?”
권 회장 역시 날카롭게 웃었다.
“다른 왕들도 좋다고 찬성했고. 너도 우리에게 협조하면 네 〈책략왕〉의 자리는 안 뺏도록 하지. 같이 특혜를 누리자고.”
율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주헌은 다른 왕급, 그러니까 독식자들에게 단단히 찍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한 달 내로 서주헌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내자고 협의가 되지.
그리고 그 한 달은 주헌이 까마귀에게 받은 제한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도굴꾼의 힘을 초기화하고 강제전직 시키겠다는.
그럴 때 율리안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쪽은 내 흥미가 아니라….”
권 회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분명 자네한테는 동생이 있지?”
“!”
“자네 동생은 살아있어. 어때. 궁금하지 않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지?”
“………!”
율리안의 지배력이 흔들렸다. 동시에 사냥감을 물어뜯기라도 하듯, 권 회장이 강압적인 지배력을 뿜었다.
소위 말해 기싸움이다. 여기서 밀리면 주도권을 빼앗긴다.
아니나 다를까, 권 회장이 간사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동생도 찾아주고, TKBM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겠네. 그리고 서주헌이 이상한 노예계약을 했다고 했나? 그것도 풀어줄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율리안의 마음이 흔들렸다. 동시에 권 회장과 눈이 마주치면서 그의 동공이 떨렸다.
생각해보면 유물 사용자들은 전부 악질적이다. 단지 그중에서 차악과 손을 잡게 되는 것뿐.
율리안의 입장에선 주헌이 최악. 그리고 권 회장이 차악으로 보일 수밖에.
그렇다면 차라리 권 회장과 손을 잡는 게 나을 수 있지도 않을까?
그리고 율리안의 모습에 권 회장과 윤시우는 웃었다.
‘걸렸다.’
권 회장의 유물 능력에.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율리안이 침을 삼켰다.
TKBM.
큰 발굴단이고, 능력도 있는 곳이고. 나쁜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서주헌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냥 권 회장과 손을 잡고 서주헌을 치는 게 나을 수 있지도 않을까?
그런데 그럴 때였다.
“야야. 그거 아니야. 생각 당장 집어치워.”
“!”
낯익은 목소리에 모두가 놀랐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서주헌.
그리고.
“어, 저, 저건!”
주헌의 손에 들려 있는 유비의 유물.
윤시우는 제 손에 들린 검과 똑같은 물건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잠깐, 이거!”
그럴 때 살금살금 기어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건 바로 유재하였다. 그리고 가방에는 여러 가지 TKBM의 유물들을 빼돌린 채.
그걸 본 윤시우가 거품을 물었다.
“야씨! 저 위조범 새끼! 야! 이리안 와?!”
갈까 보냐!
어느새 TKBM의 유물들을 복제해서 냅다 튄 유재하가 주헌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단자아아앙니이임!”
그걸 보며 기특해 하던 주헌이 픽 웃었다.
“이봐, 제갈이. 아무래도 한심하게 또 놀아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마. 너, 그 정도 실력 아니잖아?”
“뭐?”
“아, 그 전에 다들 벼락 주의. 쟤 진짜로 빡쳐서 사람 죽일지도 모르거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까마귀의 기억의 눈물이 발동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