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64화 (164/409)

00164 네 죄를 네가 알렸다  =========================================================================

〈네 죄를 네가 알렸다 (1)〉

“이 똥개 새끼, 죽었어.”

주헌의 눈에 살벌한 광채가 돌았다.

동시에 그가 아누비스를 불러냈다.

하지만.

[유물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

[소환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아주 필사적으로 숨은 것 같습니다.]

얼씨구.

이 새끼가.

동시에 유재하는 컥컥 하며 가슴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주헌이 살벌한 지배력을 뿜어댔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숨 막혀.’

이건 뭐 인절미를 먹다가 콩가루에 목이 막히는 기분도 아니고!

원래 지배력이란 유물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힘.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고개도 들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익숙해진 건지 왕급이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지.

뭐, 유재하에게 있어서도 명절날 대학, 취업, 결혼 삼종세트를 합친 것 이상의 바늘방석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유재하가 주헌의 눈치를 살폈다.

“저, 저기 단장님…… 고정하시고.”

“그 똥개 새끼. 잠깐 집을 나갔다 싶었더니, 이딴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주헌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감히 하늘같으신 주인님의 살인 의뢰서를 돌리고 다녀?

하물며 존 스미스?

“가증스럽게 인간인 척 하기는.”

아무래도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라이벌들을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어쩐지 컴퓨터랑 씨름할 때부터 이상하다 싶긴 했지.’

나름대로 인간들의 컴퓨터를 배워서 열심히 문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낸 것이리라. 아니면 산책할 때 우체통에 허겁지겁 넣었다거나.

지금까지 비교적 얌전하던 놈이 왜 이런 짓을 했나 싶었지만, 짐작 가는 곳은 있었다.

‘보나마나 총수 탓이겠지.’

자신의 집에 나타났던 진채원.

놈은 분명 총수 유물이 등장하자마자 쌩하니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었다.

반은 타의이긴 하나 총수의 심기를 건드릴 사고를 치긴 쳤으니까. 걸리면 최소 사형이라는 사실도 잘 알겠지.

‘그래서 날 죽이면 최소한 사형은 면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하지만.

“털려면 제대로 털어야지. 어디서 이딴 허위 정보를.”

“에이. 완전 허위 정보라기엔…….”

곧 날아오는 시선에 유재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 똥개, 찾아올까요?”

“뭐 됐어. 오히려 잘 됐으니까.”

“네? 잘됐다고요?”

“그래. 아무래도 똥개 놈이 내 살인청부를 의뢰하면서 약점들을 팔고 다니는 것 같은데. 오히려 이건 가짜 정보를 더 풀 수 있는 기회잖아?”

“아…….”

가짜 정보는 적들을 교란하기에 아주 좋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군조차도 멍멍이 놈이 뿌린 약점을 자신의 약점이라고 믿는 상황.

즉 아누비스의 ‘존 스미스’는 유물 사용자들 사이에서 꽤나 신뢰받는 인간으로 둔갑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건 당연히 이용해야지.’

“괘씸하긴 하지만 봐줄 수 있는 범위다. 그보다 다른 4개 약점은 뭐냐. 작전을 짜야하니 마저 읽어라.”

그러자 유재하는 어째서인지 흠칫 놀랐다.

“어, 그게….”

“왜?”

“뒤는 그냥 안 듣는 게 나을 텐데요….”

“왜. 뭔데. 말해.”

유재하는 눈알을 굴리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읽었다.

“그…… 서주헌. 다른 약점으로는 만성 치질을 앓고 있는 듯. 관련 유물이 효과가 있을 거임. 또한 돈을 전혀 쓸 줄 모르는 졸부로 상류층 사회에 멍청한 환상을 품은 듯. 고로 재벌들이 유혹하면 넘어갈 듯. 또한 서주헌은 아동성애자에 게이로도 추정……….”

이때 유재하는 몇 줄 읽다 말고 슥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헌의 눈치를 살피더니 냅다 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순간 뿜어지는 지배력에 유물들의 몸체에 금이 시작하고 유물들이 빼애액 울부짖었다.

[#$*&$#*!]

재앙이다! 세상에 재앙이 도래했다!

[#*$&*!]

당장 도망쳐야 한다! 세상의 멸망이다!

주헌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즉시 그 똥개의 행방을 찾아라. 알아내는 놈한텐 포상을 하겠다. 동시에 숨겨주는 유물이 있으면 그놈들도 작살이다.”

유물들은 울었다.

[$#*&$*!]

아이고, 사단장님이 수배되셨어.

[#$*#$&*!]

아이고, 아이고. 그러게 왜 헛소문을!

결국 유물도 울고, 유재하도 울었다.

확실했다.

‘그 멍멍이 놈. 보신탕이 될 거야.’

그리 생각하는 유재하는 진심으로 놈의 명목을 빌어주었다. 하다못해 보신탕이 아니라 각목으로 끝나게.

그리고 필사적으로 빌었다.

‘하느님. 제발 복원은 가능한 수준으로 부수게 해주십쇼. 제발, 제발.’

하지만 주헌은 이미 갈아 마시는 영양즙 쯤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때였다.

“매뉴얼대로 움직여라! 약점은 모두 파악했다!”

“색욕과 관련된 유물을 꺼내라! 서둘러!”

“남성형이든 여성형이든 상관없다! 꺼내!”

“유물성애자는 반드시 넘어올 거다!”

곧이어 튀어 나온 건 남미 계열의 춤추는 댄서들이었다.

억소리가 나올 정도로 몸매가 좋은 여자댄서들이 있었고,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눈을 테러하는 남자댄서들도 있었다.

모두 천 하나를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심지어 퇴폐적인 댄서들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봉도 들고 왔다.

그걸 보고 유재하와 이설아가 기겁해서 입을 떡 벌렸다.

하다하다 미군이 저딴 유물까지 쓸 줄은 상상도 못한 탓이다.

“나이스 바디…… 커헉!”

“단장님!”

유재하를 후려친 이설아가 외쳤다.

“랭크는 그렇다 쳐도 적들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후퇴하셔서 마중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 그놈들은 이제 됐어.”

쾅!

주헌의 뒤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지난번에 사용했던 유물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끓어오르는 용암이 적들을 집어 삼켰다.

“으아악!”

심기가 매우 안 좋은 주헌은 그들에게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쾅! 쾅! 쾅!

유물들은 죄다 터져나가고 주헌을 잡기 위해 왔던 미군들도 쓰러져 나갔다. 하지만 적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 이대로면 잡힐 것 같기도 했다.

율리안의 인드라 번개 유물이면 한방일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유재하가 외쳤다.

“이거 끝이 없겠는데요! 빠져나가는 게 낫겠어요!”

그러자 주헌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기, 쟤네가 가져온 차량부터 빼앗자. 저걸로 펜타곤까지 간다.”

주헌이 가리킨 것은 군용 지프.

그 말에 이설아가 제 귀신들을 부렸다.

그러자 평야는 또다시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운전대를 붙잡은 병사들도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빙의된 병사들이 니가 내 여친을 빼앗아갔네, 어쨌네 하며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차를 빼앗은 이설아가 외쳤다.

“지프를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쾅!

“꺄악!”

군용차량들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미군의 짓이었다.

“이걸로 놈들은 멀리 도망가지 못한다!”

그들은 의연하게 웃었다.

“저들을 절대 보내지 마라!”

“한스 대장의 명령이시다! 이곳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주헌 일행을 부득불 펜타곤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펜타곤에 간다고 한 들 펜타곤을 어떻게 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잡아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참 귀찮게 굴기는.”

유재하는 씩씩거렸다.

“와 씨, 어떡하죠? 진짜 차란 차는 다 부셔놓았는데. 지들도 다 걸어가려고 하나?”

“뭐, 상관없잖아?”

“네?”

“차야 까짓것 고치면 되니까.”

그 말에 유재하가 하하 웃었다.

“와, 단장님 대박. 정비병이셨어요?”

“아니? 고치는 건 넌데?”

“………저 취사병이었는데요.”

그러자 주헌이 유재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유물 복원하듯 고쳐. 할 수 있지?”

못한다고 하면 죽일 눈빛이었다.

하지만 유재하는 머리가 아팠다.

“저기요. 이젠 하다하다 유물 복원에 이어 정비까지 시켜요? 하물며 저 자동차수리공도 아니거든요! 차를 어떻게…!”

“왜. 못하겠어? 기술적으로 무리야?”

“아, 아니 가능하긴 한데…….”

“그럼 됐네. 닥치고 시작한다. 실시.”

“아악! 그거 완전 체력소모 심하거든요?! 완전 방전이거든!”

“그건 니 문제. 내가 몰라도 되는 문제.”

결국 유재하가 울상을 짓자 루이 마틴이 옆에서 낄낄낄 비웃어댔다.

“꼴좋다! 저거 완전 며칠 동안 기절하겠…… 커헉!”

머리를 얻어맞은 루이 마틴은 비명을 질렀다. 뭔가 싶어서 돌아보니 주헌이 이죽이고 있었다.

“어디서 쪼개? 너도 같이 하는 거야.”

“뭐?! 나는 왜!”

“니 아빠가 일하고 있잖아. 당연히 아들놈이 도와야지. 둘이면 시간 단축 되지 않겠어?”

“뭐, 뭐… 야? 나는….”

“닥쳐. 1분 준다. 실시.”

사기왕도 결국 울었다.

***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젠장, 뭐야! 저거!”

동아줄에게 두들겨 맞는 걸로도 모자라, 이설아에게 혼을 빼앗기고 있던 미군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분명 폭격을 맞아 산산 조각난 지프가……!

“부활했어!”

“구, 굴러간다고!”

심지어 놈들이 그 차를 몰고 멀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답은 하나였다.

“미친, 쟤네 복원사가 아니라 정비공이었어?!”

실제로는 기계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다급해졌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 추격하라!”

“추격해!”

하지만 인간의 다리로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는 법이다.

부아아아앙!

운전을 하며 백미러를 보던 이설아가 환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따돌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 시체가 두구나 생긴 것 같다만.”

주헌은 뒤에서 죽어가는 좀비 두 마리를 보며 혀를 찼다.

“유재하. 체력 좀 키워라. 이깟 차 하나 복원했다고 뻗으면 쓰나.”

“#$*&*!”

“사람의 말로 하라니까. 사람의 말로.”

유재하는 억울해서 가슴을 퍽퍽 쳤다. 엄살이 아니라 그들은 정말 힘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어유, 진짜 사람 막 부린다니까!”

물론 사기왕도 그런 주헌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을 소 마냥 부려먹어서 시위하는 것 아니었다.

‘펜타곤에 도착하기 전에 서주헌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사기왕은 눈을 번득였다. 안 그래도 운명왕한테서 받은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아이자 기억까지 잃은 자신을 거두어줬던 키이라 장군.

그런 장군을 없앤 장본인이다.

‘용서 못 해.’

그렇게 루이가 숨겨둔 유물을 꺼내려는 때였다.

‘엥?’

없었다!

숨겨뒀던 저주의 유물이!

장난감 유물이라며 잘 위장해뒀던 건데!

그런데 그럴 때였다.

“이거 찾아?”

유재하가 살랑 살랑 뭔가를 흔들었다.

“너 우리 단장님 건들면 진짜 뒤진다.”

루이는 당황해서 제 주머니를 뒤졌다.

저게 언제!

그건 열쇠고리형 유물이었다.

유재하는 드물게 화난 듯 살벌하게 아이를 노려보았다.

“이거 저주형 유물이지?”

순간적으로 유재하의 지배력이 왕급으로 올라가 루이가 움찔할 정도였다.

“뭘 그렇게 놀래? 나도 전문가야. 이런 건 다 알아본다고.”

“조,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이 찌질아…… 컥!”

“어쨌거나 눈치 못 챌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기는 했는데…….”

콰직.

“헛수고다, 너.”

결국 유물이 박살나자 루이는 절망했다.

‘젠장, 이러면 작전이!’

물론 정작 유재하는 깨진 유물에 내심 의아해 하고 있었다.

제 핏줄이라는 놈이 주헌을 건드린다는 생각에 순간 좀 빡치긴 했는데.

‘신기하네. 유물 부수기는 아무리 수업을 들어도 못 했던 건데.’

그건 순간 지배력이 올라간 탓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유재하는 루이의 귀를 콱 잡아 당겼다.

“잘 들어. 우리 단장님이 애들을 꽤 좋아라 해요.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너도 사지 멀쩡할 텐데, 그것도 예쁘게 굴 때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알지?”

“……….”

“알았으면 얌전히 길안내나 해. 아들.”

뻐억!

“이씨!”

역시 이딴 게 친부모일 리가 없어!

그럴 때였다.

“니들 뒤에서 시끄럽고. 저기 보인다. 펜타곤.”

“어? 벌써요? 꽤 금방 도착했네요?”

그들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펜타곤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아니, 많이 이상한 것 같은데.

[대고분이 일어나 있습니다.]

[주의. 사막의 고분입니다]

[왕가의 계곡이 펼쳐졌습니다]

‘왕가의 계곡? 그 이집트 무덤?’

그렇다.

펜타곤 전체가 무덤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서 웃고 있는 그림자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작전에 성공했겠지, 사기왕.]

바로 집을 나간 멍멍이였다.

========== 작품 후기 ==========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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