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3 내가 니 애비다 =========================================================================
쾅,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고분 주변에 쳐져 있던 배리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덤이 클리어 된 것이다.
무덤의 등급은 2단계 정도. 대충 금도끼 은도끼 무덤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깨부수는 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
그 말에 유재하가 황당해했다.
“과제? 파괴했잖아요?”
“무슨 소리야. 나하고 설아가 성실하게 과제 이행했잖아?”
“아무래도 저랑 다른 곳에 계셨나 봅니다.”
유물의 과제는 간단했다.
‘자신을 잘 목욕시키고, 시중들고 숭배해라.’
하지만 과제이행은 개뿔. 설아하고 신나게 유물로 캐치볼을 하던 건 자신의 착각인가?
뭐 애초에 정상적으로 무덤을 클리어하는 인간이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이득이었네요. 운명왕 졸개들 유물도 몇 개 스틸했고.”
“그러게. 왜 전투하고 안 맞는 유물만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우리 어떻게 펜타곤까지 가요?”
유재하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검색해보면서 탄식했다.
“수백 km는 한참 더 가야 할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기차로 이동 중이었으니 말이다. 히치하이킹을 하자니 이곳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됐어. 미군에 헬기 요청 했거든.”
“보내준대요?”
“그래. 대통령이 직접.”
주헌은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미국 대통령은 주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일도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루이의 일 겸해서 펜타곤으로 가는 길이었다.
대통령과 직접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의 원수가 일개 개인을 만나는 건 엄청난 일이었지만, 상대가 최근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유물사용자라면 또 이야기는 다르다.
하물며 루이는 아마도 미군소속.
그런 아이와 연이 있다니 미국에서 이 연줄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물론 누가 알랑방귀를 뀌든 주헌은 제 좋을 대로 움직이는 인물이었지만.
“어쨌든 니 아들이랑 같이 있다니까 알아서 헬기를 보내준다더라. 맡고 있던 유물도 넘겨주겠대.”
“제 아들 아니거든요?!”
가슴을 퍽퍽 치던 유재하가 루이 마틴을 쏘아보았다.
“사실 이 꼬마한테서 다빈치 유물을 빼앗으면 그만이긴 한데……”
그러자 루이 마틴이 수첩 하나를 꺼내며 되레 화를 냈다.
“그러니까 이건 복제품! 이걸로도 능력은 쓸 수 있지만, 진짜 다빈치 유물은 한스라는 미군 대장이 맡고 있다고! 그걸 빼오려고 권 회장한테 후견인을 맡아달라고 한 거였는데!”
니들이 갑자기 부모라고 나타나서 엉망이 됐어!
그렇게 루이는 속사포로 씩씩 거렸다.
물론 주헌은 무시했지만.
“어쨌든 30분 뒤에 펜타곤에서 마중 온다고 한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뭐.”
그런데 그럴 때였다.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쏘겠다.”
“!”
고분화가 풀리고 깨달은 건데, 황량한 들판에 군이 쫙 깔려 있었다.
미군이었다.
[적의 유물이 결계를 쳤습니다.]
[주의. 이탈, 순간이동 계통 유물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의. 도망갈 수 없습니다.]
심지어 유물까지 쓰고 공격 준비 중이라 주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마중 온 건 아니지?”
“설마요. 연락한지 5분도 안 지났잖아요.”
그러자 주헌이 그들을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뭔가 착각한 건 아니지? 대통령이랑 오후 5시에 만나 뵙기로 했는데.”
그 말에 놈들이 말했다.
“위에는 잘 보고하지. 서주헌 일행은 고분화에 휘말려 오는 도중 사망했다고.”
저것들이.
“알았으면 얌전히 아이를 돌려주도록.”
“저항하면 쏘겠다.”
주헌은 슬쩍 루이 마틴을 노려보았다.
“설마 니가 이 상황을 만든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뭐,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저놈들이 마중 나올 놈들이랑은 별개 인물들이라는 것이고, 유물 사용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좀 이상했다.
‘미국은 TSOF를 해체했을 텐데?’
쌍욕을 먹어 미국 정부는 자체적인 발굴단을 꾸리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미국이 순순히 유물을 포기할 리도 없지.’
중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 마당에.
키이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책임자가 앉게 된 것 뿐이리라.
그리고 누구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군 내부적으로 별개의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러니 부모랍시고 루이의 유물을 빼돌리려는 자신들이 곱게 보일 리도 없었다.
“은밀하게 이 자리에서 처리한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해라.”
“예!”
처리하긴 누구 마음대로 처리해.
그렇게 주헌이 발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쿵!
총탄이 날아왔다.
“상대는 그래도 왕급이다. 만만하게 보지 마라!”
저것들이.
주헌은 방긋 웃으며 한손을 들었다.
“설아야.”
“네.”
“처리해.”
“알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적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인들의 주변에서 악귀와 귀신들이 나타나면서 혼란도 이런 대혼란이 없었다.
물론 그들의 눈에 귀신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쏘, 쏘지 마!”
귀신들은 적들에게 빙의하면서 온갖 방해공작을 펼쳤다. 단순히 길달의 유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엔 좀 특별한 유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형랑의 목걸이 (S급-영웅전설급/귀속성유물)]
신라 진지왕의 아들로 귀신을 부리는 능력을 가졌었다. 길달이라는 도깨비와 귀신들을 부려 여러 일을 했다고 전해졌다.
그건 예전에 주헌이 이설아와 부딪칠 때마다 썼던 목걸이 유물.
길달이 유독 그 유물 앞에서 꼼짝 못한다 싶어 이상하다 했더니, 연관이 있는 유물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홀튼 가의 비행기에서 슬쩍 해왔었던 그 목걸이는 이설아에게 빌려주었다.
‘영혼계열 유물은 설아의 전문이지.’
덕분에 이설아의 능력은 파워 업을 했다. 훨씬 더 많은 귀신들과 도깨비들이 소용돌이치며 적들의 무기를 부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악! 사, 살려줘!”
“먼저 단장님을 공격한 게 누구더라?”
이설아는 사정없이 적들을 쓸었다.
그 모습은 반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적들의 입장에선 저승사자일지도 몰랐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파악한 건지 그들은 작전을 바꿨다.
“약점을 공략하라!”
“서주헌의 약점을!”
엥? 약점?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점이라니 무슨 소리지?
그런 의문을 품는 찰나였다.
이설아가 부리는 귀신이 전리품을 들고 주헌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겁쟁이 유재하와 루이가 으악 서로를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렀다.
“악! 귀신, 귀시이인!”
“젠장, 근데 귀신주제에 왜 또 예쁜데! 젠장! 악, 악수하지 마!”
그러나 처녀귀신은 대수롭지 않게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주헌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음?”
주헌은 귀신이 내민 건 유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아무것도 안 적힌 검은색 무광 카드였다.
크기는 트럼프카드 정도.
하지만 그게 대충 기록형 유물이라는 걸 잘 아는 주헌은 가볍게 발동을 시켜보았다. 사용자가 지정한 조건이 걸려 있겠지만, 그런 건 주헌에게 의미가 없었다.
왜?
‘파괴당하고 싶어?’
그 한마디면 해결이 되었으니.
그리고 유물이 발동 되고 검은 카드의 앞면에 이런 저런 글씨가 나타났다.
대부분은 군 정보였다.
하지만 유독 흥미로운 계약서가 들어가 있었다.
[서주헌 제거 의뢰서]
[의뢰자: John Smith]
“오?”
주헌은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물론 유재하는 기겁했지만.
“다, 단장님 이거 살인청부 의뢰서잖아요!”
“아무래도 날 질투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가 보네.”
아니, 질투의 문제가 아니잖아!
카드를 받아 자료를 읽던 유재하가 결국 비명을 질렀다.
“와 씨, 이거 뭐야! 약점까지 팔고!”
어쩐지 단장님 앞에 놈들이 너무 당당하게 나타났다 싶더라니!
보통 유물사용자들끼리 싸울 땐 어지간히 자신 있지 않으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유재하는 걱정스럽게 보았다.
“정보 팔려도 괜찮은 거예요? 그리고 이 까마귀라는 건… 단장님 이런 유물 없잖아요?”
뭐, 있긴 한데 무형이지.
자신의 몸에 오라의 형태로 스토커처럼 찰싹 붙어 있으니까.
빼앗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게다가.
“애초에 정보가 털린 건 상관없어.”
“엥? 왜요?”
“거기 쓰여있는 내 정보들. 대부분은 가짜거든.”
유재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요?! 가짜?!”
“그래. 바보같이 에드워드한테 만들라고 한 가짜 신상정보만 다 캐갔네.”
“…………!”
유재하는 급하게 정보를 살폈다.
거기엔 주헌의 출생기록이며 졸업한 대학교의 학위까지 적혀 있었다.
심지어 친척들의 이름과 주소까지.
하지만.
‘단장님은 고아다.’
그뿐인가.
‘단장님은 고졸이다. 생일은 여름이 아니라 크리스마스고.’
그러니까 뻔뻔하게 가족관계를 바꾸고 학위 위조(?)까지 했다는 거지만…….
“설마 미끼 정보예요?”
“암. 그러니까 상관없다.”
그런데 자료를 보던 유재하가 어째서인지 픽 웃는 것이었다.
“약점까지 팔렸는데도?”
“상관없어.”
“이런 약점도 털렸는데?”
“뭐?”
유재하는 대답대신 뭔가를 보여주었다.
- 서주헌의 특징과 약점
[유물성애자]
[유물이라면 남자 여자 안가림]
[유물들 남녀할 것 없이 순결주의보]
[1m 이상 가까이 하지 말 것.]
주헌의 얼굴표정이 볼만했다.
유재하는 깔깔 웃어댔다.
“이야 그랬구나! 우리 단장님, 유물이면 남자 여자도 안 가리는 구나. 그랬구나!”
“야.”
“세상에, 그래서 미녀들 옆에서도 그렇게 돌부처였구나!”
“야.”
“캬악! 세상에! 다가오지 마세요! 제 유물들이 무서워하잖아요! 저리 안가요?!”
“야.”
“제 유물들이 시위하는 게 안보이시…… 커헉!”
유재하는 대낮에 별을 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재미있는 건수라 그만.”
“두 번 재밌으면 넌 죽는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여간 누가 이딴…… 설아야?”
주헌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약점을 보던 이설아의 표정이 새하얗게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쩐지 최근 유혹을 해도 안 넘어 오시더라니……!”
“설아야?”
“파산왕이 유혹을 해도 무덤으로 쌩 날아 가버리시더니……!”
“설아야. 아니야. 다 알잖아.”
그런 것 치고는 달기 유물을 꽤 아끼시던 거 같던데.
늘 옆에 동아줄을 놓고 주무시던데! 달기가 침대에 기어들어가도 별 말 안하시던데!
아마도 장난이겠지만 이설아가 슬퍼하자 결국 유재하는 낄낄낄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러니까 취향이 그런 거라니까! 알았어요. 원하는 타입만 말해요. 제가 예쁜 유물들을 구해올……”
뻐억!
유재하는 이젠 외계은하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결국 주헌은 뒷목을 잡았다.
“이 새끼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운명왕의 부하들이 왜 그렇게 개떡 같은 유물을 가지고 있나 했더니. 술탄의 하렘, 남미 알몸 댄서, 그리스 미소년 유물, 메이드의 유물 등.
좀 많이 이해할 수 없는 게 가득하지 않았나.
그냥 사내놈들이 취향이 특이하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구나.
알고 보니 전부 자기 대항책이었구나!
이 살인청부 의뢰서가 미군에게만 보내지진 않았을 테니까!
유재하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이고, 다른 4개 약점까지 보면 진짜 세상 멸망하겠네.’
그럴 때 주헌의 살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딴 헛소문 퍼트린 거 누구야. 너냐?”
“그럴 리가요! 하지만 전 범인을 알 것 같습니다!”
“누구.”
유재하는 대답 대신 계약서를 마저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리킨 것은 낯익은 개 발자국.
그걸 본 주헌이 살벌하게 웃었다.
“이 똥개 새끼. 죽었어.”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