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내가 니 애비다 =========================================================================
〈 내가 니 애비다 (1)〉
이런, 미친.
그것이 윤시우와 권 회장이 동시에 읊조린 말이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내지 않았어도 둘이 동시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저 또라이가 또 사기를 치네.’
그랬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아니, 애초에 자식 스캔들은 서주헌을 보내버리려고 풍문왕이 조작한 건수였다.
기사대로라면 주헌이 14살 때 낳은 아이가 되겠지만, 뭐 어떤가.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가 믿게 된다.
괴벨스가 했던 말대로 대중을 속였다.
그러니 대중들은 속아 넘어갈지언정 직접 조작한 자신들이 속을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뭐가 어째?
“지금 누가 누구 아들이라고?”
“지금 뭐라고 했냐?”
그러자 주헌은 정말 뻔뻔하게 웃었다.
“왜? 고맙다, 야. 너희들 덕분에 오래전에 헤어진 우리 조카를 찾았어.”
“야, 잠……!”
풍문왕은 뒷골을 잡았다.
자신이 쓴 기사가 도리어 이용되다니!
더 열받는 건 냄새를 맡고 왔었던 기자들의 말이었다.
“친자 확인서라고?”
“세상에, 풍문왕의 말이 틀린 거였어?”
“말도 안돼. 풍문왕의 말이 틀리기도 하다니!”
주헌은 하하 웃으면서 사기왕을 어깨에 들쳐멨다. 기껏해야 쌀 한 포대도 안 되는 꼬마라 무거울 것도 없었다.
“자, 삼촌이랑 좋은데 가자.”
“야, 이 미친! 이거 안 놔?!”
이러다간 서주헌을 보내버리기 전에 자신이 훅 가버리겠다!
“젠장, 이거 놓으라… 아악!”
사기왕은 제 목에 들어오는 칼날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조카. 움직이면 진짜 팔 다리 하나씩 잘라낸다.”
그 눈빛이 너무나도 무서워 루이는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젠장, 미쳤다고 이딴 놈에게 사기를 쳤지.
어린애라도 유물사용자에게는 가차 없는 주헌이라면 정말 가죽만 남기도 다 팔릴지도 몰랐다.
주헌은 훌쩍 창문가로 뛰어 올랐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너 거기 안 서?”
“앉아있진 않은데?”
“야!”
“아이의 아버지가 이미 기다리고 계셔서 이만.”
주헌의 말에 윤시우가 외쳤다.
“회장님, 이건 분명 조작된 겁니다. 유재하의 친자식이라니요!”
“그럼 그냥 내 아들로 하지 뭐.”
저놈이 진짜!
확실했다.
저놈의 반응을 보니 슬쩍 아버지만 바꿨을 뿐 사기를 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 주헌을 한두 번 봤었나.
저놈은 지구가 네모라고 뻔뻔하게 지껄일 놈이었다.
그러니 확실했다.
‘분명 위조된 문서다.’
눈빛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주헌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아이를 여기 내려놓고 가.”
회장에서 일어난 소동에 하나둘씩 경호원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설아가 침을 삼켰다.
척 보기에도 유물의 기운이 풀풀 풍기는 것이 죄다 유물 사용자들이다.
아무리 주헌이라도 적진에서 포위되는 건 경계해야 했다.
“단장님.”
특히나 여기는 뉴욕지사긴 해도 TKBM의 사옥이 아닌가.
점점 포위해오는 경호원들.
천장부터 바닥까지 에워싸는 유물 결계.
좁혀오는 포위망에 이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칼에 손을 댔다. 독을 머금은 유물이었다.
‘또 단장님을 위험하게 할 것 같나.’
그녀의 눈이 살의로 이글거렸다.
TKBM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기억 때문인지 더욱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였다.
그녀의 기세를 눈치챈 걸까.
주헌은 괜찮다는 듯 살짝 손으로 막아섰다.
그러더니 낄낄 웃었다.
“정 못 믿으시겠으면 재검사해보시던지.”
그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입만 산 건 여전하구나. 좋아, 그럼 어디 검사해보자고. 대신 네놈이 가져온 증명서는 못 믿겠으니까 우리 쪽 사람이 검사한다.”
당연히 반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헌은 뜻밖에도 하하 웃었다.
“좋아. 얼마든지.”
그 말에 이설아도 놀라서 주헌을 보았다.
주헌이 재검사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설아는 주헌이나 유재하의 미래를 알고 있다.
도굴단에서 자식이 있었던 것은 딱 한 명. 나머지는 자식은커녕 결혼도 못 했다. 그러니 자세한 경위는 몰라도 이번 결과도 역시 주헌의 조작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재검사를 하면 당연히 들킨다.
‘그런데 단장님. 무슨 생각으로….’
그러나 이설아가 무슨 생각을 하건 말건 주헌은 밖을 보았다.
“그럼 애아빠를 데려와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아악! 이놈아! 어딜 끌고 가는 거야!”
소리는 아래 1층에서부터 들렸다. 그리고 그 비명이 주헌이 있는 5층 건물에 다다른 순간!
쨍그랑!
우당탕탕!
유리창이 깨지고 가구가 박살나며 새로운 손님이 들이닥쳤다.
[$#**!]
불렀어? 불렀어?
신이 난 동아줄이 유재하를 데리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동아줄을 보며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부르진 않았지만 뭐 좋았다.
“검사체 왔네. 시작해보지.”
***
“단장님. 괜찮으신 겁니까?”
한편 이설아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주헌을 보았다.
주헌이 하는 행동이니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단장님이 가져오셨던 그 결과지, 유재하가 조작했던 거 아닌가요? 저쪽이 재검사를 하면 들통이 날텐데요.”
뭔가 꼼수를 쓰자니, 상식적으로 DNA를 조작하면 외형도 바뀔 수밖에 없다.
즉, 가짜 자식은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의미.
설령 어떻게든 눈속임을 하려고 해도 권 회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검사를 하면 안 된다.’
정작 유재하는 다른 반응이었다.
“다시 할 거야. 검사 다시 할 거라고. 난 용납 못해!”
유재하는 머리를 벽에 쾅쾅 박고 있었다.
“아니, 내 나이 스물여섯에 무슨 9살짜리 애가 있어! 이거 검사가 잘못된 거야.”
주헌은 커피를 홀짝였다.
“99.8%로 친자가 맞다며? 현실부정 마라.”
“검사가 잘못된 거라니까요? 그리고 0.2%의 확률이 아직 남았잖아? 0.2%의 확률로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요?”
뭐라는 건지.
그리고 그 모습에 상황을 파악한 이설아가 입을 떡 벌렸다.
“자, 잠깐만. 진짜? 검사지 조작 안 한 거야? 그럼 진짜 니 아들이라고?”
“그래! 조작 했으면 내가 지금 이 상태겠냐. 어?!”
결국 진실을 알게 된 이설아는 기겁했다.
“세, 세상에. 그럼 너 열일곱 살에 사고 쳤니? 그리고 애 엄마는 나 몰라라 버렸고? 너 그런 애였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 놈은 아니라고 생각 했는데…!”
“아오! 아니라고!”
유재하는 진짜 억울했다.
“열일곱 살은 개뿔, 나 스무 살 때 동정 뗐다고!”
유재하는 어찌나 억울한지 엉엉 울 지경이었다. 솔직히 자신도 어떻게 된 건지 몰랐다.
아니, 자신의 DNA로 넣어서 검사기를 돌린 건 좋다 이거였다.
어차피 검사지의 이름과 수치는 조작하면 그만이니.
그런데 자신이 결과를 조작하기도 전에 왜 제자식이라고 뜨는 건데!
그러니 미치고 환장하지 않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요!”
주헌은 하하 웃었다.
“뻔하지. 꼬마애가 나이를 속였든, 술김에 동정 떼였든 둘 중 하나 아니겠어? 잘 키워라.”
“단자아앙니이미!!”
유재하는 이제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진짜 제 일 아니라고 막 말하기는!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낄낄낄 사탕을 받는 아이마냥 웃어댔다.
‘진짜 합법적이다. 합법적.’
이러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물을 빼앗기 위해 이것저것 귀찮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진짜 친부라는 데 뭐 어쩔 거야?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에 있나.
그리고 이 상황 자체로도 어찌나 웃긴지 큭큭 웃어댔다.
결국 황당해 하던 이설아가 주헌에게 몰래 속삭였다.
“단장님.”
“응.”
“혹시 이 사실을 다 알고 재하한테 DNA 검사를 시켜보신 건가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던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미쳤어? 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야.”
그야 그렇다.
“그러면…….”
주헌은 핸드폰에 집중하면서 답했다.
“그냥 묘하게 신경이 쓰여서.”
“신경이요?”
“그래. 재하 놈이 가졌어야 할 사기왕의 타이틀을 가진 것 하며, 미술재능을 가진 것 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물을 가진 것 하며…….”
우연치곤 너무 겹쳤다.
갈구긴 해도 주헌은 제 부하놈을 인정했다.
지금은 찌질하지만 과거엔 그래보여도 세계 정부를 상대로 사기를 치던 천재 예술가였으니까.
뭐 리처드의 매장 탓에 유재하를 예술가로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어쨌든 레오나르도 다빈치 유물을 그렇게 잘 다룰 수 있는 건 재하놈 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유재하의 핏줄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그 재능을 물려받았으니까 그 유물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에 이설아는 미간을 짚었다.
“미래가 바뀐 걸까요?”
“아니면 저놈이 사고를 친 건 맞는데 전생에선 아버지 앞에 안 나타난 걸수도 있지. 이런 망할! 죄다 슬라임이야!”
핸드폰 게임 중이던 주헌은 이마를 짚었다. 현질로 캐릭터를 뽑아대던 주헌은 절규했다.
틀림없이 유물사용의 리스크이리라.
“아무튼 결과가 궁금한건 오히려 나다.”
슬라임만 100개를 뽑아 슬퍼하던 주헌이 미간을 좁혔다.
“단순한 검사오류면 아까운 거고, 친 아들이라면 난 누군가의 개입이라고 보거든.”
“개입?”
“그래. 어쨌든 난 유물… 아니아니 조카가 생기는 쪽이면 좋겠군.”
바로 그때였다.
뭔가가 지면을 뚫고 주헌의 앞에 나타났다.
쾅!
[#*&$*!]
결과 나왔대! 나왔대!
두더지 마냥 튀어나온 건 바로 동아줄이었다.
아무래도 진화하더니 이젠 아예 지렁이처럼 땅도 팔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동아줄은 지면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면서 서둘러 외쳤다.
[#*&$*!]
빨리 오래! 빨리 오래!
뭐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올 게 왔군.’
***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말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단체로 일어났다.
거기엔 졸지에 유재하의 아들 겸 주헌의 조카가 되게 생긴 불운의 꼬마도 섞여 있었다.
“결과 어때요? 역시 다르죠? 그 놈들이 조작한 거죠?”
“어, 그게!”
불려온 연구원은 재빨리 서류를 꺼내들었다. 그는 권 회장에게 고용된 사설 연구소의 사람이었다.
결과를 주헌에게 유리하게 조작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니까 결과는….”
그런데 이때였다.
쾅!
사무실 문을 열고 주헌이 들이닥쳤다.
“결과 나왔다며? 기자들은 불렀어?”
“아씨!”
그가 나타나자마자 사기왕은 식겁해서 풍문왕의 뒤로 숨었다.
마치 괴물을 보는듯한 눈빛이었다.
물론 윤시우나 TKBM 직원들은 눈을 부릅뜨며 주헌을 쏘아보았지만.
“저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막…!”
그러나 제 안방마냥 성큼성큼 들어온 주헌은 다짜고짜 연구원에게 물었다.
“결과는?”
당황하던 연구원은 권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그게….”
“됐고, 결과.”
주헌은 확 서류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바로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윤시우는 저 버르장머리 없는 걸 보라며 황당해했지만, 상관없었다.
그 역시 결과가 궁금했으니까.
“됐고, 어디보자. 그리고 넌 망신 당할 준비나 해. 대 사기극을 펼쳤다고 세상에 공표할 테….”
그런데 이때였다.
“미친.”
서류를 빼앗아간 윤시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아침드라마의 장본인들인 유재하와 루이가 달려 왔다.
“뭐야. 결과 뭔데, 뭔데!”
“아니죠? 불일치죠? 그렇죠?”
하지만 윤시우는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일치.”
이번엔 권 회장도 놀랐다.
그뿐인가. 그 자리에 있던 TKBM의 직원들과 기자들, 이설아까지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당황한 유재하와 루이가 종이를 빼앗아 확인했지만, 어딜 어떻게 봐도 둘은 정확한 부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아들은 절규를 하고 말았다.
“맙소사, 이번엔 정말 제대로 검사했네…”
“꺼져! 아니 인정 못 해! 이딴 찌질이 새끼가 내 아버……!”
그러나 그럴 때였다.
“으아악!”
루이 마틴은 비명을 지르면서 제 귀를 잡히고 말았다.
“이게 무슨!”
아이의 귀를 잡아당긴 건 다름 아닌 주헌이었다.
“어허 조카. 아버지한테 새끼라니 이놈 보게. 말버릇은 고쳐줘야겠는데, 리틀 노예.”
“리틀 노예는 무슨……!”
그 말에 주헌은 정신이 나간 유재하를 가리키며 악의 없이 말했다.
“왜? 쟤 내 노예 1호. 그럼 그 아들은 1호 주니어. 그러니까 리틀 노예.”
주헌은 눈을 번득였다.
“전혀 불만 없지?”
아니 무지하게 많은데.
“자, 그럼 인터뷰를 하기 전에 따라해보도록. 아버지.”
“뭐?”
“아버지!”
미치겠네, 정말.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