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4 과속 스캔들 (?) =========================================================================
〈 과속 스캔들 (?) (1) 〉
그것도 아주 제대로 된 스캔들이었다!
“엄마야, 세상에. 이게 뭐야.”
유재하는 신문을 든 채 발을 동동 굴렸다.
주헌이 구독하는 신문은 무려 10개가 넘어갔다.
영어권, 불어권, 아랍권, 스페인어권과 한국, 일본, 중국 같은 한자권 등 각 나라의 주요 신문들이 가득했다.
주헌은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씩 기사들을 훑으며 무덤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사소한 정치뉴스나 범죄, 산불뉴스, 그 모든 것이 무덤과 유물의 동향에 연관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조작의 흔적이 가득한 기사…!
[특종! 최근 핫한 발굴자 서주헌!]
[강탈왕의 충격 소식!]
그 헤드라인을 시작으로 줄줄 이어지는 기사에 유재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말이 안 되는 글귀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신문까지 보고 나서야 유재하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젠장, 큰일 났다.’
이 사실을 알면 정말 큰일 날 인물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일까.
유재하는 오들 오들 떨면서 주헌이 자고 있는 방 쪽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숨겨야 해.’
평소라면 주헌의 옆에 신문을 쌓아놨겠지만 이번만큼은 안됐다.
숨겨야 한다.
그러나 이때였다.
“재하 씨, 무슨 일 있어요?”
아이린의 목소리에 유재하는 신문을 끌어안은 채 신음을 삼켰다.
젠장, 빌어먹을.
세계경제공황이 벌어질 거야.
* * *
“재하 씨?”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왜 그러나 싶었지만, 곧 그러려니 했다.
‘또 유물한테 물리신 거겠지.’
아이린은 시선을 돌려 주헌을 보았다.
주헌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마냥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불에 돌돌 감겨 애벌레마냥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새삼 귀여워 아이린은 주헌의 얼굴을 살살 쓰다듬어 보았다.
그래봐야 일주일동안 안 씻은 곰이지만, 아이린의 눈에는 뭔들 안 귀여워보이랴.
그런데 그럴 때였다.
“끙…….”
주헌이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그리고 그가 깨어나자 아이린이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주헌 씨, 정신이 들어…… 꺄악!”
아이린은 순식간에 침대 위로 넘어졌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주헌은 아이린을 곰인형마냥 꼭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이린은 너무 놀라 심장이 터질 뻔했다.
“주, 주헌 씨!”
주헌의 탄탄한 가슴과 다리와 바짝 밀착한 아이린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은근슬쩍 아이린의 매끄러운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아이린의 향기는 진하지 않고 은은해서 굉장히 좋았다.
“얼마나 잤죠?”
“따, 딱 일주일이요.”
“유물들은?”
“크게 말썽피운 건 없어요. 제가 능력을 쓰니까 박살…… 아니 얌전해졌거든요.”
“에드워드 쪽은?”
“불로초 약은 임상단계라고 했고, 다른 유물들도 산업시설에 투입되었대요.”
“권태준 그 노친네는?”
“특별한 건 없었어요. 단지 권 회장의 예비사위인 윤시우가 영웅급 유물을 얻어서 날뛰고 있고, TKBM에 인재가 많이 영입된 것 정도?”
거기까지 듣고 나자 주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린을 풀어주면서 태연하게 한마디 했다.
“좋은 아침. 언제부터 있었어요?”
그 말에 아이린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주헌은 유물의 리스크 때문에 일주일 내내 동면해야만 했었다.
불로초를 먹었다고는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몸 상태가 안 좋았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자고나니 훨씬 낫네요. 얼굴이 호빵이 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귀여운데…….”
그런데 바로 그럴 때였다.
“지금 호빵 타령 할 때가 아니거든요!”
“!”
기겁한 유재하가 신문을 들고 뛰쳐 들어왔다.
“큰일 났다고요! 이 인간아!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
저놈은 또 뭔 개소리를 하나 싶어서 바라보니, 유재하가 신문을 주헌에게 던졌다.
“이거나 봐요! 그리고!”
그는 아이린을 잡아끌고 방 밖으로 내보냈다.
“아이린은 여기 있어요. 티비도 모바일뉴스도 아무것도 보면 안 되고. 알았죠?”
아이린은 토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더 보고 싶어지지.
그리고 그럴 때였다.
“야이 씨, 이게 뭐야!”
유재하의 뒤통수로 주헌의 욕이 날아왔다. 어지간해서는 소리를 안 지르는 그가 소리를 높일 정도였다.
유재하는 움찔 떨면서 주헌에게 다가갔다.
신문을 본 주헌은 예상대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서주헌, 탈세행위 및 무기불법반입]
[서주헌, 희대의 바람둥이]
[서주헌, 9살 난 숨겨둔 자식이 있었다.]
[단독 인터뷰. 모친은 프랑스계 여성으로 타계. 극심한 생활고.]
[부모 잃은 고아, 천재적인 예술솜씨로 세상을 감동 시키다.]
[아이린 홀튼과 연인 사이?]
[그 와중에 진채원과의 은밀한 밀회. 내연녀? 바람둥이?]
[도구사용? 성적취미는 매우 음란, 퇴폐적.]
[사람은 관심 없다? 극도의 유물성애자.]
[자식은 어떻게 되나.]
거기엔 웬 찌라시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사진.
그리고 진채원과 자신이 씨름을 하고 있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심지어 남들이 오해하게 변강쇠와 옹녀의 유물을 쓰고 있는 사진까지.
주헌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풍문왕의 짓인가.’
그 새끼.
결국 보다 못한 유재하가 어쩔 거냐면서 외쳤다.
“아니,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숨겨둔 자식은 또 뭐예요! 언제 프랑스 국적의 애가 있었냐고! 심지어 9살짜리? 도대체 몇 살 때 만든 자식…… 커헉!”
유재하는 결국 얻어맞았다.
“계속 지껄여봐라, 너.”
“아야야, 내 귀! 아파, 아파요!”
“내가 이런 말하긴 싫지만, 너 붕어기억력이냐?”
그 말에 유재하는 다 안다면서 외쳤다.
“알죠, 당연히 알다마다요. 세상에 우리 단장님, 얼마 전까지 동정이었…… 커헉!”
“동정 아니랬지.”
“씨잉, 그럼 얜 뭔데요! 얼굴이 완전 누구 주니어구만!”
“딱 보면 모르냐? 유물로 사기 치는 거잖아. 변신유물이라도 썼나보지.”
그리고 애초에 애는 무슨!
‘애초에 난 애하고 거리가 멀었다고.’
지독한 워커홀릭에 결혼과는 담을 쌓고 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전생에서는 자연적인 불임 상태였다. 아니, 비단 자신뿐이 아니었다.
서른 조금 넘겨서였나.
유물과 무덤이 나타나고 10년이 다 되어갈 때 쯤, 인간들 대다수는 남녀불문 자손을 만들지 못했다.
유물 증후군 증상 중 하나가 불임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씨를 말리겠다고 선포하는 듯한 증후군.
덕분에 세계에 찾아온 심각한 인구절벽. 심각한 경제침체. 그나마 태어나는 아이들도 기형이거나 유물의 독기에 못 이겨 일찍 죽었다.
‘뭐, 지금은 건강하고, 상황이 다르지만.’
어쨌거나 지금 이 신문 기사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무엇보다 주헌의 자식이라며 사진에 실린 아이만 봐도 그랬다.
“봐, 역시 이놈이야.”
주헌은 조지가 보낸 유물사용자 명단을 보내주었다.
[루이 마틴 (9) 사기왕]
그렇다.
얼굴만 봐서는 몰랐는데, 이름을 보니 확실했다.
일주일 전에 조지가 보내준 명단에 분명 있었다.
언론에는 공표가 안 됐지만 유재하 대신에 〈사기꾼〉의 타이틀을 탄 꼬맹이가!
‘그런데 사기왕이 되었다고?’
심지어 조지가 새롭게 보낸 왕급 명단은 꽉 차 있었다.
일주일 전만해도 조건이 안 되어 후보만 800명, 왕급 5명이었던 자리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왕급이 전원 다 나타나는 건 적어도 1년은 더 있어야 했다.
그리고 굳이 재하 놈을 사기왕으로 올릴 필요는 없어서 냅두고는 있었더니.
사기왕으로 올리든, 호구왕으로 올리든, 어쨌든 왕급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유재하가 왜 사기꾼으로 살았는지 알았던 만큼, 또 사기꾼 타이틀을 주긴 싫었고.
하지만 이건 좀 거슬렸다.
어째 이딴 꼬맹이한테 사기왕의 타이틀을 주긴 좀 싫었다.
묘하게 부하 놈의 자리를 빼앗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 사기왕이라는 놈이 풍문왕이랑 손을 잡았나.’
하지만 왜?
이런 기사를 퍼트려봐야 찌라시라는 게 금방 밝혀질 텐데.
그런데 그럴 때였다.
‘음? 잠깐 있어봐.’
루이 마틴…….
주헌은 황급히 핸드폰을 들어 에드워드가 보냈던 서류들을 살폈다.
[판도라 무덤 발굴신고자 명단]
[중앙아시아 지역]
있었다.
무덤 발굴자 명단에 놈들의 이름이! 그것도 꽤 거대한 무덤으로.
그걸 본 주헌은 씨익 웃었다.
동시에 주헌은 풍문왕 놈들이 왜 이딴 찌라시를 퍼트렸는지 알 것도 같았다.
확실했다.
이건 단순한 앙심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이것들이 왜 이런 짓을 하나 했더니…….”
그럴 때 유재하가 밖을 살피면서 주헌에게 말했다.
“아무튼 슬슬 기자들이랑 경찰들이 몰려와서 귀찮게 할 것 같은데, 빨리 해결하시는 게…”
그리고….
우지끈!
[파산의 힘이 작렬합니다]
[파산의 힘이 작렬합니다]
“!”
집이 크게 뒤흔들렸다.
임시로 빌린 집이 파산의 힘에 짓눌려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유재하는 끄악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봤구나! 뉴스!”
***
“그러니까 거기서 비켜.”
“안 된다, 너희들을 보내줄 순 없어.”
발굴단들은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퍽퍽 쳤다.
그렇다.
눈앞에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율리안 밀러.
그러니까 제갈공명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무덤들을 쓸고 다닌다고 유명한 골치 아픈 놈.
동시에 발굴단 멤버들 사이에서는 섭외 대상 1순위의 멤버이기도 했다.
처음에야 주헌의 농락 때문에 단순한 사기꾼, 심지어 TKBM의 스카웃을 걷어찬 또라이로 알려졌지만 말이다.
하지만 점점 율리안 밀러는 세상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증거로.
[율리안 밀러, 〈책략왕〉의 자리에 오르다.]
[15인의 왕중 책략왕의 자리에 오르다.]
[책략왕으로써 개인 발굴단을 꾸리나.]
그는 이미 주헌의 예상대로 왕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그를 원하고 있었다.
주헌이야 얄밉고 밉상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 무시하더라도…
‘제갈공명의 유물은 특별하다.’
아니 무덤을 꿰뚫어볼 수 있는 치트키를 가진데다가, 막강한 번개유물을 가진 놈이 왜 탐이 나지 않겠나!
각 나라 수뇌부에서도 개인적으로 스카웃 제의를 해올 정도였다.
그래서 현재 가장 덩치를 부풀리고 있는 TKBM을 포함, 전 세계의 발굴연합들이 율리안을 탐내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워낙에 스카웃을 뻥뻥 걷어차서 도도하다고 소문이 난 놈이었다.
‘확실히 누구 밑에서 일할 재목은 아니지만.’
판도라 순위와 지배력만 놓고 봐도 최상위권이니까.
하지만 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제갈공명 유물을 가진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충 제갈공명 유물의 리스크라고 했다.
제갈공명이 유비를 택한 것처럼, 유용한 책략사가 된다는 소문.
은근슬쩍 국가와 기업의 총수들이 탐내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그놈이 방해꾼이 되어 또 나타났다.
“아, 그러니까 비키라고! 제갈공명!”
“안된다고 말했다. 이 무덤은 너무 위험해. 너희들이 들어갔다간 전부 죽을 거야.”
율리안은 팔짱을 낀 채 입구를 장악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놈이 쓰는 전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오 진짜 미치겠네!”
“서주헌 놈이 오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 이 무덤이 7대 무덤 예상지라며 몰린 발굴 팀만 열 팀이다.
그중엔 영웅급 유물을 얻어 신이 난 TKBM의 윤시우.
그리고 다른 왕급의 발굴단들도 많았다.
“거참, 기껏 서주헌의 발을 묶어 뒀는데 말이지.”
풍문왕 하르만은 귀찮게 되었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그 옆에는 9살 난 남자 아이가 한 명.
그 아이가 바로 루이 마틴.
얼마전 신급 유물을 가지고 〈사기왕〉으로 이름을 올린 꼬마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신급 유물들이 우르르 세상에 나온 탓에 왕급들이 대거로 탄생한 것이다.
800명의 꾼급 후보들 중, 신급 유물이 없어서 왕급으로 못 올라가던 이들은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건 모두 진채원이 뿌린 유물 탓이었다.
그럴 때 루이가 율리안을 보며 말했다.
“제가 저 형을 처리해볼까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사실 루이가 이번에 풍문왕과 손을 잡게 된 것도 주헌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공통된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주헌, 그놈은 가만 안 둔다.’
루이 역시 주헌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서주헌이 7대 무덤을 3개나 클리어한 상급 유물 사용자라는 것도 사실.
게다가 풍문왕의 무덤도 털린 일도 있으니, 괴상한 소문으로 주헌의 발을 묶은 것이다.
‘서주헌 놈이 또 오기 전에 저 무덤을 털어야 하는데.’
7대 무덤을 턴 놈이라면 너무나 강력한 라이벌.
그런데 무덤을 떡 틀어막고 있는 저 놈이라니.
“그러니까 비키라고, 제갈공명.”
“안된다고 했다. 너무 위험해.”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오, 우리 공명이. 날 위해서 놈들을 막아주고 있었던 거야?”
“!!”
낯익은 목소리에 발굴단들은 입을 떡 벌렸다.
그뿐인가.
율리안은 그 목소리에 바로 얼굴을 구겼다.
‘저 뻔뻔한 놈이 여기는 또 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태연하게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고마워, 부하. 역시 내 명령대로 놈들을 잘 막고 있었구나. 바람직하다.”
그 말에 발굴단들은 술렁거렸다.
“뭐야! 부하? 너 우리 스카웃은 그렇게 거절한 주제에!”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서주헌 놈 밑으로 들어간 거였어?!”
“이놈이 위험 타령하더니, 다 서주헌을 위한 짓이었어?!”
그러자 황당해진 율리안이 입을 떡 벌리고 주헌을 보았다.
“이봐! 너 똑바로 말 안 해? 내가 언제 네 밑으로 들어갔어!”
“왜? 우리 계약 했잖아. 벌써 잊었어? 인센티브는 두둑이 챙겨줄게. 부하.”
“#$*&*!”
주헌은 막무가내였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