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6 저건 도굴꾼이라고! =========================================================================
〈 저건 도굴꾼이라고! (2)〉
“네? 지금 뭐라고요?”
“저기 그러니까 그…… 이의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요?”
“네, 불만 있으면 하르만 씨도 세 명이서 발굴을 하라고……”
이게 진짜 미쳤나!
응접실에서 여유를 피우던 하르만은 마시던 커피잔을 던질 뻔했다.
뾰족한 이목구비에 푹 꺼진 볼. 마른 몸. 좌중을 선동할 것 같은 큰 눈에 분노가 일자 마치 사탄 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결국 하르만이 직원을 향해 쓰게 웃었다.
“판도라는 농담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아, 아니 정말인데요…….”
뭐라고, 진짜라고?
곧 하르만의 얼굴이 마귀로 변했다.
“지금 당신들 돌았나? 판도라가 서주헌의 편을 왜 들어줘!”
“아, 아니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럼 이게 편을 들어주는 거지 뭐야!”
“그…… 그건!”
풍문왕은 소문을 모으는 유물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판도라 내부의 이야기도 잘 안다.
판도라에서 주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너무 뻔했던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풍문왕이 외쳤다.
“어떤 놈팽이가 내 이의서를 무시했는데?”
“조지 홀튼 의원이라고 하는군요.”
“조지 홀튼?!”
아, 그래. 홀튼.
그놈의 홀튼 놈이 문제였구나.
‘한 번 판도라한테 죽을 뻔했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판도라 의장단이 짜고 쳐서 유물증후군으로 없애려고 했던 홀튼 가. 그 가문의 아들이 얼마 전 판도라에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풍문왕의 고용인이 알은체를 했다.
“조지 홀튼이면 최근에 무덤 긴급재난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한 또라이 아닙니까?”
그렇다.
갑자기 무덤에 휘말리게 되었을 경우, 그 대피 요령을 적어 세상에 배포한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화재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 시에 피난 요령, 소화기 사용법 정도 수준이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대처를 못해야 판도라에 더 의존할 것이다’ 뭐다 하면서 거품을 무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의 안전 따위, 안중에도 없었으니 만큼.
그리고 그걸 알기에 주헌이 일부러 기본적인 범위에서 매뉴얼을 적어준 것이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지 홀튼이나, 서주헌이나.
‘이것들이 감히 어디서 까불고 있어.’
풍문왕이 치를 떨었다.
‘내가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
기껏 스캔들로 판도라에 라인을 만들어 놓았다 싶었더니 웬 거지깽깽이가……!
결국 그가 말했다.
“일단 윌슨 의원에게 연락해서 판도라 법 개정하게 해. 미신고자는 무조건 다 처벌받게 하라고.”
“그렇게 사사로이 움직여 줄까요?”
“싫으면 스캔들 퍼질 준비나 하라 그래!”
판도라가 공식 지정한 왕급의 지정 인원수는 15명.
그중 현재 왕급으로 지정된 사람은 다섯 명. 그리고 후보로 올라온 사람들만 800명.
하물며 왕급이 되면 특별한 유물을 받게 된다고 예언이 떨어진 상황이라 다들 눈이 번득이는 상황이었다.
‘왕급의 자리엔 아무나 올라오게 할 수 없지.’
격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서주헌 같은 놈이 있어?
그러니.
‘개정해서 서주헌 그 도둑놈부터 끌어내리자.’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판도라 의회의 논의.
“이번에 발의된 안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원수와 관계없이 발굴 미신고자의 출입을 무조건적으로 금하며, 어길 시 처벌한다〉 와 관련된 의제입니다.”
이번에 올라온 의제에 판도라 의원들은 큭큭 비웃었다.
이 안건이 판도라에 이득이 될 뿐만 아니라, 서주헌을 잡자는 의도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판도라 의원들은 당연히 가결 될 안건이라고 생각했다.
조지 홀튼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크리스 의원님. 의원님 가족 분들은 집에 잘 계시죠?”
“………왜 그런 걸 묻습니까?”
크리스 의원은 괜히 조지 홀튼이 운을 띄우자 불길해졌다.
사실 조지 홀튼이 강탈왕과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물며 강탈왕에 의해 권 회장의 별장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도!
아니나 다를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이 법이 통과했다고 치죠.”
“……?”
곧 조지 홀튼이 싱글 싱글 웃으며 한마디 날렸다.
“그럼 댁네 집이 무덤으로 변하면,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처벌해도 됩니까? 미신고발굴자로.”
그 말에 상당수의 의원들이 움찔했다.
조지 홀튼의 말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주헌의 악몽이 떠오른 그들의 답은 간단했다.
“500명 전원 반대! 해당 의제는 무효처리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조지 홀튼이 쯧 혀를 찼다.
“거참 돈 처먹은 의제 들고 오지 말고, 제대로 된 걸 의제에 올립시다. 좀?”
***
[등신 같은 의제 폐기처분함.]
주헌은 조지 홀튼으로부터 날아온 간략한 메시지에 낄낄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사람은 잘 골라서 판도라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판도라의 힘이 너무 커지지 않게 주헌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봐야 풍문왕 놈. 독기가 올라서 이상한 스캔들이나 내려나.’
뭐, 아무래야 상관없나.
놈의 날조와 선동은 거슬리긴 해도 어느 정도 예상 범위니.
중요한 건 15명의 왕급에 제 부하들도 끼워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적으로 호구왕 유재하와 책략왕 율리안.
‘그래도 그 전에 몇 개 더 스틸해볼까.’
주헌은 이미 다른 독식자들이 발굴신고를 하고 찜한 무덤명단을 보며 킬킬 웃었다.
그중에는 권 회장이 발굴신고를 한 무덤도 있었다.
그럴 때였다.
“우와, 단장님, 어쩐 일로 8000만 달러나 기부 하셨어요?”
유재하가 주헌이 있는 노천탕 안으로 불쑥 난입해왔다.
이설아가 검토중인 장부를 훔쳐봤던 유재하가 까무러쳐서 들어온 것이다.
“설마 유물 리스크예요?!”
그 말에 주헌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곧 히죽거렸다.
“왜 이래. 나도 가끔은 좋은 일을 하는 법….”
“아, 계략적으로 뇌물을 보내셨구나.”
저놈이.
곧 주헌의 분노를 느낀 건지, 꼬리를 내린 유재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왜요. 맞잖아요. 그래봐야 은밀한 비서로 돈 번거랑 의원들 삥 뜯은 돈이겠지만, 단장님이 그냥 돈을 뿌릴 리가 없지 않느냐고요!”
“칫.”
들켰나.
이설아는 납득했다.
‘하긴. 단장님이 아무 이유도 없이 기부를 하실 분이 아니지.’
주헌이 인색한 사람은 아니지만, 때와 사람은 가리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말했다.
“돈을 뿌린 이유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이미지 관리. 불법발굴로 물어뜯으려는 새끼들한테 보여주는 용도야. 그 시스콤도 쉴드 칠 거리가 있어야 날 커버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리고 또 하나는.
“재단에 거액의 돈을 넣어두면 나타날 놈이 있다. 앞으로 더 넣어둬야 해.”
주헌은 큭큭 웃었다.
그러니까 돈이 있는 곳에 눈을 번득이며 나타날 희귀할 유물 놈이 있었다.
은행에 돈을 넣어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 하는 거 1석 3조를 노리면 더 좋지 않나.
밖에서 보면 주헌은 계속해서 기부를 하는 선량한 기부맨!
그러나 그 속내는…….
주헌은 노천탕에 누워 사악한 미소를 흘렸다.
그럴 때 유재하가 주헌의 옆으로 슬금슬금 몸을 담갔다.
“단장님 단장님, 같은 남자직원으로서 슬쩍 묻고 싶은게 있었는데요. 아이린하고…설아하고…”
그럴 때 이때 유재하의 목소리가 끊겼다.
주헌은 의아한 듯 유재하를 보았다.
“아이린하고 설아가 뭐?”
“………….”
유재하는 답이 없었다.
유재하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주헌의 하반신.
그리고 어째서일까.
유재하는 씨이, 훌쩍이면서 어딘가를 급히 가렸다.
“이 사기꾼! 다 해먹어라!”
그러더니 그대로 뛰쳐나가버렸다.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 왜 저래?
“매일 뜨거운 물이나 찾는 노친네야!”
유재하의 절규에 밖에서 이설아가 킥킥 웃어댔다.
사실 과거로 돌아온 주헌이 온천이나 스파등을 자주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덤에 다녀오고 나면 삭신이 쑤시기도 했지만, 미래에서는 이런 느긋한 목욕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미래에는 독식자들의 유물에 의해 물이 심할 정도로 오염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물은 정화 유물을 가진 놈들만 깨끗한 물로 바꿀 수 있었는데, 일반인들은 돈을 주고 정화수를 공급 받아야 했다.
쉽게 말해 봉이 김선달 같은 진짜 물장사가 판을 쳤다.
뭐,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식수만 사고 오염된 물로 몸을 씻었다.
그건 독으로 몸을 씻는 것과 똑같았고.
유물의 독기 탓에 3분 이상 담그면 안 되는 팔자였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몸을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번개 샤워를 하던 것이 일상.
주헌은 뜨뜻한 물에서 푹 녹아내리면서 웃었다.
‘역시 판매왕 놈이 정화유물을 차지하기 전에 얼른 얻어야겠어…….’
아니면 아직 나타난 것 같지는 않지만, 물을 오염 시킬 놈을 조져버리는 것도 괜찮고.
그럴 때였다.
띠리링.
“?”
[이사님, 진짜 돈줄 정보!]
에드워드에게서 급한 문자가 날아왔다.
***
한편 그 무렵.
주헌이 있는 목욕탕을 슬쩍 보던 이설아가 쿡쿡 유재하를 찔렀다.
“재하야. 지금이야. 빨리!”
“……정말 하라고?”
장부를 보고 있던 유재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가운을 입고 있는 이설아는 진지했다.
“빨리 훔쳐와. 단장님 속옷!”
“……….”
진짜 하다 하다가 팬티까지 훔쳐오라는 건 처음 봤다!
유재하는 울상을 지었지만, 이설아는 진지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품속에서 꺼낸 건 작은 향수병.
‘이 유물을 뿌리면 단장님은……’
그건 이설아가 중국 동료로부터 공수해온 유물이었다.
아이린이 열병의 유물을 낙찰했을 때, 이설아도 참을 수가 없어서 공수해온 것이었다.
물론 아이린처럼 열병의 기능이 있는 유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걸 뿌리면…….’
이설아의 눈이 반짝였다.
“자, 어서!”
“이씨, 내가 진짜 남자 팬티나 훔쳐 와야겠냐!”
“싫어?”
동시에 이설아가 장부를 흔들어보였다.
그건 이설아가 합류하기 전, 유재하가 맡아서 정리하던 도굴단의 장부였다.
“빨리 안가면, 이 장부 건. 단장님한테 이른다.”
“아악, 그것만큼은 제발!”
유재하는 훌쩍였다.
이설아는 처음 유재하가 작성해놓은 장부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날라가는 글씨에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는 기록들….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원래 회계 일은 계산에 능숙한 자신이 맡았고, 다시 정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단순히 정리가 안 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금액이 안 맞는다.’
찔끔 찔끔 돈이 새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유재하놈이 돈을 빼돌린 건가!
그래서 이설아가 눈을 번득이며 유재하를 다그쳤더니 도리어 기겁하며 외치는 것이었다.
“그 지렁이 새끼! 진짜 빼갔어?!”
아무래도 유물을 복원하는 중 유재하는 말싸움을 하다가 얼떨결에 지렁이하고 내기를 하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니가 그걸 하면 내가 장을 지진다.’ 정도의 내기.
하지만 결국 유재하는 졌다.
그런데 빼간다고 했던 돈이 하필 회사 돈이라고?
그것도 주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여기저기서 찔끔찔끔!
한 2000만 원 정도 되나.
결국 유재하는 자신의 돈으로 메꾸긴 했지만… 장부를 자세히 보면 지렁이가 뜯어간 흔적들이 있었다.
“자, 네 실수로 유물한테 회사 돈 뜯겼다는 말. 단장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지?”
어떻게 되긴, 죽겠지.
“자, 그럼 훔쳐온다. 실시.”
“아이씨!”
유재하는 할 수 없이 주헌이 옷을 벗어둔 탈의실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열쇠야 카운터에 잃어버렸다고 하고 새로 받아왔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주헌이 바구니에 벗어둔 옷과 갈아입을 속옷 일체를 발견했다.
‘찾았다.’
이게 뭔 짓인가 싶었지만 유재하는 시키는 대로 주헌의 팬티를 집었다.
그런데 그 순간!
턱!
누군가의 손과 겹쳤다.
깜짝 놀란 유재하가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아이린이 있었다.
“!”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아이린의 얼굴은 무서웠다.
“아, 아이린?”
“이거 제 거예요.”
“……?!”
아무래도 아이린은 이설아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손에 들려 있는 열병의 유물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유재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쪽도 부탁 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안….”
그러자 아이린이 돈 뭉텅이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돈을 받은 유재하가 넙죽 팬티를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하지만 그 순간.
“꺄악!”
어둠을 가르던 맹수가 스르륵 튀어 나와 이설아의 향수 유물을 훔쳐가고!
“꺄아악!”
아이린의 열병 유물도 훔쳐갔다!
“!”
[#*$*!]
이거 내 거야, 내 거야!
그건 바로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이 맹수가 없는 눈을 번득이며 주헌이 있는 욕탕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폭주하듯이!
========== 작품 후기 ==========
+ 추코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