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4 잘못 걸렸다, 진짜. =========================================================================
〈 잘못 걸렸다, 진짜. (4)〉
아니, 설사로 죽는다니!
“진짜 설사 유물이에요?”
“그래. 설사로 탈진해서 죽을 수도 있다.”
“으악!”
하다못해 화장실이고 뭐고 없는 무덤에서 설사로 죽고 싶진 않았다!
그들은 황급히 입을 막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설사라니, 어떤 놈이길래!”
“음, 콜레라?”
뭐? 콜레라?
그들은 경악했다.
콜레라라면 말 그대로 구토, 급성 설사 탓에 탈수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질병이 아닌가!
‘어쩐지 무덤 안이 더럽더라!’
“그럼 콜레라 유물이에요?”
“음, 이놈은 대충 맞아.”
“이놈은?”
“한 놈만 있는 게 아니야. 대충 여기 3마리가 더 숨어 있다.”
“3, 3마리요?”
“그래.”
그 증거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맹렬한 설사의 유물이 난동을 피웁니다.]
[끔찍한 수포의 유물이 춤을 춥니다.]
[엉덩이를 찢는 치명적인 유물이 방석을 요구합니다.]
[치명적인 열병의 유물이 구혼자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헌의 말에 이설아는 바로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유물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4개……. 설마, 역병의 신이나 까마귀 가면을 쓴 역병의 의사인가.’
대충 질병이나 약물을 만드는 놈의 유물일 것이었다. 게다가 이 무덤의 규모면 흑사병급 일지도 모른다.
이설아는 침을 삼켰다.
과거에도 질병과 관련된 무덤이 나왔었고,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
현대에서도 전염병은 위험한데, 역사속의 전염병은 신이나 악마의 재해쯤으로 그려지지 않나.
그런 이야기에서 탄생한 질병유물은 그야말로 파괴력이 무시무시했다.
이때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이설아가 율리안을 보았다.
“밀러 씨, 유물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겠나요?”
당연히 알 것이었다.
율리안은 공명의 유물로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오라를 볼 수 있다고 했나.
유물이 가진 고유의 오라 형태로 어느 시대 문물인지,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멍멍이 아누비스를 보면 그 오라의 형태는 유물의 본체.
즉 인간들이 흔히 알고 있는 아누비스 신의 모습이 보이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율리안의 답은 뜻밖이었다.
“전염병의 신과 관련된 건 알겠는데, 좀 이상하네요. 오라가 수시로 바뀌고 있어서 정확한 정체까지는…… 이런 일은 없었는데.”
이설아는 당황했다.
부단장이 파악 못하는 유물은 없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설아가 주헌을 보았지만, 주헌은 대충 짐작한 듯 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총수에게 명령을 받은 유물입니다.]
[당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
서주헌, 이 건방진 놈! 엿 먹어봐라! 엿 먹어봐라!
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뻔했다.
‘아무래도 유물 놈들이 날 경계하기 시작하나 보군.’
원래 팬이 생기면 안티도 생기는 법이니까.
어쨌든 쉽게 공략당하지 않기 위해 제 정체도 숨긴 건가. 그 생각에 미친 주헌은 씰룩이는 슬라임에게 다가갔다.
“다, 단장님?”
마치 배설물을 보는 듯한 혐오스러운 표정.
주헌은 슬라임의 목을 콱 졸랐다.
“나머지 네 병균 친구들은 어디에 있나.”
[#$*&!]
모른다, 서주헌! 다 죽어라! 죽으라고! 설사로 뒤지란 말이얏!
놈은 잉어마냥 더욱 팔딱 팔딱 꿈틀거렸다. 다만, 생긴 것도 응아처럼 생겨서 영 기분은 안 좋았다.
그래서일까.
[#$&^#&!]
서주헌, 설사로 뒤지…… 끄아앙!
퍼엉!
피도 눈물도 없이 주헌은 유물을 터트려버렸다.
유물의 파괴.
그 결과 분뇨가 사방에 터지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너희들 모두 흩어져서 병균 3마리를 더 찾는다.”
유재하는 설마 싶어서 벽에 흩뿌려진 분뇨(?)들을 가리켰다.
“……저 혹시 저것들은요?”
“담아라.”
“……저 그럼… 복원은……?”
뭘 그딴 걸 묻냐는 시선에 유재하는 울었다.
흉물에 이어 이젠 응아냐!
유재하는 훌쩍이면서도 벽과 바닥에 흩어진 분뇨들을 병에 주섬주섬 담아 넣었다.
이 슬라임 놈이 터지니 고약한 냄새는 보너스였다.
이때 주헌이 충고했다.
“아. 1호야. 너무 냄새 많이 맡으면 설사한다. 아무리 그래도 설사로 죽으면 그렇잖아.”
그럼 가져간단 말을 하지 말든가!
하지만 부하가 눈물을 흘리거나 말거나 주헌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놈들은 어디에…….’
그런데 이때였다.
“이걸 찾나?”
율리안이 뭔가를 살랑 살랑 흔들었다. 얼핏 보면 색깔만 특이할 뿐, 평범한 시약 병처럼 보였다.
“!”
그러나 확실했다.
저건 주헌이 찾는 나머지 유물이었다.
[#**!]
예끼! 놔라! 이 멀대같은 놈아!
[#8$#&8!]
으앙, 얘 그냥 마음에 안 들어!
[#*#&@!*]
으앙, 뭘 한 거야! 온몸이 찌릿 찌릿하잖아!
그걸 보며 주헌은 허 웃었다.
벌써 찾아냈나.
역시 능력은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좀 있었다.
“서주헌. 미안하지만 이 유물들은 줄 수 없다.”
역시나.
율리안은 유재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지금 담고 있는 그 유물도 내게 팔아라.”
그러자 유재하는 기겁했다.
“쟤 분변 성애자였어요?! 모차르트처럼?”
그 말에 율리안은 머리가 아파졌다. 아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 질병유물들은 너희에게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거야!”
“엥?! 어째서!”
유재하는 항의했지만, 율리안은 진지했다.
“이 역병 유물들은 재앙덩어리들이다. 절대 가지고 나가게 할 수 없어.”
뻔했다.
욕심 많은 유물사용자들이 이 역병 유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다이너마이트는 광물을 캐는데 사용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전쟁도구로 더 많이 쓰이지 않았나.
“너도 분명 이걸 이용해 장사질을 하려고 할 테지.”
지금까지 해온 짓만 봐도 그렇다. 태연하게 사람을 속이는 놈이 아닌가. 막말로 질병을 뿌리고 약장사라도 하면 꽤나 큰돈을 벌 것이었다.
아니면 바이러스 무기로 나라에 팔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말에 주헌은 도리어 조소를 날렸다.
“그럼 넌 그걸 가져가서 뭐하려고?”
“뭘 하긴? 역병지대에서 사용할거다.”
“오? 역병의 사신이라도 되시게?”
주헌이 조롱했지만 율리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소리야.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그래?”
“그래. 이 유물 병들은 역병의 신의 유물들이야. 질병을 뿌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병을 모아 담을 수도 있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역병들만 뽑아내 퇴출시킬 수도 있을 거라고!”
역시 유물의 기능에 대해 잘 알긴 아는 군.
주헌은 역시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율리안은 곧 유재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어서 그걸 내게 넘겨. 아니면 내게 팔아도 좋다.”
“…역시 분뇨 성애자.”
“………….”
저걸 확.
그럴 때였다.
“!”
율리안이 들고 있던 질병 유물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설아가 길달을 사용해 빼돌린 것이다. 주헌만 경계하고 있던 율리안은 아차 싶었다. 하지만 유물을 뺏기 위해 번개를 쓰고 싶지 않았던 율리안이 차분히 말했다.
“돌려줘.”
“아무래도 지금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설아의 칼 같은 거절에 율리안은 주헌을 보았다.
“서주헌. 내가 쓰면 약으로 쓸 수 있어.”
그러자 주헌은 조소를 날렸다.
“오만 떨지 마, 율리안 밀러.”
“……뭐?”
“호신용으로 총을 들고 다녀도 악당에게 빼앗기면 살인용이 되는 거다. 지금처럼.”
“……….”
틀린 말은 아니다.
방심하긴 했지만, 그 증거로 율리안은 반박하지 못하고 기가 좀 죽은 듯 했다. 그걸 확인한 주헌이 말했다.
“밀러. 오해하지 마. 난 그걸 팔 생각이 없어. 전부 파괴하려고 했으니까.”
그 말에 율리안은 깜짝 놀랐다.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이게 있어봤자 또 수만 명이 죽어나갈 뿐이다.”
“…….”
또?
주헌은 표표히 웃었다.
참 그럴 듯한 유물이었다.
불러들이는 것도, 퍼트리는 것도, 없애는 것도 자유.
역병을 조종 할 수 있는 유물이라니.
하지만 주헌은 안다.
‘독식자들은 도리어 이걸 이용해서 사람들을 죽였다.’
“위험 요소가 있는 유물은 차라리 있느니만 못해.”
그는 말을 이었다.
“네 말마따나 장사꾼들은 그 유물을 이용하려 하겠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게 하나라도 세상에 나가면 악용될 여지는 있어. 그럼 처음부터 우리 둘 다 안 가져가는 게 나아.”
그 말에 율리안은 미심쩍은 듯이 주헌을 보았다. 하지만 주헌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히 의외였다.
‘내가 서주헌을 오해하고 있던 건가.’
그래서일까.
한참동안 생각하던 율리안이 살짝 웃었다.
“……아무래도 내가 널 좀 오해했던 모양이군.”
주헌의 앞에서 처음으로 웃는 것 같았다.
율리안은 생각보다 주헌이 악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간 오해해서 미안하다.”
율리안은 이 정도라면 앞으로 주헌을 조금은 믿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여겼다.
“네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그럼 여기서 유물들은 다 파괴하고 가지. 네가 유물로 사익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라니 조금은 믿음이 가.”
율리안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주헌도 웃었다.
“알아주니 다행이네.”
유재하는 웃었다.
“그, 그럼……!”
분뇨 따위를 복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일까.
곧 이어 섬광이 터져 나왔다.
쿠웅!
주헌과 율리안은 유물들을 파괴한 것이다.
결국 두 왕급의 무시무시한 지배력에 유물들이 빼애애액 비명을 지르면서 파괴당했다.
콰앙!
동시에 힘을 잃은 무덤이 강제로 클리어 되고, 세상에는 엄청난 반동이 일어났다.
그 증거로.
“무덤이 무너졌습니다! 정상적인 클리어가 아닙니다!”
“뭐라고?”
관측자들은 난리가 났고,
“발굴신고를 했던 웨이드 하르만이 발굴한 게 아닙니다!”
“그럼 누구야!”
“모르겠습니다! 미신고자의 발굴입니다!”
판도라도 미쳤다.
그리고 지면이 크게 뒤흔들리면서 후폭풍이 몰려왔다. 강제로 무덤이 클리어 되면서 무덤이 거칠게 무너져 버렸다.
물론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무사했다.
번쩍!
주헌이 무덤 복원 스킬을 써서 한순간에 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십 키로나 떨어진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야 헤어졌다.
“7대 무덤도 아닌 것 같고, 건진 건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군.”
율리안은 상쾌한 기분으로 주헌을 배웅해주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 도와주러 가지.”
“그래.”
주헌은 웃었다.
훈훈한 헤어짐이었다.
‘잘은 몰라도 좋은 동료가 생긴 것 같군.’
율리안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주헌이라면 어째 제갈공명의 리스크가 발동해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며칠 후.
율리안은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거품을 물 수밖에 없었다.
제목: 이번 중동에서 캐내온 유물 중 한 개를 팝니다.
[ID: 서주헌]
내용: 〈열병의 유물〉을 팜. 한번 파괴되었지만 완벽 복원! 떨이로 500만 달러부터!]
하나라도 세상에 나가면 안 되기는 개뿔!
유물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고 율리안은 파르르 떨었다.
“서주헌! 또 언제 그걸 가지고 나왔어!”
이놈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리고 한 편, 경매가 한참 진행 중인 LA 미다스 경매장.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재하가 툴툴 거렸다. 결국 터진 유물은 죄다 자신이 복원해야 하지 않았나.
“뭐야, 또 사기치셨네. 밀러랑 헤어지고 잔해들 가지러 가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요.”
“그럼 미쳤다고 잔해를 거기에 두고 오냐? 누가 복원하면 어쩌려고?”
그 말에 유재하는 헛웃음을 흘렸다.
걱정도 팔자셔.
어차피 완전히 파괴된 유물을 복원할 수 있는 건 아직 이 세상에서 자신 밖에 없지 않나?
“그나저나 질병 유물들은 세상에 안 내놓을 거라면서요. 빼앗기면 악용된다고.”
“문제 있나? 안 빼앗기면 그만이지.”
아니 맞기는 한데.
“그럼 4개중 열병 유물은 지금 왜 파는 건데요! 그 유물들 때문에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서! 다 거짓말이었어요?”
“아니? 나 거짓말 안했는데?”
“네?”
“진짜 죽어나갔거든. 좋아서.”
“엥? 그럼 안 죽었어요? 그것도 역병 유물이라면서…….”
죽긴 뭘 죽어.
걘 최음제 유물인데.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