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잘못 걸렸다, 진짜. =========================================================================
〈잘못 걸렸다, 진짜. (3)〉
“자. 빨리 저거 부숴.”
“#*#$&*!”
율리안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허공에는 율리안을 약올리듯 날아다니는 계약서가. 그리고 눈앞에는 낄낄 웃고 있는 유재하와 서주헌이 있었다.
“자. 빨리 단장님이 부수라잖아!”
유재하는 신이 나서 계약서를 흔들어댔고, 율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이 상종 못 할 양아치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 증거로 번개는 맹렬한 굉음을 뿜어대며 쇠문에 작렬했다. 그리고 그을리다 못해 완전히 시커멓게 변한 문짝은 엿가락이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그걸 보며 유재하가 신이 나서 낄낄 웃어댔다.
“단장님, 단장님. 저 잘했죠? 잘했죠?”
“그래. 잘했다. 90점주지.”
“오예. 칭찬 들었어! 보너스, 보너스으!”
그간 하도 연봉이 깎이고 깎인(?) 유재하는 쾌재를 지르며 방방 뛰어댔다. 분명 항상 당하고만(?) 살다가 또 다른 노예 동지가 생겨서 기쁜 것이리라.
마치, 막내로 맨날 부려먹히다가 제 밑으로 후임이 들어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만세! 이제 자유다, 자유!”
그리고 그 꼴이 귀여워 주헌이 헛웃음을 흘렸다.
자유?
‘저거 뭔가 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럴 때였다.
“컥!”
주헌의 작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이설아가 주헌을 쓰러트리며 올라탄 것이다.
“하아, 하아, 단장님.”
눈이 맛이 갔다.
맛이 가도 한참 가 있었다. 그 모습에 주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들이 진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
하응, 하응! 젊은 처자여! 솔직해지는 거야! 정복해버리는 거야!
[#&*!]
허억 허억. 거기 오빠도 애태우지 말고 받아 주라니께!
변강쇠와 옹녀 유물. 두 흉물들이 신이 나서 하모니를 맞추듯, 서로 몸을 비벼가며 계속 오라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이설아가 기어이 주헌의 입술을 탐내왔다.
그러자 변강쇠와 옹녀는 자신들이 성공했다는 둥, 저 남자는 이제 정복당했다는 둥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
하응, 지가 그래봐야 인간남자지! 지가 버티겠어?
[#@*&$*!]
우리가 이겼어! 이겼어!
색욕의 유물은 성적 쾌락과 무질서를 추구하고 결국 인간이 생각하는 가치를 변질시키고자 하는 놈들.
틈만 나면 이 난리니, 충분히 골치아파할 만하다.
하지만 이기기는 개뿔.
“우, 으읍! 단장 니… 웁!”
혀를 섞은 주헌은 이설아를 K.O 시켰다.
그리고 이설아가 몸에 힘이 풀려 주헌에게 쓰러지자 주헌은 흉물들을 보며 살벌하게 웃었다.
“니들 콱 쥐 사이즈로 만들어주마.”
그 흉흉한 지배력에 흉물들은 기겁했다.
[#$&*#]
헉헉, 이게 아닌데!
[#(*#(!)]
우, 우리 실수했나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폭발소리가 울려 퍼지고, 두 변태 유물의 비명도 함께 울려 퍼졌다.
동시에 흔적도 없이 박살 난 흉물들을 보며 유재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유, 진짜 저 흉물들은 답이 없네요. 잘 부수셨어요.”
“고쳐라.”
“……네?”
“네 일이잖아.”
유재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레이스 팬티는 그렇다 쳐도, 저 흉물까지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가며 복원하라고?
진짜로?
“다…… 단장님! 저!”
“닥쳐. 이제 안쪽으로 가자.”
“으아앙!”
주헌은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묵직한 게 주헌을 잡아끌고 있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채 기절한 이설아였다.
그걸 보고 유재하가 내심 부럽다는 듯 주헌을 보면서도 툴툴 거렸다.
“어유, 어쩔까요. 제가 업고 갈까요?”
그러자 주헌이 이설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설아야. 정신 차린 거 다 안다. 일어나라.”
“……!”
이설아는 아차 싶었다.
일어날 생각이긴 했지만, 들키지 않았으면 몇 초라도 더 주헌에게 합법적(?)으로 안겨 있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못내 아쉬워진 이설아가 쯧 혀를 차며 주헌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이때였다.
“!”
길을 따라 쭉 걸어가자 거대한 방이 하나 나타났다.
석벽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방.
율리안은 그걸 보고 웃었다.
‘확실하다. 저기가 이 무덤의 중심부. 무덤의 주인이 있는 곳이다.’
즉, 유물이 있는 곳! 동시에 가장 오라가 집중되어 있는 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율리안이 바짝 긴장했다. 그러더니 힐끗 주헌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 사람 등치는 사기꾼.
주헌은 자신에게 협력하라고 했지만…….
‘미쳤어? 저런 악당에게 유물을 넘겨줄 수는 없다.’
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너무 눈에 뻔했다.
그렇게 율리안이 주헌 몰래 뒷길로 빠져 새치기를 하려 할 때였다.
[#(*$(#(!]
사단장님께 반항하는 거냐! 반항하는 거냐고!
율리안의 유물들이 빼애액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
[*#&$*#*#]
이건 사단장님께서 공인한 엄중한 계약이다 이놈아!
율리안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
이놈이 감히 반역을 꾀한다! 꾀한다!
[#$**$]
이 극악무도한 놈을 매우 쳐라! 새치기라니! 감히!
유물의 쫑알거림이 들리는 건 아니었다. 단지 유물이 뿜는 살기 어린 오라가 너무……!
율리안은 뭘 훔치다가 걸린 도둑 마냥 다급하게 주헌을 돌아보았다.
들켰나?
‘아냐, 이정도면 안 들켰…’
하지만.
“뭐 하시나, 공명 선생? 새치기 하시려고?”
주헌이 히죽였다. 그걸 보고 율리안이 이마를 짚었다.
‘젠장.’
분명했다.
지장을 찍은 계약서 탓이었다!
주헌을 배신하는 행동을 하게 될 시, 유물의 보복이 있을 거라고 했나.
‘미치겠군.’
아니 유물과의 계약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물론 이 유물들을 닥치게 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율리안 역시 왕급의 막강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지배력의 조건인 뚜렷한 주관, 신념, 카리스마, 자신감, 의지, 리더쉽 중 하나를 잘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율리안은 유물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계획이 실패로 들어가자, 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알았어 도와주지. 하지만 조심해. 여기서부터는… 아악!”
조심하기는 개뿔.
주헌은 율리안의 말을 개무시하며 성큼 성큼 방 쪽으로 걸어갔다.
“뭐하는 거야! 잠깐 기다려!”
“?”
주헌은 율리안을 힐끗 보았다. 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율리안이 급하게 외쳤다.
“거긴 무덤의 중심부야!”
“그래서?”
“그래서라니! 여긴 풍문왕 웨이드 하르만이 발굴신고를 한 곳이라고! 미신고자들은 무조건 공격당해! 그렇게 막 갈 곳이…!”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다.
율리안이 말하는 발굴신고와 미신고.
그건 〈무덤발굴신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쉽게 말해 발굴 전 신고를 해야 하는 판도라의 제도다.
회원국의 무덤은 모두 판도라의 관할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회원국의 무덤을 파려면 당연히 신고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판도라가 주는 〈출입증〉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 출입증이란 소모성 유물은 발굴자들에겐 정말 중요했다.
왜?
‘그게 있어야 무덤의 중심부에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무덤의 주인이 있는 보스방의 개념.
중심부는 가장 위험했다.
오라에 노출되어 병을 앓거나, 함정에 빠지거나, 유물에게 공격당하거나.
대부분의 발굴자들이 죽는 곳도 중심부였고 말이다.
그런데 최근 판도라가 무덤 생존율을 확 높여주었다.
〈출입증〉이라는 소모성 유물을 배포하기 시작한 이후로!
‘판도라 시스템 유물의 짓이겠지.’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유물세계를 살짝 접한 주헌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아마도 판도라 시스템 유물이 유물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물들에게 딜이라도 한 게 아닐까?
야, 내가 뭔가 해줄게. 대신 〈출입증〉을 가진 인간은 방에 순순히 들여보내주라고.
대충 그런 식으로.
비록 출입증이 있다고 해서 무덤을 클리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생존확률을 그나마 올려주니 인간들에게는 좋은 떡밥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발굴신고를 하게 된 것이고.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주헌은 미신고자.
당연히 출입증도 없는 빈 손.
평범한 인간이 마루타들도 없이 함정을 피할 확률은 5%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율리안은 탄식하며 외쳤다.
“기다려! 이 골칫덩어리야, 넌 못가! 내가 분석해줄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
그런데 그럴 때였다.
“어, 어어?”
주헌은 정확하게 함정을 피해갔다.
한 발자국이라도 틀리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목에서!
그리고 주헌이 율리안을 비웃었다.
“함정이 뭐라고?”
자신만만했던 제갈공명은 당황했다.
어, 어떻게?
그런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같잖다는 듯이 웃던 주헌이 천장을 가리켰다.
“너. 저거 못 읽으면 닥치고 있어라.”
그가 가리킨 것은 툼 글리프.
그리고 그걸 보며 율리안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설마 저 수수께끼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건가?
율리안은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히 지배력이 높고, 그런 단계가 아니었다.
‘저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다.’
아니, 인간이라면 결코 해독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저건 지구상의 언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문명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율리안은 주헌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주헌이 무덤을 발굴하는 걸 보지 못해서 몰랐지만, 그는 아예 돌연변이 수준이었다.
마치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뭔가 비범한 것을 보는 기분.
그럴 때였다.
‘아차.’
안 된다.
율리안은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이대로 주헌을 관찰하고 있다간 제갈공명 유물의 리스크가 발동할 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놈의 킹메이커가 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서주헌. 네 실력은 알았으니까 내 말을 좀 들…….”
그러나.
콰과과광!
율리안의 말은 개뿔도 안 듣는 주헌은 사정없이 무덤을 파괴했다.
그러더니 한가롭게 외쳤다.
“이봐 유물 닥치고 나와라. 안 나오면 죄다 부셔버린다.”
“야!”
율리안은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이때였다.
방이 파괴되자 이변이 일어났다. 파괴된 우물 안에서 질퍽한 뭔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어떤 놈이 감히 이 몸의 휴식을…!
“오, 나타나셨군. 유물.”
그러자 이설아가 재빨리 말했다.
“부단… 아니, 밀러 씨. 이 무덤의 클리어 방법은요?”
이설아는 이미 율리안의 공략 치트키에 대해서는 익숙했다.
평소 무덤에서도 그가 공략법을 일러주고, 주헌이 그 방법대로 얻는 식이 아니었나.
묻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율리안은 굉장히 난처한 듯한 기색이었다.
“간단하긴 하지만… 좀….”
“괜찮습니다. 단장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율리안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옷을 벗고 여자가 제사를 지내듯이 춤을 추면…….”
그러나 그 순간.
콰과광!
[#**]
끄아아앙!
주헌은 사정없이 유물을 향해 유물 폭탄을 던졌다.
물론 본인의 유물은 아니었다.
“아악!”
하필 율리안이 들고 있던 유물이었다!
그것도 A급인 상급유물을!
율리안은 이젠 그냥 울고 싶었다.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왜? 내거 쓰면 아깝잖아.”
그럼 내건 된다는 거냐!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봐! 무덤을 클리어할 방법을 두고 왜 부셔대는 거야 자꾸!”
그러자 주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후볐다.
“시끄러워.”
설아가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자신으로 충분했다.
감히 어디서 유물 따위가.
아니나 다를까, 파괴된 유물이 화를 냈다.
[#*$&*#!]
감히, 감히 내 눈요기를 방해하다니! 방해하다니이이!
아무래도 이설아가 상당한 미인이다보니 내심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무덤 클리어 조건은 다른 것이었는데, 이설아를 보고 조건을 바꾼 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유물 폭탄에 흩어진 슬라임을 보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죽기 싫으면 입부터 막아.”
“!”
아니나 다를까, 슬라임이 터지면서 수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컥, 컥. 뭐, 뭐죠?”
유재하가 묻자 주헌은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너무 깊게 들이쉬진 마라. 설사로 죽는다.”
“네, 네?!”
그들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주헌을 보았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