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잘못 걸렸다, 진짜. =========================================================================
〈 잘못 걸렸다. 진짜. (2)〉
진짜 뭐 이런 이상한 놈한테 걸려가지고는.
“자, 엄지손가락 내놓으라고.”
주헌은 가증스럽게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빨간 인주를 꺼냈다. 당장이라도 날치기 계약을 할 기세였다.
“자, 좋은 말로 할 때 내놓으라니까?”
내놓긴 뭘 내놔!
딱 봐도 정상적인 계약서가 아닐 텐데!
이건 뭐 새끼손가락을 달라고 하는 조폭도 아니고!
애초에 스카웃을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하는 녀석이었다. 계약서의 내용이 결코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눈치 빠른 율리안이 발을 빼려 하자 주헌은 큭 웃었다.
“자꾸 그렇게 빼면 진짜 뿌린다. 저거.”
곧 유재하가 주헌의 발밑에서 핸드폰 화면을 흔들어 보였다.
핸드폰에는 달기의 가슴을 만지는 율리안의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실상은 밧줄 놈에게 떠밀려 얼떨결에 가슴에 손을 얹게 된 것이었지만, 유재하의 환상적인 스킬이 결합되니 예술이었다.
게다가 달기 녀석이 얼마나 신들린 연기를 했는지, 정말 싫어하는 표정이 가관이었다.
참 어떻게 찍어도 저렇게 강제로 덮치는 것처럼 절묘하게 각도를 잡았을까!
그러니 억울해도 정말 너무 억울했다!
‘이건 뭐 꽃뱀에게 물린 것도 아니고!’
하지만 여기서 기죽을 율리안도 아니었다.
“서주헌. 그런 식으로 나오면 오히려 널 고소하겠어. 이건 엄연히 협박행위야.”
역으로 율리안이 공격을 해오자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자식 봐라. 누가 변호사 놈 아니랄까봐.
‘아, 지금은 아직 변호사가 아니겠군.’
율리안은 도굴단과 TKBM의 법률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뭐 그래봐야 약자들을 우선시하는 인권변호사라 TKBM의 변호는 잘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주헌의 도굴단이 수많은 법률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무패신화를 자랑하는 이놈 덕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유능해봤자 뭐하나.
‘원래 세상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거야.’
“아 여보세요? 영감, 난데. 타임지 메인자리 비워놔. 헤드카피는 ‘제갈공명 율리안 밀러. 취미는 성추행.’ 정도로 가지. 그리고 바디카피는 여자들을 범하기 위해 번개로 기절 시키다 정도?”
“?!”
고작 법으로 협박하다고 쫄 주헌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딴 걸로 쫄 거였으면 애초에 대기업 총수나 미국 장군은 건들지도 않았겠지!
주헌이 얄밉게 핸드폰 액정을 살랑 살랑 흔들었다.
“자. 지장 찍을 거야. 말 거야?”
확실하다.
이건 먹잇감이다.
법이고 자시고, 고소 준비를 하는 중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이다!
“젠장. 안 내놔?!”
결국 다급해진 율리안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순순히 뺏길 주헌도 아니다.
“어이쿠, 설아야. 꽉 좀 잡아봐라.”
그러자 이설아가 정말 꽉 잡았다.
“!”
“하, 하악. 단장님!”
물론 율리안이 아닌 주헌의 허리를!
“!”
이설아는 살짝 달뜬 소리를 흘리며 주헌의 등을 끌어안았다.
“하, 하아. 단장님, 단장님…! 못 참겠어요!”
주헌은 아차 싶었다. 변강쇠와 옹녀의 유물이 발동하면서 이설아도 음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런!’
유재하가 사고를 칠 것만 우려해서 이설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주헌의 등 뒤로 이설아의 물컹한 가슴의 감촉이 닿았다.
그뿐인가!
발그레한 얼굴로 주헌의 등에 얼굴을 비비던 이설아가 슬금슬금 허벅지로 손을 내렸다.
그게 또 아주 자연스러웠다.
‘아, 아니 이 녀석이!’
좋긴 좋은데, 지금은 좀!
결국 주헌이 콱, 제 아들을 탐내는 이설아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외쳤다.
“에잇, 변강쇠!”
[#($#*(!]
예이! 주인님! 하악, 하악, 하악!
호령하기가 무섭게 변강쇠 유물이 율리안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율리안은 비명을 질렀다.
“자, 잠깐!”
펄럭이는 하얀색 레이스 팬티가 살벌하게 덮쳐오는 건 그야 말로 상상이상이었다.
“컥!”
그리고 율리안의 얼굴에 찰싹 붙은 변강쇠 유물이 신음을 흘리며 오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하악, 하악, 본능에 충실해져!
어서! 어서! 넌 강한 사나이라고!
“아니, 잠까…… 으악!”
율리안은 미쳐 죽으려고 했다.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고 한들, 인간은 인간.
변강쇠의 정력과 색욕의 기운에 율리안은 남자가 되었다.
동시에 율리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기본적으로 인드라 유물의 리스크는 여색.
다만 이 리스크가 여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쇄 리스크가 있었다!
‘젠장, 2차 리스크까지 왔어!’
그렇다.
여색을 하게 되면 다음 연쇄 과정으로 2차, 3차 리스크가 닥치게 되었다.
2차는 바로 온 몸에 닥쳐오는 고통이었다.
인드라가 아수라의 딸을 허락도 없이 취했고, 그 결과 신들에게 박터지게 맞았다는 설화 탓이리라.
그래서일까.
율리안은 쿨럭, 피를 토했다. 게다가 온 몸은 흠씬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파왔다.
실제로 부러진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진짜 부러진 것 마냥 아프고 근육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정신력으로 리스크를 무시했기 때문에 아직 느껴보지 못했었다.
이건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율리안이 이러기냐며 주헌을 쏘아보았다.
“야… 서주헌!”
그러나 그런 율리안에게 주헌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 지장 찍어.”
“이봐!”
“3차 리스크까지 오는 건 너도 싫겠지?”
그 말에 율리안은 움찔 떨었다.
3차 리스크.
그건 정말 최악이었다.
아수라의 딸을 멋대로 취했던 인드라. 분명 그 결과 고환이 잘리게 되었던가.
즉 3차 리스크는…….
율리안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일단 계약서 좀 보고 이야기 하자!”
절대로 안 됐다.
아무리 그래도 율리안은 남자로 살고 싶었다!
어떻게 서주헌이 제 유물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상황부터 모면하고 보자.’
그러나 율리안은 계약서를 훑어보고 기절할 뻔했다.
변호사를 준비중인 율리안이 보기에도 완벽한 포맷이긴 했지만 그 내용물을 알기 쉽게 해석하면…….
1. 변호사 자격 취득 후 서주헌의 전속변호사가 된다. (모든 법률자문, 선임료, 수임료는 공짜.)
2. 서주헌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도울 것
3. 계약기간은 10년. (계약이 끝나면 자동연장. 계약종료는 ‘합의’ 하에 가능)
4. 분쟁시 갑(서주헌)의 변호만 맡을 것 (단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변호는 노터치)
5. 갑이 시키는 대로 하며, 계약과 관련된 모든 갑의 행동에 토를 달지 말 것.
6. 갑과 을은 계약 내용에 서로 성실히 응할 것이며, 계약을 어길시 함무라비 법전에 의해 응징을 당할 것.
대충 이따위였다.
그러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도대체 이건 무슨 되먹지도 않은 계약서야!”
“뭐? 표준계약서인데.”
“뭐라고? 이게 표준이라고?!”
율리안은 그저 기가 막혔다.
적어도 상식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안 해. 너 같은 놈이랑은 협력 못해!”
“그래? 그럼 사진 퍼트리고.”
주헌은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이를 악문 율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는 급한 나머지 얼른 지장을 찍었다.
어차피 이런 계약서면 불공정 계약으로 성립 자체가 되지도 않는 다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옆에 있던 유재하가 피식 피식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유재하가 속삭였다.
“반가워, 노예 동지.”
뭐? 노예?
그 때 율리안은 진작 깨달아야 했다.
계약서는 뒷면까지 잘 읽어봐야 한다는 것을.
***
“오호, 웨이드 하르만이랑 충돌이 있으셨다고.”
무덤 안에 들어온 주헌 일행은 율리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율리안은 풍문왕을 막으려는 듯 했다.
“그래. 그 남자는 유물을 악의적인 곳에 쓰고 있어.”
그 말에 주헌은 독식자들을 떠올리며 살짝 비웃었다.
‘뭐, 알만하지.’
흔히 착한 사람은 손해보고, 나쁜 사람은 이득을 챙긴다고 하지 않나. 유물로 인간들을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큰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풍문왕 역시 그런 부류였고.
애초에 히틀러의 앞잡이 유물과 계약한 놈이 양심적인 사람일 리가 없었다. 유물과 인간도 끼리끼리 논다고, 한 쪽을 보면 다른 쪽의 성향이 대충 보였다.
과거에도 놈은 언론을 장악해 편파적인 보도를 내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유물에 선동당하며 죽었다.
과거엔 히틀러 유물 같은 게 안 나왔으니 망정이지.
어쨌든 율리안은 풍문왕이 노리는 무덤을 털면서 그를 방해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풍문왕이 나한테 의뢰를 해온 거군.’
사사건건 율리안한테 방해 당하니까, 이놈을 처리해 달라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어쨌든 너희도 내 일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물론 도움은 줄 수 있다.
율리안의 적은 어차피 제 유물을 노릴 적이었으니까.
다만.
‘역시 아직 순딩이야, 순딩이.’
이놈은 딱 용사 같은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머리는 똑똑한데 정의감이 넘쳐흘러 사기꾼에게 당할 타입. 그래서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도 권 회장한테 붙잡혔던 놈.
주헌이 거침없이 무덤의 입구 앞에 섰을 때였다.
“아, 잠깐 기다려. 그 무덤의 문을 열려면 조건을 달성해야…”
조건은 개뿔.
쿠구구궁!
주헌은 사정없이 무덤의 문을 박살냈다. 바로 무덤 파괴 스킬이었다.
그야 말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물론 율리안은 화를 냈다.
“자, 잠깐! 그렇게 막 파괴했다간 인근 마을에도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알게 뭐야.”
주헌은 귀를 후비며 성큼 성큼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애초에 주변에 피해를 줄 정도로 자신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잠깐! 거긴!”
쾅!
“아니 저기는!”
콰과과광!
“이봐! 그렇게 하면…!”
콰르르릉!
주헌은 율리안의 말을 개무시하고 무덤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
그 모습에 율리안은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충고를 해도 주헌은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큰 문이 나타났을 때, 율리안이 화를 꽉 눌러 참으며 말했다.
“이봐. 쟨 안 돼. 쟤는……”
“음, 쟤는 내 힘으로 안 되겠다. 이봐 피카츄. 저것 좀 부셔봐.”
“……뭐라고?”
이젠 하다하다 피카츄냐.
“아무래도 우리는 좀 안 맞는군. 알아서 잘 해봐.”
곧 율리안이 돌아서려 하자 유재하가 이것 보라며 끼어들었다.
“어? 뭐야, 노예. 설마 계약 위반하려고 하는 거야?”
“흥, 어차피 사진도 사라졌겠다, 이제 그런 협박은 의미 없….”
그런데 그럴 때였다.
“!”
눈앞에 낯익은 사진이 나타났다.
율리안의 앞에서 동아줄이 핸드폰을 문 채 씰룩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액정에 떠오른 사진은 아까 전의…….
“뭐, 뭐야! 이 사진이 왜! 아까 분명 지웠잖아!”
“글쎄? 유물 놈이 복원이라도 했나보지?”
율리안은 기가 막혔다.
“허, 그럼 이건 계약 위반이야! 고소준비를….”
그러자 주헌이 하하 웃었다.
“무슨 개소리야? 유물이 퍼트리면 안 된다는 조건은 안 썼잖아?”
“?!”
[#$&*#8!]
그래 안 썼잖아! 안 썼잖아!
동아줄은 신이 나서 핸드폰으로 제기를 차듯, 허공에 던지고 받았다.
율리안은 멍해졌다.
그럴 때 유재하가 계약서를 살랑 살랑 흔들었다.
“자, 이 계약서를 잊은 건 아니겠지?”
율리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건 이미 불공정계약으로 성립이 안 되는 계약서다. 그냥 휴지조가리라고.”
그러자 주헌이 웃었다.
“그야 그렇겠지. 인간 사회에서는.”
“뭐?”
인간 사회?
“마지막까지 잘 읽어보셨나? 공명 선생?”
“마, 마지막?”
그래봐야 말도 안 되는 계약서라 끝까지 읽을 가치도 못 느꼈던 그였다.
하지만 계약서 마지막을 본 순간 율리안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이 계약서는 인간세계와는 관련없는 유물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며 이를 위반할 시 모든 유물에게 적대적 행위를 받게 된다.]
[공인자. 사단장 아누비스]
그리고 찍혀 있는 개 발자국.
이, 이게 무슨……!
동시에 주헌과 유재하가 가진 유물들이 살의를 품는 게 느껴졌다.
분명 이 괴상한 계약서에 효력이 있는 것이리라.
“자, 그럼 어서 단장님 말대로 부셔 주실까…….”
그 순간 율리안이 눈을 번득이며 유재하를 노렸다.
콰르릉!
“아, 뜨거, 아 뜨거!”
번개가 번쩍이며 유재하가 든 계약서가 불타기 시작했다.
“아! 계약서가!”
율리안은 표표히 웃었다.
“이걸로 그 계약은 무효……”
그러나 이때였다.
“하나 더 있는데?”
“?!”
언제 놀랐냐는 양 유재하가 킬킬 거리며 계약서를 흔들어 보였다.
그걸 본 율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계약서를 카피 해놨구나!”
또 다시 콰르릉 번개가 내리쳤다.
하지만.
“여기 무지하게 많거든!”
유재하는 수백 장의 계약서를 허공에 뿌렸다.
“하하하하! 백날 태워봐라! 원본이 어느 건지 모르겠지! 너한테 들킨 이후로 내가 엄청 갈렸거든? 으하하하하!”
“?!”
유재하의 웃음소리에 주헌도 웃었다.
“계약서 관리 잘해놔라. 그리고.”
그는 슬쩍 문을 가리켰다.
“자. 빨리 저거 부셔.”
“#*#$&*!”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