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37화 (137/409)

00137 어서와라, 강탈왕!  =========================================================================

〈 어서 와라, 강탈왕! (1) 〉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주헌이 답했다.

“모르겠냐? 너라면 알 줄 알았는데.”

“네? 전혀요.”

리처드놈이 다른 걸로 변해 있다는 건 잘 알았다. 리처드는 사라졌고, 그 대신 방에 늘어난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늘어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왜?

리처드는 사람이 아닌 미술품으로 변해 있었으니까!

사람으로 변해봤자 조사를 받으면 금방 들킬 것을 알았던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둘이 있어봤자 내가 범인이오! 하고 주목을 받을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랬기에 그는 사람들의 허를 찔러서 물건으로 변했다.

바로 작업실에 있던 석고 미술상 사이에!

미술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석고상이 맞았다.

석고상 하나 늘어났다고 그걸 알아챌 사람도 없을 것이고, 뭐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길도 없을 테니까.

실제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주헌 외에는.

“원래는 그거 4개 있었거든. 들어갈 때 봐서 기억나.”

그 말에 유재하는 기겁을 했다.

이 미친놈!

그 머리를 제발 이로운 데 쓰라고!

아니 그건 좋다 이거였다.

유물성애자라 그런지 미술품만 보면 하악 거리며 유물인지 아닌지 탐지하는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석고상 중에서 어느 게 그 대머리인 줄 알아요! 다 똑같이 생긴 공산품인데!”

“등신. 진짜 구별 못하겠냐?”

“제가 석고상을 한두 번 그렸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구분해요!”

그러자 주헌은 대답대신 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뭔가를 찍어둔 것 같았다.

“자.”

그리고 사진을 본 순간 유재하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한 놈을 톡톡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 이 아그리파만 대머리잖아.”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재하는 다시 핸드폰 속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진짜 있었다.

대머리 석고상이!

다른 것은 정상이었지만, 한 놈의 머리만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세제로 갓 닦고 기름까지 칠한 듯, 반짝반짝 윤이 나게!

분명 무광택일 석고재질인데도 불구하고!

유재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무나 익숙한 석고상이기에 눈치 채지 못했다지만…….

“……이 미친.”

그 반응에 주헌은 하하 웃었다.

“그러니까 유물은 함부로 쓰면 안 되지.”

주헌은 또 언제 훔쳐 온 건지, 리처드의 변신유물을 가방에 넣었다.

“어쨌든 개인전은 수고해라. 물론 복원 일은 안 빼줄 거니까 남는 시간에 알아서해.”

유재하는 그저 감사하다는 듯 다시 큰절을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개인전을 성공 시키겠습니다! 단장님이 어떻게 마련해주신 자리인데!”

“그리고 개인전 수익은 9:1로 나누고.”

“네……?”

“참고로 내가 9. 니가 1.”

뭐, 뭐라고?

유재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주헌은 큭큭 웃었다.

아무리 날뛰고 기어봐야 저놈은 영원한 노예 1호였다.

그럴 때였다.

훌쩍이는 유재하에게 이설아가 속닥였다.

“자, 일도 잘 풀렸으니까 이제 줘.”

“뭘?”

“사진!”

아이린이 자리에 없는 지금이야 말로 기회였다.

유재하가 가지고 있다는 주헌의 사진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까 준다고 했잖아! 이제부터 중국에 다녀와야 하니까 빨리 내놓으라고!”

이 사기왕에게 이렇게 사정하는 것도 치가 떨리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장님의 사진이 얼마나 귀한데!’

오죽하면 그 당시 주헌 전용의 파파라치가 있었겠는가!

본인의 사진은 유물을 사용해서라도 파괴하거나 기록을 삭제 하던 주헌이었다. 덕분에 오기가 생긴 재벌들이 파파라치를 고용했던 것이지만.

어쨌든 그나마 자신하고는 몇 장 찍어주긴 했지만, 지금은 과거다.

그게 남아 있을 리가!

게다가 20대 초반의 탱글탱글한 단장님의 모습이라니!

심지어 노출샷이라니!

하지만 그 생각에 미친 순간, 이설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잠깐. 유재하. 니가 왜 단장님 노출샷을 가지고 있는데?”

이설아의 눈초리가 이상해지자 유재하는 소름끼친다며 거품을 물었다.

“이 바보야! 그런 거 아니야! 이거 신도용 사진이라고!”

“시, 신도……?”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래.

황당한 표정으로 유재하를 바라보자, 유재하는 하렘 유물 때를 기억하느냐고 했다.

“사사키라는 애한테 기억해?”

“그 시몬 밑에 있던 갸루화장 여자애?”

“그래! 걔가 우리 단장님의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포, 포교?”

아베스타. 그러니까 포교 유물의 이야기였다.

그 포교유물을 사용하기 위해선 팬을 늘려야 하는 전제조건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일본에서 만난 사사키는 자신이 책임지고 주헌의 팬들을 늘려주겠다며 돌아갔다.

지금이야 유물팬(?)들이 생겨버렸지만, 어쨌든.

“사사키가 팬들을 늘리려면 단장님의 사진이 필요하댔단 말야! 노출사진도 찍으랬다고!”

“패에엔?”

여자들에게 퍼트릴 사진이라는 말에 이설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나 유재하는 크흠, 시선을 피했다.

‘사진 잘 팔리면 오빠한테도 지분 나눠줄게요!’

사실 주헌 정도면 꽤 잘 먹힐 것이라는 게 사사키의 말이었다.

키도 크지, 몸도 탄탄하지, 얼굴도 쓸 만하지.

입만 잘 닥치고 있으면 인신매매범이나 사채업자가 아니라 모델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본인이 좋아하는 건 정작 유물뿐이지만, 그래도 여자들에게 꽤나 어필이 될 외모였다.

사사키 또래의 여중생과 여고생은 물론, 대학생과 3040주부에게도!

자고로 팬을 늘리기엔 이만한 방법이 없으리라.

하지만 이설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유재하를 보았다.

“단장님이 그딴 사진을 허락했을 리가 없는데.”

그 얼굴 찍히기 싫어하는 단장님이?

짜증나서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수백 개나 박살내던 분이?

곧 유재하가 제 발을 저리며 시선을 돌렸다.

“아, 아냐… 전부 단장님이랑 협의 하에 찍은…….”

나 지금 떨고 있니.

그 말에 뭔가 눈치 챈 이설아의 눈이 야수처럼 번득였다.

“구라치지 마! 얼마 받았어! 얼마에 단장님의 순결한 알몸을 팔아넘기려고 했냐고!”

“아니 가릴 건 다 가렸…… 커어헉!”

이설아는 유재하의 목을 졸라댔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들에게 단장님을 팔아넘기다니! 당장 사진 회수 안 해?!”

그리고 이 때였다.

“뭐? 사진?”

“!”

날카롭게 떨어지는 그 말에 이설아와 유재하는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진짜 몰래 찍긴 몰래 찍었는지 유재하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또, 그걸 사려고 했던 이설아도 당황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니들, 수상하다?”

“수상하긴 무슨!”

유재하는 반사적으로 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물론 그걸 캐치하지 못할 주헌도 아니었다.

“내놔.”

“뭘요?”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잠……!”

걷어차인 유재하는 비명을 질렀다. 주헌의 손재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몇 없었다.

곧 유재하의 핸드폰을 훔친 주헌이 앨범을 열었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지만 그딴 건 의미 없었다. 사기왕 유재하의 비밀번호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to. 사사키]

잠시 후 그런 이름의 앨범이 열리고 안에는 수십 장의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옆에 다가와 그걸 보는 이설아는 꺄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살색, 살색, 살색.

남자들은 저주하고, 여자들이 상당히 좋아할 만한 게 여러 장 나왔다.

심지어 잘 찍었다.

괜히 미술전공자가 아닌지 쓸데없이 황금구도와 황금비례까지 챙겼다. 핸드폰 카메라 주제에 전문가 모드로 조명, 조리개, 셔터스피드까지 챙겼다.

물론 죄다 도촬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래서일까.

“……?”

빠각!

주헌은 두말 하지 않고 핸드폰을 박살 내버렸다!

결국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내 핸드폰! 할부도 안 끝났는데!”

“그 갸루한테 보냈냐?”

“아, 아니요. 아직……”

그러더니 주헌은 농부 오승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재하 컴퓨터 불태워. 외장하드, 랜카드, USB, 노트북 죄다.]

사사키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유재하한테 사진 한 장이라도 받으면 넌 죽는다.]

메시지에 흉흉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아마 바다 건너에 있는 사사키도 공포에 질렸으리라.

곧 일을 처리한 주헌이 살벌한 얼굴로 유재하를 응징했다.

“넌 개인전 취소.”

“커, 커헉!”

“연봉 10분의 1로 삭감.”

“#$&**!”

“앞으로 네놈에게 들어오는 모든 돈은 10:0으로 내가 가진다.”

“으앙! 단장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결국 유재하는 울었고, 바꾼 지 한 달 된 핸드폰도 울었다. 물론 유재하의 데이터를 처리한 주헌은 상쾌해보였다.

뭐 노출이라고 해봐야 상의 탈의 정도가 아닌가.

상관없었다.

그냥 좀 괘씸했을 뿐이지.

그리고 그럴 때였다.

“너 잘 찍는다….”

“뭐, 뭐?”

이설아가 진지하게 유재하를 보고 있었다. 이설아는 자신의 업무용 핸드폰을 쥐어주면서 말했다.

“재하야, 내가 파파라치로 널 고용한다.”

“뭐라고?! 지금 단장님 반응 못 봤냐! 걸리면 난 뒤져!”

“그럼, 그려줘!”

“뭐?!”

“너 그림 잘 그리잖아. 누드화라도 그려줘!”

그 말에 유재하는 울었다.

내가 이러려고 미술을 배웠나!

“단장님 누드화 잘 그려주면 내가 비싸게 살게.”

“이게 진짜!”

그리고 그럴 때였다.

뭔가가 유재하를 쿡쿡 찔렀다.

뭔가 싶어서 돌아보니 뜻 밖에도 동아줄이 있었다.

동아줄은 눈을 반짝이며 유재하를 보았다.

[#$**#]

나도 그거 한 장 줘. 한 장 줘.

심지어 지폐를 입에 물고 있었다.

한편 그 무렵이었다.

부르르.

“아, 여보세요?”

전화가 걸려온 건 에드워드였다. 그가 물고 온 것은 판도라의 뉴스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주헌의 운명을 바꿀 소식이기도 했다.

[아, 이사님. 판도라에서 새로운 제도랑 룰을 만든 것 같아서 연락 드렸지.]

“아 그거. 조지 홀튼을 시켜서 여러 가지 시켰거든. 잘 나왔대?”

[음, 메일로 보내드리지. 보아하니 무덤에 위험 등급을 매겼듯이 유물사용자에게도 4단계 위험등급을 매겼다네?]

에드워드는 메일로 자료 하나를 보내주었다.

그들은 곧 메일을 열어보았다.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이었다.

〈유물사용자 등급〉

[왕] - 4단계 (지배자.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파괴력과 영향력을 가진 자)

[꾼] - 3단계 (상급. 세계에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자들)

[쟁이] - 2단계 (중급. 국내에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견습] - 1단계 (하급. 지역 범위로 이슈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

대충 그런 식이었지만 사실 주헌이 신경 쓰는 건 왕급과 꾼급 정도였다.

그리고 나타난 이들의 정보.

〈왕〉

[파산왕] 아이린 홀튼

[운명왕] 조슈아

[정복왕] 권태준

〈꾼〉

[책략꾼]

[정복꾼]

[잉여꾼]

[내기꾼]

[판매꾼]

[선동꾼]

여러 사람들이 나타났다. 물론 유재하나 이설아도 있었다.

[호구꾼] 유재하

[정찰꾼] 이설아

판도라가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충분히 상급 유물사용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들이 뭔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다, 단장님의 명칭이……”

이설아는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았다.

유재하는 딱 어울린다며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강탈왕] 서주헌

아무래도 정말 전직해야 할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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