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6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
〈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2) 〉
리처드는 주헌의 얼굴을 보며 얼굴을 씰룩거렸다.
‘서주헌……!’
틀림없었다.
저 놈이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는 이걸 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저 자식, 일주일이나 기다릴 생각이 없었던 거야.’
자신이 유재하를 매장하려고 했던 것처럼, 서주헌도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저놈이 먼저 터트려버렸다!
곧 거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못하겠어?]
마치 리처드가 그림을 그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래서일까. 리처드는 침을 꿀꺽 삼켰고, 주헌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리처드는 그림 작업을 할 때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사실 주헌도 리처드의 유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의 유물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뿐.
쉽게 말해, 이건 반응 떠보기였다. 어차피 이슈화도 되었겠다, 이제 남은 건 증거를 잡는 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리처드의 행동에서 리스크를 추측했던 주헌은 도박수를 던졌다.
[자, 표절범이 아니면 어디 한 번 그려봐. 자기 그림 하나 또 못 그리겠어?]
승률 100%의 도박은 아니었다.
리처드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도리어 자신들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아니나 다를까, 리처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너, 실수하는 거야. 서주헌. 여기서 내가 실력을 입증하면 넌 세계적 망신거리라고!”
[좋아, 해보지. 지금부터 동시에.]
“도, 동시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쾅! 리처드의 작업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이닥친 얼굴들을 보고 리처드는 입을 떡 벌렸다.
‘유, 유재하!’
그리고 서주헌!
거기에 아름다운 미녀가 둘이나 붙어있었지만, 그딴 건 지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둘 다 라이브로 해보자고.”
저, 저것들이!
그들의 등장에 작업실 안에 있던 교수진들과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그들은 오히려 잘 됐다 싶은 모양이었다.
“좋아. 바로 준비를 해주게.”
“동시에 그림을 그려보게 하면 이보다 확실한 방법도 없지.”
리처드는 당연히 반발했다.
“어디서 멋대로!”
“이대로 냅두면 리처드 교수님에게 불리한 이야기만 커질 뿐입니다.”
“……큭!”
“그래요! 재연하는 것뿐입니다! 이미 한 번 그렸던 그림이시니 어렵지 않겠죠!”
“어차피 리처드 교수님의 버릇은 따라 하기 힘듭니다. 가짜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고
요!”
그건 그럴 것이었다.
다만 그 버릇이 유재하의 것이라는 게 문제지!
그러나 그런 속도 모르고 아첨꾼들이 리처드에게 손에 붓을 쥐어주었다.
“자, 선생님. 믿습니다.”
이것들이 진짜!
반면 유재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단장님은 한번 해보자고 했지만….’
그는 리처드를 쏘아보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그래도 저 새끼는 명색이 미대 교수였다. 하향세였을 뿐이지, 원래도 그는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런 예술가가 그깟 그림 하나 흉내 내지 못할까? 그래서 유재하는 주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짓을 해도 소용 없을 텐데.’
실제로 주헌도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도박이야. 잘못하면 상황이 역전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어 말했다.
‘그래도 장담한다. 리처드는 그림을 못 그려.’
도대체 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리처드가 자신만만하게 붓을 집어 들었다.
‘굳이 유재하로 변신할 것도 없다.’
그러더니 주헌과 유재하를 비웃었다.
“여기서 내 실력을 증명하면 너희 둘은 세상에서 매장이야.”
그리고 유재하를 보며 가늘게 웃었다.
이미 넌 겪어봤지?
그런 웃음이 섞인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보자마자 유재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당연했다.
과거 언론은 물론 심지어 친했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두들겨 맞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
다.
[쓰레기 새끼야. 왜 사냐, 죽어라.]
[인생 그렇게 쉽게 살려고 하지 마라.]
[그렇게 안 봤는데 돈에 미친 새끼.]
[교수한테 항의했대.]
[와 진짜 뻔뻔하다. 카피범 새끼 그냥 죽어버렸으면.]
몇 개월 동안은 집 밖에도 못 나가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리처드의 손이 움직였다.
“!”
“오오! 시작한다!”
리처드는 유재하를 보며 남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 모방 정도라면 굳이 놈으로 변신하지 않아도 따라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유화 물감이 크게 한 획 그어졌다.
“오!”
그 다음에 파란색… 노란색….
리처드는 자신 있게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색을 섞어가며 사람의 얼굴을 그려갔다. 사람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헌이 퍽 유재하의 등을 걷어찼다.
“너도 빨랑 안 그리고 뭐하냐.”
“하, 하지만…!”
“닥치고 해. 평소의 날 믿어라.”
“……그럼 제일 못 믿겠는데요.”
그러나 주헌은 진지했다.
이놈의 기억을 되찾지 않고 지배력을 올려주려면 이번 일은 필수다. 그러나 엄청난 호응을 받는 리처드 쪽을 보면서 기죽은 채로 손을 뻗었다.
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은데.
점점 저쪽의 환호성이 커지자 유재하는 ‘포기하고 도망갈까?’라고 생각할 때였다.
술렁술렁.
환호성이 점점 술렁거림으로 바뀌었다.
리처드 쪽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자 유재하는 고개를 돌렸고, 주헌은 씨익 웃었다.
‘역시나.’
붓을 움직이는 리처드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교, 교수님?”
“뭐야 저거. 뭘 그린 거야?”
유치원생의 낙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알록달록, 초등학생들의 그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원작의 붓 터치나 색감을 따라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그게 티가 나서 안쓰러울 지경
이었다.
결국 그걸 찍는 이들은 기겁을 했다.
“교, 교수님. 지금 장난을 치실 때가……!”
“역시 자기가 그린 그림이 아니었나…!”
그리고 그걸 본 유재하는 제 눈을 의심했다.
‘저 인간이 왜…!’
리처드의 솜씨는 제자였던 유재하가 잘 알았다.
저 인간이 제 그림을 훔쳐가긴 했어도 나름대로 거장이라고 불렸던 인간이다. 저렇게 그림을 못 그리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사람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세상에 진짜였어?”
“와…… 왜 최근에 그림을 못 내나 했더니, 역시 대리작…!”
동시에 리처드가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개소리 하지 마요!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긴장했을 뿐이야!”
유재하가 급하게 물었다.
“단장님, 이게 어떻게…”
“내가 그랬잖아. 저 놈은 이제 그림을 못 그릴 거라고.”
“네……?”
주헌은 예상이 적중 했다는 듯이 하하 웃었다.
그렇다.
리처드의 유물은 타인의 능력을 얼마든지 카피할 수 있었다.
단 리스크 없는 유물은 없는 법.
리처드의 유물은 쓰면 쓸수록 자신을 잃게 된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대신, 자기 본연의 모습은 잃게 된다는 의미였다. 즉 리처드 본인의 그림실력은 심각할 정도로 퇴화하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안 그린다길래 혹시나 싶었건만.’
반면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리처드는 몸을 떨었다.
순간 몰락하는 자신을 떠올리며 리처드는 경기를 일으켰다.
“모함이야!”
리처드는 결국 붓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유재하와 시선이 마주치자 더욱 초조해진 것이리라.
“아니야! 난 아니라고! 모함이야! 다가오면 7대 무덤에서 얻은 유물을 박살을 내겠어!”
“……!”
사람들은 움찔했다.
7대 무덤의 유물이 얼마나 고가에 불리고 있는지, 탐내는 사람들이 많은지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곧이어 리처드는 최후의 발악을 했다.
쿵!
방 안이 번쩍! 하더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앞이 안 보여!”
“내 눈!”
“아무것도 안 보여!”
방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시력을 잃은 것이었다. 바로 시력을 일시적으로 잃게 만드는 유물을 사용한 탓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다.
“아, 다시 보인다.”
그러나 시력을 되찾았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리처드가 사라졌어!”
“도망갔다!”
그렇다.
리처드가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표절범이 도망갔다!”
“단장님! 그 대머리가!”
곧 이설아와 아이린이 급하게 어디론가 연락하는 듯 했다.
도망간 리처드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였다.
“아, 그럴 필요 없어요. 안 도망갔으니까.”
그 말에 누군가가 움찔했다.
주헌은 가볍게 웃었다.
‘놈이 가진 건 변신의 유물이다.’
사람들의 시력을 빼앗고, 그 틈을 타서 다른 인물로 변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리처드를 쫓기 위해 흩어지면 유유히 튈 생각이겠지.
아주 전형적이고 뻔한 수법이었다.
“다른 인물로 변해 있을 뿐이에요.”
주헌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누군가를 보았다.
“주, 주헌씨?”
“찾았다.”
주헌은 씨익 웃으면서 누군가를 붙잡았다.
***
[장 리처드 구속 수사.]
[협박혐의, 뇌물혐의, 명예훼손 등 수사.]
[유재하. 카피캣이 아니었다.]
언론은 꽤나 시끄러웠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사회적으로 두터운 신뢰를 받는 사람이 사실은 표절범이었다니.
하물며 장 리처드는 유명인이었다. 판도라의 사무총장이었고, 방송인으로서도 유명했던 사
람.
하물며 과거에 매장 시켰던 유재하가 진짜 원작자라니.
충격적인 게 당연했다.
“나한테 꽤나 할 말이 많을 거 같은데, 영감.”
“이 자식이……!”
유재하는 다양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리처드와 조우하며 낄낄 웃었다.
“그러니까 내 그림 누가 훔쳐가래?”
홀튼 가의 인맥으로 잠깐 리처드와 조우한 유재하는 꼴좋다고 했다.
“똑같이 언론에 매장되어 보니까 기분이 어때?”
리처드는 씩씩 거렸다.
“내가 냈으니까 니 그림이 성공한 거야, 이 등신아. 생짜 초보인 네가 그 그림을 내고도
주목을 받았을 거 같아?”
그 말에 유재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맥과 권위가 중요한 미술계가 아닌가.
자신이 그 그림으로 데뷔를 했어도 묻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 때 리처드를 감시하고 있던 프랑스 경찰관이 불어로 외쳤다.
“헛소리하지 마! 네가 아니었어도 주목을 받았어! 우리 와이프도 팬이란 말이야!”
그러나 정작 불어를 못 알아듣는 유재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왔다. 그리고 유재하가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였다.
“축하한다, 이제 위조 작은 안 그려도 되겠네.”
“단장님!”
유재하는 부끄러워했다.
“뭐. 혐의가 벗겨졌다고 해도 햇병아리인데요.”
그 말에 주헌은 픽 웃으며 말했다.
“설아야. 그거 줘라.”
“네.”
이설아가 유재하에게 서류 한 장을 주었다.
내용물을 본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단장님, 이거……!”
“그래. 누명을 벗은 기념선물.”
그러나 유재하는 그걸 보고 파르르 손을 떨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개, 개인전?”
“그래. 이번에 리처드하고 대결하면서 그린 그림도 큐레이터들이 좋게 보더라. 얼마에 팔
거냐고 하던데?”
“지, 진짜요?”
“어쨌든 개인전도 6개월이면 준비기간 충분하지? 좀 작긴 하지만 겨울에 뉴욕 미술관에
서… 엥?”
주헌과 이설아는 깜짝 놀랐다.
주헌이 잡아온 개인전 일정표를 보며 유재하가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야, 1호?”
“진짜 개인전 한 번 해보는 게 유일한 꿈이었는데…….”
사실 유재하는 리처드에게 박살난 이후에 모든 걸 포기했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헌을 만나고 나서 많은 게 변했다. 결국 얼마나 기뻤는지 그는 사람들 많은 앞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단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으엉!”
눈물 콧물을 다 흘리던 유재하는 대뜸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이런 큰 곳에서…… 으엉! 다시는 그림도 못 그릴 줄 알았는데! 어머니! 기뻐하세요! 못
난 아들놈이 뉴욕에서 개인전이랩니다! 이제 효도 시켜드릴 수 있어요!”
주헌은 그걸 보고 당황했다.
아니 그도 그럴 법한 게…….
‘젠장. 더 큰 미술관으로 잡아줄 걸!’
고작 이딴 걸로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진짜 단장님처럼 이렇게 속이 깊으신 분은 없을 겁니다!”
귀찮다고 대충 하라고 했던 게 다 찔릴 지경이었다.
그럴 때였다.
[부하의 배신하지 않는 충심을 얻었습니다.]
[〈유물도 반할 포용력〉 칭호를 얻어 스킬을 획득합니다.]
[〈나쁜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친절함〉 칭호로 당신을 싫어하는 유물들도 조금은 당신을 다
시보기 시작합니다.]
[〈조련〉 스킬을 얻었습니다.]
이번 일로 꽤 쓸 만한 걸 얻었다.
이때 구석에서 훌쩍이던 유재하가 주헌에게 물었다.
“흑. 그런데 단장님. 마지막에 그 대머리가 도망가려고 다른 사람으로 변했을 때요.”
“아, 어 그래.”
“그놈 어떻게 찾아냈어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주헌이 답했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