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5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
〈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1) 〉
아무래도 일주일씩이나 걸리지 않을 모양이었다.
진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그도 그럴 법한 게, 제자가 가져온 신문이 문제였다.
[장 리처드. 유물로 제자의 그림을 훔치다?]
[그간 낸 작품들은 모두 유물의 짓?]
[부와 명예도 모두 제자에게서 빼앗아!]
[현대미술의 아버지, 실세는 도둑놈.]
[학회 교수들 “리처드 화풍 갑자기 바뀌어 이상했다.”]
[판도라 비리에 이어서 작품까지 속여먹었나.]
그 기사를 본 리처드는 거품을 물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딴 기사를 썼단 말인가!
그럴 때였다.
“큰일이 터진 모양이시네요. 리처드 교수님.”
진채원이 키득 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마치 비웃는 모양새라 리처드는 몸을 떨었다.
‘젠장……!’
결국 리처드는 제자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곳에서 소란을 벌이고 싶진 않았던 탓이다.
리처드는 나오자마자 신문으로 제자의 뺨을 때렸다.
퍼억!
“일처리 똑바로 안 해? 죽고 싶어?”
“교, 교수님!”
“유재하만도 못한 놈. 지금까지 거두고 키워줬더니 지금 이딴 식으로 보답해?”
“아, 아니 그게!”
“이거 출처 어디야. 누가 쓴 거냐고!”
결국 리처드는 신문을 제자의 얼굴에 내던졌다.
“빨리 말 안 해?!”
“…저 그게, 범인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신의 짓이라는 말까지!”
아니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요!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이런 기사를 편집장이 통과 시켜줄 리가 없다고……!”
그건 그렇다.
게다가 기사가 터져 나온 곳은 자신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언론사였다.
하지만 이미 결과물로 나오지 않았나.
결국 리처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안 그래도 질투무덤으로 세상의 이목을 사고 있던 리처드였다. 7대 무덤 공략자란 사실만으로 세계 대통령이 VIP 로 초대 하는 판국이었다.
주헌이야 개무시 했지만, 리처드는 그걸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유재하.
‘그 놈이 내 인생을 망치려고 하고 있어…!’
“등신이면 등신답게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왜 남의 앞길을…!”
일주일.
일주일만 있으면 유재하를 완전히 매장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왜 이게 먼저 터져!
***
왜 터지긴.
“하하하하. 이거 가관이네!”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굽던 주헌은 리처드의 기사를 보면서 낄낄 웃었다.
‘나 대신 이걸 터트려주다니.’
아이고 고마워라.
그렇다.
남들은 귀신의 소행이라는 기사에 주헌은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일행의 반응은 정 반대였다.
“이, 이거 단장님이 터트렸어요?!”
“아니.”
“그럼 도대체 누가!”
언론은 리처드가 꽉 장악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과거, 자신이 도리어 누명을 쓰고 언론에 매장 당했던 것이고!
항의도 고소도 놈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단장님밖에 없을 텐데……!
그러나 주헌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아냐. 무엇보다 기사 터진 곳이 어딘지 봐.”
“어? 여긴 분명 판도라 친화적인 언론사…!”
“그래. 에드워드가 잡고 있는 언론사가 아니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 일을 적대 언론사의 찌라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 그뿐인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은 듯 이설아와 아이린이 말했다.
“중국 쪽 미디어가 이 기사로 도배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내 빅이슈를 누르고요.”
“미국 쪽도 그렇고, 유럽 쪽도 그렇고, 전 세계 1면으로 깔린 모양이에요.”
상식적으로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뉴스가 많은데, 이 일이 전 세계의 1면을 차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헌만큼은 그 답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슬슬 나타나나. 풍문왕.’
확실했다.
이런 짓을 할 놈은 그 놈 뿐이었다.
15명의 왕 중 〈풍문왕〉.
파산왕과는 다른 의미로 독식자들의 뒷목을 잡게 하는 놈이었다. 다들 쉬쉬하려던 사실까지도 끄집어내 세상에 빵빵 터트려버린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흔히 반 기득권 세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 녀석은 순전히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관심과 주목을 받는 걸 무척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즉, 본인이 흥미롭다 싶으면 팩트폭력, 날조, 선동 등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빵빵 터트려버렸다.
대단한 건 신문이나 뉴스의 기사를 제멋대로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 프로까지도 자기 멋대로 끼워서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모든 미디어를 장악한 놈.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15인의 왕에 들 만했다.
‘뭐, 아군도 아닌 놈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리처드의 건을 물어 줄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잘 됐다.’
이건 기회다.
그렇게 씨익 웃는 주헌은 어디론 가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다, 단장님? 어디에 전화하십니까?”
“니 동문들.”
“아, 네. 제 동문……네?!”
갑자기 걔네들한테는 왜!
그러나 주헌은 악랄하게 웃었다.
“증언날조…… 아니아니 증언수집이다. 보내려면 확실하게 보내야지.”
주헌은 이 풍문왕을 어떻게 이용해 먹으면 되는지 잘 알았다.
그래서 일까.
‘권회장의 복원사는 빨리 빨리 치우는 게 최고다.’
아니.
‘복원사는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졸지에 복원사의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는(?) 대 악당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악당왕이 방긋 웃었다.
“니 동문들, 얼마면 없앨… 아니아니 리처드에 대해 입을 열겠냐? 일자리는 안 필요하대? 개인전? 후원가?”
“이, 이봐요!”
“왜. 예일대 미대면 꽤 뛰어난 복원사 후보생들이잖아. 하는 김에 다 같이 없애자.”
“이 사람 보게!”
당당하게 살인 예고냐!
물론 반은 농담이겠지만, 주헌은 정말로 유재하의 동기, 동문들과 연락했다.
유려한 말빨, 그리고 원어민 뺨치는 5개 국어로 한 명 한 명 잡아먹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그리고.
“아, 여보세요? 김예슬 씨인가요? 반갑습니다. 유재하의 전 여자친구죠?”
“아아악! 이 인간아!”
가증스럽게도 전 여친 한테도 전화를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유재하가 이설아를 불렀다.
“설아야! 단장님이 여자랑 통화하신다! 좀 말려 보…….”
그러나.
“……이설아. 너 뭐하냐?”
유재하의 시선에 이설아는 재빨리 뭔가를 샥 숨겼다.
그건 핸드폰이었다.
결국 유재하가 외쳤다.
“단장님! 이설아가 단장님을… 몰카 으읍!”
“뭐?”
주헌이 유재하를 보았지만, 그는 이설아에게 목이 졸리고 있었다.
“도촤…… 읍!”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했나?”
이설아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주헌은 사진을 찍히는 걸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늘 오징어로 찍혀서 싫다나 뭐라나.
오죽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자들의 카메라를 빼앗는 일부터겠는가.
“설아야?”
“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분명 뭔가 했는데.
뭐, 아무래야 상관없지.
주헌은 다시 부지런히 통화를 계속 했다. 결국 이설아는 슬퍼했다.
‘젠장, 찍지 못 했어……!’
그렇다.
이설아는 주헌을 도찰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웃는 모습.
싱글 벙글 웃으며 전화하는 주헌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순간 욕심이 생겼던 탓이다.
20대 후반, 그리고 30대 중후반 일 때의 주헌도 중후하고 멋졌지만, 뭐라 할까… 사실은 좀 무서웠다.
뱀파이어 같이 창백한 인상에 다크서클, 소위 말해 마약하는 시체 같았다고 해야 할까.
전혀 웃지도 않았다.
그에 비해 지금은….
“아, 혹시 실례지만 복원사 일 하고 계십니까? 아, 아니면 말고요. 목숨 부지 하셨네
요.”
‘귀여워.’
퇴폐미도 좋지만 귀여운 것도 좋다!
결국 해맑게(?) 웃는 주헌을 보고 이설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단지 그걸 본 아이린의 심기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린 역시 슬쩍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도 찍을 거야.’
주헌이 워낙 사진 찍는 걸 싫어해 자신도 참고만 있었는데…!
결국 갑자기 도찰전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유재하는 무심결에 한마디 했다.
“나 단장님 사진 무지하게 많은데. 노출샷도.”
그 말에 이설아가 외쳤다.
“나한테 원본 다 넘겨! 내 동료 직원 소개해줄게! 무지 예뻐!”
“…지, 진짜?”
그 때였다.
“1억.”
끼어든 건 아이린이었다. 순간 유재하는 제 귀를 의심했다.
“네?”
“사진 한 장당 1억. 노출샷이면 곱빼기.”
“…….”
그리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헌은 계속 즐겁게 통화하고 있었다.
***
[충격! 쏟아지는 예일대 동문들의 증언.]
[잇따른 양심선언! 장 리처드의 조교, “죽기 싫으면 입 다물라 했다.”]
[“유재하가 먼저 창작하는 걸 봤다. 교수에게 보여준다고 했다.”]
[“그 후 소리소문없이 리처드의 그림으로 나오더라.”]
[교수의 권위로 젊은 작가의 미래를 밟은 것인가.]
계속 되는 스캔들에 리처드는 비명을 질렀다. 듣자하니, 자신이 꽉 쥐고 있던 놈들이 죄다 서주헌에게 넘어갔단다.
그 와중에 정체불명의 누군가는 신이 나서 기사에 도배를 해댔다.
[7대 무덤 공략자, 장 리처드의 몰락인가!]
이것들이 진짜……!
게다가 성이 안차는 지 미술학회에서도 이 난리였다.
“증명해주시죠. 리처드 교수님.”
갑자기 찾아와서는 이 사달에 대해 해명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억울하시면 증명해달라고요. 그림을 다시 그려서요.”
리처드는 미술학회로부터 괴이한 제안을 받았다. 바로 표절로 거론 되는 그림을 다시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특유의 붓 터치와 기법을 재확인해보겠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자신들의 눈앞에서 그려달라고 했다.
그 말에 리처드는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은 좀 곤란한데.”
그건 당연했다.
왜?
‘변신 유물을 쓰면 유재하의 모습으로 바뀐 단 말이야!’
장 리처드가 가지고 있는 변신 유물. 그건 루팡의 실존 인물이라 불리는 비독의 유물이었다.
상대의 능력을 카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람으로 변한 상태에서만 능력을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유재하의 그림을 그리려면 모습이 유재하로 변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런 마당이니 남들이 보는 곳에서 어떻게 그리겠는가! 그래서 평소에도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서 작업했건만!
결국 리처드는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웃어보였다.
“사람마다 작업 스타일이 있는 겁니다. 당신들의 요구에 따라줄 수는 ….”
그런데 그럴 때였다.
[왜? 못하겠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이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핸드폰의 영상통화.
아무래도 저놈이 학회 사람들을 보낸 것이 틀림없으리라.
이렇게 표절 의혹이 제기 될 때가 아니면 먹히지 않을 정도로 권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에.
아니나 다를까.
영상통화 속 인물이 표표히 입을 열었다.
[왜? 그려보라니까? 지금.]
저 빌어먹을 놈이……!
그러나 리처드가 이를 뿌득 갈거나 말거나 상대가 말을 이었다.
[아 참, 참고로 생방송 중이니까 떨지 말고.]
영상통화 너머로 주헌이 악랄하게 웃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