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33화 (133/409)

00133 2등도 기억하라고!  =========================================================================

< 2등도 기억하라고! (3) >

리처드는 경악하고 말았다.

분명했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

나름 멋 부려본다고 했지만 그래봐야 다 찢어진 거지 옷. 지금 생방송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유재하였다.

뉴스 앵커들 사이에 놈이 난입하자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야, 이 사람 어디로 들어온 거야!]

[저리 안 나가?]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술렁거렸다.

[누구지? 저 사람 누구야?]

7대 무덤을 두 개나 클리어한 주헌이라면 또 모른다. 유재하의 존재는 듣도 보도 못한 얼굴이었으니 만큼.

그러나 그 상황에서 리처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 녀석이 왜 살아 있지.’

리처드는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분명 진채원과 손잡고 저놈들을 지옥에 처박았는데!

‘살아서 나왔다고?’

저 등신 유재하 놈이?

게다가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리처드 씨가 가져온 유물이 7대 무덤의 유물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표절이라니 무슨 이야기죠?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이에 리처드는 벌떡 일어났다.

저것들이 진짜!

지난 번 판도라 파티에서도 떡밥을 던지더니, 이번엔 뉴스 생방송으로?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엿을 먹게 생겼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엿으로!

리처드는 어디론가 다급하게 문자를 날렸다.

[뭐하고 있어! 막아! 내리라고!]

수신자는 당연히 방송국 관계자였다.

저 방송은 최근 핫한 미국의 유물전문채널 〈툼플러스〉.

NBC, CBS, ABC 등 미국 주요 공중파는 아니었지만 최근 유물 관련 일들이 중요하다 보니 메인급 채널이 된 곳이다.

그러나 이미 저곳은 오스틴 록펠러가 로비하고 있어 판도라의 손아귀에 있는 곳이다.

‘그러니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PD가 신났어요!]

[지금 시청률 치솟고 있어서 막지 말래요!]

뭐라고? 이 PD새끼가 미쳤나!

리처드의 손이 핸드폰을 부술 기세로 파르르 떨렸다.

지난번에야 판도라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기자들의 입을 닥치게 했다. 그래서 리처드의 표절 건이나 권 회장에 대한 의혹은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다.

제갈공명 율리안이 아무 이유 없이 TKBM을 걷어찬 또라이로 기록 된 것도 그 탓이고.

그런데 저런 식이면!

그럴 때였다.

“어! 역시 봐! 저거 서주헌 아냐?”

“맞아! 그 서주헌이야!”

주헌의 얼굴이 브라운관에 미쳤다.

선글라스를 쓰고 방청객 모드로 서 있지만 그 모델포스, 아니 사채업자 같은 포스가 어딜 가랴?

씨익 웃고 있는 꼴이 리처드에겐 얄미울 지경이었다.

덕분에 리처드의 눈이 번득였다.

‘저 자식이…!’

틀림없었다.

서주헌.

저놈이 유재하 놈을 저기에 세운 거다.

무덤에서 유재하를 꺼내고, 저 자리에 세워 일부러 저런 말을 지껄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리처드의 생각은 맞았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지.’

마침 적당한 유물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나.

이건 놈을 〈사기왕〉으로서 부려먹기 위한 첫 번째 계략이었다.

‘언제까지 음지에서 살게 할 순 없지.’

게다가 부하들 중에 왕급이 있으면 주헌으로서는 아주 좋은 일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유유히 뉴스 데스크로 올라오며 말했다.

“장 리처드는 그림 원작자를 죽이기 위해 무덤에 매장했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7대 무덤 공략자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전 세계에 사기를 치고 있는 거죠.”

“……사, 사기라고요?”

리처드는 순간 현기증과 함께 뒷골이 땡겨오는 것을 느꼈다.

젠장, 권 회장이 지금껏 이런 기분이었나!

그러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헌은 태연하게 지껄였다.

“전 세계 여러분, 속지 마세요. 장 리처드는 가짜 질투무덤의 유물로 사기를 치는 겁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주헌은 큭 웃으며 유재하를 가리켰다.

“왜냐하면 진짜 질투 무덤의 유물은 제 부하직원이 가지고 있거든요.”

“뭐, 뭐라고?!”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아 참, 클리어는 내가 했고.”

이 말을 들은 언론은 그야말로 전쟁터처럼 난리가 났다.

“서주헌이 또 7대 무덤을 클리어 했대!”

“와, 저놈 뭐하는 놈이야?”

“됐고, 빨리 속보 내 보내! 7대 무덤 공략자가 다르다고! 질투무덤의 유물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거짓말이면…!”

“등신아! 카피를 잘 써야지! 이건 시청률 대박감이야!”

“누가 장 리처드하고도 연결해서 확인해봐!”

유재하는 내심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이왕 이리 된 거 일단 지르고 보자 생각했다.

사나이가 아닌가!

이왕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못 먹어도 고 아닌가!

“그러니까 불만 있으면 나와, 대머리! 진실공방 벌여보자고!”

옳지, 옳지. 잘한다.

주헌은 가르친 보람이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헌이 이렇게까지 유재하를 지원하며 리처드를 도발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왜?

‘사기를 치기 위한 전제조건은 신뢰다.’

사기도 신뢰가 형성돼야 칠 수 있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사기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유재하를 피해자로 만든다.’

뭐 실제로도 피해자가 맞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만 된다면 여론은 유재하에게 측은한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사기를 친다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없는 법.

이후에 유재하는 사기왕으로 활동하기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주헌은 악랄하게 웃었다.

‘자, 어서 15명의 왕좌에 올라서 날 도와라!’

전 세계의 유물은 바로 자신의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일해라 노예 1호!’

그럴 때였다.

뉴스 앵커가 당황하다가 외쳤다.

“아, 현장 연결 요청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현장 연결?’

곧 뉴스 데스크의 큰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타났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유재하는 새하얗게 질렸고, 주헌은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왔구나.’

[아무래도 이상한 유언비어로 선동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화면의 주인공은 장 리처드 본인이었다. 때마침 인터뷰 중이던 차라 쉽게 연결이 되었던 탓이리라.

리처드는 이를 뿌득 갈면서 외쳤다.

[지금 선량한 사람을 표절범에 사기꾼으로 몰아가고 있는데요. 뭐? 그 쪽이 진짜 질투무덤

의 유물을 가지고 있어?]

“그래. 가지고 있다고 이 대머리야!”

[허, 그럼 날짜 잡아. 어느 쪽이 진짜인지 비교해보자고!]

놈이 미끼를 물었다!

덕분에 세상은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스승과 제자의 진실 공방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7대 무덤 중 3개나 휩쓴 서주헌.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판도라 분석 “3개 무덤 모두 정상적인 클리어가 아니었다.”]

[불법 침입, 비정상적인 공략 등 도굴 행위로 규정?]

[리처드 vs 유재하. 진짜 질투무덤의 유물은 어느 쪽이 가지고 있나?]

“축하한다. 일주일 후에 전 세계인 앞에서 진실 공방을 펼치게 되었구나.”

그러나 유재하는 하나도 안 기뻤다. 아니 기뻐할 수가 없지 않은가.

[오, 보이. 큐트 보이.]

제 유물이란 놈이 이 모양 이 꼴인데!

“사람들이 믿겠어요? 이게 그 살리에리고, 7대 무덤의 유물이라고?”

“음. 확실히 나라도 믿긴 싫겠다.”

아이고! 역시나!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얘 감당하기 싫어서 저한테 계약시키신 거죠!”

“그걸 이제 알았냐?”

유재하는 기절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주헌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살리에리는 이게 제 모습이 아니다.’

현재의 이 부담스러운 게이 모습은 어느 유물에 의해 개조당한 모습. 쉽게 말하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비정상적인 버그가 났다고 보면 되었다.

얼핏 보면 쓸모없어 보이지만…….

‘저 놈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스승으로 있던 놈이다.’

그만큼 다른 대 예술가들하고도 상성이 좋고, 끌어들이는 힘이 좋을 게 분명했다.

‘다른 예술 유물도 긁어모으기 쉽다는 의미지.’

주헌의 진짜 목적이었다.

예술 관련 유물은 부가가치성이 무척 뛰어났기 때문에 주헌은 눈을 반짝였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늘 돈이 되지.’

“어쨌든 이 기회에 카피캣 누명도 벗고 잘 해봐.”

“하지만 이 살리에리로는……!”

“시끄러워. 판은 다 깔아줬다.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잘 해봐라, 인기남.”

“잠… 으아악!”

주헌은 덮쳐지는 유재하를 무시하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이설아를 보았다.

아무래도 기억에 없었다고 하지만 주헌을 저격한 일이 못내 걸렸던 모양이었다.

하물며 주헌의 몸에 상처를 내다니.

그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설아야.”

주헌의 목소리에 바로 빠릿하게 일어선 그녀가 다가왔다.

“네, 네!”

물을 드릴까요? 아니면 의사를 부를까요?

그녀는 그렇게 허둥지둥 거렸다.

주헌이 앓는 소리를 하면 바로 5층 건물에서 뛰어내릴 기세라 주헌은 웃었다.

“진채원 쪽은?”

“네. 확실히 꽤나 뿔이 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장님이 메모리 유물을 부순 게 타격이 있

었겠죠.”

“좋아.”

주헌은 계획대로라는 듯 웃었다.

‘그 여자한테 득이 될 일을 내버려둘 순 없지.’

주헌은 계약서 한 장을 이설아에게 던져 주었다.

“사인해라.”

그건 유재하에게도 던져주었던 계약서다.

“너도 이제부터 내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겠다.”

“이건……!”

“입단 계약서. 싫으면 싸인 안 해도 되지만.”

그러자 유재하가 입을 삐죽였다.

“와 씨, 이거 차별이야. 저 때는 계약 안하면 죽이겠다더니 쟤한테는 권유입니까?”

그 말에 주헌은 큭 웃었다. 하기야 유재하 때는 꽤 거칠긴(?) 했지.

하지만 그건 당연하지 않나?

“너하고 얜 하늘과 땅 차이인 걸.”

“뭐, 뭐라고요?!”

대놓고 주헌이 차별하자 유재하는 억울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뜨는 메시지.

[상사의 노골적인 차별(?)에 부하의 질투심이 올라갑니다. 질투 유물의 적합력이 올라갑니

다.]

[상사의 노골적인 차별(?)에 부하의 질투심이 올라갑니다. 질투 유물의 적합력이 올라갑니

다.]

오, 좋아.

더 열심히 차별(?)해줘야겠군.

그리고 그 모습에 이설아가 주헌에게 슬쩍 속삭여왔다.

“단장님. 저놈한테는 기억의 유물을 안 쓰실 겁니까?”

자신처럼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느냐는 의미였다.

그러나 주헌의 답은 칼 같았다.

“안 쓴다.”

이설아는 의아해했다.

“만약 기억을 되찾으면 복원 실력과 지배력도 한 번에 올라갈 텐데요.”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됐어, 여러 가지로 귀찮아.”

멤버들은 모르겠지만, 당시 유재하는 최후의 무덤에 제 분신을 대신 보냈다. 자기만 빼고 멤버들이 다 죽었을 텐데, 미쳤다고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줄 아는 놈이었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쓰기야 하겠지만, 부하에게 굳이 괴로울 기억을 다시 주고 싶지 않았

다.

하물며.

‘그 비뚤어진 걸 또 어떻게 감당해.’

결국 이설아도 납득했다.

차라리 지금의 호구 상태가 주헌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러니.

‘기억 하나는 권태준, 그 노친네를 위해 남겨두지.’

주헌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마침 잘됐다 싶었다.

권태준에게 어떻게 최후의 한방을 먹여줄까 고민했었는데.

‘최후의 순간에 이걸 써주지.’

이 유물을 써서 토사구팽에 대한 쓴 맛을 느끼게 해주리라. 그 일그러지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주헌은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넌 이제부터 내 스파이로서 중국 쪽을 엿본다. 협력자들하고도 친하게 지내.”

주헌의 말에 이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참, 단장님! 아이린이 도굴단 새 멤버 들어왔다니까 관심 가지던데요!”

아무래도 아이린은 유재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뭐 미인이라고 하니까 더 궁금해하는 거겠지만…”

“뭐라고?”

“아, 혼잣말입니다. 오라고 해도 괜찮죠?”

“응, 괜찮아.”

“하긴 아이린이니까.”

그 말에 이설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헌의 입에서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것까지는 상관없다 이거였다. 과거에 가까운 사이였다고 해서 기고만장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질투가 나지 않느냐고 물으면 거짓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기억이 있어도 별개의 이설아라고 정의한 건 다름 아닌 주헌이었으니까.

그런데 아이린……?

이설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저 단장님. 아이린이라는 건…….”

그 순간이었다.

덜컹!

타이밍 좋게 낯익은 얼굴의 여자가 들이닥쳤다.

“주헌 씨, 새 도굴단 멤버를 받아들이셨다면서요?”

그건 바로 초조한 표정의 아이린이었다.

곧 두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 작품 후기 ==========

적이 나타났따!

+ 추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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