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1 2등도 기억하라고! =========================================================================
< 2등도 기억하라고! (1) >
뭐지, 이 생물은?
산전수전 다 겪은 주헌조차도 순간 움찔거릴 만한 외견이었다.
긴 머리, 길게 올린 속눈썹, 뽀얀 볼터치, 화려한 드레스…….
다 좋았다.
다만 주헌은 상대의 얼굴을 보고 얼어붙었다.
못생겼다? 괴물이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야이 씨, 이거 남자 새끼잖아!”
주헌은 쌍욕을 하면서 거리를 두었다.
그렇다.
나타난 것은 여장을 한 남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우람한 남자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여성스러운(?) 화장을…!
그러니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올 수밖에!
‘미친, 이제야 알겠네!’
왜 동아줄이 ‘저 언니 무서워!’ 그런 말을 보내왔는지!
왜 정조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는지!
실제로 무서웠다!
주헌조차도 너무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무덤에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세상에 저 수염 가득한 얼굴로 무슨 미친 짓을!
[호호호, 나 빼고 다 죽어!]
“이 미친! 면도라도 할 것이지!”
가짜 가슴이 덜렁거리면서 돌진해오는 광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은 칼로 주헌을 위협해왔다.
정확히는 칼이 아닌 바이올린의 활!
그 활은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베어버릴 만큼 날카로웠다.
쉭! 쉭!
주헌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일격을 피해내면서 머리를 굴렸다.
‘대충 18세기? 오스트리아?’
주헌의 눈은 놈의 의상과 건축물의 양식을 빠르게 훑었다.
‘분명히 있을 거다. 그 시대에서 여장하고 관련 있는 유물이…….’
[호호호호! 어서 죽으라고!]
뿌득.
있을 리가 있겠는가.
모른다. 이딴 유물!
주헌은 재빨리 유재하에게 외쳤다.
“유재하! 너 놀고 있진 않았지? 저 미친 유물에 대해 10자 이내로 설명해!”
“당연하죠! 저 유물은… 우웁!”
유재하는 거미줄로 입이 틀어 막혀 버렸다. 곧 여자가 씩씩 거리며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누구더러 미쳤다는 거냐!]
매섭게 달려드는 여자는 모습까지 바꾸었다. 시커먼 안개가 놈을 감싸더니, 형체가 짐승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물이 변신을 한 것이다.
바뀐 모습은 거대한 검은 거미!
하물며 사람 하나는 거뜬히 잡아먹을 법한 크기였다.
거미가 두두두두 매섭게 달려들었다. 주헌은 까닥 거리면서 유물을 불렀다.
“자 와라!”
뽑기로 뽑아낸 S급 검 유물이라면 저 거미의 다리를 자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터!
이 무덤의 특성상 밖에선 소환이 안됐지만, 무덤 안이라면 귀속성 유물도 소환이 가능하리라.
번쩍!
잠시 후 예상대로 유물이 소환되었다.
그러나 손에 잡힌 것은 검이 아닌….
[#$#*(!]
나 불렀어? 불렀어?
눈을 반짝이는 동아줄이었다.
“…….”
[#*$*(#!]
뭐하면 돼? 뭐하면 돼?
주헌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너 부른 거 아닌데.
실제로 동아줄에게 순번을 빼앗긴 S급 검 유물은 허망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공격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동아줄을 되는대로 콱 움켜쥐고 채찍질을 시작했다.
“저리 꺼져라! 이 변태 유물!”
철썩 철썩!
뜻밖에도 효과는 아주 좋았다!
거미는 졸지에 동아줄에게 얻어맞고 끽끽 거렸다.
[아이고, 이놈이!]
동아줄도 신이 나서 더욱 강하게 거미를 내려쳤다.
[#*$*!]
아까는 잘도 우리 괴롭혔지! 괴롭혔지!
철썩 철썩! 처얼썩!
찰진 소리가 거대한 저택에 울려 퍼졌다. 맞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 거미의 신음소리가 괴롭게 울먹였다.
동아줄은 고작해야 B급인데도 위력이 상당했다!
[이 자식이!]
그 사이에 이설아는 유재하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후두둑, 유재하의 입을 틀어 막고 있던 질긴 거미줄이 전부 뜯겨져 나갔다. 물론 여전히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였지만.
“움직이지 마. 다른 곳까지 벨 수 있으니까.”
유재하는 그런 이설아를 향해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빚쟁이라더니 단장님한테 붙었어?”
이 개자식.
이설아는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은 왜인지 좀 호구스럽긴 하지만.’
유재하.
자신들의 복원사이자,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던 15명의 왕 중 하나인 <사기왕>.
뭐, 왕급이라고 해도 이설아의 눈엔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에 불과했지만.
솜씨는 인정할 만 했지만 어찌나 성미가 악랄하고 더러웠는지. 그야 말로 상종 못할 정도였다.
그나마 단장인 주헌의 말만 좀 들어 먹었지, 이설아와 다른 동료들에겐 배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래도 넌 권회장이랑 양 첸 보다 나으니까 봐준다.”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해봤자 그나마 골 때리는 사기꾼 수준. 동료의 목숨을 팔아넘긴 그 놈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랬기에 이설아는 유재하를 완전히 풀어줬다.
털썩!
유재하는 이설아가 순순히 자신을 풀어주자 입을 떡 벌렸다.
“와, 무슨 바람이 부셨대? 얼마 전까지 못 죽여서 안달이더니?”
“단장님의 명령이 아니면 구해줄 일도 없어.”
“엥?”
아직 현실과 과거의 기억이 뒤 섞여 혼란스럽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단장님은 죽기 직전 과거로 오신 거다.’
아마 그 최후의 무덤에서 단원 전원이 죽었겠지.
굳이 주헌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머리 좋은 이설아는 금방 눈치 챘다.
그 뒤에 주헌이 말했었다.
‘이번 생에서 너에게 충성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
‘네?’
‘기억이 있든 없든 넌 다른 이설아다. 하지만 기억해라. 내 적이 되면 난 과거의 인연 따위 무시한다.’
스쳐지나가듯 말했지만 이설아는 납득했다. 적이 되면 처리하겠다는 의미라는 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주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웃었다.
주헌은 ‘다른 사람을 따라가려면 따라가도 좋아.’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자신이 주헌 말고 새삼 누구를 따르겠는가.
중국?
그 빌어먹을 진채원이 있는 곳?
판도라?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그 이 갈리는 독식자들 밑에 붙으라고?
그리고 TKBM 의 권태준?
그 새끼는 더 말할 가치가 없다.
아니, 그들이 아니어도 처음부터 답은 하나라는 걸 잘 알면서.
“됐으니까 이 무덤에 대해서나 말해보시지. 단장님한테 도움이 되라고.”
이설아는 칼을 유재하의 목에 겨누었다. 유재하는 이것보라며 훌쩍였다.
“단장님! 그 거미, 단장님도 알만한 작곡가입니다! 단장님 유물만 있으면 클리어할 수 있어요!”
“뭐? 작곡가? 누군데!”
“살리에리요!”
“뭐?!”
“안토니오 살리에리! 모차르트를 질투했다는 걔!”
그 외침에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안토니오 살리에리.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로 현대인에겐 그다지 유명하진 않지만 모차르트와 비견 되는 인물이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스승이기도 하고.
당대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고의 궁정소속 작곡가로 명예를 누렸지만, 모차르트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다는 말도 있다.
쉽게 말해, 노력의 천재로서 진정한 천재인 모차르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해 독살을 했다는 둥 여러 설화가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화려한 저택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클래식 음악이었다.
물론 주헌도 예술엔 큰 흥미가 없어서 들어도 잘 몰랐지만.
[호호호호! 나 빼고 잘난 놈은 다 죽어라!]
아니, 그래도 저게 살리에리라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질투>
질투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확실히 2인자가 1인자를 시기하는 질투도 있다.
‘그래도 실제 역사에선 모차르트 보다 살리에리가 더 잘나갔다고 들었다.’
뭐, 진짜 열등감을 느꼈을지 않았을지는 본인들이 아니고서야 모를 문제지만.
‘살리에리의 질투, 질투…….’
도대체 어느 이야기에서 탄생한 유물인가 고민하던 주헌은 아차 싶었다.
‘푸시킨의 희곡!’
러시아의 국민시인이자 대문호, 푸시킨의 작품 중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이 있다.
쉽게 말해 천재에 대한 질투와 성찰을 그린 작품이다.
‘거기서 만들어진 유물이구나.’
주헌은 감을 잡은 듯 했다.
다만 그 살리에리의 모습이 좀……아니 상당히 이상하지 않은가.
[호호호호! 다 죽어, 다 죽으라고!]
미쳐도 상당히 미쳤다.
심지어 여장까지 하고.
어딜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그럴 때였다.
그 의문을 풀어주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타 유물에 의해 개조당해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원래 상태로 돌리기 위해선 특정 조건 유물이 필요합니다.]
[특정조건 유물을 가지고 있으면 무덤 역시 클리어 됩니다.]
‘그래. 어쩐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유물한테 개조 당했다고?
그딴 게 가능하단 말인가?
어쨌든 불로초를 개화 시키는데 지렁이 유물이 필요했던 것처럼, 살리에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분명 유재하 놈이 말했었다. 자신이 가진 유물이라면 이 무덤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거라고.
‘운 좋게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건가.’
자식, 그래도 열심히 무덤에 대해 분석해놨군.
그렇게 생각한 주헌이 기특하다는 듯 외쳤다.
“뭐냐! 어떤 유물을 쓰면 먹히는데?”
그러자 유재하가 자신 있게 외쳤다.
“하렘의 유물이요!”
순간 주헌은 제 귀를 의심했다.
“……뭐?”
하지만 유재하는 진지하게 외쳤다.
“하렘의 유물로 꼬셔서 데리고 나가면 됩니다!”
“……설아야.”
“네.”
“죽여. 걔.”
쾅!
이설아는 기다렸다는 듯 단검으로 유재하를 찍어 내렸다.
그걸 가까스로 피한 유재하가 진짜라면서 말했다.
“진짜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그거면 된다니까요!”
“새로운 복원사를 구해볼 테니, 수고 많았다.”
쾅!
“으아악! 아니 진짜래도!”
유재하는 억울했다.
남이 듣기에 개소리를 하는 것 같을지 몰라도 이건 진심이었다. 아까부터 쫓기면서 파악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해보시라니까요.”
“니가 해.”
“……네?”
“유물 빌려줄게. 니가 해.”
유재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더니 슬쩍 살리에리를 보았다.
달기였을 때라면 두말하지 않고 했겠지만…….
‘그래도 저건 아니지.’
얼굴을 굳힌 유재하가 결국 도망가려고 했다.
“안녕히 계십쇼. 즐거웠습니다. 두 분은 그냥 여기 계세요.”
그러자 보다 못한 이설아가 쯧, 혀를 차며 유재하를 낚아챘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하렘의 향수를 유재하의 손에 들려주었다.
유재하는 기겁했다.
“자, 잠깐! 뭐하는 짓이야!”
“왜? 될 거라며?”
이설아는 유재하의 손가락을 꽉 잡고 하렘의 유물을 사용하게 했다.
유재하는 엄살을 부렸다.
“아이고! 아파, 아파! 이 여자 힘 진짜 세네!”
이설아는 하렘의 유물의 진짜 사용방법을 알았다.
그래서일까.
유재하의 손에서 발휘된 하렘의 유물은 강력한 효과를 가져왔다.
보랏빛의 향수병이 번쩍 빛이 나면서 저택 전체에 강력한 페로몬이 방출 되었다. 그러자 살리에리는 파르르 몸을 떨면서 유재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아주 부담스러울 지경이었고, 유재하는 끔찍하다면서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엄청난 천재성이야. 반할 것 같아, 보이.]
“으아아악! 싫어! 오지 마!”
[유물이 다른 사용자에게 반했습니다.]
[무덤의 클리어 될 것 같습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무덤의 변화가 생겼다. 빛과 함께 저택 곳곳에 쳐져 있던 거미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헌은 그게 무덤 클리어의 징조라는 걸 깨닫고 웃었다.
“좋았어!”
그런데 이때였다.
쿠웅!
무덤이 크게 뒤흔들렸다. 그리고 무덤에서 있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해당 무덤을 대리 지배하고 있던 총수, 탐식의 유물이 분노합니다.]
그걸 본 주헌은 깜짝 놀랐다.
'대리지배에, 총수의 유물이라고?'
무덤의 대리 지배란 있을 수 없었다. 무덤의 주도권은 무덤을 만든 주인에게 있었으니까.
그런데.
'총수..유물의 우두머리라면...'
언젠가 홀튼가의 배에서 까마귀가 경고했던 그 놈.
뒤이어 역시 처음보는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덤에서 유물을 들고 나갈 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찜한 듯한 유물입니다.]
[갇힙니다.]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게?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
(지난 편 코멘-> 최후의 무덤 유재하 부분은 좀 수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