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기억을 되찾다? =========================================================================
< 기억을 되찾다? (4) >
“단장님?”
굉장히 이상한 감각이었다.
분명히 주헌은 자신의 적이었다. 하물며 그의 얼굴을 본 건 고작해야 두세 번.
그런데 어째서일까.
슬펐다. 주헌의 얼굴과 목소리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애절해졌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주헌을 알고 있었던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1년… 5년… 아니 10년 이상.
가족처럼 그를 줄곧 봐온 것 같았다. 하지만 감정은 가족 그 이상이었다.
실제로 제일 먼저 몸이 그를 기억했고, 가슴이 미치도록 떨렸다. 머리에는 이상한 기억들이 스며들었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이설아는 잠시 고민해야 했다.
‘최면인가.’
적어도 환각의 종류는 아니었다. 단순히 낯선 뭔가를 보는 느낌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퍼뜩 떠오른 느낌이었다.
마치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느닷없이 떠오른 그 느낌.
이설아는 머리를 짚었다.
‘유물로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
방금 전에 이상한 병이 번쩍인 것도 그렇고.
속임수라고 생각한 그녀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주헌을 경계했다.
하지만.
“설아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또 다시 주헌의 목소리가 귀에 박힌 순간 이설아는 쏟아지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단장님, 단장님……!”
이 사람은 자신의 단장이었다.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물며 지금 이설아에게 가장 생생한 기억은 하반신이 잘린 주헌이었다.
‘너희는 도망가!’
‘네?! 단장님은요!’
‘나는 됐다. 내가 미끼가 될 테니 너희라도 반드시 살아남아라.’
권 회장에게서 배신당하고 버려졌던 그 무덤. 그 상황에서 주헌은 어떻게든 부하들만이라도 살려 내보내려고 했다.
그 뒤 주헌이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했지만, 이설아는 자신이 대신 뱀의 먹이가 되었다.
덕분에 주헌이 까마귀를 만나게 된 것이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이설아.
그래서일까.
이설아는 주헌의 멀쩡한 두 다리를 만지면서 엉엉 울었다.
“단장님. 다행… 흑, 무사하셨…….”
도대체 우는 건지 말하는 건지.
주헌은 일단 이설아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어어 그래그래. 무사하니까 울지 마라. 울지 마.”
동시에 주헌은 정말 황당했다.
‘아니 도대체 이 까마귀 놈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뭔가 과거의 일을 떠올린 것 같긴 한데.
그 생각에 미친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이 유물.’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종류인가?
‘가능성은 크다.’
그 까마귀는 주헌의 전생의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물며 자신을 과거로 이동시켜주질 않나, 별 괴상한 마술은 다 부리는 이상한 새였다.
그러니 그깟 전생의 기억을 되돌려주는 게 어려울 리가.
게다가 이 물약의 사용횟수.
[9/10]
틀림없었다.
자신의 도굴단 단원의 숫자에 맞춰져 있었다. 그랬기에 주헌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걸로 부하들의 기억을 되살리라는 건가?’
그래서 어디 도굴단이라도 부활 시켜보라고?
물론 숫자야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소로운 까마귀 놈.’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고맙긴 하지만 유물주제에 신 같은 행동을 하는 게 한편으론 같잖았던 탓이리라.
‘그래도 이런 식이면 분명 이득이긴 이득이다.’
그럴 때였다.
주헌의 얼굴을 확인하며 훌쩍이던 이설아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다, 단장님!”
“뭐? 왜? 무슨 일이야!”
뭔가 잘못 되기라도 했나 싶었지만, 이설아는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어려지셨죠?”
“……뭐?”
“아, 아니 피부도 탱탱하시고, 주름도 없으시고… 나이도 안 들어 보이시고… 무엇보다 귀엽…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이 녀석이.
그뿐이 아니었다.
“도대체 단장님이 어떻게 살아 계시는… 아니 단장님은 내 적인데….”
아무래도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잠시 꼬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너. 나를 기억하는 거냐?”
“아, 네, 네!”
“그럼 나랑 처음 만난 건 언제 어디서지?”
그러자 방금 전까지 당황하던 이설아가 진지한 눈으로 바뀌었다.
“크리스마스 날… TKBM의 사무실입니다. 크리스마스부터 출근에 야근이냐고 단장님이 산타클로스 도넛을 나눠주셨죠.”
“좋아. 나 빼고 사원 여행간 적 있지. 그 때 있던 일 하나만 말해봐.”
“새벽에 망할 유재하 놈이 술김에… 옷장에 오줌을 쌌습니다. 다들 오줌싸개라고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죠. 사진도 찍어놨습니다.”
좋다.
자신의 기억하고도 일치했다. 하물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설아는 알고 있다. 자신의 기억이 옮겨갔거나 거짓된 기억이 새겨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가장 마지막 기억은?”
“마지막 기억은…….”
그리고 뭔가를 말하려던 이설아가 갑자기 우욱 입을 틀어막았다.
잘 말하던 그녀는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구역질을 했다.
“설아야!”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말했다.
“……준이랑 유재하가 먼저 죽고…… 그 다음엔 다, 단장님이… 다리를… 그리고 제가… 욱!”
“그만. 됐어!”
아무래도 최후의 무덤 일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뱀에게 삼켜지던 그 감각까지도.
물론 주헌에게도 아직 선했다. 특히 주헌은 타인에 비해 기억력이 좋은 만큼, 더 생생했다.
마치 방금 겪은 일처럼.
어쨌거나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러니.
“됐어. 그 이상 떠올리지 마라.”
이 이상 좋지도 않은 걸 떠올리게 하긴 싫었다.
하지만 눈까지 충혈 된 이설아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권태준! 양 쳰…! 그 빌어먹을 놈들! 감히 단장님을 속이고! 우리까지…!”
그녀는 당장이라도 놈들의 목을 따러 갈 기세였다.
뭐 주헌의 명령이라면 대통령의 목도 따올 녀석이니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만.
“기다려. 네 마음은 알겠는데 지금은 아서라.”
“하지만 그 놈들이…!”
“응,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그만. 지금은 그쪽이 급한 게 아니거든. 구해야 할 사람이 있어.”
“어, 네? 누구를요?”
주헌은 지면 밑을 가리켰다.
“누구긴. 우리 복원사 놈.”
“보, 복원사라면 설마…….”
“당연히 너도 잘 아는 유재하.”
이설아의 표정이 정말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
“아이고, 그마안! 난 잘 못 없다니까! 저리가, 이 변태야!”
유재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있었다.
왕급인 만큼 무덤에서 쉽게 죽을 리도 없었지만, 이 거지 같은 무덤에서 버티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그나마 동아줄이 뒤에서 따라오는 적들을 쳐내주는 건 감사했지만. 그만큼 동아줄에게 얻어맞아 볼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
더 빨리 뛰란 말이야! 뛰란 말이야!
‘아, 진짜 단장님만 오면 이 무덤은 그냥 해결 되는데!’
그리고 그 찰나!
“으아악!”
성질날 정도로 잘도 도망치던 유재하가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심지어 동아줄도 함께.
“아씨, 이거 안 놔!”
[#*$#&*!]
이거 안 놔? 이거 안 놔?
둘은 사이좋게 거꾸로 매달리고 말았다.
마치 거미줄 같은 실이었다.
그 투명하고 질긴 실은 유재하와 동아줄을 꽁꽁 묶기 시작했다.
유재하는 졸지에 머리에 피가 쏠리는 걸 느끼며 외쳤다.
“야 씨, 이 변태야! 날 잡아서 뭐에 쓰려고 그러냐. 진짜!”
[천재 놈들은 다 죽어라.]
“이씨, 나 천재 아니라고!”
[나보다 더 잘난 재능을 가진 놈들은 죽어라.]
“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 말고 그냥 다 죽어라.]
“아니, 왜 그렇게 되는 건데!”
곧 거미줄이 유재하가 들고 있던 고흐의 엽서를 빼앗아갔다. 그러자 안에 갇혀 있던 유물들이 우르르르 튀어 나왔다.
금도끼 은도끼부터 시작해서 함무라비 법전, 화랑의 검, 셰익스피어의 펜까지.
다양한 유물들은 유재하에게서 해방되자 천진난만하게 좋아했다.
[#*$&*#!]
와! 밖이다! 밖!
[#*$*!]
우왕 바다 가자! 선크림은 어디 있나! 어서 가져와라, 이 노예야!
[#*$#&*!]
우리 샤론누나 영화보자! 에로 영화!
하지만 바다고 에로 영화고 자시고.
[이놈들, 나 말고 다 죽어라!]
유물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무덤 주인 탓에 기절할 뻔했다.
[#*$*!]
꺄아아악! 쟤 뭐야! 뭐야!
그리고 유물들은 우르르 쫓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같은 동포임에도 불구하고 무덤의 주인은 죄다 박살낼 기세였다.
[닥치고 다 죽으라고!]
[#*$#&*!]
끄아앙, 오지 마!
[#*#&*!]
무서웡! 무서웡! 쟤 얼굴 무서웡!
유물들은 비명을 지르며 뽈뽈 흩어졌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아아아악!”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검이 유재하의 목에 드리워진 탓이었다.
그리고 무덤의 주인이 유재하에게 외쳤다.
[인간, 넌 불쌍해서 살려두려고 했지만 총수님의 명이다. 너는 반드시 죽이라고 했다.]
“아이씨! 그 총수가 누군데!”
이 질투무덤의 주인은 <총수>인지 뭔지 하는 유물의 휘하에 있는 놈 같았다. 결국 진짜 죽겠다 싶었던 유재하가 도망가는 유물들에게 외쳤다.
“야, 니들! 이것 좀 끊어봐! 잠깐만 구해달라고!”
그러자 유물들이 입을 삐죽였다.
[@##$*!]
우리가 왜? 우리가 왜?
[#*$(#!]
콱 잡아먹혀! 잡아먹히라고!
주헌이 아니니 유물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재하는 확신했다.
‘오냐, 저것들이 개무시하고 있구나.’
주헌의 말에는 대열까지 맞춰서 집합하던 놈들이!
‘이 빌어먹을 친화력! 아니, 호구력!’
“아, 됐고! 한번만 도와주면 3박 4일 풀코스 호화 패키지로 모실게! 마사지! 럭셔리 목욕! 단장님 몰래 산책도 시켜줄 테니까!”
그 말에 유물들은 ‘저놈 도와줄까? 도와줄까?’ 하고 팔짝 팔짝 뛰었고, 동아줄은 한심하다는 듯 유재하를 보았다.
그리고 이 때였다.
“이것들이 누구 맘대로 딜을 하고 있어?”
“!”
쿠웅!
저택의 천장이 사납게 무너졌다. 그리고 유물들은 낯익은 주헌의 지배력에 몸을 덜덜 떨었다.
이 빌어먹을 기운은 분명!
[#$*&*!]
끄아앙 나타났다! 나타났어!
[#*$*!]
몬스터다!
고개를 들자 구멍 뚫린 천장으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단장님!”
유재하는 해맑게 웃었지만.
“……엥?”
곧 주헌과 함께 있는 여자를 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뭐야, 이설아? 왜 걔랑 같이 있어요?!”
물론 이곳까지 주헌을 안내한 이설아도 싫은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단장님, 저 등신 꼭 구해야 합니까?”
거꾸로 매달려 있는 꼴이 아주 한심하게 비친 모양이었다.
복원의 천재인건 인정한다만, 주헌을 부끄럽게 하는 저 꼬라지라니.
“저거 그냥 잡아먹히라고 하죠.”
“그럴까?”
둘이 아주 농담까지 주고받자 유재하는 황당해 했다.
“어? 뭐야, 나 빼고 둘이 언제 그리 친해졌어?”
글쎄다?
주헌은 저놈한테도 기억의 유물을 써봐야 하나 고민했지만, 일단 됐다 싶었다.
“됐으니 일단 말해봐라. 여기 무덤의 주인의 정체, 그리고 위치….”
그럴 때였다.
“단장님! 뒤! 뒤!”
“!”
주헌은 유물의 기척에 황급히 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무덤의 주인을 공격하려는 순간.
주헌은 무덤의 주인의 얼굴을 보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뭐지, 이 생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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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