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기억을 되찾다? =========================================================================
< 기억을 되찾다? (2) >
뚝.
전화가 정말 불친절하게 끊겼다.
덕분에 리처드는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말을 틀리게 하진 않았다.
분명 네 놈의 부하를 납치했다는 말을 했는데….
끊겼다.
결국 리처드는 끊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이 쌍 또라이 새끼.”
지금 납치범의 전화를 끊어?
이게 미쳤나?
이쯤 되면 리처드도 도리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뭘 믿고 이러는 거지?’
그리고 그럴 때였다.
띠링.
권 회장으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지금 자네 뭐하자는 건가?]
딱 봐도 독기가 올라 있는 메시지였다.
그건 당연했다.
권 회장의 소속인 리처드가 자체적으로 발굴단을 꾸리고, 하물며 7대 무덤을 클리어 하고 그 중요한 유물을 낼름해?
이건 명백한 배신 행동이었다.
반면 리처드는 씨익 웃었다.
사실 이번 일은 권 회장 몰래 리처드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진채원.
바로 그 여자와 이번에 손을 잡은 것이다.
‘진채원이라.’
리처드도 소문으로만 들었던 여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처드는 그녀의 유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어떤 유물도 굴복 시킬 수 있다고 했던가.’
잘은 몰라도 모든 유물들은 그녀의 탐식 유물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고 한다. 지배력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심지어 다른 주인이 있는 귀속성 유물 까지도.
단지 굴복에 그치지 않고 진채원의 유물의 말에 따르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 정도면 유물의 왕이다.’
그리고 실제로 리처드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그녀가 가진 탐식의 유물은 유물들의 총수.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자다.
그 압도적인 힘이 사황 중 최강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이고.
어쨌거나 현재의 리처드는 권 회장 보다 진채원 쪽이 훨씬 구미가 당겼다.
왜?
‘진채원이랑 손을 잡으면 권 회장의 유물도 굴복 시킬 수 있다는 거잖아?’
안 그래도 권 회장의 <정복> 유물이 제법 탐이 나는 리처드였다.
그뿐인가?
‘다른 놈들의 유물들도 손에 넣을 수 있다.’
자신은 권 회장의 복원사 따위로 만족할 재목이 아니었다. 리처드는 권 회장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낄낄 웃었다.
‘감히 유재하 건으로 은근슬쩍 약점을 잡으려고 해?’
괘씸한 권태준.
어디 어제 한솥밥 먹던 사이가 오늘 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어차피 그 정도의 신뢰도 없던 관계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서주헌.
“뭐하자는 거야 이 새끼?”
물론 아무래야 좋았다.
‘유재하 놈은 죽었겠지.’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자신도 잘 모른다. 유물을 사용하긴 했으나 날려보내는 장소는 랜덤이었으니까.
하지만 살아나오기 힘든 장소라는 건 확실했다.
[타겟 한 명을 깊고 깊은 지옥에 쳐박아 넣는다.]
그런 유물을 진채원에게 협조 받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걸로 눈엣가시들은 정리다.’
골치 아픈 원작자도, 복원사를 잃은 서주헌도.
한꺼번에 처리가 되겠지.
리처드는 정말 통쾌해서 하하 웃어댔다.
7대 유물도 손에 넣고, 세상의 주목도 받게 되고, 아주 운소대통이 트일 것 같았다!
***
하지만 정작 그가 죽이려고 하는 유재하는 살아 있었다.
다만.
“아이고 단장님. 유서도 안 남기고 와서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물론 생긴 것은 아주 멀쩡한 곳이었다.아니 멀쩡하다 못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휘황찬란한 장소였다.
‘지하에 이런 대저택이라니.’
유재하도 미처 몰랐다.
무덤이라는 장소는 대개 습하고 동굴 같은 장소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황금빛과 붉은 빛이 섞인 고귀한 저택이었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은 걸을 때 마다 청명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천장은 깎아 올린 듯 높았다.
하물며 벽과 복도에 가득 붙어 있는 그림들과 아름다운 예술품들은 유재하가 눈을 반짝일
정도였다.
다만 여기에 나타난 미친 여자만 아니었더라면.
‘인간, 이 몸을 주인으로 삼아라. 당장 내가 시키는 일을 해라!’
아마도 이 무덤의 주인이리라.
‘자! 어서 내가 시키는 일을 해!’
아니 뭔지도 모르는 괴물의 말을 왜 따라야 하는데!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하면 밖에 내보내줄 거냐, 살려줄 거냐’ 고 물으니 또 그건 아니라
고 한다.
그런데 미쳤어?
유재하는 열심히 도망 다녔다.
잘만 버티고 있으면 주헌이 기별을 보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하를 버릴 인간은 아니지.’
기묘한 방법으로 무덤에서 살아남은 유재하.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 이 유물의 정체와 약점도 파악한 상황이었다.
‘이제 단장님만 오시면 된다.’
유재하는 주변을 살피며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갔다.
대충 술래잡기를 한 지 30분 째.
‘들키면 진짜 죽는다.’
하지만 유재하가 다시 발걸음을 떼는 순간!
쿵!
[이쪽이다! 이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잡아라!]
복도의 한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그걸 들은 유재하가 황급히 방향을 틀어 도망가려 할 때였다.
[찾았다!]
[여기다!]
빌어먹을!
독안에 든 쥐냐! 도망칠 곳도 없는데!
그렇게 유재하가 눈을 질끈 감는 그 순간!
“으읍!”
천장에서 뭔가가 스르륵 내려오더니 유재하의 몸통을 낚아챘다. 그 힘이 엄청나 유재하는 정말 순식간에 끌려 올라갔다.
유재하를 쫓아온 성의 하인들은 술렁거렸다.
[뭐야, 어디 갔지?]
[분명 천장으로 올라가는 걸 봤는데!]
그러나 천장을 봐도 유재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유재하는 다른 곳에서 콜록 콜록 거리고 있었다.
“너, 이자식.”
유재하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동아줄이었다.
[#*&$#*!]
누가 혼자서 막 가래! 누가 혼자서 가래!
동아줄은 몸을 씰룩이며 씩씩 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재하를 찾느라 고생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뻐억!
유재하는 동아줄에게 사정없이 뺨을 얻어맞고 말았다.
“너 이게 무슨… 커헉!”
[#*$*!]
자꾸 혼자서 움직일래? 움직일래?
유재하는 제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그러니 주인 외엔 안 따르는 동아줄도 같은 소유물인 이놈을 지켜야했다. 그러나 유재하는 동아줄의 말을 들을 수가 없으니 동아줄이 미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
다.
“이게 진짜 주인도 못 알아보… 커헉!”
[#$*#(!]
누가 주인이야 누가 주인이야!
혼날래? 혼날래?
그 뿐인가.
동아줄은 주헌에겐 통하지 않았던 제 특수 능력이 유재하에겐 통하자 뭔가 분한 모양이었다.
[하늘로 통하는 게이트]
원래 위험시 동아줄을 붙잡으면 멀지 않은 범위로 랜덤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호랑이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밧줄을 잡고 하늘로 탈출한 것처럼 말
이다.
하지만 주헌의 경우엔 업보가 많아서 올라 탈 수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
그런데 넌 왜 되는 거야! 넌 왜 너는 되는 거야!
철썩 철썩!
아무래도 동아줄은 그게 몹시 불만인 모양이었다. 결국 유재하는 또 동아줄에게 찰싹 찰싹 맞아야만 했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진짜 주헌한테는 온갖 애교를 부려가는 주제에!
유재하는 억울했다.
마치 이건 강아지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친화력이 높으면 유물들한테 만만히 보인다는 말이 진짜였나!’
복원유물 때문에 친화력을 포기할 수도 없고!
어쨌거나 유재하는 이대로라면 자기가 불리하다는 걸 깨닫고 으르렁거렸다.
“이씨, 너 두고 보자. 내가 단장님한테 들은 유물이 있거든? 그걸로 너도 인간으로 만들고 같은 조건에서 맞짱 떠보자고.”
아무래도 인간의 모습이면 만만할 거라는 가소로운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정작 동아줄은 솔깃해 했다.
어? 그런 유물도 있어? 있어?
그럴 때였다.
[찾았다 이놈!]
“으아아악!”
적들에게 또 발각되고 말았다. 적들은 칼과 창을 든 중세시대 복장의 사내들이었다. 시퍼런 창과 날이 유재하를 노리고 있었지만, 동아줄은 눈을 반짝이며 기웃 기웃거렸다.
동아줄에게 있어 몰려든 적들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그랬기에 물었다.
[#*#&*!]
뭐야? 그 유물 뭐야?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유재하가 또 도망갔다.
“으아아악! 쫓아오지 말라고!”
인간이라면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동아줄은 분노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유재하를
쫓아가며 외쳤다.
[#*$*!]
도망가지 말랬잖아! 말랬잖아!
***
[탐식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탐식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탐식의 유물이 탐지 유물을 먹어 치우고,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의. 1km 안으로 탐식 유물의 탐지 범위에 듭니다.]
주헌은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눈살을 찌푸렸다. 유재하와 그가 복원하던 몇몇 유물들을 되찾기 위해 시리아에 온 것은 좋았다.
내전 지역이긴 하지만 이 근방은 난민텐트가 몰려 있을 정도로 제법 안전한 곳이었다. 하물며 리처드가 이미 7대 무덤을 클리어한 곳으로도 유명한 장소였다.
하지만 분명했다.
“칫. 그 여자가 얽혀 있나.”
리처드 그녀석이 뭘 믿고 권 회장을 배신하는 듯한 그림을 그리나 했더니.
그리고 탐식의 기운이라고 하면 진채원.
그 또라이 사황 밖에는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주헌은 불쾌했다. 진채원이라고 하면 권 회장의 명령을 받아 자신이 접근했던 것이 만남의 시초였을 것이다.
처음엔 소개팅을 하는 척,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 제법 가까워지긴 했지만 곧 알아차렸다.
‘위험한 여자다.’
그래서 주헌이 먼저 발을 뺐다. 진채원이 어떤 반응이었을지는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여자의 레이더에 걸리는 건 싫은데.’
사실 유재하를 끌어내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놈이 있는 곳을 찾아내 무덤 파괴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동아줄을 불러 끄집어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무작정 안에 들어가자니, 질투의 무덤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진채원의 레이더에도 걸린다.
‘이쪽에 놈들보다 더 뛰어난 레이더가 필요하다.’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 설아가 있으면 딱인데.’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도굴단에서 설아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럴 때였다.
그런 주헌을 사나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이 있었다.
‘찾았다, 서주헌.’
제 발로 사냥감이 기어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