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3 정은 피보다 진하다 <5권마침> =========================================================================
< 정은 피보다 진하다 (4) >
선택은 하나였다.
“내가 정보를 팔게!”
“아니야, 내가 팔게!”
의원들은 개떼들처럼 몰려들어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마치 백화점 초특가 세일행사같은 광경이었다.
물론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저기를 지나갔다간 진짜 죽는다.’
장난이 아니고, 저 미로는 정말 죽으러 가는 곳이었다.
황금의 오페라 하우스는 순식간에 미로 정원으로 바뀌었는데, 말이 정원이지 지옥과 다를 게 없었다.
곳곳에는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심지어 식인 식물이 곳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 뿐인가?
부글부글 끓는 염산 강과 주둥이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괴물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연유인지 자꾸만 통장에서 돈이 빠져 나갔다.
그리고 소지하고 있던 비싼 귀금속, 가방, 신발까지 전부 다!
심지어 가족들에게서도 ‘돈이 자꾸 어디론가 기부되고 있다’ 며 난리도 아니었다.
[소지하고 있는 재산이 기부됩니다.]
[유물이 기부 됩니다.]
[재산도 기부됩니다.]
[보다 더 유용한 곳에 쓰이게 됩니다.]
“미친 이게 뭐냐고!”
“젠장, 내 돈! 그게 다 어떻게 얻은 돈인데!”
그들은 다급해졌다. 이대로면 정말 빈털터리가 될 판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외칠 수밖에!
“알고 있는 정보는 다 팔게!”
“팔 테니까 그만해!”
의원들이 앞을 다투어가면서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주헌은 줄을 서라는 듯 큭큭 웃었다.
“자, 벌써 2000억달러로 올라가고 있다고. 어서 말해봐라.”
“나, 나! 이건 몇몇 의원들만 아는 극비정보인데, 곧 땅값이 오를 노른자 땅이 어디인지 알려줄게!”
그 말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치나? 다음.”
“자, 장난이라니? 귀한 정보라고!”
“등신아. 무덤이 나타나고 제일 의미 없는 게 땅값이다. 꺼져.”
의원은 입을 떡 벌렸지만 사실이었다. 무덤들이 땅과 건물들을 죄다 비집고 나오는 판국에 미쳤나?
뭐, 아직 1,2단계의 귀여운 무덤들이 주로 나오니 현실감을 못 느끼는 모양인데.
“그 노른자 땅을 죄다 박살 내기 전에 꺼져라.”
“!”
“비켜, 꺼지라잖아! 다음은 나! 판도라 의원의 딸을 소개해줄게! 하버드 생에 재력도 인맥도 빵빵하다고!”
“예뻐?”
“어……”
“기각.”
“뭐?!”
“말하지만 나한테 쓸모있는 정보여야 한다.”
주헌은 진지했다. 하지만 이 쯤 되자 주헌은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안 되겠네.”
주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의원들의 비명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지면이 꺼지면서 모두 음산한 미로에 떨어진 것이었다.
“자, 쓸 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으니 출구로 기어와라.”
“으아아악!”
의원들은 식인 식물과 괴물을 보고 거품을 물며 도망쳤다. 주헌의 말이 장난이 아닌 것을 깨닫고서야 만족할 만한 정보를 불기 시작했다.
“내 친척 중에 예쁜 애 소개해줄게!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유물, 판도라가 가지고 있는 유물을 전부 알려줄게!”
“나는 저기 저 비리정보! 원더슨 의원이 판도라 돈 꿀꺽한 거 알고 있어! 300억 정도 빼돌렸다고!”
그 말에 피를 토하는 의원들이 몇 명 있었다.
아니 듣자듣자 하니까, 무슨 정보를 팔고 있는 거야!
그러나 주헌은 아주 흡족해했다.
“오오, 좋아좋아. 훌륭해. 너 1억 차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원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야! 너도 200억을 빼돌렸잖아!”
“뭐, 뭐라고?”
“저 압니다! 윌슨 위원이 빈민가에는 경찰을 배치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 이봐!”
“치안이 안 좋을수록 무덤이 나올 확률이 더 크거든요! 일부러 그런 곳에 무덤이 쏠리게 해서 우리 땅은 지키자고…”
“이, 이봐!”
상황은 아주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격당한 의원들은 질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을 튀겨댔다.
“에이씨, 그러고 보면 스미스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나!”
“뭐, 뭐? 가만히 있는 나는 또 왜!”
“왜! 너 했잖아! 황인이랑 흑인 따위는 유물을 다뤄선 안 된다며! 그걸로 법안을 만들려고 했으면서!”
“얼씨구? 그러는 너는 안했냐? 안했냐고!”
아이고,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라네.
이쯤 되자 리처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 바보들이!’
장 리처드는 이를 갈았다. 누구보다도 권회장, 키이라가 눈뜨고 코 베이는 광경을 지켜봐왔던 리처드가 아닌가.
그러나 자기 살기 바쁜 의원들은 그런 리처드의 속도 모르고 침을 튀겨댔다.
“자, 이제 정보를 팔았으니까 됐지!”
되긴 뭐가 돼!
“제발 넘어가지 마세요! 이건 보나마나 저 놈의 수작입니다! 다 같이 여길 나가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요! 정보를 팔아봤자 저 자식이 여기서 내보내줄 리가……!”
하지만.
“서주헌 님! 저놈! 장 리처드의 비리를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요!”
“뭐?!”
모두가 돌아서자 당황하던 리처드가 외쳤다.
“젠장, 권회장이 판도라 돈으로……!”
***
[아니 저 놈이 200억 빼돌렸다니까!]
[저 놈은 황인과 흑인은 유물을 쓸 자격도 안 된다고 지껄였다니까!]
[뭐라고? 이 새끼가!]
[야! 너 윌터 의원 와이프랑 바람피운 거 모른 척해줬더니!]
[뭐야?! 그걸 왜 말해!]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판도라 의원들이 치고박는 영상이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었던 것이다!
의원이랍시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그들이 서로의 사생활과 비리를 까발리기 바빴다.
억대는 기본이고 불륜까지…!
주헌이 직접 촬영한 영상이었다.
“저, 미친 새끼들.”
“저것들한테 우리가 세금을 주고 있었단 말이야?”
“씨, 저 새끼들 안 잡아 가고 뭐해?!”
전 세계는 분노에 휩싸였고 사퇴 운동이 벌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러자 각국에서는 문제가 된 판도라 의원들을 조사하고 처벌했다.
뒷거래를 하기엔 물증이 너무 뚜렷했고, 심지어 그들의 뒤를 봐주던 이들은 원인불명의 병으로 단체로 실려 가고 말았다.
[비리에 연루된 판도라 의원 268명, 전원 의원직 사퇴 및 재산 압류]
[판도라 제이미 크루거 의원 사퇴]
[이형식 의원 사퇴]
[쥴리아 알바제네 의원 사퇴]
[한국지부 의원 추예림 재산압류]
[톰 스미스, 재산압류]
[판도라 사무총장, 장 리처드 근신처분]
어디 그 뿐인가?
[판도라에 비리 의원들, 의문의 파산]
[소유한 땅과 건물 증발, 기이한 재난.]
[유물의 짓인가?]
[판도라의 물주 오스틴 록펠러, 개인재산의 3분의 2가 증발하다.]
[오스틴 록펠러 혈압으로 실신해 실려가.]
[세계 NGO 단체들, 잇따른 후원금에 감사해]
그리고 그 사건들을 접한 조지 홀튼은 헛웃음을 흘렸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판도라 의원석이 빌 거라고는 말했지만, 진짜로 깨끗이 비어버렸다.
그 영상통화에 주헌은 하하 웃었다. 아니 뭐 별 짓 안했는데.
“어쨌든 이제 자리도 비었으니까, 할 마음 있는 놈들이랑 같이 입후보해.”
[왜 자꾸 날 그 자리에 앉히려는 거야?]
왜긴?
확실히 이번에 판도라에서 암 덩어리들을 쓸어내긴 했다.
다만 이대로 내버려두면 또 똑같은 놈들이 앉을 뿐이었다.
하물며.
“오스틴 록펠러는 아직 판도라 소속인데? 걔넨 너희 부모의 원수잖아.”
썩은 이빨들은 싹 뽑아내긴 했지만 충치는 몇 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주헌의 말에 조지가 말했다.
[부모님 문제는 굳이 판도라에 들어가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는 문제야. 그리고 애초에 난 판도라 일엔 관심 없다고. 왜 내가…]
왜긴 왜야.
아직 비리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언제 암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놈들이라 해야 하나.
무엇보다 오스틴 록펠러.
‘몇몇 상위권 유물사용자들이 판도라 내부에 숨기고 있는 물건이 있다.’
이를테면 판도라의 감지유물 같은 것.
그 유물들의 동향을 살피고, 빼앗기 위해 잠시 내버려둔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판도라를 감시하기도 귀찮고.’
그러니까 조지 홀튼을 앉혀 놓고 제 눈으로 삼겠단 의미였다.
‘이 녀석은 행동력도 있고 사업적으로도 센스가 있는 놈이야.’
그랬기에 주헌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조지의 엉덩이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 안 했는데, 아이린이 판도라 파티에 왔을 때 성추행 당했다? 그 오스틴 록펠러한테?”
그 말에 전화기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성추행?!]
“정확히는 미수지만.”
아니 사실은 손가락 하나 댄 적 없지만.
[미수고 자시고 어쨌든 그 자식이 아이린한테 손대려 했다는 거잖아!]
제대로 기폭제가 된 것인지, 조지 홀튼이 씩씩 거렸다.
[그런데 판도라는 아무런 말도 안 해줬단말야? 아무런 제재도 안 했어? 그 새끼한테?]
“맞아, 맞아. 못됐지?”
[기다려, 내가 사람들 끌고 판도라에 들어가서 갈아엎는다. 가서 록펠러 그 자식도 족쳐놓을 거야!]
옳지옳지, 그러셔야지. 형님.
“어쨌든 난 할 말 다했다. 의원님들이 기부해주신 돈들은 피해복구사업으로 잘 운용시켜.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무덤 매뉴얼 잘 만들어 놓고. 난 바쁘니 끊는다.”
[그래.]
주헌은 전화를 끊고 수도관에 달라붙은 유물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런 주헌을 향해 김 형사의 아내, 은지윤이 물었다.
“잘 되가니?”
“음, 대충이요.”
물론 김형사와 멋대로 계약을 해버린 듯한 유물은 주헌을 거부하며 빼 액빼액 발버둥을 쳤지만.
[#*$#$*!]
이거 놔라 이놈아! 우리 오빠 불러오란 말이다! 옵빠아!
오빠는 무슨.
“유부남한테 꼬리치는 거 아니다 이 녀석아.”
그러자 이놈은 용납(?) 할 수 없다며, 사랑이 이리 식는 거냐며 서럽게 울어댔다.
듣자하니 김치포기로 자신을 후려친 남성미에 반했다나 뭐라나.
마침내 주헌이 꺼내든 유물은 구슬 크기의 황금이었다.
[투금탄에 던져진 형제의 금덩어리 (C급 ? 일반급/귀속성유물)]
과거 사이좋은 형제가 황금을 주워 나눠 가졌지만, 그로 인해 욕심이 생겨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애를 위해 형제가 황금을 강에 던져버렸다는 한국설화에서 탄생한 유물. 쉽게 말해 담근 곳에 황금이 생겨나는 기능이었다.
‘아이린의 유물보단 불순물도 많고 파급력도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야.
어쨌거나 유물도 빼냈겠다, 수도관에서는 정상적인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걸로 됐어요. 그런데 대출받아서 가게를 냈다니, 제가 붙여준 돈은 못 받았어요?”
“아, 그거 받긴 했는데 남편이 이 돈은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네? 왜요?”
“주헌이가 외국에서 뼈 빠지게 일해서 부치는 돈일 거라고. 그러니까 나중에 너 결혼자금으로 쓰자고.”
“…….”
주헌은 머리가 아파졌다.
이거 아주 포르쉐라도 한 대 뽑아주면 기절을 하겠구만.
그런데 그럴 때였다.
“그런데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건데……”
“네?”
“잠 잘못 잤니?”
그 말에 옆에 있던 유재하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주헌은 목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파스의 정체를 아는 유재하는 입을 틀어막고 웃었고, 주헌은 제 목을 짚으며 아차 싶었다.
‘젠장.’
사실 파스로 가린 부분에는 붉은 자국들로 가득했다. 뭐 쉽게 말하면 키스마크.
대충 그거다.
‘거참, 리스크 한 번……’
이번에 아이린과 손을 잡은 건 좋은데 난데없이 목을 기습당해서.
평소라면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도 아니고, 이딴 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아무래도 형수님 앞에서는 얌전한 척하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의 서주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착하게 웃었다.
“어, 좀 잘못 잤나 봐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그 꼴이 가증스러웠는지 유재하가 푸웁 비웃더니, 이내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크, 크큭. 난 아는 데, 난 아는…”
뻐억!
“컥!”
주헌은 이 같잖은 부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언제 착한 척했냐는 듯, 평소의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어오른다, 너.”
유재하는 오들 오들 떨었다.
‘그래도 이 정도 리스크로 끝났으니 어디야.’
세계 제일의 미남들로 역하렘을 만들어줘야 하나, 진지하게 그딴 것 까지 고민하던 주헌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껌이지.’
주헌은 이걸로 이번 일은 쉽게 퉁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로 엄청난 착각이었으니….
그 날 새벽, 아이린의 진짜 리스크가 닥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아주 거대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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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따!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