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2 정은 피보다 진하다 <5권마침> =========================================================================
< 정은 피보다 진하다 (3) >
유재하는 기어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주헌을 보았다.
확실하다.
이 인간은 전생에 분명 폭군이었을 거야.
아마 귀족이고 나발이고 죄다 불지옥에 던져 넣었을 폭군.
하지만 뭐 어쩌겠나, 단장님이 준비하라면 준비하는 거지.
‘네로 놈이야 단장님한테 팩트폭력 당해서 아직도 골골거리고 있긴 하지만.’
대충 영혼 없는 칭찬이라도 해주면 복원도 수월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전화가 끊기고 난 후, 유재하가 물어왔다.
“그래도 단장님, 괜찮은 겁니까? 꽤 크게 벌이실 모양인데, 탐욕의 리스크인가 그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주헌은 잠시 움찔했다. 딱히 리스크를 망각하고 있던 건 아니다.
단지.
‘아직 색욕무덤에서 쓴 리스크도 안 오긴 했는데.’
설마 합쳐서 오진 않겠지?
그렇게 묘하게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확실히 전생에선 아이린이 부모를 잃은 탓인지 비슷한 나이의 중년들이 대거 실종된 적도있었다.
부모가 가지고 싶다는 탐욕의 리스크 탓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을 테고.’
현재까지 주헌이 확인한 리스크는 자신의 체취와 음주, 그리고… 키스.
‘리스크들이 재깍 재깍 오면 좀 좋아?’
유물의 리스크는 항상 제멋대로 와서 문제였다.
유물의 입장에선 아마 인간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싫은 거겠지.
재미가 없으니까.
“단장님?”
“아, 괜찮아. 내가 옆에 있으면 돼. 그럼 무슨 일이 터져도 막을 수 있어.”
“오, 막을 수 있을 거라고요?”
턱을 괸 주헌은 진지했다.
“그래봐야 스무 살 여자애의 탐욕이야. 권력이 가지고 싶느니, 나라를 가지고 싶느니, 그러진 않을 거 아냐.”
“하기야 단장님도 아닌데요 뭐. 세계 정복에 눈을 뜨진 않겠죠.”
이놈이?
“어쨌든 진짜 아이린 부릅니다? 후회하지 마세요.”
“그래. 20대 여자애가 좋아할 만한 거 다 알아놔. 그 중 하나는 걸리겠지.”
그러자 유재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야 우리 단장님, 이럴 땐 또 은근 순진하시네.
아니나 다를까, 유재하는 키득 키득 악의 없이 웃었다.
“네네. 농부들을 부려서 준비 해놓죠.”
에라이 난 모르겠다.
덮쳐지는 건 내가 아니잖아?
* * *
그리고 2025년의 어느날.
한국에 있는 판도라 한국 지부에서는 유물 관련 법안으로 굉장히 분주했다.
“하하, 확실히 이번 규제가 효과가 있던 모양입니다.”
“신고 접수율도 높은 편이고, 자진해서 얻은 유물을 보내오는 사람도 많아요.”
“역시 뭐든 돈을 세게 때리면 다 해결 된다니까요.”
“덕분에 유물의 동향을 파악하기도 수월하고요.”
“판도라 본부에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한국지부에 더 많은 돈과 유물을 지원해주겠다는 군요!”
“거참, 우린 뭐 한 것도 없는데.”
“우리가 성적을 내서 그런지, 이 법안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다더군요.”
판도라 한국 지부의 사람들은 하하 호호 덕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회의장에서 나온 그들의 표정은 싹 바뀌었다.
“거참, 이걸로 미개한 사람들이 유물을 쓰다가 큰일 날 일은 사라지겠네요.”
“처음부터 이래야 했습니다. 개나 소나 유물을 쓸 수 있으면 되겠습니까? 당연히 선을 그어야지.”
“그래도 판도라 발굴 인력에는 넣어야죠. 떨어지는 유물은 먹어야지.”
“아 참, 리처드 사무총장께서는 뭐라십니까? 거둬들인 돈들의 운영이요.”
“뭘 물어? 판도라에 들어온 돈은 각국의 복구사업에 쓰기로 했는데.”
“아, 복구사업이요. 네 열심히 피해자들을 도와야죠. 거기 복구사업에 지정된 회사가 저희 처남 회사인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그들은 큭큭 웃었다.
그래봐야 80%에 가까운 돈이 자신들과 연관된 회사로 굴러 들어올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서주헌이라고 했나?”
그들은 가증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한국인이면서 왜 한국지부에 유물을 헌납하지 않는 거야?”
“자발적으로 유물을 바치게끔 뜯어내보죠.”
“그래.”
그런데 그 때였다.
“의원니임! 빨리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뭐, 뭐?”
갑자기 판도라 한국지부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터졌습니다, 지난번에 납품 건이요! 그거 터졌다고요!”
“의원님! 그 100억 건이요, 그것도 걸렸습니다!”
“뭐, 뭐라고?!”
“지금 수사 들어와서 잘못하면 재산 몰수……!”
“이미 처남분의 빌라도 압류…!”
“에이씨, 미친!”
갑자기 그게 왜 터져!
“미쳤어? 돈 쥐어줬잖아! 그걸 조사하게 냅뒀냐고!”
“아니 그게, 재수 없게 비공개 자료들이 공개로 새어나가면서 언론사가…!”
“이런 썅! 비행기! 비행기 표 끊어! 잠잠해질 때까지 뜨면 그만이라고!”
어차피 이번에 판도라 지부에 들어오면서 많은 돈을 먹었다.
일이 조용해지면 남은 돈을 굴려 먹으면 그만이었다. 한국인은 냄비근성이 아닌가? 어차피 금방 잊힐 일이다.
하지만.
“그게… 이번에 투자하신 땅에 괴현상이 일어나서 땅값이 폭락……!”
“짓고 계신 건물 지대에 거대 싱크홀이 나타나서…!”
“가지고 계신 주식이!”
“저택에 도둑이 들어서!”
돌풍, 아니 토네이도처럼 박살나는 재산 피해에 판도라 소속 의원들은 얼이 빠졌다.
이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괴이한 재난이었다.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기괴한 파산의 힘이 재앙을 부릅니다!]
[기괴한 파산의 힘이 파산을 부릅니다!]
[파산의 힘이 폭주 합니다!]
[일반적인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파산왕의 힘이 강림했을 뿐.
하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사람들은 욕을 읊조렸다. 일단은 수사의 압박에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젠장! 일단 공항! 공항으로 가자고!”
그런데 이때였다.
이놈들이 어디로 튀냐는 듯, 강한 스파크가 콰지직, 허공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쿠웅! 엄청난 지진이 판도라 지부를 역습했다.
“으아아악!”
“뭐야!”
[기괴한 황금 궁전이 솟아오릅니다]
[판도라 지부에 해당하는 땅에 영역선포를 날렸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황금 궁전에 갇히게 됩니다.]
쿠궁!
강렬한 스파크와 지진!
바닥에서는 황금의 육신들이 지면을 가르고, 용맹하게 머리를 드러내며 치솟았다. 그 황금 기둥에 근육과 살이 붙듯이 화려한 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본 듯한 광경, 그러나 콜로세움에 가깝던 예전의 황금 궁전 보다는 더 세련된 모습이었다.
이번 생김새는 비유하자면 마치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
그 뿐인가.
쿵쿵쿵!
“으아악!”
원형의 궁전을 에워싸듯이 3m가 넘는 로마의 조각상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다만 이번엔 네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로 주헌의 모습이다.
웃는 주헌, 화내는 주헌, 근엄한 주헌, 사랑을 나누는 주… 아무튼 입이 떡 벌어지는 조각상도, 벽에 새겨진 얼굴도 모두 주헌이었다.
틀림없이 주헌의 취향대로 개조 된 것이 분명 하리라.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모두 내 앞에 모여라.”
주헌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
그러자 의원들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잠시 뒤, 그들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오페라 하우스?”
“고분화야?”
다만 규모가 평범한 오페라 우스가 아니다. 큰 야구장 규모를 떠올릴 정도로 상당했다.
재미있는 건 궁전에 갇힌 게 자신들뿐이 아닌 것 같았다.
“OH! 당신들은!”
오페라 하우스의 다른 문을 열고 나타난 건 뜻밖에도 외국인들이었다.
하지만 그 외국인들의 얼굴에 한국지부 의원은 기겁했다.
“파, 판도라 본부 의원들!”
그들뿐이 아니었다.
각국에 있는 의원들이 모두 이 오페라 하우스로 소환된 것이 틀림없었다.
정확히는 각 나라에 황금 궁전의 일부를 먼저 소환하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이 중심부로 불러낸 것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무대에는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웃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제이미 크루거. 이형식. 쥴리아 알바제네. 추예림. 장 리처드. 이상 268명. 어디 초대하신 손님들은 다 모이셨나?”
“!”
목소리가 들린 쪽은 무대의 계단 이었다. 계단 위에 다리를 꼬고 앉은 청년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름을 불렀다.
그 서류는 에드워드로부터 받은 살생부였다.
특히 이곳에 갑자기 소환된 사무총장 장 리처드, 그러니까 권 회장의 복원사이자 유재하의 원수인 그는 난색을 표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권 회장의 유물을 복원하고 있던 자신이 아니었나.
갑자기 가지고 있던 주식이 폭락하질 않나, 저택이 날아가지 않나 황당할 만 했다.
“이봐! 너 누구야!”
이 때 천장에서 탕, 불이 더 켜졌다.
그제야 드러난 청년의 얼굴에 몇몇 의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 녀석은!”
“서주헌!”
서, 설마 이 이상한 궁전을 소환하고 자신들을 부른 게 저놈이란 말인가!
그뿐이 아니었다.
주헌의 옆에는 아이린이 있었다. 그걸 보며 리처드는 이를 갈았다. 갑자기 판도라 의원들을 중심으로 미친 일이 벌어졌다 싶더라니.
‘이게 다 저 두 놈의 합작이었나!’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고 핏대를 세웠다.
“이 건방진 놈이 여기 계신 분들이 누구라고!”
곧 그가 유물을 쓰려고 할 때다.
퍼엉! 퍼엉!
사정없이 그가 가지고 있던 유물이 파괴 되었다. 파괴한 것은 주헌의 뒤에서 툴툴 거리는 남자였다.
[짐의 궁전에 저런 예술도 모르는 것들을 초대하다니.]
얼굴은 잘생긴 디카프리오지만 몸만큼은 술배 나온 아저씨, 네로.
그는 부글부글 끓는 눈빛으로 주헌에게 툴툴 거렸다.
[너하고 네 여자라면 또 모른다. 그런데 짐의 궁전에 저 따위…… 저따위 하등한 것들을……!]
“안 닥치나.”
[하지만!]
“그럼 저 인간들을 너 같이 뛰어난 예술가의 성에 부르지, 어디로 부르겠나.”
그 말에 헉하고 네로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독설만 듣던 네로에게 주헌의 말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삭임으로 들릴 지도 몰랐다.
“세상에, 짐은 네가 좀 마음에 들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딴 거 필요 없으니까.
“빨리 발동시켜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쿵쿵쿵, 바로 모든 궁전의 문이 닫혔다.
사람들은 까무러치며 술렁거렸다.
“뭐야, 뭐냐고!”
뭐기는.
자리에서 일어난 주헌은 지배력을 뿜어댔다.
쿵!
그러자 황금궁전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황금궁전의 규율이 더욱 강화 됩니다.]
[해당 영역은 완전한 서주헌의 공간으로 면모합니다.]
[<내 말대로 움직여라> 룰이 발동 됩니다.]
결국 의원들은 거품을 물었다.
“아이고 저 미친놈, 파티장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네 놈은 무단 유물 사용세부터 세금 폭탄을 맞을 거다!”
“여기로 당장 판도라 대원들이 들어올 거다!”
그 말에 주헌은 하하 웃었다.
“어이쿠, 추가 관객? 재연까지 생각해주다니 땡큐?”
“뭐? 재, 재연?”
그 때였다.
[사용자에 의해 황금 궁전의 내부 인테리어가 바뀝니다.]
곧 황금 궁전은 미로 정원의 형태로 바뀌었다.
[<내 사람을 건드린 죄> 타이틀이 걸립니다.]
[<내 것이 될 것들을 먼저 가져간 죄> 타이틀이 걸립니다.]
[미로가 생성 되었습니다.]
[파산의 힘과 얽혀 재앙의 미로로 바뀝니다.]
[걷기만 해도 끔찍한 불운과 파멸에 목숨을 잃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출구가 보이기는커녕, 좀비가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미로에 기겁했다.
“미친……! 강물바닥이 염산!”
“저 괴물은 뭐야!”
반면 주헌은 하하 웃었다.
“그럼 니들 전부 내주셔야겠어.”
“뭐?”
“무단으로 남의 무덤에 들어온 벌금. 아니 체류비로 할까? 어쨌든 대충 1억 달러부터 시작하지.”
“뭐, 뭐라고?”
곧 사람들의 절규가 미로에서 울려 퍼졌다.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귀금속이 기부됩니다]
[모자른 값은 인간의 개인 자산에서 자동 차감됩니다.]
동시에 핸드폰에 울림으로 띠링 띠링 돈이 출금됨을 알리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자 미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지, 진짜로 출금 되고 있어! 뭐야 이거!”
하지만 이에 지지 않고 주헌이 웃음을 띠었다.
“아, 참고로 체류비 1억은 출구에 도착한 선착순 한 명이다. 다음부터는 초 단위로 배로 뛴다.”
“뭐라고!”
“아 참고로 돈 대신 정보도 받아.”
“!”
“저기 출구까지 뛰든가. 아니면 판도라 정보를 팔든가.”
선택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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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 to the 판!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