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121화 (121/409)

00121 정은 피보다 진하다 <5권마침>  =========================================================================

< 정은 피보다 진하다 (2) >

주헌의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

‘이것들이 어디서 삥을 뜯으려고 개수작이야.’

주헌은 가소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김 형사는 아무래도 한 달 전, 황당한 해프닝을 겪었던 모양이었다.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데 20평짜리 집이 하급 무덤으로 변했다나 뭐라나.

물론 무덤이라고 해봐야 1단계, <경계>급인 하급 무덤.

최하급인터라 완전한 던전의 형식보다는 벽이나 바닥의 일부가 무덤으로 변하는 둥,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였다.

‘게다가 문외한도 쉽게 클리어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1단계는 위험하지 않은 무덤이라는 의미였다.

쉽게 말하면 불이 나긴 났는데, 소화기로 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불이 난 정도라고 봐야 했다.

단지.

[한국에서는 허가받은 자 외의 유물 소지와 획득, 무덤 출입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판도라의 지시인지, 한국정부가 적극 수용한 건지, 어쨌거나 일반인은 무덤을 클리어 해서도 안됐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생각한 대로 굴러가나?

[#&$*#!]

고놈 참 귀엽네! 귀엽네! 어디 더 울어봐! 울어봐!

그렇게 유물은 갓난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괴롭(?) 혔고, 깜짝 놀란 김 형사와 은지윤의 눈이 돌아갔다.

결국 김 형사는 손에 잡히는 물건, 그러니까 아내가 썰고 있던 배추김치포기로 유물의 얼굴을 철썩 후려쳤다고 한다.

그랬더니 황당하게도 ‘끄앙 매워! 매워! 인간 음식 매워!’ 하면서 무덤이 클리어 되었다나 뭐라나.

그 뒤로 그 귀속성 유물이 김 형사 집 수도관에 늘러 붙었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유물은 물 대신 금물을 쏟아내게 되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벌금이라고?’

이것들이 장난 똥 때리나.

물론 취지는 이해한다.

유물은 일종의 재난이었다. 사소한 장난부터 끔찍한 대재앙까지, 인간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안전을 이유로 규제를 할 수는 있다.’

다만 이것들은 그런 목적이 아닌 게 뻔하니까 문제인 거지.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조소를 날렸다.

“지금 뭐라고 했냐? 불법 무덤 침입? 불법 발굴? 미신고? 불법 사용죄?”

그 말에 직원은 위에서 내려온 서류를 보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네, 5급 공무원 이하는 죄다 규제의 대상이라서요. 무덤도, 유물도 가까이해서는 안됩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경찰들도?”

그러자 직원은 겁도 없이 비웃는 것이었다.

“아, 김건우 씨는 형사시죠. 형사들은 뭐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직원은 부인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잘 좀 협조할 것이지…”

그리고 그 말에 주헌은 픽 웃었다.

역시나.

‘보나마나 위에 찍혔네.’

어쩐지 이상하다 싶더라니.

아무래도 그 바보 형은 떡 값도 안 챙기는 외골수라 몇몇 어르신들에게 미움을 샀던 것이리라.

‘그래서 좋긴 하지만.’

반면 직원은 서류로 툭툭 수도관을 치면서 말했다.

“어쨌든 이대로면 김건우 씨는 징역…”

하지만 입을 놀리던 판도라 직원은 곧바로 넘어지고 말았다.

“끄아아악!”

주헌이 쿨하게 직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기 때문이다.

쿠웅!

“아오, 도대체 뭐야 갑자기!”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아씨, 내 팔, 내팔!”

주헌이 직원의 팔을 뒤로 꺾어 범인을 제압하듯이 쓰러트린 것이다.

그렇게 세게 누르지도 않았는데, 싸움과 거리가 먼 직원은 아파서 죽으려고 했다.

“끄아악! 이거 놓으라고! 너 뭐야! 고소한다!”

“하든가 말든가? 등신이.”

“끄악! 젠장! 이거 안 놔?! 일반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러는 건데. 왜, 뭐!”

“닥쳐. 이것들이 소화기 쓰는 법을 알려줘야지, 지들이 유물을 다 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것 하고는.”

그러자 움찔하던 직원이 빼액 소리쳤다.

“됐으니까 어쨌든 일반인들은 유물에 손대지 마! 닥치고 판도라에 신고만 하면 된다고! 알았냐? 특수대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아 그래? 알았어.”

어째서인지 주헌이 쿨하게 수긍하는 그 때였다.

번쩍!

불씨가 튀기는 듯하더니, 직원의 옷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직원은 거품을 물고 경악했다.

“뭐, 뭐야. 이거! 불? 불! 갑자기 왜!”

왜긴 왜야.

[#*$#&*!]

하하! 다 불타올라라! 인간! 불타올라.

날 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주헌의 유물, 호모에렉투스의 불씨 유물이었다.

부싯돌 형태의 유물은 싱크대 위에서 팔짝 팔짝 뛰며 좋아했다.

바닥을 뒹굴던 직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건 분명 유물!”

신종 유물 인 듯 했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 뜨거워! 물, 물물!”

직원은 다급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금물을 제 몸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으아악!”

주인이 아닌 사람이 사용해서 그런지, 금물은 기름으로 변해버렸다.

덕분에 작은 불은 등을 뒤덮을 정도로 커져버렸다.

“으아악! 제발, 제발 물! 이것 좀 꺼줘!”

그러자 주헌의 태연한 말이 흘러 나왔다.

“그럼 판도라 전화번호 좀 알려주지?”

“뭐?!”

“왜? 일반인은 유물에 손대면 안 된다며. 판도라에 신고하고 특수 대원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직원은 욕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이자식이 진짜!

그러나 주헌은 직원이 들고 있던 공문서를 찢었다.

부욱!

“!”

그리고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알겠냐? 니들이 들이대는 기준이 얼마나 거지같은 말인 건지?”

직원은 그 모습에 마른 침을 삼키면서도 급하게 외쳤다.

“네, 네! 알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그러니 제발!”

그럴 때였다.

주헌이 손가락을 튀기는 그 순간, 직원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불타오르던 자신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뜨겁지도,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어째서?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 사람 왜 갑자기 소리 지르고 난리야?”

“혼자 생쑈하고 있어.”

“!”

그렇다.

자신의 몸은 처음부터 멀쩡했었다.

단지 유물에 의해 불 환각을 보고, 그걸 실제라고 믿게끔 오감이 지배당했을 뿐!

그리고 부싯돌이라고 생각했던 유물은 산세베리아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설마 환각계 유물…!’

잠시 후, 주헌이 웃으며 부끄러워하는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됐고, 그럼 이제 너도 내놔. 유물사용세.”

직원은 황당했다.

“뭐라고? 내가 왜!”

“왜? 썼잖아. 신기한 경험하는데. 그러니까 내놓으시지? 대충 초당 천만 원으로 잡을까?”

이게 진짜!

결국 참다못한 직원은 욕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하지만 주헌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불만 있으면 한 번 더 불쇼 가볼래?”

그러자 그 끔찍한 감각이 떠오르던 직원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아니. 나한테 사과 하지 말고.”

“형수님, 죄송합니다. 남편분의 일은 제가 어떻게든 도움을…! 자 이제 됐냐!”

“아니, 아직 안 됐는데?”

“뭐?!”

“1호야. 끝났으니 저 놈 경찰서로 끌고 가.”

“야!”

그러나 잠시 후 직원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얼마든지 가보자. 어차피 난 판도라 소속의 공무원이야! 유물 문제를 끌고 가봤자 경찰도 판도라 직원을 건들 수는 없….”

그러자 주헌이 어째서인지 하하 비웃는 것이었다.

“뭐? 유물 문제? 너 뇌가 없구나?”

“뭐, 뭐?”

주헌은 태연하게 직원이 밟고 있는 거실을 가리켰다.

“형법 319조, 거주자의 주거에 평온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을 경우 주거 침입죄에 해당한다.”

“에, 에엥?”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주인이 들어오라고도 안했는데 너 멋대로 들어왔잖아.”

“!!”

“그러니까 넌 일단 주거 침입죄부터 시작.”

이, 일단이라고?

주헌의 번득이는 눈빛에 직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 * *

“… 주거침입, 방화, 군사상기밀누설, 공무상비밀누설, 공무원자격사칭, 직권남용, 뇌물, 모욕, 명예훼손, 공갈협박, 절도, 횡령… 심지어 음란물소지죄?”

유재하는 허, 탄식했다.

진짜 이 인간은 건들면 안 된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이 인간은 건들면 망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으스대며 협박하러 왔던 직원은 되려 고소신공을 받아야만 했다.

“진짜 독하다 독해. 에드워드 영감이 부른 변호사가 존경스러워 하던 것 봤어요?”

미국에서도 이 정도로 독하게 고소하는 사람은 못 봤다나.

하지만 주헌은 코웃음을 쳤다.

고작 이거 가지고 뭘.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거참, 에드워드 이 영감탱이 왜 재깍 재깍 전화를 안 받아.”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을 하고 있던 듯한 에드워드가 헉헉 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이사님, 어쩐 일이십….]

“됐고. 묻는 말에 답해.”

[엥?]

“지금 판도라 새끼들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뭔 짓이라니?]

“무슨 유물세니 뭐니 장난질을 치고 있는 모양인데.”

[아아! 그거!]

물론 과거에도 이런 거지같은 규제들은 있었다.

심지어 판도라 소속이나 판도라의 후원자들은 관련 사항에서 죄다 면제.

그래서 독식자나 부자일수록 더욱 유물을 사용하기 좋은 환경이었고, 온갖 규제에 빈부격차는 더욱 커져갔다.

다만.

‘너무 빠르다.’

유물세니 뭐니 그렇게 막장이 되려면 최소 몇 년이 더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벌써?’

“똑바로 말하시지? 어떤 놈이 제시한 거야?”

장난스럽지만 그 안에 맺힌 살기를 느낀 건지, 에드워드가 곧바로 대답해왔다.

[여러 명이 있어. 그런데 특히 오스틴 록펠러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모양이야.]

“뭐? 오스틴 록펠러?”

그 아베스타 경전 가지고 있던 놈?

[그래, 여러모로 빡쳐서 자네를 막기 위해 그딴 수작을 쓴 거지. 굳이 자네가 아니었어도, 경쟁자를 사전차단하기엔 좋은 방법이고. 준비는 측근들이랑 꽤 전부터 했을 걸.]

아 그래?

동시에 주헌은 알겠다는 듯 싱긋 웃었다.

“영감, 그 법안을 제시한 사람들, 그리고 찬성한 사람들 죄다 명단 보내.”

살생부는 그걸로 시작하면 되겠지.

* * *

[뭐? 판도라의 의원이 되라고? 나더러?]

한편 전화를 받은 아이린의 오빠, 조지 홀튼은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여동생 팔불출 조지는 주헌의 전화를 몹시 못 마땅해 했다.

하지만 못 마땅한 건 못 마땅한 거고, 은인인 것은 은인인 것이니 충실히 전화는 받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하는 말이 뭐?

[판도라에 자리 꽉 찼어. 내로라하는 정계인물들부터 유명한 사람들로 얼마나 가득한데.]

“오, 홀튼 가가 그 정도 힘도 없었나 보지?”

[뭐야? 그딴 사탄 기구엔 관심이 없다는 의미지, 들어갈 능력이 없다는 건 아니거든!]

아무래도 울컥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조지 홀튼이 그렇게 나오자 주헌은 픽 웃었다.

‘홀튼 가와 그 주변 사람들은 꽤 일을 잘하는 놈들이다.’

에드워드를 통해서 대충 뒷조사는 다 해봤다.

그리고 기억을 되새겨봐도 유물에 넘어간다거나, 스캔들이 있던 사람들은 없었다. 실제로 그들이 시민들을 위할 놈들이라는 건 확실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판도라 같은 기구는 있긴 있어야 한다.’

유물로부터 시민을 지켜줄 기구가 없으면 세상은 단순한 재난물을 찍게 되어버릴 것이었다.

하지만 판도라의 존재는 인정해도, 구성원은 별개의 문제.

‘판도라의 과반수는 자기 사리 욕을 채우기 위해 온 놈들뿐이다.’

왜 그딴 놈들만 골라 모였나. 욕을 할 수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유물은 인간을 확실하게 괴롭힐 수 있는 자리의 인간을 주로 찾아다닌다.’

즉 탐욕스러우면서도 권력이 있고, 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놈들에게 우선적으로 붙었다.

왜?

착한 놈에게 붙어봤자 인간을 괴롭힐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최고권위인 유물 관련 기구인 판도라에 그런 놈들만 모인 것이다.

‘말만 세계평화와 시민들을 위한다지.’

실제로는 독식자들을 위했던 놈들. 자기네만 살면 된다는 건지, 유물증후군에 걸린 일반인들을 죄다 모른 척 버렸던 쓰레기들.

어쨌거나 그놈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다?

뭐가 문제인가?

‘싹 갈아 버리면 그만이지.’

주헌은 싱긋 웃었다.

“어쨌든 오라버니. 곧 판도라에 자리가 엄청나게 빌 예정이거든? 거기에 너랑 괜찮은 사람들 입후보해서 들어가라고. 그 이후엔 사무총장 선출도 잘하고.”

[뭐, 뭐? 아니 잠깐만. 자리가 비다니? 그 인간들이 사퇴할 리가 없는데 뭘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그 말에 주헌은 싱글벙글 웃으며 제 부하에게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작 그 메모지를 본 유재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정말로?

그런 눈빛이었다.

왜냐하면 메시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린 불러.]

주헌은 살벌하게 웃었다.

이것들이 한 번 3대가 멸하고 DNA까지 말아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 뿐인가?

[로마황제님 유물도 꺼내놔.]

우리도 어디 한 번 <불법무덤출입> 벌금 좀 받아보자고?

============================ 작품 후기 ============================

얼마 받으까? ^.^

+ 추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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