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0 정은 피보다 진하다 (수정) =========================================================================
< 정은 피보다 진하다 (1) >
얼핏 보기엔 주헌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여자였다.
“어때요? 주헌 씨하고 닮았죠?”
그리고 아이린의 말에 관심을 가진 유재하가 슬금슬금 기어왔다.
“왜요, 왜요. 누가 우리 단장님하고 닮아요?”
“아, 인터뷰를 하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중동지역을 다룬 뉴스 같았다.
난민캠프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파견된 NGO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그리고 뉴스도 뉴스지만, 유재하는 인터뷰를 하는 여성을 보고 물개박수를 쳤다.
“와, 대박. 내 취향! 심지어 청순미인!”
하지만 호들갑도 잠시, 유재하는 주헌을 힐끗 보았다.
“그런데 확실히 단장님이랑 닮긴 닮았네요. NGO에 있는 의사팀 사람인가?”
“아마도요. 아 그런데 저기 인터뷰 하는 곳에서도 고분 현상이 있었대요.”
“정말요?”
“듣자하니 7대 무덤 중 하나인 오만의 무덤이라던데…”
그 말에 유재하가 식겁해서 주헌을 바라보았다.
“단장님, 7대 무덤이라는데요?”
하지만 정작 주헌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오히려 그의 시선이 꽂혀 있는 것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한 말씀 해주시죠.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어… 보통 뉴스에 나오던 고분증상하고는 달랐어요. 전혀 전조도 없었고 저희도 갑자기 휘말려서 뭐가 뭔지…]
유재하와 아이린은 의아한 눈으로 주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장님?”
주헌이 답이 없자 유재하는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헤이, 단장님.”
“…….”
“이보쇼, 단장님?”
“…….”
“헤헤, 이 바보 똥깨 고ㅈ……커헉!”
“다 들린다, 새끼야.”
“#*$*!”
결국 거하게 얻어맞은 유재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크윽, 저기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만, 혹시 아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니? 몰라.”
“그런 것치곤 좀 많이 닮았는데.”
“세상에 닮은 사람은 넘쳐나. 나도 흔한 얼굴이고.”
허, 뭐래.
‘차라리 아이린이 흔하다고 하지 그래.’
하지만 유재하는 곧 그러려니 했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뭐.’
다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사실 주헌은 영상 속 여자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아니,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서주원.’
그녀는 다름 아닌 주헌의 혈육이었다.
그리고 많이 닮은 이유?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서주원은 바로 주헌의 피붙이였다.
그것도 쌍둥이.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저 녀석은 내가 살아 있는 걸 모른다.’
굳이 알릴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면 그걸로 됐어.’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단지.
‘이번엔 그 중국 또라이를 재치고 노벨상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저 NGO한테는 무덤에 괜히 들어가지 말라고 정보 넣어놓고.”
“아, 네.”
“그리고 저 무덤은 신경 쓰지 마. 인간이라면 저거 아무도 클리어 못 해.”
“네? 아무도 클리어 못한다고요?”
어째서?
도대체 무슨 무덤이길래?
그런데 그럴 때였다.
“끄아악! 누, 누구세요!”
현관문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룸메이트 놈이었다.
* * *
“와, 미치겠네요 진짜.”
판도라 직원은 회의장에 자료를 들고 가면서 한숨을 쉬었다.
“황금 알을 낳는 7대 무덤이 벌써 두 개나 클리어되다니……!”
“노스트라다무스의 말로는 최소 1년은 지나야 클리어할 수 있는 위험한 무덤이랬는데…”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 무덤 중 두 개를 한 사람이 다 클리어한 게 문제라고요! 도대체 판도라에 소속된 유물 사용자들은 뭘 하고 있는 건지!”
“쉿!”
자료를 가져가던 직원들은 말을 멈추었다.
바로 근처에 판도라의 물주 오스틴 록펠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틴은 직원들을 쏘아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니네 그딴 식으로 지껄이면 모가지다. 알았냐?”
“아, 아 죄송합니다!”
그 말을 하고 오스틴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지난 번 파티 이후, 오스틴과 권회장이 끌어들인 상위권 유물 사용자들이 있었다.
“바쁜 사람 불러내 놓고 자기가 제일 늦기는.”
그들이 바로 주헌이 기억하는 과거의 독식자이자, 미래의 왕급이 되는 이들이다.
“어쨌든 도대체 서주헌이라는 놈이 뭐야?”
“지난번 파티에서 난동을 피울 땐 판도라에 붙으려는 떨거지인 줄 알았는데.”
그 말에 판도라 직원이 PPT를 띄웠다.
“네. 바로 그 서주헌이 문제입니다. 특히 판도라에서는 서주헌을 경계하고 있고요.”
“왜. 판도라 감지 유물이 경고한 숨겨진 1위 사용자라서?”
독식자들의 이죽거림에 판도라 직원이 당황했다.
“그 정보를 어떻게…!”
“당신들이 가진 정보를 우리가 모를 것 같아요? 우리를 뭘로 보고.”
“그…네. 맞습니다. 어쨌든 서주헌은 강탈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 상당히 위험해요.”
“확실히 천하의 그 권 회장도 물 먹었다고 하고.”
“무덤을 강탈하는 재능이 있는 거 같으니, 우리 중에는 가장 무덤을 클리어하기 쉽다는 의미인가?”
“그럼 나머지 무덤도 다 쓸어 가겠네?”
그 말에 자신감에 차 있는 다른 사용자들이 상당히 기분 나빠했다.
“어쨌든 서주헌을 막아달라고 부른거지?”
그러자 판도라 직원이 말했다.
“아. 그리고 사실 저희 판도라에서 준비 중인 법안이 있습니다. 이 법안이면 서주헌도 확실히 막을 수 있어요.”
“오. 무슨 법안?”
“일단 봐주시죠. 이미 한국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법이죠. 그걸 전 세계적으로 확대해볼까 합니다.”
곧 그들은 화면 위에 떠오르는 법안을 보며 웃어댔다.
* * *
한편 룸메이트 김동현은 현관문 쪽으로 온 아이린을 보고 기겁한 듯했다. 심지어 아이돌들의 뺨을 천 번은 치고도 남는 이설아까지.
“저, 저, 저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제가 잘못 찾아온 거라면…”
“아냐, 너 제대로 왔어.”
“주, 주헌아?!”
친구는 소파에서 츄리닝 차림으로 손을 흔드는 주헌을 보고 기겁했다.
“너 이 자식,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안하더니! 아니 그 전에 누구야, 이 미인들은……! 물주냐?”
“아니, 내 지인들.”
“와, 나 번호 좀!”
아무래도 유재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됐고. 잠깐 눌러 앉으려고 들렀다. 집을 구해도 상관없는데 그 정도로 오래 한국에 있을 건 아니라.”
“………한국에 있는 게 아니라니, 너 설마 지금까지 외국에 있었냐?”
“어.”
그 말에 룸메이트는 상당히 섭섭해했다.
“와, 해외로 나갔는데 연락 하나 없고, 매정한 놈. 그런 주제에 선물대신 저딴 이상한 거지새끼나 달고 오고.”
그 말에 냉장고를 소시지를 꺼내 먹던 유재하는 억울해했다.
“야! 내가 왜 거지야!”
왜긴 왜야.
그렇게 만만한 유재하를 갈구던 룸메이트는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너 외국에 있었으면 건우 형한테 생긴 일도 모르겠네?”
“뭐? 건우 형? 형이 왜?”
김건우는 젊은 형사로, 고아로 자란 주헌에게는 하나뿐인 가족인 셈이었다.
부모님의 지인으로,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경찰서에 앉아 있던 자신을 꺼내준 것도 그가 아닌가.
그리고 제 학비를 비롯해 생활비도 내주고, 탈선하려는 자신을 끝까지 훈육하며 붙잡아준 은인.
그래서 외국에 있는 동안에도 꼬박꼬박 돈도 붙여가며 연락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일?
“이상하다. 형한테는 항상 별말 없었는데.”
“허, 나한테만 연락 안한거냐? 배신자. 아무튼 지금 건우형 집에 가봐라. 큰일 났다 큰일.”
도대체 무슨 일이지?
* * *
무슨 일이긴.
몇 달 만에 찾아온 김 형사는 무덤과 유물 일에 얽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단지 레벨이 낮은 고분화라 큰 피해를 입은 건 없었다.
단지.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왜 범죄자가 되어야 하는데요! 우린 무덤에 휘말린 피해자라고요!”
“죄송하지만, 기준에 의하면 피해자가 아니시고 오히려 벌금과 유물소득세를 내셔야 하는 분입니다.”
“허, 미쳤나 진짜. 우리도 좋아서 무덤을 없앤 게 아니라고요! 하마터면 우리 애가 죽을 뻔했는데 가만히 있어요?”
“글쎄요? 증거가 없잖습니까. 그건 그 쪽의 주장이고요. 판도라의 자료에 의하면 1단계 레벨의 무덤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합니다.”
“뭐라고요?”
주헌은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형수님, 무슨 일이에요?”
“어? 세상에, 주헌아!”
김 형사의 아내 은지윤은 참고 있지만, 울 것 같은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무덤에 휘말렸었어요? 형은 아무 말도 없었는데.”
“그……아마 일부러 말 안했을 거야. 별일 없이 지나갔으니까.”
주헌은 힐끗 공무원을 쏘아보았다.
“뭡니까?”
“뭐긴요? 이 집에 고분화 현상이 있었는데, 그걸 이 집의 가장께서 신고도 없이 멋대로 클리어하셨습니다.”
“그런데?”
“네? 그런데라니요?”
판도라 공무원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주헌을 쏘아보았다.
“지금 한국에서 일반인의 무덤파괴와 발굴은 불법입니다! 발굴도, 유물 사용도 전부 신고제라고요!”
아무래도 그사이 한국에 거지 같은 법이 생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공무원은 대뜸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부엌의 수도꼭지를 열었다.
그러자 콸콸 쏟아지는 건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그, 금 아니에요 이거? 금물?!”
유재하가 놀라자 판도라 한국지부의 사람은 픽 비웃었다.
“금물이 나오시니 아주 좋으시겠어요. 최근 가게를 개업하셨다고 들었는데, 저걸로 개업하신 건?”
“잠……! 저 물은 꺼림칙해서 손도 대지 않는다고요! 가게는 그동안 모은 저금이랑 대출을 받아서……!”
“어쨌든 일반인의 무분별한 무덤 발굴을 막기 위해 좀 엄격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벌금이나 징역을 매기고 있습니다.”
“이봐요, 잠시만요.”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나라에서 경고 했을 겁니다. 유물은 그만큼 위험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인정받지 않은 사람들의 발굴은 규제의 대상이고, 더욱이 유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유물세를 내야 하고요. 김건우 씨는 둘 다 해당되니 내셔야겠는데요.”
“어, 얼마인데요?”
유재하가 슬쩍 질문하자 공무원이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김건우 씨는 경고도 상습적으로 무시하고 계셔서요. 직장에 갔다가 사모님께 찾아온 겁니다.”
“아니, 우리도 애를 구하려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요. 억지 벌금을 내라 하면 내겠어요?! 도대체 누가 정한거야!”
그러나 일부러 그러는 건지, 직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제 말만 했다.
“벌금은 우선 불법 무덤발굴로 5천만 원. 유물 역시 취득 후, 신고를 안 하셨기에 벌금 5천만 원. 그리고 역시나 불법 사용죄로 5천만 원. 도합 1억 5천만 원의 벌금이나 10년 이하의 징역 중 선택하시면 되겠네요.”
“빚만 가득한데 지금 그런 돈이 어디에 있어요!”
“어쨌든 어기셨잖아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와 판도라에서 내린 조치이니 양해 바랍니다.”
그 말에 주헌은 사납게 웃음을 흘렸다.
얼씨구, 이것들이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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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도 한번 벌금 물어볼깡? ^^
+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11.7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