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3 귀찮아! 다 귀찮아! =========================================================================
< 귀찮아, 다 귀찮아! (4) >
눈 앞에서 주헌과 유재하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네로 유물과 함께 무덤 밖으로 나가 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이 무덤을 이루던 주인유물이 빠져나간 탓인지, 무덤이 힘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판도라가 경고한 랭킹 3위의 사용자, 율리안은 정말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니 무덤 공략도 안하고 유물만 쏙 빼가?’
이건 비정상적인 무덤 공략이다.
아니 이딴 걸 공략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무덤이 공략 된게 아니니 출구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젠장.’
덕분에 괜히 무덤에 들어왔다가 갇히게 된 율리안은 다급해졌다.
‘빨리 나가야 한다.’
하지만 율리안은 주변에 널부러진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지.’
그는 곧 와인병 하나를 꺼냈다.
[금각 은각의 자금홍호로(호리병) SS급 (신급)]
"자, 다치지 않게 빨아 들여라."
주헌이 봤으면 정말로 탐냈을 서유기 속 유물. 물론 놈은 율리안의 지배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순순히 인명 구조를 실현했다.
쉬이이익!
쓰러져 있는 인간들을 모두 빨아들인 것이었다.
그 직후, 율리안은 제갈공명의 유물로 길을 찾으며 바로 밖으로 나갔다.
단지 그는 주헌을 놓친 것이 아까운지 혀를 찰 뿐이었다.
‘서주헌, 신경쓰여서 따라와봤더니.’
율리안은 사실 이곳에서 철수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못 뚫은 입구를 뚫은 것도 그렇고, 그 남자는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율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주헌을 쫓아오고 있었다.
애초에 유물 사용자들을 분석하는 능력을 가진 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유물사용자들의 능력 수준이.
점수로 비유하자면 평균 유물 사용자가 40-50점, 그리고 판도라에서 본 놈들이 기본 80점 중후반대.
하지만 주헌은 90점 이상이었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그런 점수는 처음 봤으니까.
물론 90에 가까운 인물이 없던 건 아니다. 사실 파티장에서 봤던 권회장도 남들보다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91점 정도라, 이정도면 손을 잡아도 서로 기브앤테이크가 되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권회장과 근소한 차이긴 했지만 그보다 강하다고?
순수한 의미로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마치 올림픽 세계랭킹 선수들이 뛰어난 경쟁자를 의식하는 것처럼.
그 뿐인가.
자신의 동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권 회장에게 들어가려는 걸 막은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눈이 가는 사내였다.
‘무엇보다 그 까마귀의 비호가 신경쓰인다.’
주헌을 감싸고 있는 까마귀 오라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동족을 잡아 먹는 포식자 같은 마신. 본질적으로 다른 유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동생의 시체에서 느껴지던 포식 유물의 냄새였어.’
과연 주헌이 동생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까?
그런데 그럴 때였다.
“으, 넌 분명 그 유명한 책략사 아니야?”
무덤 탈출 후, 와인병에서 꺼내진 경쟁 발굴단들이 그를 알아봤다. 다만 그들은 자신을 구해준 율리안을 기이하게 여겼다.
“도대체 왜 라이벌인 우릴………”
“그리고 너라면 이 무덤의 클리어 방법을 알았을 텐데 아까는 왜 철수를 했던 거지?”
왜긴.
물론 제갈공명의 유물 덕분에 율리안은 들어가지 않고도 이 무덤의 시련이 무엇인지 대충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클리어 방법도 알았다.
단지 그 방법이 너무 혐오스러워 알아도 철수하려 했던 것뿐.
* * *
“뭐라고? 빼앗겼어? 서주헌한테?!”
한 편 비서에게 무덤의 상황을 전해 들은 오스틴 록펠러는 황당해 미칠 것 같았다. 졸지에 동아줄 놈한테 목도 졸렸지, 포교의 유물에 고흐의 그림까지 빼앗겼으니 주헌에 대한 앙심이 대단한 오스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성적인 그가 핸드폰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필이면 걔한테 뺏겨! 무덤의 클리어 방법은 다 알려줬잖아, 그 병신들이!”
심지어 서주헌한테 7대 무덤의 유물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서 뭐?
“그 제갈공명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놈한테 구조까지 받아? 뭘 잘했다고 무덤에서 살아서 나와! 콱 안에서 죽어버리지!”
이 돈값도 못하는 자식들이.
하여간 홀튼가 쪽에서도 괜히 자기네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하지 않나.
그는 이를 뿌득 갈았다.
‘기껏 노스트라다무스한테 거금을 퍼부어서 클리어 방법을 들었더니.’
그렇다.
오스틴 록펠러는 판도라에 소속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유물을 쓰는 예언가한테 이번 무덤의 클리어 방법을 전해 들었다.
‘분명 인간 100명을 자폭 시켰으면 클리어할 수 있는 구조라고 했는데!’
그래서 오스틴은 이번에 고용한 발굴단들에게 폭탄 유물을 나눠주었다. 자폭 시킬 생각으로 말이다.
물론 안하다고 할 게 뻔하니, 유물의 정체는 비밀로 하고.
실제로 클리어 방법에 대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거의 맞았다. 율리안이 제갈공명의 유물로 분석한 네로 무덤의 클리어 방법도 그것이었고 말이다.
100%는 아니더라도 70% 성공률의 공략법이라고 해야 할까.
그쯤 되니 오스틴은 이를 갈았다.
“그런데 서주헌 그 놈, 입구도 박살냈다더니 유물까지 쏙 가져가?”
[그 뿐이 아닙니다. 살아남은 발굴단들의 말에 의하면 서주헌은 전혀 피해를 입은게 없습니다.]
비서의 말에 오스틴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뭐야, 그럼 걔도 인력동원 한거야? 노스트라다무스한테 돈이라도 바쳤나?”
[아뇨, 들어간 건 단 둘입니다. 그런데도 전혀 피해 없이 아주 쉽게 유물을 가지고 나갔다고……]
록펠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잠깐만. 뭐야? 달랑 둘? 그것도 쉽게? 시련 따위 무시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정말로 황당해 했다.
“야! 그게 말이 돼? 무덤 발굴인원은 최소 수십명 단위야! 게다가 시련을 통과하지 않고 어떻게!”
[저희가 모르는 특별한 기술이 사용된 것 같습니다만……실제로 여기서 뵌 권 회장님도 당황하시는 기색입니다.]
권 회장이고 자시고, 순간 록펠러는 머리가 빡 돌고 말았다.
“됐고! 거기서 나온 유물의 정체는 뭔데! 그게 가장 중요해!”
오스틴은 애가 타들어가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여기서 굉장히 유명한 위인이 나올거라고 했다.’
유명한 인물일수록 유물의 능력치가 쓸만하다는 건 상식. 자신 외에도 세계적으로 눈독을 들이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체가 뭔데!”
그러나 비서는 난처해했다.
[저, 로마쪽의 위인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만……확실한 정체는 아무도.]
“야! 이것들이 무덤안까지 들어가놓고 그것도 못 알아채면 어떡해!”
사실 그게 가장 중요한 데 말이다.
“만약 율리우스 시저나 콘스탄티누스 같은 놈이면 어쩔거야! 그걸 알아야 포기하든 협상하든 빼앗든 하지!”
노스트라다무스는 무덤 클리어 방법은 점쳤어도, 정체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판도라에서도 서주헌이 가져간 걸 파악하고, 유물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서주헌에게 기를 쓰고 컨텍 준비를 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보나마나 유물을 팔라고 협상 하려고 할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아마 판도라 뿐만 아니라 각 국의 정상들과 권 회장 같은 인물들도 주헌과 애타게 접촉하려고 할 것이었다.
이번 유물은 무려 7대 대무덤에서 나온 것이며, 위인이라는 말에 다들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보통 유물은 아닐거다. 얻어야 해.’
결국 그가 외쳤다.
“알았어. 다음 무덤 위치나 똑바로 알아내. 다음엔 절대 뺏기면 안되니까!”
[도련님은요?]
“…일단 그 새끼한테 연락해본다. 캐봐야지. 그리고 혹시모르니 협상 준비 해놓고.”
[네.]
곧 전화는 끊겼지만 오스틴은 굴욕스러운지 이를 갈았다.
“에이씨 ……그런데 진짜 먼저 연락해야해?”
* * *
[교토에 나타났던 무덤이 사라지면서, 교토시내를 감싸고 있던 로마건축물 역시 사라졌습니다.]
[이에 판도라 측에서는 무덤이 클리어된 것으로보고 있으며 유물은 이미 행방이 묘연해져...]
한편 교토 호텔에 도착한 주헌은 TV 뉴스를 보면서 웃었다. 아마 지금쯤 어떻게 된 거냐고 우왕자왕 하고 있을 것이 훤했다.
놈들은 알지 못하는 꼼수로 무덤을 공략하던 게 자신이었으니까.
“찾으려 해도 이미 늦었다, 이놈들아.”
그렇게 주헌은 짓궂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다음엔 다른 방법으로 좀 골려줄까.’
물론 저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주헌이 궁금한 것은 저게 아니었다. 그 증거로 주헌은 동아줄을 불러내고, 종이 뭉치를 흔들어 보였다.
그건 바로 <은밀한 비서>.
“자.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봐라.”
그랬다.
지금 주헌이 궁금한 건 바로 어떻게 이것이 유물들 사이에 퍼졌느냐다. 유물들한테도 어떤 네트워크가 있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주헌은 1차적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분명 내 유물놈의 짓인데.'
그리고 50개의 유물 중, 그런 짓을 할 만한 건 동아줄 밖에 없어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은 동아줄을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
“자 말해. 왜 이게 유물들에게 퍼진 건지. 그리고 유물들이 어떻게 글을 돌려 볼 수 있는 건지. 네 짓이냐?”
그 뿐인가? 네로 유물이 분명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은밀한 비서는 유물들 사이에서 유료(?)로만 볼 수 있다고.
그러니까 즉 쉽게 말하면 누군가가 멋대로 텍본(?)을 퍼트리고, 그 공유자가 돈이든 뭐든 뭔가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분노가 치솟을 수 밖에!
하지만 동아줄은 샤워하고 나온 주헌이 그저 좋은지, 하라는 대답은 안하고 주헌의 다리에 애교를 부리듯 몸을 비볐다.
[##*$&*#]
주인님, 놀자 놀자.
동시에 주헌에게서 흉흉한 지배력을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동아줄이 힝, 겁에 질려 뭐라 뭐라 말하는 듯 했다.
[#*#&*#*, #*$(#$*#(]
물론 아직 B급에 불과한 동아줄의 말은 주헌으로서도 전혀 알아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동아줄의 말에 느긋하게 폼 잡고 엎드린 아누비스가 실소를 터트렸다. 같은 유물이니 동아줄의 말을 알아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걸 눈치챈 주헌이 딱 걸렸다는 듯이 아누비스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디?”
[흥, 그걸 네 따위 놈에게 말해줄 이유가………]
“어디보자, 자폭 테스트를 할 만한 곳이……”
[에이씨, 그냥 주인님의 자랑을 한 것 뿐이라고 한다! 네놈이 쓴 글이라고! 잘 썼다고! 정말 재밌다고!]
“오. 그래서 유물들 전체한테 텍본을 뿌렸다?”
그러자 동아줄이 허둥지둥 또 뭐라뭐라 말을 했다.
[#$&*#&$*#!]
[아니야, 주인님 유물들한테만 보여줬어! 보여줬어! 랜다!]
“뭐? 내 유물?”
[#$(#*#(! #($*(!]
[다들 한 방에서 그 종이원고로만 봤어! 안 뿌렸어! 라는데!]
“흐음. 그런거였군.”
주헌은 대충 납득했다.
아무래도 제 유물들은 소설이 완성된 그 날.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원고를 함께 본 것이 틀림없으리라. 마치 어린 시절, 만화책을 같이 보기라도 하듯.
주헌의 유물은 거의 항상 유재하의 복원방에 모여 있으니까 동아줄이 원고를 끌어안고 그리로 향한 것이겠지.
어쨌든 주헌은 수긍하면서 아누비스에게 뭔가를 툭 던져줬다.
“통역 잘했어. 멍멍아. 상이다.”
곧 아누비스에게 날아간 건 유재하가 사온 개전용 뼈다귀였다. 아누비스는 그걸 보고 굴욕스러운 듯 폭발했지만, 정작 주헌은 뼈다귀를 던져주면서도 이 상황을 좀 기이하게 여겼다.
왜?
‘동아줄은 그냥 내 유물들한테 자랑한 것 뿐.'
자신의 유물들한테 보여준 것이야 소유물들끼리 돌려 본 것이니 넘어갔다 쳤다. 그러나 정작 소설을 유물 전체에게 퍼트린 진짜 복제범은 따로 있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누구냐, 괘씸한 불법 복제(?) 범은.
그런데 그럴 때였다.
[#*$*$*!]
아싸, 억대 수입이다!
[#*$**#!]
소설 반응 좋고! 키야 까짓거 돈벌기 쉽네!
주헌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유재하의 복원방에서 유물들의 수상한 목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놈들 딱 걸렸어!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