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귀찮아! 다 귀찮아! =========================================================================
< 귀찮아, 다 귀찮아! (3) >
아니 이놈이 그 소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은밀한 비서>라고 한다면 분명 주헌이 팬을 모은다 어쩐다 하면서 써내려갔던 그 마공서가 아닌가!
문장력만큼은 뛰어나지만 재미는 더럽게 없고, 기대한 건 안나오고, 개연성도 거지같았던 그………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주헌의 소설은 분명 폐기 처분 되었을 터였다. 그런데 세상에 나간 적도 없는 그 소설을 왜 저 유물 놈이 알고 있는 거지?
‘도대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런 만큼 주헌은 심각해져서 물었다.
“1호. 너 혹시 나 몰래 무슨 짓 했냐? 유물한테 텍본이라도 돌렸어?”
“………말이 됩니까, 그게!”
아니 애초에 유물도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거였어?
그러나 혼란스러워하는 둘에게 네로 유물은 뭘 그러느냐는 듯이 하하 웃었다.
[이렇게 보니 반갑구나. 서주헌, 유물계의 떠오르는 혜성이여!]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음침하게 꺼져 있던 극장의 불이 탕탕, 환하게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금으로 이루어진 돔 형태의 화려한 극장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극장을 지지하고 있는 기둥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했고, 곳곳에 박혀 있는 장식물을 하나씩만 떼어가도 부자가 될 만큼 사치 스러운 돔이었다.
그리고 이 극장가는 도무스 아우레아(황금궁전)의 구성물 중 하나. 그 찬란한 건축물이 유물의 능력에 의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서주헌. 그대는 특별히 짐을 알현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반갑다는 듯이 웃던 놈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무덤 안에서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앞에 등장한 놈의 모습은 물건의 형태가 아니었다.
“어, 어어?”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로마시대 복장의 남성, 그러니까 인간의 형태였다.
그 탓일까.
유물 중에 인간의 형태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유재하는 기겁해서 외쳤다.
“잠깐만요, 설마 인간형 유물도 있었어요?!”
유재하가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인간형 유물이 있다면 절세미인, 즉 여자 형태의 유물도 있을 거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만약 주헌이 그런 유물을 얻게 되면 복원은 당연히 자신이 하게 될거고…… 복원을 하게 되면 육체를 만져야 할 거고………그러니까 그러면……
‘이건 합법적인 스킨쉽!’
슬그머니 유재하의 입꼬리가 씰룩였지만 주헌은 그런 부하의 기대를 산산 조각 내다못해 아주 갈갈이 갈아버렸다.
“망상마라. 인간형 유물 따위는 없어.”
그러자 유재하는 진심으로 화를 냈다.
“에이씨, 그럼 저 얼굴하고 매치 안되는 놈은 뭔데요! 얼굴은 디카프리오인데, 몸은 뚱돼지인 저 놈!”
뭐긴.
“저건 유물이 스스로 변신한거다.”
아누비스도 본체는 앙크의 모습이지만, 개의 모습으로 돌아다니지 않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S급 이상 상급의 유물들은 인간과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한 변신을 할 수 있어.”
아무래도 물건 상태로는 움직이기 힘드니까.
물론 변신한다고 해도 주로 본인하고 연관 있는 걸로 변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모습을 드러낸 황제는 찬란한 조명을 받으면서 주헌에게 극찬을 날렸다.
[서주헌, 그대는 유물계에서 아주 유명하다! 혜성같이 등장했던 <은밀한 비서>는 유물계를 장악했지. 그 엄청난 작품에 모두가 환호했어! 차기작은 언제나오냐고 다들 난리지!]
“………….”
[심지어 짐조차도 처음 그대의 글을 접했을 때의 그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해! 인간놈들이 읽는 저급한 글하고는 그야말로 차원이 달라!]
도대체 뭐라는 건지.
실제로 유재하의 표정이 봐줄만 했다.
아니 물론 자신 역시 그 글을 정독하긴 했었지만………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느꼈다는 거지?”
그러나 유재하의 말에 놈은 식겁하면서 도리어 화를 냈다.
[그 명작을 보고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거냐! 이 눈썩은 놈!]
“아, 아니 그러니까 어디를 어떻게 봐야………”
[뛰어난 문장력, 고결한 묘사력! 절묘한 단어의 선택! 깊은 깨우침을 주는 주제의식! 아니 무엇보다 유물의 마음을 읽은 듯한 므흣...아니아니 대리만족감! 아무튼 은밀한 비서는 최고였어! 인간 따위가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못할 대문호의 등장이지!]
“………………….”
[그런데 그걸 못 알아보다니, 네놈의 눈은 짐승이하다! 지금 서주헌의 광팬이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유재하는 박수를 쳤다.
“축하드립니다. 광팬이랍니다. 신격화 되시는 것도 금방이겠어요.”
“…………닥쳐라.”
유물 따위한테 덕질 당하고 싶지는 않거든?
실제로는 인간이 유물에게 침투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지만 주헌은 쯧 혀를 찼다. 적어도 주헌에게는 마치 귀신이나 외계인 따위들에게 환호 받는 이상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쓴 소설이 어떤 경위로든 간에 유물들의 세계에 퍼졌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유물의 세계에 끼어들 수는 없는 법이니, 제 소설을 퍼트린 것은 당연히 유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놈이?
자신이 소지한 50개의 유물 중 그럴 만한 짓을 할 녀석은…………
아누비스?
‘아니 이놈의 짓인가.’
주헌이 본 건 제 팔목에 감긴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팔찌 상태의 동아줄은 주헌이 자신을 바라보자 그저 좋은 듯이 들썩 거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길 나가면 확실하게 문책부터 해봐야겠군.'
어쨌든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 상황은 큰 기회였다.
왜?
‘귀찮은 불길이 사라졌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다.'
그 생각에 미친 주헌이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100m정도 떨어진 바닥엔 네로놈이 빼앗아 던져버렸던 안경, 호메로스의 유물이 있었다.
‘일단 저것부터!’
하지만 네로놈이 순순히 주헌의 행동을 지켜봐줄리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찾았다! 유물이다!”
“!”
그 사이에 주헌에게 당해 뒤쳐졌던 발굴단이 이 극장에 들이 닥쳤다. 아무래도 네로 놈이 불길을 해제하면서 더 쉽게 들어온 것일 수도 있었다.
“유물, 어서 우리의 것이 되라!”
“여기까지 왔으니 어서 시련을 내!”
유물을 얻고 이곳을 나가려면 무덤의 시련을 클리어 해야 하는 것이 정석.
그러나 불청객이라고 느낀 탓인지, 배불뚝이 아저씨는 짜증 섞인 얼굴로 외쳤다.
[너희들 같은 잡것들에게는 흥미없다! 꺼져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렬한 화염이 작렬했다.
[짐이 관심이 있는 건 서주헌이다! 썩 꺼져라!]
“으아아악! 뜨거워!”
“살려줘!”
그러더니 네로는 기대하는 눈으로 주헌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서주헌. 그럼 지금부터 짐이랑……어?]
그러나 주헌은 뜻 밖의 모습으로 네로를 반겼다. 네로가 눈엣가시들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주헌은 재빨리 호메로스의 안경을 껴버린 것이었다.
‘시간만 들이면 넌 내 거다.’
호메로스의 유물은 타인을 서사시의 주인공으로 삼고, 전지전능한 작가의 입장에서 타깃의 운명에 간섭할 수 있는 유물.
‘유물한테는 원래 안 통하더라도 호메로스 빠돌이인 저놈한테는 통한다.’
하지만 그의 주헌의 모습에 놈은 시무룩해졌다.
[서주헌, 그대는 뛰어난 대작가다. 그런 유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걸작을 쓸 수 있지 않나.]
그러고는 주헌에게 황당한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여기서 짐과 문학 대결을 펼치자! 누가 더 인기가 많은 지 겨뤄보지.]
뭐라고?
문학 대결?
‘저게 미쳤나.’
하지만 낄낄 웃는 유재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대박. 인류 대표가 되신 겁니까? 기대해도 되죠?”
하지만 주헌에겐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왜?
“미쳤나? 유물따위하고 진지하게 어울려주고 있게.”
심지어 이딴 곳에서?
그렇게 해서 자신한테 돌아오는게 뭐가 있는데? 그러나 주헌의 말에 놈은 좀 삐친 듯했다.
[무려 짐이 승부를 걸어주는 거라고! 어서 기뻐하지 못해?]
“닥쳐라. 하나도 안 기쁘니. 도대체 누가 유물 따위의 말을 들어준다고.”
'어차피 시간은 있다. 여기서 천천히 굴복시키고 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때였다.
[강한 책략의 유물의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무덤과 유물의 약점을 파악하는 강력한 유물입니다.]
“!”
방해꾼이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다만 그 메시지에 주헌의 얼굴이 그 답지 않게 일그러졌다.
틀림없었다.
메시지가 경고하는 유물의 정체는 주헌이 아주 잘 아는 유물일 터였다.
제갈공명 율리안.
‘하필이면.’
예전 도굴단 멤버인 놈의 실력과 능력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 가장 잘 알았다.
놈은 다른 어쭙잖은 유물 발굴단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유물과 유물사용자의 기능, 그리고 약점까지 꿰뚫어보는 말그대로 치트 공략자.
‘칫, 언제는 철수했다더니.’
아무래도 입구가 뚫리자 마음이 바뀌어 무덤 내부에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덕분에 주헌은 급해졌다.
‘놈이 지금 여기에 들이닥치면 곤란하다.’
율리안이라면 자신과 네로의 약점을 금방 파악해서 자신이 네로를 굴복시키기 전에 먼저 유물을 스틸해갈지도 몰랐다.
[분석의 유물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젠장.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소리로는 100m, 80m...
‘젠장, 아직 굴복도 못 시켰는데.’
어쩌지? 동아줄을 보내서 방해할까?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주헌의 속마음도 모르는 네로는 천연덕스럽게 외쳤다.
[서주헌! 짐과 대결하자니까? 어서!]
그 말에 주헌은 뭔가 생각난 듯, 허탈하게 웃었다.
‘아 난 바보군.’
생각해보면 굳이 굴복을 시키지 않아도 빼갈 방법이 있는데.
결국 주헌의 답은 이것이었다.
“알았다. 까짓것 네 말대로 대결해주지. 어울려주마.”
[오, 정말이냐?]
“단!”
주헌은 조건을 걸었다.
“날 따라오면.”
동시에 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안 된다. 여기서 끌고 나갈 심산이라는 걸 짐이 모를 리가 있겠나.]
그러자 주헌은 뻔뻔하게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그래? 그럼 맘대로 해라. 꼬우면 네놈의 잘난 불로 날 죽이든지.”
“단장님!”
그러나 주헌은 도박장에서 허접한 패로 올인을 하는 승부사의 패기로 입꼬리를 올렸다.
‘일부러 불길까지 해제한 놈이다. 쉽게 죽이진 않겠지.’
물론 이게 안 먹히면 율리안하고 유물을 두고 싸워야 하는 귀찮은 사태가 벌어진다.
주헌은 약을 팔 듯 뻔뻔하게 입을 놀렸다.
“잘 생각해봐. 여기서는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뛰어난 예술가인 너라면 환경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지 않나?”
그렇게 주헌이 내색하진 않아도 내심 긴장하며 놈을 보았다. 놈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주헌을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보며 주헌은 쯧 혀를 찼다.
‘칫, 안 통하나.’
그러나 이 때 놈의 몸이 번쩍였다.
동시에 나타난 것은 월계관 형태의 유물!
[알았다. 약속은 꼭 지켜라!]
예술가라는 말에 혹한 건지. 아니면 굴복한게 아니니 상관없다고 여긴 건지, 네로가 주헌의 요구에 응한 것이었다.
챙그랑!
결국 월계관은 바닥에 떨어졌고, 주헌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좋았어.’
그러나 이 때 낯익은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울려퍼졌다.
“서주헌!”
‘!’
들이닥친 건 예상대로 율리안이었다!
곧 율리안의 눈에 네로의 유물이 들어왔다.
‘저건!’
율리안이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주헌이 먼저 월계관을 낚아채갔다.
탁!
정말 간발의 차였다.
동시에 주헌은 그를 보며 웃었다.
'무서운 놈, 여기까지 상처하나 없이 오다니.'
역시 왕급 후보였다.
그러나 율리안은 주헌의 손에 들린 월계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너! 그거!”
율리안이 빼앗을 기세로 다가왔지만, 주헌은 날렵하게 피했다.
“바보야, 이미 버스 지나갔어! 여기 유물은 이미 내거라고 모두한테 전해라!”
주헌은 재빨리 네로 유물을 발동시켰다.
그들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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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체해서 얼른 올리고 자..장실에!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