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0 귀찮아! 다 귀찮아! =========================================================================
< 귀찮아, 다 귀찮아! (1) >
“와, 단장님. 저거 골치아프긴 골치아프네요.”
교토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시내를 바라보는 유재하는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와, 미쳤다. 여기가 일본이야, 이탈리아야.”
그랬다.
주헌이 이설아에게서 무덤의 정보를 빼앗은지 약 삼일 째.
교토에는 7대 대무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자신들이야 아슬 아슬하게 고분화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 관찰 중이었지만, 시내는 아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척 봐도 이 일대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양식이 아무렇게나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태는 고대 로마 예술 양식.’
그것도 아주 화려했다.
헬레니즘 양식의 금박 장식상, 기교가 엿보이는 둥근 화랑과 목욕탕, 탄성이 절로 나오는 프레스코화, 호화롭기 짝이 없는 로마제국의 시가지들. 반듯한 건축물들은 사정없이 길거리와 건물들 사이를 비좁고 솟아올라 도시를 무참히 파괴하고 있었다.
마치 이 일대를 쓸어버리고, 그 위에 억지로 찬란했던 로마 문명을 채우려는 듯이.
물론 판도라에서도 이미 다급한 무덤 경보령을 내린지 오래였다.
[일본 교토에 무덤이 출현해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판도라가 관측한 고분화의 규모는 1027㎢에 달하며, 이미 교토를 뒤덮는 넓이입니다!]
[판도라에서는 레벨3에 해당하는 피난급 경보령을 내렸으며, 판도라 군인들을 급히 투입, 일본 자위대도 급하게...!]
물론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은 비단 경보령 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고고학자들은 교토에 나타난 무덤의 양식이 고대로마제국의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일본에 나타난 무덤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는 그리스 양식이라 주장하며 무덤의 소유권을..]
주헌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기야 이곳의 규모만 보면 유물은 최소 S급이다.’
그런 만큼 전세계에서 눈을 밝히는 게 당연했고, 그 증거로 교토에는 수 많은 하이에나들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하이에나 중에 이런 놈도 한 명.
“뭐야, 당신들도 무덤에 들어가려고 온 거에요?”
톡 쏘아붙이며 주헌에게 다가온 것은 다름아닌 TKBM 의 이진아였다.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왔다가 스트립쇼만 하다간 변호사였나.
그리고 윤시우도 있었다.
틀림없이 7대 무덤을 눈치채고 권회장이 팀을 꾸려서 보낸 것이리라.
하지만 윤시우는 주헌과 유재하를 보자마자 죽일 기세로 다가왔다.
“니들 딱 걸렸어. 지난번 판도라 파티 때는 잘도 우리를 방해했겠다!"
“당신들 때문에 제갈공명이 우리 연락은 죄다 씹...아니 무시하고 있잖아요! 어쩔 거죠?”
하지만 씩씩 거리는 그들과는 다르게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누구더라 너희?”
“뭐라고!”
이에 윤시우를 알아본 유재하도 옆에서 깔깔 웃어댔다.
“야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게 왜 우리 탓이야, 니들이 무능한 탓 아냐?”
“이게 해보자는...!”
그리고 이 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이대리님, 기분은 알지만 싸우실 때가 아닙니다.”
“너!”
윤시우의 옆으로 한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실장님의 무례를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저희 실장님도 최근 여러 일로 골치를 겪고 계셔서요.”
곧 남자 쪽이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내민 것은 TKBM 발굴단의 명함이었다.
[양 쳰]
그리고 TKBM 발굴단에서도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양 쳰은 주헌을 향해 교묘히 눈을 반짝였다.
‘서주헌, 판도라에서 경고한 숨겨진 1위라고 했다.’
직접적으로 당한 권회장과 윤시우야 주헌을 못 죽여서 안달이 나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주헌의 능력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녀석은 분명 크게 될 녀석이다. 무조건 이 쪽이 한 발 물러서야해.’
아니나 다를까 양쳰은 굉장히 성격 좋아보이게 웃었다.
“저희는 주헌씨와 적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예전에도 실장님이 폐를 끼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셨으면 언제든지 이 쪽으로 연락 주십시오. 양 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때였다.
“허.”
헛웃음소리와 함께 모두가 까무러칠 만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부욱!
주헌이 양 쳰이 내민 명함을 사정없이 찢어버린 것이었다.
‘!’
그것도 면전에서!
참혹하게 찢어지는 발굴단의 명함에 양 쳰도, 윤시우도, 이진아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건 황당하다 못해 대놓고 모욕하는 행위였다.
평소라면 주헌이 쉽게 안할 행동.
“다, 단장님?”
그러나 주헌은 찢은 명함을 사정없이 허공에 던졌다.
“경고한다. 그 빌어먹을 낯짝 또 다시 들이대면 너부터 무덤에서 죽어나갈 줄 알아라.”
“………!”
그들은 주헌의 적의에 당황했지만, 주헌은 놈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건 당연했다.
‘이 빌어먹을 유다 같은 놈.’
주헌이 이 녀석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법한게 양쳰은 같은 도굴단 소속이었고, 자신들을 그 최후의 무덤에 집어 처넣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양 쳰은 능력도 뛰어났고, 비록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다른 도굴단 멤버들과도 형제처럼 지냈다. 그랬던 놈이 권 회장을 도와 자신들을 지우는 데 크게 한 몫했다.
그랬기에 주헌은 까마귀 무덤의 일을 물고 온 놈의 면상때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주헌아. 이번 일만 해결하면 너도, 나머지 도굴단 멤버들도 자유가 될 거야. 나는 이번에 다쳐서 비록 같이 못가겠지만, 조사해보니까 너라면 그렇게 어려운 무덤도 아니겠더라.’
‘알았으니까 회장한테 약속이나 지키라고 해.’
‘그래. 아, 이건 위험해질 때 써. 탈출용 유물이야. 상황이 안좋으면 이걸 꼭 써야 한다.’
‘그래.’
‘그리고 도굴단 멤버가 아닌 놈들은 두고 가. 그놈들은 데리고 가봤자 발목만 잡을 거 아냐.’
‘글세? 그래 보여도 무덤에서 꽤 도움이 되는 녀석들인데.’
‘주헌아. 이번엔 중요한 일이야. 네가 사람 키우는 걸 좋아하는 건 알지만, 시간 없어.’
‘그러지 뭐.’
그리고 그 때 알았어야 했다.
그것이 자신들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우려는 계략이었다는 것을!
권회장에게 가장 유용했으나, 동시에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주헌의 도굴단. 그들을 처리하면 양 쳰에게 이사의 자리를 준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양 쳰이 말해줬던 정보는 모두 가짜.
덕분에 소중한 부하들은 모두 저항도 못하고 죽었다. 까마귀의 무덤이 워낙에 마신급이긴 했지만, 발버둥도 치지 못한 건 이 놈의 탓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겠지.’
주헌은 사납게 입꼬리를 올렸다.
왜?
그 자승자박의 유물 덕분에 저항도 못하다가, 결국 까마귀가 있는 곳까지 굴러 떨어진 것이니까!
‘네 덕분에 까마귀를 만나고 새 삶을 얻었다. 양쳰.’
복수가 인생의 목적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간신배 같은 놈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이놈도 권 회장이랑 똑같이 처리해주리라. 그 때 억울하게 죽었던 도굴단 멤버들을 전원 모아서.
그러려면 우선 왕의 자리부터.
“어쨌든 난 경고했다. 어설프게 아부하려는 속셈이 훤히 보이니 꺼져라.”
이놈과 친한 척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자신의 뒷통수를 친 놈과 태연하게 악수를 할 만큼 주헌은 비위가 좋지 못했다. 쓸데없는 여지를 주기도 싫었고 말이다.
그래서 일까.
내색하지 않지만, 파르르 주먹을 떠는 양 쳰의 표정이 아주 볼만 했다.
하지만 주헌이 쿨하게 유재하를 불렀다.
“저것들은 무시하고 와라. 지금부터 무덤에 들어간다.”
“예이.”
유재하가 쫄래쫄래 쫓아가자 결국 상황을 보다 못한 이진아가 표독스럽게 외쳤다.
“지금 설마 고작 둘이 들어가려는 건 아니죠?”
“그럴 생각인데?”
주헌의 대꾸에 이진아는 황당하다는 듯이 코 끝으로 비웃었다.
“당신네들이 여기서 설치려고 해도 헛수고에요. 내로라 하는 발굴단들이 전부 입구에서 물 먹고 있는 거 안 보여요?!”
그렇다.
이 7대 무덤의 입구는 이미 나타나 있었다. 요새처럼 생긴 거대한 토벽으로, 사이비 교단이 있던 대나무 숲에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경험상 입구라는 걸 깨닫고 대부분의 발굴단이 입구로 향했지만 결과는 절망적.
인력들이 입구지대에 들어서자마자 하나같이 이따위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무덤 따위 알게 뭐야! 자는 게 남는 거야!'
'아, 발굴 따위 때려쳐! 다 때려치자고!'
'아 유물 들고 있는 것도 귀찮아. 우리 유물 네가 그냥 가져라!'
'젠장, 사는 것도 귀찮아! 다 죽자! 숨쉬는 것도 귀찮아!'
그렇다.
교토에 나타난 이 무덤의 정체는 7대 무덤 중 ‘나태.’
그렇게 각 국가의 발굴단들이 무덤의 봉인을 풀려고 하기는 커녕, 늘어져 자거나 자살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니 전의 자체를 상실하게 하는 무덤에 무슨 수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건 무덤 자체에서 인간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리에요. 못들어 간다고요.”
“그러게 말이야. 아까 제갈공명도 여기 온 거 봤는데, 그 치트무덤공략자 놈도 여긴 도저히 아닌 것 같은지 포기하고 철수하려하더라! 그런데 니놈들이?”
“판도라에서 경고한 탑 10들도 죄다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요. 그런데 무슨 패기로.”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이 등신들아. 전 세계가 넋 놓고 있는 마당에.”
그러자 주헌은 낄낄 비웃었다.
“병신. 그거야 니들만 그런 거지.”
이 전직 무덤 침입자는 가볍게 유물을 던지고 받았다.
* * *
“아주 가관이군.”
당당하게 입구 앞에 선 주헌은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아무래도 입구의 시련이라는게 꽤나 강력했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유재하 역시 자리를 깔고 눕기 시작했다.
물론 주헌은 곧바로 쓰러지지 않았다.
왜?
[내성의 효과로 입구의 공격이 반감됩니다.]
[내성의 효과로 나태한 마음이 반감 됩니다.]
까마귀가 준 내성 덕분이었다. 태만한 마음이 몰려오고 있긴 하지만, 유재하처럼 바로 자리를 깔고 누울 정도는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서둘러야 겠군.’
자신조차도 슬슬 따분해서 확 방화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주헌이 입구 쪽으로 향하자, 슬금 슬금 따라오던 대형견 아누비스가 낄낄 비웃어댔다.
[골 때리는 무덤이군. 인간이란 생물은 천성이 게으른 동물이다. 정신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주헌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오, 입구를 여는 조건이 정신력으로 버티기냐?”
[그래. 정신력으로 나태함을 이겨야 저 문이 열리는 구조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클리어 할 수 없는 조건이지. 이건 들어오지 말란 이야기다.]
하지만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뭔 개소리야. 그냥 들어가면 그만이지. 그런 의미로 일 좀 해야 겠다. 멍멍아.”
그러자 아누비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인간이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군. 말해두지만 내가 부른 사자병사들로도 남의 무덤까진 파괴 못한다. 정식적으로 시련을 통과해야……]
“시체병사? 그딴 거 필요 없어. 네 몸뚱이만 있으면 된다.”
뭐, 뭐? 내 몸뚱이?
곧 불길한 예감과 함께 강한 지배력이 실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교토에는 개의 비명소리와 함께 원인불명의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한 편 먼 전망대에서 입구를 관찰하던 윤시우는 기겁하고 말았다. 잠시 확인해본 입구는 강력한 에너지에 파괴된 듯, 처참한 몰골로 구멍이 뚫려버린 것이었다.
“미, 미친! 입구가 파괴 되었어!”
“네?! 도대체 어떻게!”
놀라는 건 TKBM 뿐이 아니었다. 냄새를 맡고 이곳에 왔던 세계 각국의 발굴단들, 그리고 판도라 경고했던 탑 10 들 역시 황당해했다.
그럴 때 각국의 발굴단들이 급하게 엉덩이를 일으켜세웠다.
“젠장,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저대로라면 지금 누가 무덤 안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잖아!”
“빨리 무덤 안에 들어가! 유물이!”
“빌어먹을, 저기까지 가려면 최소 20분은 걸리는데!”
그들은 분주해졌다.
하지만 정작 무덤발굴(이라쓰고 무덤파괴라 부르는 스킬), 그리고 아누비스 자폭 콤비네이션으로 무덤 안에 들어온 주헌은 낄낄 웃어댔다.
미쳤다고 유물이 내건 조건을 순순히 클리어 해줘?
“문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고, 문이 있으면 뚫으면 그만이지.”
물론 정작 앙크로 변한 아누비스는 죽어나갔다.
[……………인간. 넌 기필코 내가 죽일테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동아줄에게 질질 끌려오는 유재하를 깨우면서 말했다.
“1호, 일어나. 이제 시련은 사라졌다. 이 멍멍이 좀 수리하고, 내가 말하는 유물도 최대로 복원해서 내놔라. 여기 유물한테 좀 써야 하니까.”
그러자 유재하가 다급하게 일어나면서 물었다.
“네? 여기 유물…? 단장님, 혹시 여기에 있는 유물이 뭔지 아십니까?”
알다마다.
전망대에서 고분화 현상을 살펴보니 정확하게 감이 왔다.
“무슨 유물인데요?”
뭐긴.
“너도 잘 아는 유명한 로마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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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는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도 100편 이네요 ㅠ.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다 독자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감사 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로 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추코 감사드립니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