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4 자, 나에게 반해봐라 =========================================================================
< 자, 나에게 반해봐라 (3) >
5월 7일, 교토 아라시야마.
뉴욕에서 약 하루를 걸쳐 일본으로 날아온 짐꾼 유재하는 헉헉 거렸다.
“아, 덥다 더워.”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이 일대를 땅 투기꾼 마냥 살펴보는 주헌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러니까 나 체육관 갈 때 같이 가자고 했잖아. 체력 좀 키워라. 보기엔 멀쩡한 놈이.”
그러자 유재하가 씩씩거렸다.
“이씨, 뭐래요! 단장님은 빈손! 나는 짐꾼! 도대체 왜 단장님 짐까지 제가...!”
“자업자득이지. 그러게 누가 쓸데없이 내기를 걸래?”
“이, 이씨. 질 줄은 몰랐...아니 이게 아니라 체육관이요? 갔다가 사정없이 구타만 하신 게 누군데요?”
“그럼 링 위에 맞으러 오지, 춤추러 오냐?”
“........”
유재하가 말로도 도저히 주헌을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할 그 때였다.
“돌입해라!”
먼 곳에서 일본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재하는 깜짝 놀라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 근방에 있는 울창한 대나무 숲 안 쪽인 것 같았다.
분명 뉴스에서는 그 대나무 숲 안에 문제의 사이비교단의 본거지가 있다고 들었다. 그걸 알기에 유재하가 다급하게 말했다.
“설마 사이비교주 체포하러 온 거 아니에요? 여자들 실종 사건의 배후로…”
유재하는 실종사건을 거론했지만, 주헌은 다른 의미로 눈살을 찌푸렸다.
내 유물이 위험하다!
“좀 살펴보고 올테니 넌 여기 있어라.”
“네? 아 잠깐! 거기 출입금지 구역인데!”
그러나 유재하가 놀라거나 말거나, 주헌은 홀로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근방은 특수부대와 경찰이 진을 치고 있어서 출입이 금지 되어 있었지만, 그딴 게 알게 뭔가.
안 걸리면 장땡이지.
그리고.
‘그 하렘의 유물은 내거다.’
감히 누가 손대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 생각한 주헌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커억!”
“잠깐, 무슨 일! 컥!”
뻐억!
주헌은 눈에 보이는 방해꾼들을 때려눕히면서 순식간에 숲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이 주변을 미리 살폈을 때 특별한 건 없었으니 잠입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일본 경찰과 특수부대들만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아, 알립니다! 갑자기 이상한 놈이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으악!”
“닥쳐라. 내 하렘의 유물에는 아무도 손 못 댄다.”
하지만 다 죽어가는 그들은 억울했다.
“유물이라니 무슨, 우리는 그냥 실종 신고를 받고…!”
“뭐, 아님 말고.”
주헌은 어차피 방해라면서 그들을 때려눕히고 이동했다.
그리고 기이어 숲 안의 신사에 다다랐을 때, 주헌은 기묘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일본 경찰들 뿐만 아니라, 일본이 협력 요청을 한 것인지 판도라 병사들도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덤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전문가를 초빙해온 것이리라.
주헌은 재빨리 신사의 기둥 뒤에 숨었다.
놈들은 이를 갈고 있었다.
“반드시 오늘은 신사 안에 들어가야 한다!”
“안에 들어가서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젠장, 국회의원의 딸도 잡혀 들어간거 같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수학여행 보냈다가 단체로 사라지다니, 이게 무슨……!”
그들은 손을 파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수학여행을 왔다가 사라진 학생들부터, 주민들, 관광객, 연예인, 촬영팀, 아무튼 교토에 왔던 여자라면 닥치지 않고 잡아간 모양이었다.
뭐 그 와중에 유치원 생은 잡혀가지 않았으니 칭찬해줘야 하나.
‘어쨌든 국회의원 딸까지 사라졌으니 이 난리가 날만 하지.’
예상컨대 이 곳의 교주가 가지고 있는 유물은 3천궁녀로 유명한 의자왕의 유물이나, 베네치아 출신의 <조반니 지아코모 카사노바>. 그러니까 그 유명한 카사노바의 유물일 터.
군중을 이끄는 유물은 다양하지만, 여자와 관련된 유물 중에 이정도의 효력을 갖는 건 그것 정도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 판도라 군인들과 일본 무장 경찰들이 강행 돌파를 하기 시작했다.
“뚫어라!”
탕탕탕!
하지만.
“크아아악!”
“으악!”
강행 돌파를 하려던 수십 명의 장정한 사내들이 괴로워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별다른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쓰러진 남자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빌어먹을! 또야!”
“또 죽었다고!”
“시팔, 이러니까 안에 들어갈 수가 없지!”
“유물 짓 아니야?”
“아니야! 오라도 안 느껴진다고!”
좀 떨어진 곳, 대나무 틈에 숨어 있던 주헌은 미간을 좁히며 그들을 살폈다.
‘유물이 사용되던 기운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주헌도 내심 당황하던 참이었다.
이정도면 상당한 실력자다.
‘도대체 누구냐.’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혼란스러워하는 군인들 사이에 한 동양인 여자가 나타났다. 검은 라이더 자켓에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군인들은 그녀의 늘씬하고 매끈한 다리에 홀리려고 하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쏴! 봐줄 것 없다! 이 년은 교주의 앞잡이다!”
그 말에 앳된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 했는데.”
그녀의 입에서 떨어진 실소에 주헌은 조금 놀랐다.
‘한국말?’
일본인은 아니다.
그래서 자세히 그녀의 얼굴을 훑었을 때, 주헌은 내심 놀랐다.
‘이설아?’
아니 놀라는게 당연했다. 그녀는 유재하처럼 자신의 전 부하, 그러니까 도굴단 멤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엄청난 미소녀였다.
성격은……뭐 자신의 도굴단에서 얌전한 녀석이 누가 있었겠느냐만은.
‘이녀석, 이 때는 어디에서 뭘 하나 싶었더니.’
율리안도 그렇고, 주헌은 티내지 않았지만 반가웠다. 이설아는 과거에 주헌과 제법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마 사이비교주 밑에서 일하고 있을 줄이야.’
그러나 놀랄 틈도 없이 사내들이 모두 끄악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그녀의 짓은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에 의해 군인들이 큰 상처를 입으며 쓰러진 것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은 남자들이 다 쓰러지고 나서야 여자의 뒤에 나타났다.
형태는 도깨비.
그리고 주헌은 그것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길달(吉達)!’
그러니까 신라시대 진지왕의 아들, 귀신을 부리는 비형랑의 수족이었던 도깨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저녀석, 이 땐 길달의 유물을 가지고 있었나.’
이제야 주헌은 군인들이 왜 갑자기 죽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확히는 저 도깨비에게 혼을 빼앗긴 것이다.
영혼형 유물들은 그딴 식이었으니만큼.
궁극의 네크로멘서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영혼형 유물을 잘 다루는 건 여전히 칭찬할 만 하다만.
‘쯧, 영혼형 유물은 귀찮은데.’
이설아가 제 충성스러운 부하라고는 하나, 전생에서나 그랬지 지금은 단순한 적.
하물며 영혼형 유물 앞에선 주헌이라고 하더라도 장사 없었다. 아무리 잘난 왕급 유물 사용자라 할지라도 영혼이 뽑힌다는데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했으니까.
그러니 결론은 간단했다.
‘일단 자리를 뜨자.’
그렇게 주헌이 탈출용 유물을 쓰려 할 때였다.
[신사의 중심을 둘러싼 대무덤의 기운이 유물의 사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허락받지 못한 자는 유물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칫.”
아무래도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곳, 중심부는 무덤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필시 7대 무덤이 이곳에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대무덤은 괜히 대무덤이 아니었다.
유물이 일체 통하지 않는 난이도 상급의 무덤.
하지만 교단 놈들이 이 곳에서 유물을 쓸 수 있는 걸 보면, 그 대무덤에 조공질이라도 했나?
그런데 이 때였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으면 모를 것 같았나!”
이설아가 주헌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린 것이었다. 주헌은 자신의 위치를 들키자 헛웃음을 흘렸다.
‘거참, 내가 가르쳤지만 내 부하들은 너무 유능해서 탈이야.’
그러나 그녀는 아군을 부르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와서 침입자를 잡아라! 침입자를 교주님에게 넘겨!”
이설아의 부름에 여자 신도들이 우르르 주헌의 곁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의기양양한 그녀들을 향해 주헌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특기를 살렸다.
그건 바로.
“꺄악!”
인질 잡기!
포위하는 신도 중 가까운 놈을 골라 인질로 삼는 것이다! 이런 일이야 범죄왕에겐 누워서 떡 먹기였다.
“저, 저놈이!”
그녀들은 당황했지만, 주헌은 작은 단도로 여자의 목에 칼을 겨누면서 이설아에게 말했다.
“자, 교주의 소중한 신도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그 어쭙잖은 유물 치우고, 거기 비켜라.”
길달의 유물은 A급 영혼형 유물.
영혼형 유물을 상대하려면 천적인 엑소시즘 계열 유물이 있어야 하는데, 주헌이 가진 물건 중엔 그런 계열이 없었다.
그러니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이 방법 뿐.
“자, 비켜.”
이에 이설아는 무척 당황한 듯이 주헌을 바라보았다.
“저 뻔뻔한 강도 놈이!”
하지만 주헌은 코웃음을 치면서 인질을 잡아 끌고 신사안으로 도망쳤다.
보아하건데 길달의 유물은 그래봐야 소환수의 개념.
실체화해서 상대에게 해를 가하기엔 사정거리가 상당히 짧다. 주인에게서 특정 거리 이상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헌은 아까 전의 전투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추측하자면 사정거리는 대충 3M 정도.’
그정도면 할 만하다. 노련한 주헌은 여유롭게 인질을 끌고 인적이 드문 방에 숨었다.
쿵!
그리고 인질을 향해 칼을 겨누면서 말했다.
“자, 좋은 말로 할 때 숨겨진 출구를 말해라.”
하지만 그는 생각이 난 듯, 질문을 정정했다.
“아니, 아니다. 일단 교주의 방이 어딘지 말해봐.”
지금 자신이 여기서 나가면 경계는 더 심해져서 다시 들어오기 힘들어 질 것이다. 이왕 들어온 김에 어느정도 일을 해치우는 것이 나았다.
그러자 고등학생 쯤 되는 인질은 주헌의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 * *
그리고 한 편 그 무렵, 신사 안은 난리가 났다.
“남자가 침입했다!”
“교주님이 위험하실지도 몰라! 빨리 잡아라!”
하렘 유물의 최면에 걸린 신도들은 교주를 걱정하면서 이설아에게 물었다.
“대장님, 괜찮을까요? 만에 하나 인질로 잡힌 신도가 교주님의 정보를 판다면!”
하지만 이 교단에서 유일하게 최면에 걸려 있지 않은 이설아가 픽 웃었다.
“교주님을 배신할 신도는 이 안에 아무도 없어.”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그건 그랬다.
신도들은 하렘의 유물의 존재를 모르지만, 교주가 가진 하렘의 유물은 S급인 만큼 막강했다. 어지간해서는 절대 풀리지 않는 막강한 최면.
‘교주를 위해서 본인의 목숨도 끊을 정도의 신도들이지.’
칼로 위협해도 신도들의 충성심은 엄청났다.
그러니 인질을 데려간 주헌은 헛고생 하는 것이리라.
‘바보 같으니.’
이설아는 두고 보자면서 사납게 웃었다.
“이곳에 제발로 들어온 걸 후회하게 해주지.”
* * *
그리고 그 무렵, 인질에게 교주의 정보를 묻고 있는 주헌은 여전히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하지만 잡혀온 여자 신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걸 본 주헌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하렘의 유물에 최면 당해서 쉽지 않나.’
예상은 했다만 아무래도 역시 정면돌파로 가야 하나.
그러나 그 순간.
뜻 밖의 일이 벌어졌다.
“어, 저기...”
일본어를 하는 그녀가 주헌을 아는 것 마냥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혹시 주헌 님?
“엥?”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상대의 감정이 격해집니다.]
[덕분에 하렘의 유물의 최면에 깨졌습니다.]
[당신은 하렘의 유물 사용자를 뛰어 넘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주헌은 제 눈을 의심했다.
미친! 하렘의 최면이 깨졌다고? 아니 도대체 갑자기 왜?
이건 주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현상이었다.
덕분에 드물게 당황한 주헌이 도리어 경계하기 시작했다.
“뭐야, 너 누구야?”
화장끼 없이 청초해 보이는 민 얼굴.
스쳐지나간 사람이라도 어지간하면 얼굴을 다 기억하는 주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이런 여자 자신은 모른다.
하지만 주헌의 목소리에 여자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저에요 저! 그 쇼토쿠태자의 미래기를 가지고 있던, 사사키! 기억 안나요?”
“!”
동시에 주헌은 경악했다.
뭐라고? 누가 누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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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