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3 자, 나에게 반해봐라 =========================================================================
< 자, 나에게 반해봐라 (2) >
‘좋아, 시대의 획을 그을 명작이 나왔다.’
어느정도 글을 완성한 주헌은 흡족하게 웃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꽤 괜찮은 야설(?)이 탄생한 것 같았다. 이정도면 그깟 록펠러 따위,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이 놈들도 반하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한 주헌은 바로 쓴 글을 출력했다. A4 용지로 한 5장 정도 될까, 그는 멀리서 노가리를 까고 있는 부하들을 불렀다.
“잠깐, 너희들.”
“네?”
“내가 쓴 소설 좀 읽어봐라.”
그들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소, 소설?”
아까부터 뭔가를 쓰는 가 싶더니, 그게 소설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얼떨결에 원고를 받은 그들은 제목을 보고 기겁해야만 했다.
아니 그것도 그럴 법한게.
<음란한 비서 - 당신의 노예>
이건 어떻게 봐도 19금 딱지를 붙여야 할 것 같은 제목이 아닌가!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헌을 바라봐야만 했다.
‘말도 안 돼. 이걸 단장님이 썼다고?’
아니 그렇지 않은가!
서주헌은 섹시미녀와 유물 중 고르라고 하면, 뒤도 생각 않고 유물을 선택할 유물 성애자였다.
그런데 누가 뭐?
19금?
성애씬이 과연 나오기는 나올까?
특히 유재하는 의구심을 품은 얼굴로 슬쩍 물었다.
“저 단장님.”
“뭐냐.”
“이거 설마…저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맞습니까?”
유재하의 질문에 오승우 일행도 집중했다. 그러자 주헌은 뭘 그딴 걸 묻는 냐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래,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다. 아니면 품번까지 붙여줘야 믿겠나.”
하지만 그의 반응에 부하들은 다른 의미로 무서워해야 했다.
‘도대체 뭘 쓴 거야…!’
‘설마 주인공이 유물인 건 아니겠지!’
그렇게 그들이 혼란에 빠질 때였다.
“저어…!”
홀로 소외된 아이린이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주헌은 자신에게 원고를 주지 않았지만, 아이린은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헌이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주헌의 손이 가해진 것이라고 하면 그것이 소설이든 그림이든 사기행각이든 궁금해졌다.
그 때문인지 아이린은 슬쩍 유재하와 오승우에게 다가왔다.
“저, 같이 보면 안 될까요? 제목이 뭔가요?”
하지만 아이린이 다가오자마자 사내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아씨, 저리가 계십쇼!”
“아, 아이린씨는 안 돼요!”
그리고 그들이 아이린을 따돌리자, 갑자기 원인불명의 설사가 왔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비서물이라니, 단장님도 뭘 좀 아시네.’
복통이 가시자, 흥분한 사내들은 소설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엉큼한 놈들을 보면서 주헌은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저 반응을 보니 계획 대로였다.
‘니들 취향은 확실하게 알고 있단 말이야.’
사실 록펠러의 팬이라며 세뇌에 빠진 유재하를 보며 내심 불쾌했던 주헌이었다. 다른 작가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특히 록펠러가 썼다는 글이 얼마나 대단한지 살펴봤기에 더더욱 그랬다.
록펠러의 소설은 주헌의 기준에 차지도 않았고, 내용도 지적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런 만큼 주헌은 자신의 글에 자신있었다.
‘격의 차이를 보여주지.’
그리고 몇 분 정도 흘렀을까.
부하들이 글을 다 읽은 건지 페이지를 덮었다. 그걸 본 주헌은 흡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너희들 벌써 다 본거냐?”
“네, 다 봤습니다.”
“소감은?”
그 말에 유재하가 방긋 웃었다.
“진짜 최고입니다. 제가 본 야설 중에 최고였어요!”
한 때 글에 대한 꿈도 있었던 유재하로서는 주헌을 정말 박수칠 정도로 칭찬하고 싶었다.
그건 당연했다.
‘진짜 이런 마공서를 만드는 것도 재주다.’
그렇다.
주헌의 글?
물론 잘 쓴다. 아는 것도 많고 여러 글 쓰는 법도 섭렵했는지, 감탄할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났지만 단지 그 뿐이다. 개연성은 안드로메다로 팔아먹었고, 재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심지어 야설에서 계몽을 부르짖고 있었다!
말이 되나!
비유하자면 야동을 켜놓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오라는 장면은 안나오고 애꿎은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남녀의 숭고함에 대해 100분 토론하고 있는 걸 듣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래서는 첫줄에서 현자타임 오겠다.’
아니 도대체 야설의 의의가 뭔데! 사람들이 왜 이런 소설을 보려하는 건데!
그럼 장르를 야설로 보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개연성 파괴, 연출력, 대사의 오글거림.
이쯤 되니 차라리 투명한 파충류가 나오는 소설은 애교로 보일 판이었던 것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저…형님.”
“뭐냐.”
“저, 모르는 단어가 있어서 넘어가지 못하는 곳이 있는데요…”
“뭘 모르는데 넘어가질 못하고 있어.”
“저, 늠렬(凜烈)……이 뭡니까?”
“추위가 엄청나다는 의미다.”
“치성(致誠)…은요?”
“정성을 다하다.”
“기휘(忌諱)는요?”
“꺼려한다는 의미인데……근데 그거 소설 맨 앞줄에 나오는 것들이잖아. 설마 지금 첫줄도 못 넘겼다고?”
그들은 대답대신 울었다.
“야이, 복원꾼! 넌 어떻게 이딴 걸 다 읽었냐!”
“나참 형님, 저놈은 아이비리그 출신이잖습니까, 당연히 읽을 수 있겠죠!”
그 말에 유재하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못 읽는게 반은 넘어갔는데.
어쨌든 저런 마당이니 괜히 세계 10대 마공서 후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글솜씨로 외계에서 온 것 같은 마공서를 탄생 시킬 수 있지?'
진짜 이것도 재능이다.
결국 참다 못한 유재하가 총대를 매기로 했다.
“단장님, 솔직히 야설 한 번도 안 읽어보셨죠! 아니 야동은 보신 적 있으십니까?”
“본 적 있는데 뭐.”
“그럼 왜 기대하는 비서는 안나오고 유물놈 이야기만 잔뜩하고 있습니까! 낚시하십니까?"
주헌은 떨떠름해했다.
“나오잖아. 거기 도굴꾼의 비서로.”
“시끄러워요! 딱 한 줄 나오잖아요! 심지어 인간도 아냐! 아 진짜 동아줄한테 펜을 쥐어줘도 이딴 거보단 잘쓸 겁니다!”
“!”
그 말을 들은 주헌은 아예 충격을 먹은 듯했다. 아니 어지간한 말로는 귀도 안 간지러워할 그였지만, 유물과 비교하는 건 엄청난 극약 처방이었다.
그리고 유재하의 예상대로 주헌은 심각해졌다.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유물 놈이 인간보다 잘 쓸 것 같다고?
그정도로 심각하단 말인가?
그러나 정작 이름이 불린 동아줄은 펜을 움켜쥐고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
주인님. 내가 써볼까? 내가 써볼까?
곧 주헌은 그런 동아줄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럼 뭘 써야 팬들이 생기는데?”
“찾아보니까 옛날에 여고생들한테 이런게 인기 있었다네요.”
여고생?
주헌은 흥미를 가졌지만, 곧 연타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다는 소설이라는 게 이랬기 때문이었다.
[“내 입술에 키스한 건 네가 처음이야 -_-^ 어떻게 책임질거임? =_=^”
최강 소은율은 입술을 문지르며 화를 냈다. 아 왜! 난 잘못 없는데 -0-;;; 하지만 여기선 빌고 봐야지!
[“죄송해요ㅠ.ㅠ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아 망할 학주 씨벌탱 ㅡㅡ^아니 그게 아니라, 죄송하다구요^^;;;”]
결국 주헌이 심각한 문화충격을 받고 한 마디 했다.
“………………소설은 됐다.”
도저히 자신이 따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훨씬 더 심오한 세계다.’
그러니 소설은 무슨.
무덤이나 돌아다니자.
* * *
주헌의 작가포기 선언.
물론 미래에 나올 소설들을 먼저 써서 인기작가가 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주헌은 그런 명예는 원래 주인이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헌의 결정에 안심하는 부하들이었지만, 주헌은 내심 고민에 빠졌다.
‘흠, 그러면 군중을 어떻게 확보하지.’
그걸 본 유재하가 쓰게 웃었다.
“꼼수를 생각하시려는 건 알겠는데요. 아깝긴 하지만 유물 랭크업은 그냥 포기하시는게 어때요? 군중을 모으는 게 쉬웠으면 정치권이나 연예기획사는 고생도 안하죠.”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여자들만 골라서 사라지는 일본 교토의 괴기 사건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근방의 사이비종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비종교의 본거지는 베일에 싸여 있고, 침입자는 여자 신도들에 의해 모두 살해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교단의 영역 안에서 거대한 대무덤이 발견 되어, 여성실종 사건과 연관이 있을까 조사중입니다.]
그걸 보면서 부하들과 아이린이 한 소리 했다.
“와, 저거저거 교주놈이 수상하네. 혹시 교주놈이 여자들을 납치해가는 거 아닙니까?”
“무덤의 짓일지도요.”
그러자 주헌은 큭큭 웃었다.
관심 밖이라 시선도 안 줬던 여자 소실 사건. 하지만 주헌은 저 사건의 실상을 알았다.
‘저건 분명 하렘 유물의 짓이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척하면 척이었다. 분명 저 사이비종교의 교주란 놈이 하렘 유물을 써서 여자들을 납치하고 있는 것이리라.
단지 지금 당장은 관심이 없어서 보류하고 있었을 뿐.
‘얻어봤자 색욕가들한테 비싸게 파는 수준의 유물이지.’
그러나 사내놈들은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와, 하렘의 유물이래. 여긴 시커먼 놈들밖에 없는데.”
그 말에 움찔한 유재하가 질문하듯 손을 들었다.
“단장님. 설마해서 진지하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뭐.”
“혹시 우리 도굴단, 금녀(禁女)가 원칙입니까?”
“아니? 갑자기 왜?”
그러자 얼굴이 환해진 유재하가 눈을 반짝였다.
“아니 저희도 한참 여자가 그리울 나이들 아닙니까. 여자 단원이라도 뽑아서……그러니까 저희 사내연애라도…….”
그러자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아주 시간이 남아도나 보구나. 좋아. 일거리를 더 늘려 주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닥쳐.”
“아이씨!”
이게 아닌데!
유재하가 훌쩍이자 주헌은 아이린을 보며 웃었다.
“매일 같이 미인이랑 수업도 같이 들으면서 무슨.”
“아니 아이린은!”
유재하는 뭐라고 하려다가 꽁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저 유물 성애자만 관심이 없을 뿐, 누가 봐도 아이린은 뻔히 주헌에게 관심이 있는데 말이다.
‘부러운 인간 같으니.’
그 말에 주헌은 킥 웃었다.
“뭐 걱정마라. 찾고 있는 녀석이 둘 정도 있으니.”
사실 자신의 도굴단엔 두 명의 여자 멤버가 있었다.
그래봐야 그 둘이 이 사내놈들에게 관심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하지만 정작 아이린은 주헌이 말하는 두 명의 여자가 누구인지 꽤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것이리라.
“에이, 그런데 그런 식이면 한동안은 남탕이라는 거잖아요.”
그러나 유재하의 말에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아니. 여자라면 실컷 보게 해주마.”
“네, 네?”
순간 부하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저거다.”
“네?”
“저놈들을 이용해 내 팬을 만든다.”
“네, 네? 하지만 소설은 이제 안 쓰신다고……”
그들이 당황하자 주헌은 악랄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뭐하러 내가 힘들게 개척하며 스스로 팬을 만들어.”
“네?”
“그냥 남이 모아둔 팬을 빼앗으면 그만 아니야?”
“뭐, 뭐라고요?”
그들은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이 사람이?
“저 혹시 교단에 몰려든 여자들을 가로채기 하겠다는……”
“마침 잘 됐지. 저 교단의 영역에 나타났다는 대무덤도 신경쓰이고. 7대 무덤일지도 모르거든.”
하지만 그들은 황당해했다.
“진짜 무덤 쪽이 신경쓰이는 거 맞으십니까?!”
곧 남들이 뭐라거나 말거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제 하다하다 하렘왕의 타이틀까지 얻으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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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던 대로 살아야지 ㅋ_ㅋ
+ 9월 둘째주 코멘트 당첨자 입니다! gogo5673, wngkr1234, hny2001, eofus1, ksyoungsik 님!
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