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87화 (87/409)

00087 한 자리에 모인 왕들  =========================================================================

< 한 자리에 모인 왕들 (2) >

주헌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율리안 뮐러.

갈색머리에 파란 눈. 융통성이라고는 하나없이 딱딱해 보이는 얼굴상은 분명 그가 맞았다.

자신이 무덤공략에 특화된 <발굴꾼>이라고 불렸다면, 놈은 무덤과 유물, 능력자들의 모든 정보와 약점을 꿰뚫어보는 <책략꾼>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놈의 공략법과 그걸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합쳐져 최강의 도굴단으로서 유물들을 휩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저놈도 왕급이었지만.’

애초에 [왕급(지배자)-꾼급(상급)-쟁이급(중급)-견습급(하급)]으로 이루어진 유물 사용자들 중에서 꾼급은 왕의 후보라 불리는 놈들이었다.

놈도 독식자들에게 약점만 잡히지 않았다면 충분히 왕급이 되었을 놈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상위급의.

곧 놈들이 있는 곳에서 펑펑 플래시가 터져나왔다.

“TKBM에서 세 번째 인재를 영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함께 계신 모습을 찍게 여기 한 번만 봐주시죠!”

아무래도 놈은 TKBM의 발굴단에 들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 판도라 모임에서 벌써 여러명이 발굴단에 합류된 모양이니 이상한 광경도 아니었다.

하지만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눈깔 삔 놈 같으니라고.’

하필이면 선택을 해도 저 노친네란 말인가!

물론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TKBM의 대외적 이미지는 좋은 편이었고, 율리안 뮐러는 그래봐야 독일 대학의 가난한 대학생.

대기업의 지원이 얼마나 크게 보이겠는가.

때문에 주헌은 다급하게 달렸다.

그리고 놈들과의 거리는 불과 3M.

거리가 점점 좁혀오자 주헌은 놈들에게 들킬까 슬쩍 몸을 숨기면서 다가갔다. 기자들은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뮐러씨는 유물로 불우이웃을 돕는데 앞장서고 계시다면서요? TKBM 이 적극 후원을 해줄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은 이 분이 구해다 주는 유물을 활용해 사회에 환원드릴 것을 약속 드립니다.”

그 말에 기자들의 탄성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주헌은 쯧 혀를 찼다.

‘저 머리도 좋은 놈은 왜 낚여도 불우이웃 돕기로 낚이냐.’

그렇다.

율리안 뮐러는 유물 사용자 주제에 사람을 아끼며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툭하면 주헌하고 이런 내용으로 싸웠겠는가.

‘주헌, 이번 발굴작업에서 또 사람을 죽였다면서.’

‘민간인은 안 죽였어. 그럼 된 거 아냐?’

‘아니. 말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그렇게 주의하라고 했건만!’

‘야! 무덤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 그렇게 안했으면 내가 죽었어!’

‘그 뿐이 아니야. 얼마전에 영국을 상대로 한 대사기사건. 그거 네가 재하를 시켜서 벌인 짓이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말랬잖아. 영국하고는 협상 중이었는데...!’

‘그 놈들이 꾸물거리니까 그냥 밑장빼기 했어! 뭐가 문젠데! 어차피 우리건데!’

‘제대로 대화를 했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얻었을 거다! 사이만 악화시키고!’

‘어차피 다시 볼 놈들도 아니야. 이 융통성 없는 놈아!’

‘주헌! 네가 너무 막 나가는 거야!’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

서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기에 호흡을 맞췄던 것 뿐이지, 진짜 안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너하고 손잡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이미 자신에게는 무덤과 유물, 능력자들의 데이터가 있었다. 그러니 딱히 제갈공명의 유물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놈의 능력이 권 회장에 넘어가면 곤란하지.’

그러니 아군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아도 최소한 훼방은 놓는다. 자신이 안가질 건 남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뻔뻔한 생각이었다.

그럴 때 권 회장의 옆에 서 있던 낯익은 청년이 말했다.

“회장님은 믿어도 되는 분이야. 그리고 여기계신 리처드 교수님도 이미 복원가로 합류하고 계시지. 아주 뛰어난 분이셔. 복원가는 무척 귀하니 어느 발굴단보다도 좋은 조건일걸?”

주헌은 그 젊은 청년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말을 한 건 다름 아닌 윤시우였기 때문이다.

저놈은 분명 자신에게 좀비 파우더를 빼앗기고 알몸으로 라스베가스를 횡단해야 했던 권회장의 사위놈이 아닌가.

‘좀비 파우더는 제거했나보군.’

뭐 아무래야 좋았다.

그 이후에 윤시우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렇지. 이번에 회장님이 계약선물로 다소니 고아원 재단에 10억을 기부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리처드 교수님도 우호의 표시로 재단에 그림을 기증하시는 건 어떤가요.”

“오, 그거 괜찮지.”

그 말에 주변에서 듣던 기자들이 하하 웃었다.

“그림 기증이라니, 대단하네요! 현대 미술의 거장, 장 리처드 교수님의 그림은 정말 귀한 겁니다.”

“게다가 그림을 다 파셔서 남은 그림은 이제 그거 하나 뿐일테니까요. 그런데 이제 남는 그림도 없을 텐데 괜찮으신 겁니까? 어서 작업하셔야죠.”

“어, 어어. 네. 그렇죠.”

묘하게 표절작가 리처드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눈치 없는 기자들은 기사 거리다 싶었는지 끼어들었다.

“리처드 교수님, 차기작은 언제 계획 중이십니까?”

“내 그림 이야기는 나중에...”

“최근 내시는 그림이 발표한 그림들에 비해 지진부진 하시다고 매니저가 걱정하시던데 무슨 일이라도......”

“그게... 지금 이야기 중이라니까.”

그리고 곤란해하는 리처드를 보며 주헌은 비웃었다.

뭐 저것이 표절 작가의 한계라는 것이다.

일단 유재하에게서 빼앗은 부분까지는 쉽게 그려서 대작가의 타이틀을 받았겠지만, 표절작가가 원작자를 능가할 수는 없는 법.

카피범에게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매번 자기 복제식의 똑같은 그림만 그리게 되어 뭇매를 맞았고, 그 이상의 것은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유재하의 그림 스타일이 그냥 기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더욱 그랬다.

곧 머리를 굴리던 리처드가 쓰게 웃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판도라 일이 바빠서 말이야! 손이 안 잡혀서 그러네. 판도라가 자리 잡히면 곧....”

바로 그 때였다.

“웃기고 있네. 당신이 그걸 그릴 수 있다고?”

“!”

그들은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 서 있는 인물을 보면서 세 명은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저놈은!’

눈 앞에 있는 건 주헌과 유재하, 그리고 에드워드였다.

특히 주헌의 얼굴을 본 권회장과 윤시우는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일그러졌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자존심 높던 그들이 주헌에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려도 이상한 일이 아닌가!

“서주헌 너...!”

실제로 윤시우는 그가 나타난 것 만으로 거품을 물었고, 권회장의 잘난 포커페이스도 뒤흔들렸다. 그리고 수치심에 물든 표정들을 보면서 주헌은 속으로 킬킬 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율리안이 물었다.

“그릴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뭐긴. 장 리처드의 그림은 사실 누군가의 대필작이거나, 표절작이라던데?”

“!”

주헌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동시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웃음을 터트렸다.

“뭐, 예전부터 그런 모함은 있었지.”

“워낙 선생님의 화풍이 바뀌셨으니까....”

“조심해요, 괜히 헛소리하다가 자네 고소당해. 아까도 기자 중에 이상한 질문을 하더니..”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다 기각 됐어.”

그리고 리처드가 따라서 웃었다.

“그래, 사람이 좀 슬럼프가 와서 그런 것 뿐인데 괜한 루머로 사람 고생 시킨다니까.... 정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럼 빨리 더 뛰어난 차기작을 내서 루머를 안 만들면 되잖아?”

“!”

리처드는 뜻 밖의 목소리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 말을 한 건 바로 원작자인 유재하였기 때문이다.

이, 이자식은!

곧 표정이 변하는 그를 보며 유재하가 이죽거렸다.

“왜. 유물을 써서 내 그림을 훔쳐가더니, 더는 그림도 못 그리겠냐?”

유재하 이놈이 진짜.

그의 말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기자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재하가 헛소리를 하는 거든 말든지 간에 표절건은 입방아에 오르는 것 만으로도 화두가 된다.

심지어 유물?

“이, 일단 기사 써!”

“유물로 그림을 훔치다니, 그건 무슨 소리죠?”

“처음 듣는 이야기 입니다!”

“리처드 교수님의 가지신 유물은 분명 미술치료 관련 유물 아니셨나요?”

“자세한 말좀..!”

그러자 리처드가 거칠게 화를 냈다.

“찍긴 뭘 찍어! 다들 고소 당하고 싶나? 관심종자가 하는 말도 구분 못하면 되겠냐고!”

리처드는 죽여버릴 기세로 유재하를 쏘아보았다.

“유재하. 스승이 마음에 안든다고 그딴 식으로 모함하면 쓰나. 응?”

리처드의 오만한 눈빛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무런 빽도 능력도 없는 유재하를 알아서 닥치게 하려는 그 눈빛이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유재하는 전혀 달랐다.

“닥쳐. 스승? 어디서 개소리야. 댁이 내 그림을 훔쳐갔다는 증거도 있거든? 하고 싶으면 재판장에서 보자니까?”

“뭐야, 정말이야?”

“일단 적어!”

리처드는 예상치 못한 일에 손을 떨었다. 그 겁쟁이 유재하가 이렇게 해보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자네, 부모님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봐야 겠군. 스승을 물 먹인다고 말이야.”

일종의 협박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재하는 이죽거렸다.

“미안 할배. 우리 부모님 홀튼가가 보내준 자유여행을 떠나셔서 찾기 힘들 거야.”

그러더니 그는 율리안에게 말했다.

“아 그래 거기 형님. 이 사람들하고 계약하려면 사람은 잘 알아보고 하라고. 누가 또 알아? 불우이웃 돕기 한다면서 형님 유물을 빼돌릴지? 나처럼 피해자 되지 말라니까?”

이에 정작 율리안 뮐러는 당황한 듯 했다.

아니 그도 그럴 법한게, 자신들이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놈들이 나타나서 비즈니스 파트너를 모함하고 드니 황당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찜찜해 하거나 의구심을 품는 게 정상이었다.

실제로 율리안의 표정이 변하자 리처드가 외쳤다.

“이게 정말! 방해하지 마! 쓸데없이 모함한다면 고소하겠어!”

그러자 이번엔 주헌은 웃었다.

“할테면 하시든가?”

“그 전에.”

곧 주헌이 권 회장의 팔을 움켜쥐었다.

“!”

“부디 회장님. 저 사람에게 정복의 유물은 쓰지 않았길 바라는데?”

“!”

권 회장은 황당해서 주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율리안은 권회장을 쏘아보며 주헌을 보았다.

“정복의 유물이라고?”

“그래. 권태준 회장은 정복의 유물을 쓰는 놈이다. 사람의 정신을 교묘하게 지배하지.”

“이 놈이 무슨..!”

“갑자기 계약하고 싶은 마음이 안들던? 잘 생각해. 댁도 거기에 휘말린 걸지도 몰라.”

“.......!”

물론 그렇게 말하지만 순 거짓말이었다.

그냥 교란시키는 것이 목적일 뿐.

동시에 주헌은 미소를 지었다.

‘자, 아무리 순진해도 이쯤 해줬으면 의심이란 걸 해야겠지.’

실제로 율리안 뮐러는 권회장에게 물었다.

“정신 지배의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 일리가 없지 않나. 헛소리다.”

율리안은 주헌을 바라보았다.

“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

“표절도, 정신지배도, 거짓으로 판명되면 내 목을 쳐라.”

그러자 미치겠다는 듯 리처드가 이를 갈았다. 율리안이 제갈공명의 유물을 가진 건 이미 파악한 뒤였고, 아직 사회를 모르는 어리버리한 초년생을 잘 구워삶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그랬기에 그는 도움 요청겸, 급하게 아는 얼굴인 에드워드를 불렀다.

“에드워드! 회장님의 유물 능력이 그런 게 아니란 건 자네가 보증하지 않나! 제대로 말해줘!”

하지만 에드워드는 입을 삐죽이면서 말했다.

============================ 작품 후기 ============================

더위야 언제 사라지니!!!!!!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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